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코로나 바이러스 확진 소식이 알려지면서, 미국 사회는 또 한 번 들썩였다. 대통령이라는 자리의 무게를 감안한다면, 대통령의 건강은 그 자체로 공적 관심사다. 미국 역사에서 대통령 신병이 문제가 되었던 사례는 얼마나 많았을까? 헌법은 대통령 유고 시에 어떤 대응책을 마련해 놓고 있을까?
널리 알려져 있듯이, 지금까지 총 네 명의 미국 대통령이 괴한에게 총을 맞고 사망했다. 16대 애브라함 링컨, 20대 제임스 가필드, 25대 윌리엄 맥킨리, 35대 존 F. 케네디였다. 링컨은 한 발, 나머지 대통령들은 두 발의 총상을 입었다. 케네디는 피격 이후 거의 즉사했고(1963년 11월 22일), 링컨은 피격 다음 날에 사망했다(1865년 4월 15일). 맥킨리는 피격 후 8일 동안 병상을 지키다가 세상을 떴고 (1901년 9월 14일), 가필드는 피격 후 장장 79일 동안의 사투 끝에 숨졌다(1881년 9월 19일).
왼쪽부터 링컨, 가필드, 맥킨리 대통령의 피격 | 그림 출처: 각각 nymag.com, smithonianmag.com, loc.gov
그런가 하면, 네 명의 또 다른 미국 대통령이 역시 임기 중 사망했다. 9대 윌리엄 해리슨, 12대 재커리 테일러, 29대 워렌 하딩, 32대 프랭클린 D. 루스벨트가 그들이며, 모두 자연사 혹은 병사였다. 해리슨은 임기를 시작한 지 정확히 한 달만에 장티푸스로 추정되는 병으로 숨졌고(1841년 4월 4일), 테일러는 1년 4개월 만에 급성 장 질환으로 사망했다(1850년 7월 9일). 하딩은 서부와 알래스카 투어 중에 식중독과 폐렴이 겹쳐 이후 심장마비로 객사했는데, 임기 시작한 지 2년 5개월을 채워가던 시점이었다(1923년 8월 2일). 루스벨트는 네 번째 임기가 시작된 지 한 달여만에 휴양 중이던 조지아 주 웜 스프링스에서 뇌출혈로 사망했다(1945년 4월 12일).
왼쪽부터 해리슨, 테일러, 하딩, 루스벨트 대통령의 초상화 | 사진 출처: loc.gov
미 연방헌법 제2조 1절 6항은 대통령 유고 시에 어떻게 대통령의 직무가 지속되어야 하는지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명시하고 있다. (미 연방헌법은 1787년 9월에 작성되어 이듬해 6월에 비준되었고, 1789년 3월에 새 정부가 출범하면서 효력이 발생했다.)
"대통령이 면직되거나, 사망하거나, 사직하거나 또는 그 권한 및 직무를 수행할 능력을 상실할 경우에, 대통령의 직무는 부통령에게 귀속된다. 연방의회는 법률에 의하여 대통령 및 부통령의 면직 또는 직무수행 불능의 경우를 규정할 수 있으며, 그러한 경우에 대통령의 직무를 수행할 관리를 정할 수 있다. 이 관리는 대통령의 직무수행 불능이 제거되거나 대통령이 새로 선임될 때까지 대통령의 직무를 대행한다."
헌데 위의 규정은 다소 모호하다. 예컨대 부통령이 대통령의 권한과 직무를 맡게 될 경우에, 그는 대통령 '권한 대행'으로서 그 역할을 수행하는 것인가? 아니면, 그가 바로 '대통령'이 되는 것인가? "대통령이 새로 선임될 때까지"란 예정된 다음 선거까지를 일컫는 것인가? 이와 같은 해석 상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1967년에 수정 헌법 25조가 통과됐다. 직접적인 계기가 된 것은 물론 케네디 대통령의 사망이었다.
수정 헌법 25조 1절은 대통령이 면직, 사망, 또는 사임하는 경우에 부통령이 대통령으로 승격된다고 분명하게 규정한다. 그리고 3절에서 대통령이 권한과 임무를 수행할 수 없다는 것을 기재한 공한을 스스로 상원 임시의장과 하원 의장에게 송부한 경우에는 부통령이 대통령 권한대행으로서 대통령의 직무를 수행해야 한다고 명한다. (상원 의장이 아니라 상원 임시의장에게 공한을 보내도록 한 까닭은 부통령이 상원 의장을 겸하는 자리이기 때문이다.)
월터 리드 국립 군 의료센터에 도착한 트럼프 대통령 | 사진 출처: nbcnews.com
2020년 10월 2일, 미국 동부 시각으로 저녁 6시 30분경, 트럼프 대통령이 월터 리드 국립 군의료센터에 입원했다. 코로나 바이러스 확진을 발표한 뒤 하루가 채 가시기 전에 결정된 입원이었다. 이러한 분위기에서 정치권에서는 수정 헌법 25조 이야기가 슬슬 흘러나왔다. 대통령이 수정 헌법 25조 3절에 의거하여 권력을 잠시 부통령에게 양도해야 하지 않냐는 주장이었다.
전례가 없는 것은 아니다. 1985년 로널드 레이건 당시 대통령은 대장암 수술에 앞서 상원 임시의장과 하원 의장에게 공한을 보냈다. 수정 헌법 25조에 의거하여 권력을 공식적으로 부통령인 죠지 H. W. 부시에게 잠시 양도한 것이다. 부시 부통령은 8시간 동안 대통령 권한대행으로 직무를 수행했다. 2002년과 2007년에는 죠지 W. 부시 당시 대통령이 대장 내시경 정기검진에 앞서 마찬가지로 연방 의회에 공한을 보냈다. 그로 인해 당시 부통령이었던 딕 체니가 각각 2시간 정도 대통령 권한대행 노릇을 했다.
레이건 대통령과 부시 대통령이 수정 헌법 25조를 행사한 것은 예방적 조치로 보인다. 본인이 마취 상태에 놓이는 상황에서 혹시 모를 일에 대비한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경우에는 아직 수정 헌법 25조 행사가 필요한 긴급 상황은 아니라고 할 수 있지만, 향후 어떤 수준의 치료가 필요한지에 따라 공식적인 임시 권력 양도가 진지하게 고려될 가능성도 배재할 수 없다. 바이러스 확진자가 백악관과 의회에서 계속 확인되는 만큼, 이미 권력 승계 서열이 높은 고위 인사들은 만일을 대비하여 접촉을 최소화하는 격리 조치에 들어갔을 것이다. 미국의 권력 승계 순서는 관련 연방법에 따라 부통령, 하원 의장, 상원 임시의장, 국무부 장관, 재무부 장관, 국방부 장관, 법무부 장관, 내무부 장관, 농림부 장관, 상무부 장관, 노동부 장관 순이다.
그런데 수정 헌법 25조에서 가장 상세한 부분은 바로 4절이다. 4절의 전문은 다음과 같다.
"부통령과 행정부 주요 장관들의 다수 또는 연방의회가 법률에 의하여 설치하는 그에 준하는 기관의 관리들의 다수가 상원의 임시의장과 하원 의장에게, 대통령이 그의 직의 권한과 임무를 수행할 수 없다는 것을 기재한 공한을 송부할 경우에는 부통령이 즉시 대통령 권한대행으로서 대통령직의 권한과 임무를 인수해야 한다.
그 후에, 대통령이 상원의 임시의장과 하원 의장에게 직무수행 불능이 존재하지 아니하다는 것을 기재한 공한을 송부한다면, 대통령이 그의 직의 권한과 임무를 다시 재개할 수 있으나, 이때 만약 부통령과 행정부 주요 장관들의 다수 또는 연방의회가 법률에 의하여 설치하는 그에 준하는 기관의 관리들의 다수가 상원의 임시의장과 하원 의장에게 4일 이내에 대통령이 그의 직의 권한과 임무를 수행할 수 없다는 것을 기재한 공한을 송부한다면, 연방의회는 이 문제를 결정해야 하며, 회기 중이 아니라면 48시간 이내에 회의를 소집해야 한다. 연방의회가 후자의 공한을 수령한 후 21일 이내에 (회기 중이 아니라면 소집한 지 21일 이내에) 양원의 3분의 2의 표결로써 대통령이 그의 직의 권한과 임무를 수행할 수 없다는 것을 결의할 경우에는 부통령이 대통령 권한대행으로서 계속하여 그 권한과 임무를 수행하여야 한다. 다만, 그렇지 아니한 경우에는 대통령이 그의 직의 권한과 임무를 재개하여야 한다."
앞에서 예로 들었듯이, 가필드 대통령은 피격 이후 79일 간을 병석에서 의식과 무의식 상태를 오갔다. 흡사한 상황이 다시 발생한다면, 이제는 수정 헌법 25조 4절에 의거하여 부통령이 주요 부처 장관들과 함께 연방 의회에 대통령의 직무 수행 불능을 고지함으로써, 스스로 대통령의 권한대행으로 직무를 수행할 수 있다.
만약 대통령이 직무 능력을 완전히 상실했는데도 본인이 그것을 자각하지 못하거나 부인한다면 어떻게 될까? 그래서 부통령과 대통령이 대통령의 직무 수행 불가능성을 놓고 상호 대립되는 주장을 한다면? 위의 4절은 그러한 상황까지 예측하고 있다. 그럴 경우, 대통령의 직무 수행 불가능성을 증명해야 하는 부담은 부통령에게 있다. 상원과 하원 전체의 2/3가 부통령의 해석에 동의할 경우에만 대통령의 업무 정지가 헌법적으로 승인되고 부통령이 대통령 권한대행으로 일하게 된다.
레이건 전 대통령이 임기를 얼마 남기지 않았을 때, 그의 직무 수행 능력을 의심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보고서를 읽지 않고 영화만 보는 시간이 늘어 간다는 소문이 무성했다. 당시 레이건은 미국 역사 상 가장 나이가 많은 대통령이었다. 당시 비서실장이었던 하워드 베이커가 대통령의 적격 심사를 비밀리에 진행했다. 대통령 주변 인물들과 함께 오찬을 나누는 자리로 가장하여 대통령의 역량을 점검해 본 것이었다. 결과는 양호했다.
하워드 베이커와 로널드 레이건 | 사진 출처: latimes.com
결과가 양호하지 않았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당시 부통령이었던 죠지 H. W. 부시가 장관들을 소집하여 수정 헌법 25조 4절을 실행에 옮겼을지도 모를 일이다.
레이건이 대통령 임기를 시작했을 때, 그는 일흔을 바라보고 있었다. 트럼프는 임기를 시작했을 때 이미 일흔이 넘었었다. 그로부터 4년이 지난 지금, 그는 일흔넷을 넘겼다. 조 바이든 민주당 대선 후보는 현재 일흔일곱, 선거가 끝나면 곧 일흔여덟이 된다. 수정 헌법 25조는 분명 예외적 상황을 위한 안전장치다. 그러나 대통령의 건강에 이따금씩 적신호가 계속 켜지는 한, 수정 헌법 25조는 두고두고 회자될 것이다.
<여담>
7대 대통령이었던 앤드류 잭슨은 독립 전쟁과 1812년 전쟁을 모두 참가했던 전쟁 영웅이었는데, 전장과 잦은 결투에서 부상을 많이 입은 관계로 훗날 건강이 좋지 않았다. 그를 향한 암살 시도도 있었다. 다행히 총알은 빗나갔고, 화가 난 잭슨이 지팡이를 이용해서 자객을 제압했다고 전해진다.
27대 윌리엄 태프트 대통령은 300파운드(약 130kg)가 넘는 거구였다. 고혈압과 심장 문제가 그를 계속 괴롭혔다. 그런가 하면, 100파운드(약 45kg) 밖에 나가지 않았던 왜소한 대통령도 있었다. 헌법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제임스 매디슨이었다. 허약했던 체질 탓인지, 매디슨의 심기증(hypochondria), 즉 건강염려증은 유명했다고 한다.
오늘 하루 트럼프 대통령의 코로나 바이러스 확진 문제와 관련하여 백악관의 소통 부족과 불투명성이 도마 위에 올랐다. 과거에는 대통령의 건강 이상 징후를 아예 숨겨 버리는 일도 잦았는데, 물론 언론 환경과 생활양식이 전혀 달랐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예를 들어, 22대와 24대 대통령을 지낸 그로버 클리브랜드는 입 안에 난 악성 종양을 제거해야 했는데, 대통령 수술 사실이 야기할 부정적인 효과를 우려한 나머지, 사람들의 눈을 피해서 친구에게 빌린 요트 안에서 수술을 받은 일이 있었다. 28대 우드로 윌슨 대통령은 임기 중에 뇌졸중을 여러 번 앓았는데, 한 번은 서부 투어 중에 뇌졸중이 와서 신체 일부가 마비되고 정상적인 생활을 못한 일이 있었다. 당시 백악관은 그의 증상을 신경쇠약으로 축소하여 발표했고, 후에도 휠체어 사용을 숨기거나 하는 식으로 건강 문제를 투명하게 알리지 않았다.
이제는 정보의 완전한 통제가 더 이상 가능하지도 바람직하지도 않은 시대다. 트럼프 대통령 입원 이후 정국이 앞으로 어떻게 변모해 갈지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