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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천소년 Feb 20. 2022

산다는 것 그 자체로 의미가 있고 좋은 것

세일즈맨의 죽음, 아서 밀러




독서모임을 통해 매달 한 권씩 고전을 읽게 되어 좋다. 자연스럽게 민음사 세계문학 전집도 모으게 되었다. 이번 달 색종이 독서모임 책은 '세일즈맨의 죽음'이다. 알고 보니 소설이 아니라 연극 작품이었다. (내가 얼마나 문학에 무지한 지가 잘 드러나는 대목이다.ㅠㅠ)


사실 이 작품은 제목부터 이미 스포일러다. '세일즈맨의 죽음'이란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주인공이 죽는 결말이다. 책 표지에 있는 사진이 참 인상적이었다. 세일즈맨으로 연상되는 한 늙은 배우가 눈을 희번덕거리게 뜨고 괴상하게 웃으며 운전대를 잡고 있는 사진이 표지 상단에 실려있다. 표지만으로도 세일즈맨이 자동차 사고를 인해 죽을 것이라는 결말을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다. 왜 그는 죽음을 선택해야만 했을까? 60대 가장이자 세일즈맨인 윌리가 어떤 연유로 인해 자살을 택할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해 주목하며 이 작품을 읽었다.



세일즈맨은 왜 죽음을 선택했을까


대한민국의 경우 노인들의 자살률이 높은 편이다. 그들이 스스로 죽음을 선택한 가장 큰 이유는 결국 경제적 빈곤이다. 자본주의 사회의 눈부신 발전과 풍요로움을 따라가지 못했던 대가는 생존의 위협으로 돌아왔다. 주인공인 윌리 역시 세상의 변화를 따라가지 못했다. 그가 살고 있던 집은 그가 시대 흐름에 뒤처진 사람임을 보여준다. 그의 단독주택은 고층 아파트로 둘러싸여 있다. 햇빛이 들어오지 않아 뒤뜰에 어떤 씨앗을 심어도 쉽게 자라지 않는다. 더욱 비극적인 현실은 수리해야 할 것이 많은 그 낡은 집조차도 온전히 그의 소유가 아니라는 점이다. 그 집에는 여전히 은행 대출이 남아 있다. 외근 판매직이었던 그는 36년 동안 한 회사에서 근무했다. 이제는 기력이 쇠해 더 이상 운전을 하며 타지까지 나가 활동하기가 쉽지 않다. 그의 희망이었던 아들들은 30대가 되었음에도 아직 제대로 된 직장을 잡지 못하고 있다. 장남 비프는 도벽이 있으며, 차남 해피는 바람둥이 기질을 갖고 있다. 60대인 그는 여전히 가장의 무게를 짊어져야 하고 원치 않은 노동을 해야만 한다.


하지만 그에게는 아직 두 가지 희망이 있었다. 36년 동안 충성을 맹세한 회사가 자신의 노후를 지켜줄 것이라는 것과 아들들이 무조건 성공할 것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 두 가지의 믿음에 뚜렷한 근거는 없다. 요즘 유행어로 '근거 없는 자신감'일뿐이다. 주인공인 윌리는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고 그저 허황된 믿음에만 빠져 있다. 그리고 삶의 현실이 가혹하게 느껴질 때마다 풍요로웠던 과거를 떠올린다. 그에게도 왕년에 잘 나갔던 시절이 있었다. 경제 호황 시기에 그는 유능한 세일즈맨이었고, 자식들에게 존경을 받던 아버지였다.


이 작품은 이틀 동안의 시간을 배경으로 한 희곡 작품이다. 장남인 비프가 집으로 돌아온 첫날밤부터 윌리가 자살은 선택하는 그다음 날 밤까지의 시간을 다루고 있다. 첫날밤은 충분히 희망적이었다. 윌리는 판매직 외근이 아닌 사무직으로 보직을 변경할 것이고, 윌리는 전에 일했던 곳의 사장에게 투자를 받아 새 사업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꿈에 부풀었다. 다음 날 모두는 그 희망이 헛된 바람에 불과했음을 깨닫게 된다. 윌리는 사무직은커녕 더 이상 회사에 쓸모가 없다는 이유로 해고를 당했다. 평생을 바쳐 일했던 직장에서 너무도 쉽게 사장의 말 한 마디만으로 해고를 당한 것이다. 비프 역시 전에 함께 일했던 사장과 제대로 된 대화도 나누지 못했다. 심지어 비프의 예상과 달리 사장은 비프를 기억하지도 못했다. 그 과정에서 비프는 사장의 만년필을 훔쳐 달아났다. 차남인 해피는 비참한 하루를 보낸 아버지와 형을 위로해 주기보다 매력적인 여성을 꾀기에 정신없었다.


윌리에게는 아직 갚아아 할 빚이 있었고 당장의 생활비가 필요했다. 하지만 세일즈만이 전부였던 60대 노인에게 세상에 이로움을 줄 수 있는 그 어떤 것도 존재하지 않았다. 예전 회장님과의 추억이나 그동안 회사를 위해 최선을 다했다는 관념적인 이야기는 아무런 경제적 가치가 없었다. 즉, 자본주의 사회에서 그가 지닌 것들 중에 돈이 되는 게 하나도 없었다. 그는 평생을 다른 사람과 비교하며 돈과 지위를 목표로 살아왔다. 그에게 사람을 평가하는 기준은 경제적인 능력이었다. 인간의 가치를 경제적인 능력으로 수치화했다. 그는 자신의 아들도 '주당 35달러짜리'라고 평가했다. 사회에서도 버림을 받게 된 그는 가족들에게도 경제적인 능력과 가치가 없는 무능한 사람으로 보일까 봐 두려웠을 것이다. 안타깝게도 그에게 마지막으로 남아 있던 최고로 가치 있던 것은 보험비가 걸려있던 그의 목숨이었다. 마지막으로 그는 자신의 생명을 장남의 사업 밑천을 위한 자금과 바꾸는 선택을 하게 된다. 가족들이 그의 비극적인 결정을 알았을 때는 이미 그의 차는 출발해버리고 난 후였다.


© benwhitephotography, 출처 Unsplash



우리 시대 아버지의 슬픈 자화상 - '윌리'


도대체 윌리의 문제는 무엇이었을까? 첫 번째는 사회 구조적인 문제에 있다고 본다. 그는 평생을 성실하게 살아왔고 누구보다 열심히 일했다. 하지만 노동으로 벌어들인 소득은 밑빠진 독에 물 붓기였다. 그는 생산자이자 동시에 소비자였다. 받은 월급으로 세상의 발전과 풍요에 맞게 새로 나온 물품들을 사야 했다. 그것도 빚을 내야만 했다. 집뿐만 아니라 세탁기, 냉장고와 같은 가전제품도 대출을 받아야 했다. 돈을 벌어서 빚을 갚고, 빚을 다 갚고 나면 또 새로운 물건을 사야 하는 악순환의 연속이었다. 물론 대공황 이전의 풍요롭고 호황이었던 시기에는 노력한 만큼 돈을 벌 수 있었다. 하지만 자본주의 시스템은 호황 뒤에 반드시 불황이 닥친다. 경제 불황의 날카로운 화살은 그와 같이 생산수단과 자산을 가지지 못한 평범한 시민들에게 가장 먼저 겨누어졌다. (코로나 이후 가장 많이 타격을 받은 경제주체는 대기업이 아닌 중소기업이고, 대형 매장이 아닌 소상공인들이었다.) 그리고 당시에는 그의 노후를 보장해 줄 만큼 사회보장 시스템이 갖추어지지도 않았다. 더 이상 본인에게 경제적인 능력이 없음을 사장으로부터 통보받은 순간자체가 이미 윌리에게는 사형 선고였을 것이다.


두 번째로 윌리 개인에게도 문제가 있다. 그는 주체적인 자신으로서 살지를 못했다. 삶의 목표를 자신으로부터 찾지 않았다. 세상이 정해준 돈, 지위 등을 목표로 살아왔고 자식들에게도 그것을 강조했다. 그에게는 다른 사람이 자신을 어떻게 평가하는지가 중요했다. 그래서 남들이 자신을 험담했다는 사실에 흥분했고, 친구 찰리의 배려도 선뜻 받아들이지 못했다. 게다가 가족들과 제대로 소통하지 못했다. 늘 아내를 윽박지르기만 했으며, 자식들의 이야기를 듣지 않았다. 자신의 가치관만이 옳다고 생각하며 가족들에게 강요했다.


그에게도 잘 나갔던 시절이 있었다. 본인보다 더 많이 돈을 벌고 더 높은 지위를 지닌 사람을 쫓으며 평생을 노오력하며 살아왔다. 하지만 세상은 그의 노후를 지켜주지 않았다. 자식들은 철저히 그의 기대를 배반했다. 평생을 바쳤던 회사와 가족에게 쓸모없는 존재가 되었다는 그의 판단이 그를 죽음으로 몰고 갔다. 만약 그가 자기 자신에게서 삶의 의미와 살아야 할 이유를 찾을 수 있었다면 해고를 당했다는 이유로 그렇게 쉽게 생을 포기하지 않았을 것이다. 또한 가족과 충분히 소통을 해 자식들과 우애있게 지냈다면 그렇게 쉽게 아버지로서의 자신을 놓지 않았을 것이다. 결국 윌리는 아버지로서 자식들을 위해 할 수 있던 최후의 수단인 자살을 선택한다. 그는 죽음을 결심했던 그 순간까지 타인을 의식했다. 자신의 장례식 때 많은 지인들이 찾아와 자식들이 아버지를 자랑스러워할 것이고, 자신의 보험금으로 사업 밑천을 마련한 비프가 친구 아들인 버나드보다 더 잘 될 거라고 기대했다.


사실 그에게도 자신의 목소리대로 살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형을 따라 알래스카로 갈 수 있었다. 하지만 그는 주어진 조건을 버릴 만큼 과감하지는 못했다. 그때 본인이 가지 못했던 길에 대한 아쉬움을 자식들에게 풀었다. 남자다운 매력과 인기가 성공의 중요한 요소라는 잘못된 신념으로 아들들을 가르쳤고 그들을 과대평가했다. 심지어 도둑질과 같은 잘못된 행동도 용기 있는 행동이라고 두둔했다. 다음 문장들을 보면 자식들의 교육에 대한 윌리의 신념을 알 수 있다.


윌리: (도둑질을 눈치채고 같이 소리 내어 웃으며) 돌려주어야지.

윌리: (린다에게 퍼붓는다) 비프가 어쨌다고! 버나드처럼 공부 벌레였으면 좋겠어? 비프는 기백이 있어. 개성이 있다고.

1막


이 작품을 읽으며 나의 아버지 생각이 많이 났다. 아버지께서는 내가 어느 대학에 입학했는지 궁금해하던 친척들에게 거짓말을 한 적이 있으시다. 대학에 입학하지 않았고, 현재 재수 학원을 다니고 있다고 말씀하셨다. 물론 재수를 목적으로 대학에 입학한 것은 맞지만 당시 나는 엄연히 대학교를 다니고 있었다. 지인들께 거짓말을 해서라도 자식에 대한 기대를 깨뜨리려고 하지 않았던 아버지의 마음이 느껴졌다. 동시에 지금의 나는 아버지께 자랑스럽지 못한 아들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어릴 때부터 당신께서는 다른 것은 몰라도 공부하는데 드는 비용만큼은 빚을 내서도 해주겠다며 꼭 좋은 대학에 들어가 승자의 삶을 살아야 한다고 강조하셨다. 다행히 아버지께서는 그런 본인의 생각만을 줄곧 강요하시지 않으셨고, 나의 이야기에도 귀를 기울여 주셨다. 훗날 교사가 되고 싶다는 나의 결정을 응원해 주셨고 지지해 주셨다. 또한 당신의 기대가 나에게 부담을 줄 수도 있었음을 솔직하게 사과하셨다. 아버지께서 이렇게 행동할 수 있었던 이유는 영천에서 S대학을 비롯해 서울의 명문대에 진학했던 친구들의 삶뿐만 아니라 고향에서 터를 잡고 살아온 자신의 삶 역시 긍정하셨기 때문이다. 삶의 정답은 없고 누구나 자신이 가보지 못한 길에 대한 아쉬움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아셨기에 나에게 이런 말씀을 해주실 수 있었다.


"아버지는 어릴 때 공부할 기회를 갖지 못했다. 공부할 기회를 얻은 친구들이 대부분 서울대, 고려대를 가길래 내 아들도 당연히 가능할 줄 알았다. 그래서 네가 학급에서 1등을 하더라도 그걸로 만족하지 말고 전교 1등을 하라고 요구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주변 사람들 이야기 들어보니 공부가 참 어려운 것이더라. 누구나 서울대를 갈 수 있는 건 아니더라. 그 동안 아빠가 장남인 너에게 너무 부담을 많이 줘서 미안하다. 아빠는 그저 네가 한 번뿐인 인생을 후회없이 행복하게 살기를 바랄 뿐이다. 어떤 일을 하고 어떤 곳에 있더라도 네가 원하는 방향으로 의미 있게 잘 살면 그것으로 아빠는 충분하다."


© pawel_czerwinski, 출처 Unsplash


결국엔 자기 발견 - '비프'


다음은 비프에 대해 이야기해 보자. 비프에게도 아버지 윌리처럼 잘 나갔던 시절이 있었다. 그는 고교 시절에 전도유망한 럭비 선수였다. 명문대 합격부터 프로 선수의 삶까지 보장되어 있었다. 하지만 완벽하다고 생각했던 아버지의 부조리를 보며 무너졌다. (아버지의 부조리는 작품에서 확인하기를 바란다.) 충분히 만회할 수 있었던 수학 낙제를 그대로 받아들였고, 고등학교 졸업도 하지 못했다. 자신의 성공을 누구보다 원했던 아버지의 마음에 스크래치를 내기 위해서인지는 명확하게 알 수 없으나 대학 진학의 꿈도 포기했다. 스무 살의 비프는 분명히 실패자였다. 하지만 그는 30대가 되어서까지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무기력하게 지내왔다.


비프의 무기력의 뒤에는 아버지가 있었다. 그는 자신을 과대평가하는 아버지 때문에 평생을 고통받았다. 아버지로 인해 꿈과 이상은 키울 수 있었지만, 아버지가 정해준 꿈과 현실과의 괴리감이 클수록 괴로울 뿐이었다. 아버지는 한때 잘 나갔던 비프의 과거 모습에 집착하며 현재 백수의 삶을 살고 있는 그를 받아들이지 못했다. 윌리에게 장남은 여전히 대단한 인재였다. 조금의 자금만 있으면 사업가로서 성공할 수 있을 거라고도 확신했다. 비프 역시 대학 입학을 포기하며 자신의 불행을 알게 모르게 아버지 탓으로 돌렸다. 사실 스무 살까지는 부모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미성년자인 고등학생 때까지는 자신의 불행을 부모 탓으로 돌려도 된다. 그만큼 한 사람의 성장에 부모가 끼치는 영향이 크다. 하지만 스무 살 이후부터는 온전히 나의 삶이다. 평생을 부모 탓을 하고 그들을 원망하기에는 남은 생이 길다. 만약 스무 살 이후에도 내 삶이 불행하다면 그것은 그렇게 삶을 선택한 자신의 탓이다. 다행히 비프는 가족 중 유일하게 진실을 직면하고 자신이 진심으로 무엇을 원하는지 탐색하려고 한다. 이는 다음과 같은 그의 대사에서 알 수 있다.


비프: 해피, 아버지는 내가 그렇게 큰돈을 빌릴 만한 인간이 아니란 걸 아셔야 해. 아버진 내가 오랜 세월 동안 당신에게 분풀이나 하고 있다는 생각 때문에 더 상태가 나빠지고 있어.

비프: 아버지가 저를 너무 띄워 놓으신 탓에 저는 남에게 명령받는 자리에서는 일할 수가 없었어요! 그게 누구 잘못이겠어요!

비프: 왜 원하지도 않는 존재가 되려고 이 난리를 치고 있는 거야? 왜 여기 사무실에서 무시당하고 애걸해 가며 비웃음거리가 되고 싶은 거야? 내가 원하는 건 저 밖으로 나가 내가 누군지 알게 되는 그때를 기다리는 건데!

2막


그러고 보면 나 역시 실패의 역사를 지닌 사람이다. 고교 입시, 대입 입시, 임용 고시, 연애와 결혼 등 수많은 사안들에서 실패를 경험했다. 그리고 사회가 나에게 원했던 것을 해내지 못할 때마다 공포를 느꼈다. 또래보다 나이가 어려 군대에 늦게 갔을 때도, 결혼이 늦어져 쫓겨나다시피 중국으로 갔을 때도 낙오자가 된다는 것이 무서웠다. 사회 시스템에 잘 적응할수록 시스템이 원하는 대로 내 삶을 설계하게 된다. 하지만 시스템을 만들 수 있는 위치까지 올라가지 않는 한 언젠가 월리처럼 시스템에 버림을 당할 것이다. 그래서 시스템이 아닌 내가 진짜로 추구하는 것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탐색하고 시도해 봐야 한다. 언젠가 세상이 나를 밀어내더라도 또는 내가 세상을 등지더라도 내가 무엇을 할 때 행복하고 기쁜지를 알고 있다면 언제 어디서라도 즐겁고 의미 있게 하루를 살아갈 수 있다고 믿는다.



글을 마무리하며 - '찰리'


윌리: 그런데 자네는 아이에게 뭘 하라고 얘기한 적이 한 번도 없나? 아이에게 도통 관심을 두지 않았잖나.

찰리: 아무것에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게 내가 사는 방식이지.

2막


글을 마무리하며 윌리의 친구였던 찰리를 주목하고 싶다. 윌리는 비프와 달리 변호사로서 승승장구하고 있는 버나드를 보며, 버나드의 아버지이기도 한 찰리에게 묻는다. 버나드가 저렇게 잘 성장한 비결이 무엇이냐고. 찰리는 아무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것이 본인이 아버지로서 사는 방식이라고 말했다.


나는 그의 메시지를 이렇게 해석했다. 내가 아들에게 바라는 삶의 태도를 훈계하고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그가 스스로 자기 인생의 답을 찾아갈 수 있도록 믿고 기다리겠다고. 아버지로서 아들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나 자신의 삶으로 아들에게 하고 싶은 말의 모범을 보여주는 것이다. 아들에게 뭔가를 가르치려고 하기 전에 나부터 매일 주어진 하루를 잘 살고 싶다. 또한 내가 과거에 옳다고 생각하는 삶의 가치만을 맹신하지 않을 것이다. 지금 시대 통용되는 가치가 미래를 살아갈 아들에게는 다른 세상 이야기일 수도 있다.


윌리는 자신의 가치관을 맹신했다. 죽는 그 순간까지 자신이 자본주의 사회의 부속품으로 가치가 떨어진 후에 버림받았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 그리고 생각했던 목표에 도달하지 못하고 경제적인 능력을 잃게 되자 스스로를 인생의 패배자라고 단정지었다. 아들이 사업에 성공해 큰돈을 벌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기꺼이 자신의 목숨을 내던졌다. 하지만 정작 아들에게는 네가 원하는 삶이 사업을 통해 큰돈을 버는 것이냐고 물어본 적은 없다. 꼭 사회적으로 모두가 우러러보는 성공만이 훌륭한 삶은 아니다. 모든 학생이 전교 1등을 할 수는 없다. 모든 운동 선수가 프로에 진출할 수도 없다. 모든 연습생이 아이돌이 될 수도 없다. 하지만 누구나 저마다의 방식으로 의미 있고 즐겁게 살아갈 수 있다. 사는 것보다 죽는 게 더 가치 있는 인생이 되었다는 윌리의 말에 찰리가 답했다. "어느 누구에게도 죽는 게 더 나은 경우는 없네." 분명히 살아간다는 것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좋은 것이다.



세일즈맨의 죽음 / 아서 밀러 / 민음사 발매 / 2009.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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