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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런던 율리시즈 May 30. 2017

친절한 싱가포르 할배를 잊지못하고...

싱가포르 여행 에세이



쿠알라룸푸르 국제공항 2(KLIA 2)에서 '에어 에이시아(Air Asia)'를 타고 싱가포르로 향했다. 눈에 잘 뜨이는 큼직한 부착표를 나누어 주어 사용하기 편리하였고 큰만큼 짐 잃어버릴 확률도 줄거라 생각됐다. 이 국제공항은 저가 항공사를 위해 지은 공항이었다. 그래서 '에어 에이시아'가 주로 이용하는 공항이었고 이 저가 항공사는 '토니 페르난데스(Tony Fernandes)'가 창립자였다. 박지성 선수가 뛴 런던의 QPR 축구단 소유자이기도 한 이 말레이시아 사람은 영국의 '라이언 에어(Ryan Air)'나 '이지 젯(Easy Jet)'창립자처럼 유명인사이며 가끔씩 이들을 따라서 자유분방하게 튀는 행동도 하였다. '이지 젯' 창립자와 같이 명성높은 런던정경대(LSE) 출신답게 비즈네스도 톡톡 튀게 신선하게 잘하였다. 김정남 사건으로 말레이시아를 소개하면서 이분을 타밀계로 여러 한국신문은 보도하였지만 사실 영국의 고아(Goa) 출신들은 이분이 자랑스런 고아의 자손이라고 늘상 말했다. 구글로 검색해보니 아버지는 고아 사람, 어머니는 인도 남쪽 케랄라와 크리스텡(Kristeng)이란 유럽인과 아시아인의 혼혈이었다. 그래서 이분은 다민족 말레이시아의 '진짜' 말레이시아인이었다. 싱가포르까지는 1시간도 채 안되는 짧은 비행시간이었다. 원래 코치(Coach)로 싱가포르로 들어 갈 계획이었으나 시간상 또 주머니 사정상 이 저가 항공이 유리하였다. 특히 육로로 싱가포르 입국시 따르는 까다로운 입국심사와 통관검사에 질렸다고 가이드는 누누히 설명했다. 영국으로 독립후 한때는 같은 나라였던 이 두나라 간의 철저한 분리는 이렇게 출입국절차에서도 나타났다. 얼마전 돌아가신 싱가포르 건국의 아버지인 리콴유 전 수상은 싱가포르가 말레이시아 연방으로 독립하지 않는 한 독립의 가망성이 없음을 간파하고 말레이시아 연방 소속으로 독립한 후 분리를 시도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만약 싱가포르가 분리하질 않았다면 과연 지금의 싱가포르가 됐을까? 의문이 들었다.

싱가포르는 그 전에도 몇번 왔었다. 그래서 그렇게 낯설지 않은 도시였다. 올때마다 사연은 각각 달랐다. 맨 처음 싱가포르에 왔을 땐 수십년 전이었다. 그때 영국으로 다시오면서 싼 비행기 티켓을 골랐는데 그것이 '싱가포르 항공사'였다. 종로의 낡은 YMCA건물에 있던 어느 여행사(이름도 기억안난다)에서 표를 구입하였다. 그 땐 요즘처럼 편리한 인터넷 구매라는게 물론 없었다. 그래서 비교하면서 고르는게 아닌 그냥 '런던으로 가는 싼 비행기표 없나요?' 해서 얻은 결과였다. 싱가포르 항공은 당시도 스위스 항공과 더불어 세계 최고 항공사라는 찬사가 있었는데 어떻게 그 싼 표가 생겼는지 의문이다. 대신에, 당시 서울 김포공항에서 싱가포르, 거기에서 런던의 히드로까지 가야하는 길고 긴 여행이었다. 싱가포르엔 딱 3일 머물수 있었다. 그러나 그 때는 싱가포르를 즐길 수가 없었다. 무슨 고민이 그렇게도 머리속에 가득했는지, 그때도 빌딩 숲으로 병풍처럼 처진 해안가를 축 쳐진 어깨로 어슬렁 걸어다녔다. 영어에 대한 부담감, 다가올 학교공부를 도대체 이 머리로 해낼까, 또 곧 학교를 바꿔야 하는데 잘 될까 등등. 구차한 세상의 고뇌를 다 짊어진 나였었다. 시내 한가운데 있는 St. Andrews 성공회 성당에서 힘없이 죽치고 앉아 있었던 기억도 난다. 이 성당은 영국인이 최초로 세운 성당이라고 했다. 밖은 펄펄 뜨거운데 성당안은 시원했다. 정원도 좋았다. 그저 그것뿐이었다. 주어진 3일간의 일정을 그렇게 근심걱정으로 지새우고 런던행 비행기에 올랐다.

그러다가 한 참 후 사제가 된 후에 다시왔다. 그것도 또 경유지로서 싱가포르에 왔었다. 켄트의 한 성당으로 발령나면서 운좋게 그 성당이 캄보디아의 한 성당과 자매결연을 맺고 있어 다 큰 성당 청년 3명과 함께 캄보디아를 방문하면서 이곳을 경유한 것이다. 런던에서 캄보디아로 가는 직항은 없었다(지금도 없다.). 캄보디아로 가는 길은 세개로 선택권이 주어졌다. 하나는 타이 항공으로 방콕경유, 두번째는 말레이 항공으로 쿠알라룸푸르 경유, 마지막으로 싱가포르 항공으로 싱가포르를 경유해 프놈펜으로 가는 것이었다. 우리는 싱가포르 항공을 이용했다. 왜냐면 또 그게 가장 싼 티켓이었다... 사실 싱가포르는 옛 기억땜에 피하려했으나 본당 청년들의 논리에 꺽일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물가 비싼 싱가포르가 나에겐 '싼' 이유땜에 들러는 곳이 되고 말았다. 그러나 결과는 좋았다. 우리 청년들은 싱가포르 항공의 멋진 서비스에 경탄했다. 지저분한 걸 질색하고 항상 위생에 철저한 한 여자애는 매 20분마다 스튜어디스가 비행기 화장실을 점검하고 청소를 하더라고 만족해 했다. 우째 그것까지 유심히 살폈는지 특이한 청년이었다. 그 당시 경험한 싱가포르는 첫경험보다 모든게 좋았다. 오키드 가든이며 마천루가 지천으로 널린 마리나 베이의 한 빌딩 옥상에 올라가 싱가포르를 한밤에 내려다 보기도 했다. 별들이 우르르 쏟아지듯 한 싱가포르의 야경은 최고였다. 아직도 우리 청년들은 그때 그 싱가포르를 얘기한다. 일요일엔 싱가포르의 한 성당에서 미사도 했다. 그때 중국계 신부님이 영어로 내가 북한이 아니고 남한에서 왔다고, 그래서 걱정말라고 신자들에게 소개시켜 날 난처하게 만들었다. 차이나타운(Chinatown)도 방문했고 리틀 인디아(Little India)도 방문했다. 그러나 2km가 넘는 쇼핑가 오차드 거리에서 한참을 걸어서 올라간 '오키드 가든'이 그 중 최고였다. 우리는 시내에서 떨어진 '싼' 호텔에 머물렀다. 호텔은 싸지만 깨끗하고 좋았다. 본당 청년중 동유럽에서 온 애는 유럽밖 나들이는 처음이었고 열대지방이라 몸조심(?)을 심하게 하였다. 놀란 것은 이 애가 동유럽에서 가져온 독한 보드카를 두병이나 가방에 숨겨온 것이었다. 얘가 왜이래 하면서 물어보니 열대지방이라 음식 잘못먹어 감염(infection)이라도 될까봐 보드카를 마셔 위를 소독하라고 누가 그랬다는 것이다. 보드카로 위를 소독해? 어이가 없었다. 그러나 여행을 마치고 오면 내 방에서 잠시 만나 청년들과 독한 보드카를 조금씩 나눠 마셨다. 그렇다고 위가 소독이 되는지는 모르지만 대신에 잠은 실컷 잘잤다.

싱가포르 사람들은 친절하였다. 개인적으로 그런 인상을 많이 받았다. 길을 물으면 항상 친절하게 그리고 관심을 가지고 가르쳐 줬다. 중국계가 70%정도라 거의 중국 사람들이었다. 한번은 캄보디아에서 런던으로 돌아가는 중 싱가포르 창이 공항에서 런던행 비행기로 갈아타야 했다. 문제는 프놈펜공항에서부터 늦게 출발한 비행기가 당연히 창이 공항에 연착했다. 갈아타는 시간적 여유가 적었다. 여행을 좀 해봤다고 영어도 할줄안다고 자신만만하며 걱정도 안했다. 창이 공항에 내린뒤 복도에서 tv 화면을 슬쩍 체크하곤 이 쪽 복도야 안심하면서 걸어갔다. 다른 승객들 대부분은 다른 아시아 도시로 가거나 호주로 가는 승객이어서 나와 다른 방향이겠지 하면서 나혼자 잘도 걸어갔다. 한참가니 청소하시는 한 중국계 할배가 중국억양 가득한 영어로 어디 가느냐고 했다. 런던이라고 대답했다. 그러나 할배는 그럼 이 길이 아니라고 했다. 고맙다고 하면서도 내가 확인했다면서 슬쩍 무시하며 내 고집을 부렸다. 할배는 등도 굽고 연세도 많이 드신것같은데 공항청소를 하셨다. 난 내가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한 전광판과 게이트였기에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그래서 계속갔다. "Excuse me, excuse me" 하시며 할배는 날 따라 오시면서 이 길이 아니라고 또다시 다그쳤다. 그 큰 공항에서 갈아탈 시간은 사실 촉박했다. 그래서 약간은 귀찮기도 했다. 그렇지만 '혹시'하면서 먼길을 다시 돌아가 확인하고 화살표도 점검했다. 싱가포르 할배의 말씀은 옳았다. 얼른 고맙다고 하면서 다른 방향으로 냅다 뛰어갔다. 게이트에서는 벌써 승객들이 탑승을 다하고 겨우 두세명만 보였다. 어휴... 뛰어서 얼굴이 달아오른게 아닌 할배 말씀을 무시한 속마음이 들켜서 무안했다. 정말 무안하고 부끄러웠다. 비행기 안에서 한참을 할배 생각을 하며 고마워했다.

싱가포르로 가는 짧은 비행시간에도 그 친절했던, 날 따라 오면서까지 이 길이 아니라고 한 싱가포르 할배를 기억했다. 벌써 10년도 넘었다. 그 중국인 할배는 은퇴하셨을 것이다. 그래서 창이 공항은 세계적인가 보다. 가끔식 한 사람의 인상으로 전체가 인상지어지곤 한다. 아마 삶의 '제유법(synecdoche)'이 아닐까? 같은 경우로 홍콩에서 경험한 거친 두세가지 '불친절'경험은 오랫동안 전체 홍콩의 인상을 지배했다. 그래서 가끔은 왜 같은 중국인이라도 이렇게 다를까를 생각했다. 사실은 내 주관적인 입장에서의 인상이었는데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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