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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런던 율리시즈 May 29. 2017

높은 빌딩, 헛된 욕심...

말레이시아 여행 에세이-쿠알라룸푸르

밋밋한 보통 건물보단 낫다. 지금은 말레이시아의 상징처럼 되었다.


잠시 멈췄던 비가 쿠알라룸푸르 호텔에 도착했을때 억수같이 또 쏟아졌다. '억수'같이 우락부락하게 생긴 호텔 수위 몇분이 나와 우리 일행의 무거운 짐들을 쏟아지는 비에도 아랑곳않고 친절하게 날라다 주셨다. 열대의 비는 이렇게 통 크게 내렸다. 쫄쫄내리는 런던의 보통비와는 이렇게 달랐다. 호텔정문까지 겨우 십여미터거리임에도 옷은 다 젖어버렸다. 겉보기와 속마음을 판단하는 못된 버릇은 이렇게 하늘에서 마냥 쏟아붓는 비에 초라하게 일그러졌다. 호텔방에 올라가는 엘리베이트안에서 우리 일행은 각자 몇층이냐고 비교했다. 각각 달랐다. 가장 높은 층, 방에 올라 창을 통해 밖을 보았다. 높은 층이라 은근히 더 많은 걸 볼거라 욕심했다. 그게 드러나지 않은 내 욕심이었고 그런 욕심은 이내 비처럼 씻겨져 내려갔다.


빌딩숲인 시내 한가운데서 높은 층은 별 의미가 없다는 걸 왜 몰랐을까? 욕심은 '무지'에서 일어났다 '실상'에서 깨졌다. 창문밖은 또다른 고층 빌딩이 떡하니 막고 있을 뿐이었다. 이걸 보러왔나? '면벽좌선'이라도 해야할까? 간단하게 짐을 정리하고, 이 도시를 한번에 보려, KL 타워로 갔다. 쿠알라룸푸르의 숱하게 많은 고층 빌딩중 이 빌딩은 남산의 전망대와 비슷했고 구실도 비슷했다. 언덕위에 지어져 사실 페트로나스 타워보다 단순비교 높이론 더 높았다. 전망대에 올라가서 어슬렁 거리며 한바퀴를 빙 두르며 이 현대도시를 훓어봤다. 전망대 중에서도 페트로나스 타워가 보이는 쪽엔 너무 많은 사람들이 몰려 아예 제대로 볼수도 없을 뿐더러 사진도 찍기 어려웠다. 중국인 단체 관광객들의 소란은 높은 공중에서 더 증폭되었다. 이렇게 폼도 잡고 저렇게 폼도 잡았다. 혼자도 찍고 여럿이도 찍었다. 이래라 저래라 소리도 컸다. 웃어봐라, 손으로 V자를 그려라, 주문도 많았다. 혹시 너무 한쪽으로 몰려 이 홀쪽하게 서있는 건물에 지장은 없을까? 괜시리 걱정도 되었다. 바다에 뜬 배가 중심을 잃을 때가 갑자기 상상됐다. 밸런스를 못맛추면 탈이 생긴다는 건 음양오행의 진리 아닌가? 육지건 바다건, 또 사람의 건강도, 음양의 조화가 아닌가. 중국인들은 이 진리를 발견해 놓곤 왜 따르지 않을까. 괜히 부아가 치밀었다. 그리고 왜 중국인 뿐 아니라 우리 모두 높은 걸 좋아할까? 내려다 보는 걸(남 깔보는 건) 우리 취미일까? 아님 인간본성일까?


중진국 말레이시아에 몇년 전만해도 세계에서 가장 높았던 빌딩을 세웠다. 장장 20년을 넘게 철권통치한 전 수상 닥터 마하티르(사람들은 그렇게 불렀다)가 주도하여 세웠다. 우리도 뭔가 보여주자 하는 욕심이었으리라. 그의 정권에서 세운 '말레이시아 2020 계획'의 일부분으로 2020년까지 말레이시아는 당당 선진국 대열에 진입한다는 희망이었다. 이 쌍둥이 빌딩의 한쪽은 한국의 삼성이 다른 쪽은 일본주도로 은근슬쩍 서로 경쟁심을 유발시키며 책략을 썼다. 똑같은 높이의 쌍둥이 건물에 뭔 경쟁이 필요할까 생각했지만 그렇게 경쟁은 건물 시공부터, 아니 세상 태초부터 인간 심연 깊숙히 자리하고 있었다. 이 2020계획도 근본에는 국민모두에게 경쟁심을 유발시켜 또는 경쟁으로 내몰아 '잘 사는' 선진국가를 만들자는 것이었다.

말레이시아의 여행가이드로부터 들은 가장 많은 단어는 이 페트로나스 타워와 싱가포르였다. 페트로나스 타워는 말레이시아 수도 중심에, 싱가포르는 이 나라 밖에 위치해 있다. 그러나 한때 말레이시아가 품었던 싱가포르는 말레이시아 사람들 마음속에 아직 떠나지 않고 깊숙히 자리하고 있었다. 가이드는 말레이시아의 존재가치가 마치 싱가포르와의 비교에서 나오는 것처럼 서로 얼마나 다른지를 조크로 끊임없이 비교했고 이 끊임없는 비교로 깊숙이 각인된 심리적 경쟁과 질투를 어김없이 드러냈다. 우리가 일본과 항상 비교하는 것과 똑같았다. 신문에서도 무슨 국제 순위가 나오면 일본은 몇위인데 우리는 몇위인가를 친절하게 설명한다. 만약에 우리 순위가 높으면 기분도 올라간다. 이 페트로나스 빌딩은 대부분의 싱가포르와의 비교에서 뒤쳐지는 말레이시아가 내세울 수 있는 가시적인 자부심의 상징이다. 지금은 세계 최고가 아닌 이 쌍둥이 빌딩은 사실 싱가포르를 넘어 말레이시아의 상징이다. 런던 차이나 타운의 말레이시아 레스토랑(사실, 중국계 말레이시아 인들이 운영하는 중국 레스토랑)에도 항상 이 페트로나스 타워 사진을 전시해 놓았던 걸 기억했다. 가이드는 이 빌딩 전과 후의 말레이시아 관광객 숫자를 인용하며 닥터 마하티르가 선견지명이 있었음을 언뜻 언급했다. 싱가포르의 리관유 수상과 비교해서인가 아님 따라해서인가? 덧붙여, 이 빌딩은 단일 빌딩이 아닌 쌍둥이 빌딩으론 아직 세계 최고라고 생각지 못했던 얘길하였고, 이말을 반복 강조했다. 하긴 여행 가이드는 타블로이드 뉴스처럼 뭔가 센세이셔널한 걸 찾아내 강조하며 사람들의 시선과 흥미유발을 우선으로 한다고 치면 이 둘의 본성은 비슷할 것이다.

적어도 이 KL 타워의 전망대에서 아래로 내려다 보이는 쿠알라룸푸르는 발전된 현대도시였다. 그리고 적어도, 겉보기와 같이 '속'도 발전된 나라였다. 물론 발전의 기준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다르지만 말레이시아 국민들 전체가 '스마트 카드'라고 하는 개인정보가 속속들이 담긴, 심지어는 교육정도까지 내장되어있는, 카드를 가지고 있다고 직접 자신의 카드를 우리 일행에게 돌려 보여주며 가이드는 말레이시아가 이런 분야에서 앞서감을 우회로 자랑했다. 문득 십여년 전에 영국 정부에서 비슷한 아이디어의 '아이디 카드(ID Card)'를 시행하려다가 전체 국민의 심한 반대로 처참하게 무산된 걸 상기했다. 그 당시 난 이 아이디어를 좋아했다. 이런 주민등록증 같은게 있으면 행정상 편리할 것이라 믿었다. 오직 하나뿐인 여권을 이리 저리 보내 'ID' 체크를 하다 분실사고나 나면 어쩌나 걱정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실 영국에선 '개인 정보 보호'의 논리가 더 셌다. 센시티브한 개인정보는 안 담겼다고 정부가 설명에 설명을 거듭해도 영국국민은 정부에 신뢰를 못했고 결국은 무산됐다. 내가 우리나라의 주민등록증과 주민등록번호를 설명하면 개인 정보 프라이버시 침해뿐 아니라 인권침해까지 확장해석하던 영국인들이었다. 말레이시아는 아마 큰 저항없이 국민의 교육정도, 건강정도, 신용정보까지 담긴 스마트 카드를 발급했을 것이다.

말로만 들었던 페트로나스 타워로 갔다. 과연 높았다. 주위의 여러 빌딩도 높았고 적어도 서울처럼 성냥곽 빌딩은 아니었다. 높은 쌍둥이 빌딩 아래엔 스무명 남짓되는 사람들이 셀피 스틱을 팔고 있었다. 직접 사진도 찍어주며 봉사하는 이들도 있었다. 대부분이 필리핀이나 네팔 그리고 파키스탄에서 온 이민자들이었다. 경찰에 쫒기며 하루하루를 살아야 하는 그들이었다. 저렇게 높은 빌딩처럼 인간의 꿈과 야망은 계속해 높아져도 그 밑에서 하루 하루를 버둥대며 살아가는 인간군상도 있었다. 높게만 올라가는 욕심땜에 혹시 많은 이들이 그 아래에서 고통받는 걸 아닐까? 내 헛된 욕심땜에 남들이 희생당하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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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적 거물이 즐비하다.
페트로나스 타워.
높음을 자랑. 그러나 야자수가 없으면 삭막하다.
키 자랑?
아래엔 긴 분수대가 있다.
여러 인종과 문화가 섞여있어 음식도 다양한 말레이시아.
중국식, 인도식, 말레이식...
양념도 가지가지...
디저트를 담아파는 거리의 상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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