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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tgrim Dec 18. 2018

어서 와, 숫자는 처음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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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서 와, 숫자는 처음이지?”

지난번에 언급했듯이, 미술대학 가기가 예전보다 복잡하고 어려워졌어. 많은 어린 청춘들이 참고 견디며 지금 이 순간도 애를 쓰고 있지. 학원비 때문에 알바와 학업을 병행하는 아이들도 많고. 그렇게 들어간 미술 대학을 졸업하게 되면, 모두가 바로 “화가”가 될 수 있을까? 지금부터는 엄마도 너도 무지 싫어하는 숫자를 좀 봐야 할 거 같아.

2008년 5월에 발표된 미국 국립예술기금위원회(National Endowment for the Arts)의 48번째 연구 리포트 “노동인구 중 예술가 1990-2005년 (Artists in the Workforce)”의 내용을 잠깐 살펴볼까.(*)

이 보고서에는 미국의 200만 명 예술인들을 총 11종 직업군으로 분류하였는데, 배우, 화가, 음악가, 외에도 웹디자이너 애니메이션 작가 등도 포함되어 있어. 2008년 당시 미국인 근로소득이 평균 연 6만 달러였는데, 예술가들의 평균 근로소득은 그 절반 수준인 3만 4천800달러. 이들이 주로 대도시 생활한다고 봤을 때 이는 매우 낮은 소득 수준이야. 배우 8명 중 1명만 연기로 생업 유지할 수 있었고, 악기 연주자 4명 중 1명만이 연주만으로 생업 유지를 한다고 해. 200만 명에 이르는 예술가 가운데 78만 명이 디자이너라고 응답했고 지난 15년간 무려 30% 증가했던 반면, 화가 등 순수미술 작가들은 총 22만 명으로 20% 이상 격감 중이라고 해. 더 세부적으로 들어가서 순수미술(fine art) 전공한 대학 졸업생 중 풀타임(full-time) 직장을 구하는 사람이 10명 중 1명 꼴이었대. 

지난 2016년, 일본 모리기념재단 도시전략연구소에서 세계 각국의 임금, 거주, 복지 등 종합해 ‘예술인들이 살기 좋은 도시 비교 조사’를 했는데, 거기서 서울은 세계 주요 40개 도시 중 35위를 차지했다고 해. 얼마 전에 발표된 2018년 조사 결과에서는 44개국 중에서 25위로 다소 상승하긴 했어. (**) 

미국의 조사와 일본의 조사를 겹쳐 놓고 볼까? 밖에서부터 앵글을 서서히 좁혀 나가며 우리를 다시 바라보면, 좀 더 냉정하게 우리의 상황이 보이지. 우리나라 미술대학들 대부분이 “미국형” 학제 시스템과 유사한 점, 게다가 서울이 유독 여러 지표들 중에서 “예술가” 지표만 세계 도시 순위권에서 뚝 떨어져 평가받고 있는 점. 이건 다시 말해서, 우리나라의 미술대학 순수미술 전공 학생들의 졸업 후 소득 수준 및 노동 현황 수준이 심각하다는 걸 확인해볼 수 있는 비교 지표는 될 것 같아. 

자, 그러면 이제 우리나라의 조사들을 잠시 볼까.
물론 우리 정부도 “예술인 실태조사”라는 몇 년에 한 번씩 해. 그런데 여기서 분류하는 “예술인”들의 목록에는 함께 뭉텅 넣어 보기가 애매한 분야들이 뒤섞여 있는 것 같아. 2015년의 문광부의 “예술인 실태조사”만 보더라도 ‘극빈층’에 해당하는 문인들과 연극인들에 주로 주목하고 있어. ‘급히 꺼야 하는 불’로 보이니까. 숫자상으로는 그래. (미술 분야는 사실 제대로 조사했다고 보기 어려운 통계치야) 그런데 2011년 생활고로 사망한 극작가 최고은 씨 사건 이후, 이른바 “최고은법”이라던 “예술인복지법”을 들여다보면, 정작 최고은 씨조차 법적 혜택권 안에 들어올 수 없는 어떤 모순이 있더라고. 그만큼 “예술가”를 정의하고 분류하는 기초적인 합의조차 되어 있지 못한 상태에서, 장르별 분야별로 너무나 다양한 차이와 현실들이 그저 “퉁”쳐져 조사되어 있어서 매번 숫자를 봐도 참 그래. 이걸 가지고는 뭘 어떻게 하자는 일이 너무나, 정말 ‘지랄 맞게’ 어렵거든. (그 다양한 차이와 현실에 대해서는 “3. 예술시장” 편에서 다시 자세하게 다루려 해.)

그리고 응용미술 분야 즉, 디자인 관련 전공자들은 별도로 다루는 게 맞을 것 같아. 네덜란드의 경제학자이자 화가인 한스 아빙(Hans Abbing)이 자신의 책, 『왜 예술가들은 가난해야 할까?』서문에 썼듯이, “응용예술의 경제는 보편적인 경제에 속한다”는 말에 개인적으로 동의하거든. 디자인 분야는 태생적으로 현대 산업 분야와 맞물려 돌아가는 틀이 따로 있으니까. 그러므로, 애초에 이 이야기를 시작하게 된 이유, 내 사랑하는 딸이 장래 희망으로 썼던 “화가”, 여기에만 초점을 두고 순수미술 전공자들의 숫자들만 이야기하려 해. 

2015년의 미술교육논총(Art Education Research Review)에 실렸던 <미술대학 졸업생의 취업 현황 연구>가 그나마 현실적인 숫자들을 다루었지 싶어. 이 연구는 서울 소재 4년제 대학의 2011년-2013년도 졸업생 중 미술대학의 디자인, 건축, 이론 전공을 제외한 조형미술(회화, 조각, 공예, 도자, 사진, 영상, 설치 등) 전공자를 대상으로 조사했고, 결과는 요약하면 다음과 같아. (***)

1.

 “우리나라에서 순수미술을 전공한 미술대학 졸업생의 수는 매년 3,200명에 육박한다. 2014년 당시 미술가 수는 4만에서 5만여 명으로 추정되는데, 작품 제작을 통한 월평균 수입이 100만 원 이하인 미술가가 전체의 79%에 이른다. 또한 2013년을 기준으로 전속작가 제도를 운영하고 있는 국내 화랑은 전체 432개 중 151개 (34.9%)이고, 이들 화랑에서 전속작가로 활동하고 있는 미술가는 929명에 불과하여, 작품 활동만으로 생계를 유지하기가 매우 힘든 현실이다.” 
(지방 도시 경우에는 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하지 않은 전업 작가들도 상당히 많음)
.
2. 

“(2013년에) 졸업한 이들 대다수가 (당장은) 취업을 했으나, 대부분 임시직으로 월평균 150만 원 이하의 월평균 소득이었으며 과반수가 미술학원 강사, 일러스트레이터, 디자이너, 전시기획자 등 미술 관련 업종에 종사하고 있으며, 졸업 후에도 작품 활동을 계속하고 있는 사람은 매우 소수에 불과한데, 그나마도 작품 활동을 통한 수입이 아예 없거나 매우 적고, 전공을 살려 졸업 후 미술가라는 직업을 스스로 인식하기 힘든 환경이며, 대부분 만족하고 있지 않고, 대다수가 이직을 원한다.” 
(지난주 이야기에서, 2->50 수준으로 확장된 미대입시 사교육 시장을 고려하면 졸업생 대부분 이 안에서 먹고 산다고 봐도 될 정도임)

2000년 초반부터 지금까지 거의 20년 가까이 지속적으로 순수미술 전공자들을 위해 대학 커리큘럼 개편에 대한 논의도 많았고, 전업 작가가 되는 교육과정 이외에 다른 다양한 체험들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있었지. 다들 왜 고민 안 했겠나? 하지만, 작가가 되는 일이 꼭 4년의 교육 과정을 통해 되는 것이라고 규격화할 수도 없는 일이거니와, 그렇다고 또 ‘다른 일거리’를 찾는 미대생들을 위한 ‘직업훈련소’가 될 수도 없는 행정적인 문제도 있지. 

새 정부 들어서, 예술인복지법이니, 미술인보호법이니 이야기들이 있기는 하는데, “법제”적인 틀 안에서는 이제 막 대학을 졸업한 작가 지망생들은 거의 혜택을 누릴 길이 없는 실정이야. (단 한 번이라도 개인전을 했어야 ‘작가’로 간주하니, 시작부터 막혀 있는데 어쩔.) 그래서 지난 몇 년 정도 학교 자체적으로 오가는 말들을 들어보면, (1) 작가가 되려는 학생들은 포트폴리오 제작 및 기획․홍보 등과 관련된 수업을 늘려 달라. (2) 작가가 되는 것 외에 다른 분야로 진출하려는 학생들은 다른 학과, 다른 전공과의 교류나 연계에 자율성을 달라. 이렇게 두 가지 주장을 하는 분위기야. 즉, (1) 전업 작가가 되려면 어떻게든 미술시장/자본시장의 인력풀(pool)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 그리고 (2) 비전업 관련 분야 직장인이 되려면… 그냥 각자가 알아서 해야 한다. 결국 이 말인 셈. 

“화가”가 되고 싶다는 사랑하는 내 딸, 엄마는 어떤 절망을 이야기하기 위해서 “New 아티스트 찾기 – 1편”을 쓴 게 아니야. 지금까지 크게는 미술의 공교육과 사교육의 의미, 공교육의 큰 장안에서 미술 대학으로 진출하여 미술 전공자가 되려는 실천들과 문제점, 그리고 졸업 이후의 녹녹지 않은 풍경까지 훑었어. 너희에게 꿈을 꾸라 하고, 실질 경쟁은 치열하고, 먹고사는 일조차 쉽지 않은 세상으로 나오는 모든 일은 결코 분홍분홍 하지 않아. <New 아티스트 찾기> 1강 전체는 “아, 화가가 되는 게 생각보다 어려워요!”라는 것. 

언젠가 엄마가 했던 말 기억나니? 아침에 문을 나서며 일하러 갈 때, 나는 속으로 “오늘, 나는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한다고. 그 말을 되뇌고 나면, 슬프고 절망스러운 게 아니라, 오히려 오늘 하루를 더 성실히 더 체계적으로 더 확실하게 잘 살고 싶어 진다고. 마찬가지로, 화가가 되고 싶다는 너에게 뜬금없는 희망을 보여주지 않기 위해서라도, 냉정한 상황 파악과 현실인식이 중요해. 그런 다음, 이제부터는 “그럼 무엇을 해야 하고, 무엇을 할 수 있을까?”를 생각해야 해. 

다음부터는 <New 아티스트 찾기> 2강을 시작하려 해. 조금 더 구체적이고 본격적으로 순수미술 전공자가 생각해야 하는 몇 가지들에 대해 이야기할 예정이야. 


아드리안 반 오스타데(Adriaen van Ostade) - Selfportrait (1663)


(*) Artists in the Workforce 1990-2005: https://www.arts.gov/s…/default/files/ArtistsInWorkforce.pdf
.
(**) Global Power City Index 2018 / Actor-Specific Ranking (Artist): http://www.mori-m-foundation.or.jp/pdf/GPCI2018_summary.pdf
.
(***) 미술대학 졸업생의 취업 현황 연구 (이민하), 미술교육논총, 2015 제29권 3호 (51~76)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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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 아티스트 찾기 1강

화가가 되고 싶은 아이에게 

미술의 공교육과 사교육

미대입시 (어쩌면) 로드맵

어서 와, 숫자는 처음이지?

5. 미술영재 A vs. B 

6. 예술가라는 신화 

7. 예체능 도제교육, 울타리의 '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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