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atgrim Jan 13. 2019

예체능 도제교육, 울타리의 ‘신화’

-

화가가 꿈이라는 사랑하는 내 딸,

지난번 글에서, 7살 때부터 남의 집에 들어가 도제식 수업을 받았을 것으로 추정되는 김홍도, 그리고 뛰어난 재주를 가지고 있음에도 입시미술학원에 적응하지 못했던 우림 군 이야기를 했었지. 그러면서 대부분의 우리 인식 속에 있는 "예술가의 신화"가 중요한 게 아니라는 이야기도 했고. 무엇이 더 중요한지 이제 이야기해 준다고 했었지. 앞으로 해야 하는 이야기들은 화가, 조각가라는 직함을 달고 살겠다는 예술가 지망생들이 꼭 알아야 할 현재의 미술세계 즉 미술시장에 대한 이야기야.

.

그런데, 본격적인 이야기를 하기 전에, 꼭 해야 하는 이야기가 있어. 특히, 올해부터 예술중학교에 진학하는 내 딸이 꼭 알아야 하는 이야기가 있단다. 예중, 예고로 이어지는 6년 동안, 그리고 그때에도 지금의 꿈과 같은 소망이 있다면, 다시 미술대학에서 보내는 4년, 너는 총 10여 년을 “미술”과 관련된 교육기관에서 일상을 보내게 될 거야. 앞서 여러 번 말했지만, 디자인 관련 전공이 아닌 순수미술 장르를 너의 것으로 하려면 이러한 10년을 보내는 일은 분명 도움이 되는 건 맞아. 하지만, 유념해야 할 것이 있어. 잊지 마. “완벽한 시스템”은 없단다.

.

얼마 전, 우리나라 최고의 쇼트트랙 선수에게 있었던 안타까운 소식이 보도되면서 많은 사람들이 마음 아파하고 있어. 특히 나의 고등학교 후배이자 한 동네에서 오며 가며 보았던 소녀의 일이기도 해서 나도 너무 가슴이 아파. 내 딸 같은 아이가 그동안 얼마나 힘들었을까, 얼마나 절망했을까 싶어서 눈물이 났어. 잘 알겠지만 우리나라는 아직도 폭력적 남성성이 위압적으로 힘을 발휘하는 곳들이 많아. 많은 사람들이 개선해보려고 노력하지만 하루아침에 되지 않는 일이지. 여기서 꼭 짚고 넘어가야 하는 문제가 있는데, 바로 예체능 교육의 “도제식 방식”이야.

.

도제교육(apprenticeship education, 徒弟敎育)은 아주 오래전, 가내 수공업 사회였던 유럽에서 시작되었어. 10살 전후의 아이들이 미리 "선생"의 집으로 가서 함께 거주하며 허드렛일을 하면서 기술을 배우면서 세월을 거쳐 다시 "선생"이 되는 식이지. 국가와 정부에서 공교육을 공식적으로 지원하고 보호했던 20세기 전까지 "기술(skill)"이 필요로 했던 거의 모든 분야의 교육이 이렇게 이루어졌대. 아름다운 춤을 선사하는 발레리나도, 초상화를 그려주는 화가도, 심지어 약초를 캐어 약을 만들고 병을 치료하는 의사 또한 도제식이었으니까.


"A shoe repairman and his young apprentice" by Emile Adan (1839-1937)


그랬던 것이 산업구조가 복잡 다양 해지고, 기술이 발달하면서 조그만 헛간에서 이루어지는 도제식 교육이 유명무실해지고 큰 교실로 모두를 모아 가르치는 공교육의 시대가 될 수밖에. 그렇게 ‘학교’라는 이름으로 아이들이 성인이 되기 전까지 교육을 받게 된 지 이제 100여 년 지난 지금, 내가 지난번 1-2. 미술의 공교육과 사교육 / 1-3. 미대 입시 (어쩌면) 로드맵에서 언급했듯이 다시 조금은 다른 의미에서의 ‘도제식 교육’이 돌아오고 있다는 이야기를 했지. 디테일한 분업화는 새로운 융복합을 가져오기도 했지만, 시장의 경쟁은 첨예해진 탓에 세부전공의 정밀화도 심화된 편이야. (조금 길고 복잡한 이야기라 여기까지만 언급할게.)

.

여하튼, 그리하여 순수미술을 전공하려는 아이들에게는 13살부터 미술특화교육을 지속적으로 받는 것이 앞으로 유리한 건 사실이야. 현실은 현실이니까, 안고 가는 거야. 그래서 내 딸, 너도 또래 아이들보다 선명해 보이는 네 꿈을 위해 작년, 겨우 초등학교 6학년의 나이에 수개월 동안 힘든 “입시” 준비를 했었지.

.

예중 입시 시험을 한 달 앞두고 있던 그 날 일을, 나는 기억한다. 무얼 잘못 먹었는지, 간밤에 물린 모기로 인한 알레르기였는지 모르겠는데, 갑자기 너의 온몸에 두드러기가 났었지. 연락을 받고 급히 학원으로 가서 보니 당장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고 쉬어야 맞는데, 너는 학원에서 나오기를 주저했어. 빨리 나오라고 재촉하는 엄마에게 작은 네가 결국 울음을 터뜨리며 했던 말, “선생님이 뭐라 하면 어떡해. 엉엉~”

.

당연히 학원 선생들이 온몸에 두드러기가 난 학생을 야단을 칠리가 없는데, 너는 주저했어. 그것이 이제 겨우 만 12살이 된 소녀가 가질 법한 “두려움”이야. 작은 방 안에 갇혀 지내는 동안 키우고 길러낸 것은 기술과 실력이지만, 동시에 그만큼의 맹랑함과 용기는 꺾일 수밖에 없는 시스템. 다시 말하지만, “완벽한” 시스템은 지구상 그 어디에도 없지.

.

사랑하는 내 딸, 내가 이미 여러 번 너에게 자주 했던 말 잊지 마. “학원은 학원일 뿐이고, 학교도 학교일뿐이야. 중요한 것은 너야. 네가 필요한 것을 얻고 활용해야 해. 하지만 너에게 해가 되는 것은 피하고 버려야 해. 이것을 위해서 너 자신이 무엇을 원하지 아는 게 가장 중요해.”

.

인간은 사회적인 동물인지라, 당장 내 옆, 앞, 뒤에 있는 사람들의 말, 행동, 관계에 얽혀 있단다. 나의 의지가 아닌데도 휩쓸리고 끌려 다니기 쉬워. 엄마인 나도 제법 성인이 되어서야, 어느 정도 나 자신이 어떤 사람이고 무엇을 원하는지 선명해졌던 것 같아. 그렇기 때문에 성인이 되기 전까지는 (물론 꼭 19살 20살이어야 성인이고 어른이 되는 건 아니지만), 너와 너의 친구들은 보호를 받을 권리가 있고, 이를 위한 울타리가 필요한 거야. 그런데 “도제식 교육”은 그 울타리가 너희를 위해 높은 게 아니라 도제의 중심인 선생, 교사, 코치를 중심으로 높다는 게 가장 큰 문제란다.

.

그 울타리가 “예술가”라는 선생, 교사, 코치를 중심으로 높게 세워지게 된 배경도 사실 따지고 보면 “예술가의 (그릇된) 신화”가 기저에 깔려 있기 때문이야. 원체 특별하고 잘났고 특수하다고 여기는 “저들”은 예술을 위해서, 스포츠 대회 1등을 위해서, 음악 콩쿠르 우승을 위해서 조금 “헛짓거리”를 해도 많은 사람들이 그러려니 여겨왔던 탓이기도 해. 시인이니까 조금 무례해도 되고, 화가니까 조금 미친 짓을 해도 되고, 항상 1등만 하는 운동선수니까 조금 일탈해도 된다고 여기는, 어떤 “특혜 의식”이 과연 저들끼리만 있었을까? 아니, 정작 대다수의 우리의 인식 속에 예술가들을 신선처럼, 광인처럼 여겼던 단 200여 년도 안 되는 “예술의 신화”에 있다고 나는 생각해.

.

예술가도, 화가도, 음악가도, 시인도, 운동선수도 모두 그저 직업이란다. 그리고 모든 직업에는 “직업윤리”가 있는 것이지. 의사라고 해서 함부로 환자의 몸을 만져서도 안 되는 것이며, 기업 사장이라고 해서 직원들 뺨을 때려서도 안 되는 것이지. 마찬가지로, 시인이라고 해서 함부로 성적 묘사를 해도 되는 것이 아니며, 1등으로 만들어주는 코치라고 해서 너희의 몸을 만져도 되는 것이 아니야. 직업윤리에 어긋남은 똑같은데 우리에게는 그동안 이중적인 잣대가 있었던 거야. 도제식 교육의 폐쇄성, 안을 볼 수 없게 높게 세워진 울타리는 제거되어야만 하고 폐기되어야 해. 이를 위해서는 도제식 교육을 담당하는 예술가, 음악가, 운동인 ‘선생’ 스스로 건강한 직업인이라는 생각을 가지는 것부터 시작이야.

.

사랑하는 내 딸, 이제 한동안 (소극적 의미에서의) 도제식 교육을 받게 될 너와 너의 친구들이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예술을 꿈꾸는 화가 지망생으로 그 어떤 ‘신화’도 갖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야. 다른 일반중, 일반고 아이들과 똑같이 너희들도 성실해야 하고, 조금 성가신 규제와 규율을 지켜줄 필요가 있고, 아직 ‘배운다’는 위치를 돌아보길 바란다. 너무 앞서서 신선이나 광인이 되려 하지 않아야 해. 그것은 환상이라는 점, 잊지 말아야 해.


New 아티스트 찾기 1강

화가가 되고 싶은 아이에게 

미술의 공교육과 사교육

미대입시 (어쩌면) 로드맵

어서 와, 숫자는 처음이지?

5. 미술영재 A vs. B 

6. 예술가라는 신화 

7. 예체능 도제교육, 울타리의 '신화' 

===

작가의 이전글 어서 와, 숫자는 처음이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