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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니고래 Jul 14. 2015

여행은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아!

2013. 칠레 ::: 푸에르토 나탈레스

#1. 여행은 계획대로 움직일 수 없어 - 미니양


 모레노 빙하의 감동을 이어가기 위한 파타고니아 여행은  계속되었다. 

파타고니아의 빡빡한 일정 때문에 모레노 빙하를 보고, 바로 다음 날 당일 투어로 토레스 델 파이네로 가기 위해 한인 여행사에 미리 예약을 했더랬다. 우리가 예약한 당일 투어는 칼라파테에서 출발해서 토레스 델 파이네 투어 후 푸에르토 나탈레스에 내려주는 일정이었다. 


 기분 좋게 출발한 나는 칠레 국경을 넘어 달리던 중 묘한 불안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한참을 달리는 중에 표지판을 우연히 보게 되었는데, 푸에르토 나탈레스로 향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라? 우리는 토레스 델 파이네로 가야 하는데? 뭐지? 어떻게 된 거지?' 생각하며, 같이 타고 있던 외국인 커플에게 어디로 물어봤더니 토레스 델 파이네로 간다는 거였다. 안심하며 가고 있었는데, 갑자기 나탈레스에 도착했다며 내리라는 것이었다.


 운전기사에게 여행사 바우처를 보여주며 토레스에 들렀다가 나탈레스로 오는 거라고 했더니, 자기는 모른다고 하며 그냥 내리라고 했다. 심지어 미리 여행사에다 말했던 나탈레스 중심광장도 아닌 도시 입구에 그냥 내려주고 가버렸다.


 나탈레스 지도도 가지고 있지 않은 상황에 방향만 보고 무작정 배낭을 메고 걸었다. 운전기사가 가깝다고 했던 광장은 도보로 15분 이상 걸렸고, 바람도 험하게 불고 있었다. 그렇게 걸어 숙소를 찾아 들어가 칼라파테에 있는 한인 여행사에 어떻게 된 건지 연락하기 시작했다. 블로그 쪽지도 보내고, 인터넷 전화로 전화도 걸고, 메시지도 보내고, 한국에 있는 고래군에게 도움도 청해보고...


 짧은 파타고니아 일정 후에 항공편을 통해 쿠바까지 넘어가야 하는 일정이었기에, 자칫하면 토레스 델 파이네를 보지 못하고 떠나야 하는 상황에 놓였기 때문이었다. 한참을 기다린 끝에 연락이 닿았고, 한국 원화로 환불해주겠다는 답을 받았다.


 결국 숙소를 통해서 다음날 토레스 델 파이네 투어를 겨우 다시 예약할 수 있었다.

역시 여행이란 계획대로 움직일 수 없는 것이다. 이 날 토레스 델 파이네를 볼 순 없었지만 투어가 하루 미뤄진 탓에 푸에르토 나탈레스에서 여유로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푸에르토 나탈레스는 아담하고 작은 마을이라 여유롭게 산책하는 기분이 참 좋았다. 거기다가 밝고 친절한 마을 사람들. 투어소동을 잊게 해 주고, 미소를 선물해준 그들이 참 고마웠다. 다시 갈 수만 있다면 여유롭게 오래오래 머물고 싶은 마을이었다.



::: 푸에르토 나탈레스로 향하는 길에 만난 흔한 파타고니아 풍경 :::
::: 처음보는 이방인에게 활짝 웃으며 손을 흔들어주던 마을 아저씨 :::





#2. 계획된 의외, 또는 의외의 계획 - 고래군


 시간을 분할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인간은 삶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 이른바 시간표를 짜기 시작했다. 오전에는 무엇을 하고, 식사는 언제 할 것이며, 하루의 끝은 언제가 될 것이라는 계획. 그런 계획이 어그러질 때 우리는 '의외'라는 말을 사용한다. 남들보다 삶을 더 살아온 사람들은 그러한 의외를 '변수'라는 이름으로 계획에 참여시키기 시작한다. 이른바 대비를 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러한 행위에는 기존의 계획이 가지는 목적을 이루어야 한다는 강박이 배후에 숨어있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우리가 세우는 계획, 또는 그 계획이 가지는 목적이 정말 자신에게 필요하거나 원하는 것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 타인의 생각이나 바람에 휩쓸려 어딘가로 가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때면, 이어서 찾아오는 공포 내지는 모멸감.


 그런 생각 덕분에 요 몇 년 동안에는 의외를 즐겨야 한다는 생각과 함께 살고 있다. 때로는 당혹스럽고 화가 날 때도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의외의 순간이야말로 내가 세상에 존재한다는 것을 느낄 수 있는 순간일 것이기 때문이다.


 미니양이 파타고니아를 여행하면서 의외의 상황들이 연이어 닥치는 바람에 많이 당황한 모양이다. 덩달아 나도 당황하고 이것 저것 알아보느라 정신없는 시간들이 이어졌다. 결국 내가 해결해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고, 그녀는 그 상황들을 이래저래 잘 풀어간 모양이다.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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