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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니고래 Jul 10. 2015

감탄의 절정, 모레노 빙하

2013. 아르헨티나 ::: 엘 칼라파테


#1. 감탄의 시작 - 미니양


 일정을 쪼개 겨우 만들었던 파타고니아 일정이었다. 

5일이라는 너무 짧은 일정 동안 모레노 빙하와 토레스 델 파이네를 봐야 하기에 과연 괜찮을까? 의문을 가지고 파타고니아 지방으로 향했다. 부에노스에서 비행기로 3시간 정도 가면 모레노 빙하를 볼 수 있는 엘 칼라파테에 도착한다. 


 "와아~ 와아~ 와아~"


 엘 칼라파테 공항에 내린 순간 시작된 감탄사들. 

공항 옆에 있는 호수색이 눈이 시리도록 아름다운 색이었기 때문이었다. (뭔가 참신한 표현을 하고 싶은데 역시 한계가..;;;;) 공항에서 시내로 가는 동안 창 밖으로 보이는 풍경은 그야말로 엽서 풍경. 시내로 가는 동안 "여기서 내려주세요!"라고 몇 번이고 외치고 싶었지만 그렇게까지 할 용기는 없고, 그저 창문에 붙여 풍경을 보면서 가는  수밖에 없었다.


 시내에 도착해서 짐을 푼 뒤, 아까 봤던 호수를 보러 가겠다며 나선 길은 멀고 험했다. 주택가를 지나, 시골길을 지나, 황량한 도로 위를 걸어 세찬 바람과도 싸워야 했지만 결국 정복! 그치만 아까 공항버스에서 봤던 그 호수 모습이 아니었다. 기운 빠지게도 멀리서 보는 게 더 예쁘더라는... 역시 보는 위치나 시각에 따라 느끼는 감정은 각자 달라질 수 있음을 깨달으며 다시 시내로 발걸음을 돌렸다.







#2. 감탄의 절정! - 미니양


 마추픽추, 우유니 사막, 이과수 폭포를 거쳐 부에노스에서 머물며 도시의 생활에 어느 정도 익숙해져 있을 무렵, 난 파타고니아로 떠났다. 물론 나라마다 특성은 있지만 대도시에 머물 때면 서울에서의 생활처럼 익숙한 행동들이 나오며, 무덤덤해질 때가 있다. 이 무렵, 난 부에노스에서의 일주일 동안 쇼핑거리에서 아이쇼핑을 하고, 맥도날드 햄버거를 맛보며, 도시의 건물 사이를 유유히 걸었다. 


 그러다 오랜만에 다시 자연의 경이를 맞닥뜨리게 됐다. 그리고 내 가슴은 다시 설레기 시작했다. 

그 주체는 바로 모레노 빙하. 내 눈 앞에 펼쳐진 빙하는 정말 나를 온전히 압도했다. 

"우와!"라는 감탄사조차 나오지 않고, 그저 "하아"라는 탄성만이 내 입에선 튀어나왔다.


날씨가 흐리고, 그 날씨마저 점점 더 흐려져 빗방울까지 흩뿌리고 있었지만 도저히 발걸음을 뗄 수가 없었다.

이렇게도 자연은 위대한 것이었던가? 빙하의 작은 부분도 놓치지 않으려 내 눈에, 내 마음에 계속 담으려고 했다. 내가 빙하 앞에서 할 수 있는 건 그저 멍하게 바라보는 일 밖에는 없었다. 




::: 모레노 빙하를 보러가는 길, 날씨도 맑고 풍경도 멋져 슬슬 설레였던 기억이 난다 :::
::: 눈이 시리도록 오묘한 색과 압도감은 진짜 잊을 수 없는 경험 :::





#3. 감탄의 마무리 - 미니양


 모레노 빙하를 뒤로 하고 내려오면서 짧은 일정을 쪼개서라도 빙하를 보러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빙하의 감동을 가득 안고, 칼라파테 시내로 돌아왔다. 칼라파테에서의 마지막 밤은 시내를 걸으며, 파타고니아 초콜릿과 아이스크림으로 아쉬움을 달랬다. 모레노 빙하의 감동에 젖어있던 내게 파타고니아 초콜릿은 물론, 아이스크림마저 맛있어서 기분 최고였던 하루였다.


 내일은 또 다른 파타고니아의 얼굴, 토레스 델 파이네를 만나러 가기로 했다.

이틀 연속 감탄스러운 풍경을 보는 호사를 누려도 되는 것일까?

(하지만 신은 이틀 연속 호사스러움을 내게 주진 않았다. 그 이야기는 다음 편에 계속...)






#4. 낙원은 없다 - 고래군


 그녀가 빙하를 보기 위해 파타고니아로 향한다고 한다. 빙하를 다 보고 나서 숙소에  체크인하게 되면 연락한다고 한다. 빙하라... 빙하라고 할 때 내 머리에 처음 떠오르는 이미지는 무엇보다도 둘리가 갇혀있던 그 빙산이다. 망망대해에 홀로 어딘가로 흘러가는 거대하고 뾰족한 빙산은, 헤아릴 수 없는 오랜 시간을 살아온 존재감을 가지고 불현듯 내게 다가온다.


 파타고니아라는 무척이나 낯선 나라. 흔히 '지상 최후의 낙원'이라든가 '마지막 남은 낙원' 등의 수식어가 붙었던 걸로 기억한다. 사람들은 그곳에서 무엇을 보고 느꼈기에 '낙원'이라는 단어를 과감하게 붙였을까? 어쩌면 부족한 수사력으로 인해 '낙원'이라는 단어밖에 떠올릴 수 없었던 걸지도 모른다. 그게 아니라면 대도시의 부속품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거대한 자연을 마주한 충격으로 나온 말일지도 모른다.


 지금 한국에는 '낙원 Paradise'이 남아있을까? 어떤 이는 과거에서 '낙원'을 찾기도 하고, 또 다른 이는 '낙원'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말한다. 재밌는 것은 전자든 후자든 '낙원'이 무엇이냐는 물음에는 딱히 할 말이 별로 없다는 점이다. 그저 막연하게 '모두가 행복한 시공간' 정도려나? 그런 말은 여의도의 거짓말쟁이들이 항상 입에 달고 사는, 전혀 의미 없는 말에 불과하다.


 지금도 개신교를 믿는, 나의 어린 시절 친구가 했던 말이 문득 떠오른다. 자기는 신앙을 가지고 있지만, 딱히 지옥에 떨어질까 무서워 죄를 짓지 않을 생각은 없다고. 이유가 뭐냐 물었더니, 자신은 지금 여기가 지옥일 거라고 믿고 있단다. 그래서 지옥에 갈 일은 없으니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그는 답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분명 착하고 좋은 사람이다.


 어쩌면 그 말이 맞는지도 모른다. 많은 이들이 고통 속에서 존재해야 하고, 타인의 의지에 의해 삶을 지속하는 게 지옥의 특성이 맞다고 하면 말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말하는 '낙원'은, 어쩌면 사실 '우리가 누려야 할 일상'의 다른 이름일지도 모른다.


 그녀가 파타고니아에서 무엇을 느끼게 될지는 잘 모르겠다. 지금 내게서 너무나도 먼 곳에 있는 그녀의 목소리가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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