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미니고래 Jul 02. 2015

이과수 폭포가 준 깨달음

2013. 아르헨티나 ::: 이과수


#1. 이과수를 만나기 40분 전 - 미니양


 남미에서 가장 유명한 3대 관광지라고 하면, 마추픽추, 우유니 사막, 이과수 폭포를 꼽을 수 있지 않을까? 

왠지 남미에 왔다고 하면, 꼭 봐야 할 것 같은 장소라 그런지 반드시 가야 한다는 의무감이 숙제처럼 마음 속 깊숙한 곳에 잡고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그런지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여행 초반에 몰아서 다 보게 됐다. 꼭 숙제를 끝내야 한다는 강박감 같은 게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어렸을 적 엄마에게 숙제는 다 하고 놀아야 한다는 가르침이 아직도 내 무의식 속에 남아있었나 보다.

마추픽추와 우유니 사막은 봤고, 충분히 감동을 느낀 후 마지막 이과수 폭포를 보러 가는 길.


 도대체 어떤 모습일까 하는 궁금증과 정식분석학적으로 뛰어내리고자 하는 욕망이 생기게 만든다고 하는, 악마의 목구멍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을 안고 버스에 올랐다.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더 많은 입장료를 지불하고 나서야 이과수 폭포를 만나러 갈 수 있었다. 잘 정비된 국립공원 안을 차지하고 있던 이과수 폭포를 처음 보는 순간, "우와"라는 감탄사만 내뱉었다. 그리고 내 손에 들려진 카메라는 쉼 없이 눈을 감았다 뜨기를 반복했다.

그야말로 장관. 그저 한줄기 물이 떨어지는 작은 폭포에 익숙한, 한국 사람인 나는 그런 거대한 폭포들을 보고 흥분할  수밖에 없었다. 물에 젖는 것은 전혀 신경 쓰이지 않고, 입고 간 옷이야 어찌 되든 폭포 물이 떨어지는 곳에서 신나게 놀았더랬다. 








#2. 슬기로운 생활은 거짓말을 하지 않았어 - 미니양


 국립공원 내 꼬마기차를 타고 이과수 폭포를 이리저리 둘러보았지만, 역시 압권은 마지막 종착역이었던 악마의 목구멍. 근데 갑자기 날씨가 흐려지면서 바람이 불고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바람을  온몸으로 맞으며, 한참을 걷다 눈 앞에 마침내 펼쳐진 악마의 목구멍. 도착한 전망대에는 폭포에서 튄 물인지 하늘에서 떨어진 빗방울인지 알 수 없는 물 천지.


 명성에 걸맞게 악마의 목구멍은 정말 거대했다. 계속 보고 있으면 빨려 들어갈 것 같은 기분이었다. 내가 여기서 뛰어내리면 정말 흔적도 없이 사라지겠구나 하지만 오히려 자유로운 느낌이 들진 않을까 하는 생각들이 꼬리를 물다가 어느 순간 덜컥 무서워졌다. 초행길을 걸어가면 목적지를 알 수 없기 때문에 더 멀고 힘들게 느껴지는 것처럼, 어디까지 떨어지는지 알 수 없는 폭포였기에 더 공포스러웠다. 


 피날레를 악마의 목구멍으로 장식하고 다시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다시 한 번 느낀 것이 있다. 역시 인간은 자연을 따라갈 수 없구나 하는 것이었다. 어릴 적 배웠던 슬기로운 생활 책은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자연은 위대하다는 것. 배울 당시에는 그저 그런가 보다 혹은 잘 모르겠는데? 하고 지나쳤던 그 단순한 진리를 제대로 공감하며 이과수 폭포에게 안녕을 고했다.


 어느새 처음에 느꼈던 마추픽추의 감동은 어느새 서서히 옅어져 가고 있었다. 우유니에서도 느꼈었지만 자연은 인간이 만들어놓은 건축물과는 다른 스케일의 감동을 가져다주었다.



::: 어느 순간 빨려들어가면 그저 떨어지는 먼지처럼 보일 것만 같았던 악마의 목구멍 :::





#3. 생각에서 생각으로 - 고래군


 지하철 역을 향해 익숙한 길을 걷던 내 앞을 지난 가을 떨어진 나뭇잎이 가로막는다. 

잠시 대치하는 것처럼 보였던 그는 이윽고 마치 '나는 죽음을 통해 길을 걷는다'고 말하는 것처럼 조금씩 몸을 흔들며 나를 지나쳐간다. 


그렇다면 나는 무엇을 통해 길을 걷고 있는 것일까? 

보고, 듣고, 읽는 인간의 수용 감각에 대한 해석학의 선택은 '지평'과 '지평'의 만남이었다. 

초기 해석학에서는 지평과 지평이 만나고, 해석자의 지평이 작가의 지평에 깊이 파고 들다 보면 어느 순간 '도약'이 일어나면서 두 개의 지평이 융합된다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나는 잠시나마 낙엽에게 죽음을 통해 길을 걷게 만든 누군가의 지평과 잠시 만난 것일지도 모른다. 아니면 그냥 스쳐지나 가는 한 조각 망상이었겠지.


 해가 졌다가 다시 뜰수록 바람이 차가워지고 있다. 

문득 곳곳에 있던 구멍가게마다 뽀얗게 김을 피워 올리던 호빵 데우는 통이 떠오른다. 뜨거운 호빵을 손에 쥐면, 그대로 잡기 힘든 열기로 양 손을 왔다 갔다 하는 호빵은 그 뜨거움으로 내 손의 냉기를 순식간에 잊게 해주었다. 하지만 이제는 곳곳에 보이던 구멍가게도 모두 사라지고, 호빵은 값 싼 간식으로 먹기에는 너무 비싸졌다. 왜 우리들 월급은 안 오르고, 반면 물가는 끊임없이 오르는 걸까? 오른 물가로 더 커진 이윤은 사람들에게 안 돌아가고 어디로 사라지는 걸까?


 이렇게 그녀가 없는 일상은 생각에서 생각으로 이어진다. 하루가 지나면 그녀가 돌아오는 날이 하루 가까워지지만, 대신 그녀가 없는 일상도 하루 늘어난다. 그래도 아직은 그 비어버린 구멍을 이래저래 잘 메워놓고 있다.




이전 04화 살타 여행 중 시간에 대한 단상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