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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니고래 Jul 05. 2015

바쁘게 살지 않아도 되는 거 아냐?

2013. 아르헨티나 ::: 부에노스아이레스 / 꼴로니아(우루과이)

 

#1. 긴장한 이동, 느긋한 머묾 - 미니양


이과수에서 부에노스로 가는 야간 버스가 나의 마지막 야간 버스였다.

앞으로의 이동은 가깝거나, 아예 멀어서 비행기를 타는 이동만이 남았기 때문이다. 마지막 야간 이동은 버스 시설도 좋고, 날씨도 좋아서 기분 좋게 출발했더랬다. 하지만 옆에 앉은 남자의 수상한(?) 행동들 때문에 경계를 하느라, 거의 잠을 자지 못한 채 부에노스에 도착했다. 이탈리아에서의 악몽이  되풀이되는 것은 아닐까 노심초사했었다. (밀라노에서 노트북이랑 카메라가 든 가방을 통째로 도난당했던 기억이..;;)

다행히 아무 일도 없이 부에노스 버스 터미널에 도착했지만, 괜히 의심했던 옆에 앉은 그에게 미안해졌다.

여행을 하다 보면 이방인이기에, 관광객이기에 더 조심해야 할 일들이 생긴다. 하지만 지나친 조심 때문에 여행이 방해받는 경우도 생긴다. 어떤 쪽을 선택할지는 역시 모두 개인의 스타일대로 선택하는 것이겠지만, 나는 역시 조심해서 나쁠 것은 없다는 쪽을 선택했다. 


부에노스에서는 여유 있는 기간 덕분에 많은 일정을 소화했다.

꼭 봐야 한다던 탱고는 생각했던 것보단 그냥 그랬다.

산뗄모 일요시장은 다양한 물건들이 있어서 지름신을 억제하느라 힘들었고, 

El Ateneo 서점에선 넋 놓고 디자인 서적을 보다가, 산뗄모 시장에서 산 노란 팔찌를 잃어버리고 말았다. 

치안이 좋지 않다던 라보카 지구에서는 탱고 댄서의 구애(?)로 치안 따위 잊어버렸으며,  급기야 시원한 맥주가 고파(?) 황급히 라보카를 나왔다. (레스토랑에서 먹으면 비싸니까. ㅋㅋ)

레골라따 묘지는 굳이 존경하는 사람도 아닌 남의 묘지를 가는 게 내키지 않아 묘지 입구에서 일행을 기다렸다.


볼거리 많은 부에노스였지만 난 늘 그렇듯 어슬렁거리는 게 가장 좋았다.







#2. 1시간을 달리면 새로운 곳을 만나게 돼 - 미니양


당일치기로 다른 나라에 가볼 수 있다는 것은, 반도 국가에 사는 내겐 참 특이한 경험이다.

유럽에서도 꽤 여러 번 느꼈지만 여전히 신기하다. 

부에노스에서 페리로 1시간을 달리면 우루과이 땅에 닿을 수 있다. 핀란드 헬싱키에서 에스토니아 탈린으로 갈 때처럼. 1시간을 달려 도착한 꼴로니아는 시차도 다르고, 분위기도 부에노스와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었다.

조용하고 작은 마을의 느낌, 사람들도 참 친절했다. 사진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멋진 출사 장소로도 사랑받을 만큼 풍경도 멋졌다. 다만, 나에게로만 돌진하던 우루과이 모기떼들만 없었다면 더 좋았을 거다.

짧아서 아쉬웠지만 짧아서 더 강렬하게 기억에 남았던 꼴로니아를 뒤로 하고 부에노스로 돌아왔다.







#3. 바쁘게 살지 않아도 되는 거 아냐? - 미니양


부에노스에서 꽤 많은 곳을 다녔지만,

가장 좋았던 곳은 역시 라틴아메리카 미술관(MALBA)이었다. 직업이 직업인 만큼 그럴 수도 있지만 그냥 좋았다. 프리다 칼로, 페르난도 보테로 같은 남미 화가들 그림부터 기발하고 재미있는 작품들이 많았다. 아담한 미술관 사이즈도, 남미의 눈부신 햇살이 한가득 들어오던 미술관 내부도 좋았고. 고전적인 느낌보다는 디자인적인 느낌이 강해서 좋았다고 할까? 


기분 좋게 미술관을 나왔더니, 그냥 아이스크림을 하나 물고 걷는 것만으로도 좋았다.

내가 만난 부에노스는 바쁘지 않아서 좋았다. 특히 맥도날드마저 문을 닫는 휴일의 모습은 바쁜 한국을 살았던 내게 작지 않은 충격이었다. 주말이면 더 성황을 이루는 우리나라와는 참 많이 달랐다. 길 위에서는 여유 있게, 느긋하게! 를 외치며 다니는 나도 한국에선 남들처럼 뛰기 바쁘다. 그러다 숨이 턱까지 차올라 지칠 때면 비행기에 몸을 맡긴다. 평소에 지치지 않고 사는 것이 가장 좋은 게 아닐까 생각하지만 역시 쉽지 않은 일이다.


오늘도 난 생각한다. "꼭 그렇게 바쁘게 살지 않아도 되는 것 아냐?"







#4. 옆 동네도 멀어 - 고래군


 우리 집 근처에는 나의 주거래 은행이 없다. 덕분에 현금을 입금할 일이 있을 때는 지갑에 하염없이 넣어두었다가, 길에서 마주칠 때마다 입금을 하게 된다. 그게 아니라면 버스로 두 정거장 가서 반 정거장만큼 걸어가서 일을 처리해야 한다. 그럴 때면 그다지 멀지 않은 거리라는 머리 속의 외침은 몸이 느끼는 귀찮음 아래 깔려 뭉개 지고 만다.


 인간은 지구상에서 거의 유일하게 시간과 공간을 분할하는 생물이라고 한다. 시간의 분할은 거의가 근대의 산물이겠지만, 공간을 나누는 것은  오래전부터 있었다. 우리 마을과 옆 마을, 우리의 나라와 이웃 나라, 아니 애초에 '나'를 발견해내고 타자를 인식하는 순간부터 공간의 분할이 시작되었을 것이다. 어쩌면 옆 동네 은행만큼의 거리에 같은 동네 안에 은행이 있었다면 어쩌면 내 몸은 그 거리를 멀다고 느끼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어쩐지 모르겠지만 나는 옆 동네 은행까지의 거리를 옆 나라 동네 삿포로보다 더 멀고 귀찮은 거리로 느끼고 있는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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