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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니고래 Jun 30. 2015

살타 여행 중 시간에 대한 단상

2013. 아르헨티나 ::: 살타

#1. 오랜만의 느긋함 그리고 생각들 - 미니양


 우유니에서 또다시 야간이동과 장시간 버스 이동을 한 후에야 아르헨티나 땅을 밟을 수 있었다.

초반 일정이 빡빡한 탓에 계속 쌓인 피로함은 감수해야만 했다.

아르헨티나 국경을 넘어 살타로 들어오니, 현대적인 느낌이 들어 낯설었다.

 

 오랜만에 큰 도시에 오니 정신이 없기도 하고 신기하기까지 했다.

생각해보면, 시카고에서 남미로 넘어와서 도시라고 부를만한 곳이 없었다.

처음엔 오랜만에 만나는 현대적인 도시에 적응이 안 되는 것 같더니, 서울이라는 거대도시에 살았던 몸이 먼저 적응하는 듯 했다.

 

 살타에서는 그저 쉬면서 느긋하게 지내보려 한다.

책도 보고, 차도 마시고, 산책이나 하면서...

이동할 때는 시간이 지지리도 안 가는 것 같더니, 여유 있게 쉬고 있으니 시간이 참 금방 지나가는 것 같다.

 

 이 곳은 한 여름의 햇볕이 따가운데, 서울은 겨울이라지.

밤낮을 꼬박 바꿔야 하는 시간과 함께 계절 역시 반대이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멀리 있는 대륙, 남미.

물리적으로 떨어져 있는 만큼 나의 현실과도 멀다는 의미가 되겠지.

현실을 다 잊고 여행하고 싶지만, 난 현실로 돌아가야 하기에 완전히 잊을 수는 없는 것 같다.

차라리 현실을 생각하며 기쁘게 살아갈 수 있는 좋은 기억을 만드는 편이 낫지 않을까?

여행을 하다 보면 이래저래 생각이 많아지는 법인가 보다.

 

 

::: 볕 좋은 날, 호스텔에서 여유부리는 시간도 여행 중 필요한 시간 :::
::: 시원한 맥주에 엠빠나다도 빠질 수 없는 즐거움 :::
::: 지구 반대편까지 소문이 난 걸까? 모처럼 만난 한글 단어가 빨리 빨리라니... :::



 


#2. 버스를 타고, 또 타고... - 미니양

 

 버스에서 꼬박 24시간을 보냈다.

살타에서 오후 4시에 출발 그리고 이과수에 다시 오후 4시 도착.

중간에 버스를 2번 갈아타고, 씻지도 못하고 잠도 제대로 자지 못했다.

이과수에 도착했을때이 몰골은 정말 말이 아니었지만, 드디어 도착했다는 성취감에 참으로 기쁘고 후련했다.

 

 남미로 떠나오기 전에 어느 블로그에선가 그랬다.

남미에서의 10시간 이동은 별 것 아니게 느껴진다고.

몇 번의 야간 이동 끝에 난 그 말을 이제 알 것 같았다.

 

 장시간 이동은 생각할 시간을 많이 만들어준다.

지나왔던 일, 좋았던 일, 좋지 않았던 일 그리고 앞으로 다가올 미래에 대해서도.

이동은 힘들지만, 평소에는 할 수 없는 그런 생각의 시간들이 소중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런 걸 보면 세상 일에는 좋은 점도, 나쁜 점도 동전의 앞 뒷면처럼 공존한다는 사실을 새삼 생각하게 된다.

 

::: 2층버스 맨 앞자리는 시야가 탁 트여서 풍경을 구경하기엔 딱! :::

 



 

 

 

#3. 그 시각 그 장소 - 고래군

 

 이제는 지구 반대편에 있는 그녀와 이야기를 나누는 시각이 정해지는 느낌이다. 일어나서 한 번, 그리고 자기 전에 한 번. 그러한 시간의 정렬이 나의 일상마저도 다시 가르고 이어 붙여준다. 유독 일찍 눈을 뜨는 날에도 통화하는 시각까지 침대에 누워 기다리게 되고, 조금 피곤한 하루를 보낸 날도 그 시각까지 기다리게 된다. 하루를 시작하고, 하루를 마치는 순서가 재정렬된 것이다.

 

 처음 산업혁명을 시작한 영국은 공장에서 일할 노동자를 수급하기 위해 농민들을 도시로 끌어모았다. 그러나 자연 그대로의 시간을 살아왔던 농민들은 한껏 자고 나서 늦은 시간에 공장에 나오고, 일하는 중간에 쉬러 들어가버리는 일이 자주 있었다고 한다. 공장의 주인들은 그런 농민들을 공장 노동자로 만들기 위해 훈육기관을 설립해서 일정한 시각에 일정한 장소에 위치시키는 훈련을 시켰다고 한다. 특정 시간에 특정 좌표에 위치하는 것에 길들여진 농민들은, 그제야 정해진 시각에 출근하고 정해진 시각에 휴식하며 식사하는 일에 적응했다고 한다. 근대적 학교제도가 시작된 것이다.

 

 그러고 보면 나도 특정 시각에 특정 좌표(대체로 침대)에 위치하는 것에 길들여지고 있는 셈이다. 그것을 지키지 못하면 이내  온몸을 엄습하는 불안감은 그 때문일 것이다. 문득 여행 중인 그녀의 시간과 나의 시간이 전혀 다르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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