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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옥돌의 책 글 여행 Mar 02. 2022

포기와 용기 속에 담기는 인생의 묘미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 하완, 웅진지식하우스, 2018


하.마.터.면. 열.심.히. 살.뻔.했.다.

열심히 살지 말란 얘긴가. 제목을 읽으며 중얼거렸. 맞는 말이긴 하다. 열심히 살았다고  반드시 결과가 나오는 건 아니다. 애초에 생부터 그렇지 아니한가. 부유한 집, 가난한 집, 가정환경 무엇 하나 선택권이 없. 출발선이 다른 지점에서 열심히 삶의 경주를 시작한. 불공평하다고 푸념해본들 달라지는 건 없다. 그래서 '열심히' 인생의 고속도로를 달렸. 그러다 문득, 여기가 어디지? 나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지? 방향을 잃었다. 속도를 늦추고 인생 고속도로에서 내려왔다. 국도를 느리게 달리고 다. 이제야 보이는 것들이 있다. 이런 내 마음 맞닿아 있는 책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를 읽으며 위로를 받았다.




이 책의 저자 하완은 사수 끝에 홍대 미대를 어렵게 입학했다. 학비를 버느라 학과 공부보다 입시 미술학원 강사로 더 많은 시간을 보냈다. 아이들 가르치는 일에 회의를 느낀 그는 졸업 후 취준 생활을 거쳐 직장인이 되었다. 회사에 다니며 일러스트레이터로 투잡을 뛰었다. 열심히 살아도 달라지지 않는 삶이 억울해 회사를 그만두고 프리랜서가 되었다. 게으른 일상이 시작되었지만 매달 들어오던 달콤한 월급이 사라졌다. 애쓰지 않고 흘러가는 대로 살아보는, 그의 야매 득도 에세이다.



현명한 포기는 끝까지 버티다
어쩔 수 없이 하는 체념이나 힘들면 그냥 포기해버리는 의지박약과는 다르다. 적절한 시기에 아직 더 가볼 수 있음에도 용기를 내어 그만두는 것이다.(p.55-56)



살면서 얼마나 많은 시작과 포기의 과정반복하며 살아갈까. 포기했던 순간마다 두렵고 설레는 감정을 수없이 경험했다. 현명한 포기라고 생각해보지는 못했다. 러기엔 주변의 시선이 너무 따가웠다. 첫 번째로 포기한 건 고등학교 공부였다. 입학과 함께 사춘기 앓이를 시작하며 학교 공부를 포기했다. 학교에서 자발적 아웃사이더가 되었다. 입시 대열에서 이탈해 외로웠지만 고독을 음미했다. 책을 읽고 시를 끄적이사색했다. 다행히 운이 좋았다. 공부 대신 시간을 땜질하던 독서와 시가 대학 전공이 되었다. 이게 인생의 묘미일까. 대학을 졸업하고 6개월 취준 생활을 했다. 내가 원하는 회사는 나를 뽑지 않았다. 내 성에 차지 않는 회사는 나를 필요로 했다. 하루 이틀, 한 달을 못 채우고 그만두길 여러 번 반복했다. '끝까지 해보지도 않고 포기한다'가족의 질타를 받았다. 취준 생활에 지쳐갈 즈음 대기업 홍보실에 취업했다. 내 인생의 두 번째 묘미였다.



꿈꾸는 대로 되지 못했다고
인생이 끝나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이 삶을 끌어안고 계속 살아가야 한다. 그러니까 이건 관점의 차이다.(p.218)



아무튼 열심히 달려왔다. 직장인이 되어 달콤한 월급 맛을  순간부터 돈을 버는 일에 자유를 내맡겼. 욕심은 더 큰 욕망을 불러왔다.  사업을 시작해 밤낮없이 일했지만 보기 좋게 고꾸라졌다. 꿈꾸는 대로 되지 않았고 인생은 지속되었다. 뼈아픈 실패의 경험을 딛고 다시 일어섰다. 다시 또 달리고 달렸다. 하지만 손에 잡히는 건 없었다. 내가 붙잡고 싶어 하는 ''과 '성공'의 실체마저 희미해졌다. 그즈음 코로나가 예고 없이 찾아왔다. 가상의 공간, 생각의 방에 나를 강제로 밀어 넣었다. 덕분에 나는 인생의 고속도로 위에서 '잠시' 내려왔다. 국도 위를 느리게 달리며 나를 돌아보고 있다. 좀 더 가까이 그리고 더 멀리 바라보며 한 템포 느리게 달리고 있다. 이 길을 지나 어떤 길로 턴을 할지 나는 아직 모른다. 하지만 분명한 건, 나 또한 하.마.터.면 평.생 열.심.히 살. 뻔.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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