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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옥돌의 책 글 여행 Mar 24. 2022

나는 초라한 삶을 동경한다

<완벽한 아이>, 모드 쥘리앵, 복복서가, 2020


아버지의 가르침이 끝나갈 때쯤 나는 기진맥진하다. 아버지는 블랑딘처럼 사자들을 굴복시키고, 잔 다르크처럼 군중 앞에서 연설을 하고, 그러면서 퐁파두르 부인처럼 섬세하고 기품 있게 행동하기를 기대하지만, 내가 어떻게 그런 놀라운 일들을 해낸단 말인가. 진짜 슬픔은 다른 데 있다. 아무도 모르게, 나는 초라한 삶을 동경한다. 나는 아버지를 배신한 딸이다. (183쪽)



아이가 부모의 이상적인 꿈을 실현시켜주 대상이 수 있을까? 아이의 성장 과정을 지켜보며 천재가 아닐까 생각되 순간. 말문이 트여 폭발적인 언어를 쏟아내던 순간에 그랬고, 음악에 맞춰 리듬감 있게 춤을 추던 순간에 그랬고, 그림으로 생각을 표현하던 순간에 그랬다. 하지만 환상은 머지않아 깨졌다. 그 후론 아이가 잘하는 걸 찾아주고 방향을 잡아주려 애썼다. 아이를 꿈의 실현 대상으로 생각해보지 않았다. 그런데 그렇지 않은 부모도 많은가 보다. 한때 방영됐 '스카이캐슬'이나 '펜트하우스'에서 보여준 극성 부모의 모습이 그렇고, 회고록으로 쓰인 책 <완벽한 아이> 봐도 그렇다.




<완벽한 아이>1900년대 프랑스 어느 시골 마을에서 15년 동안 외부와 단절된 채 살아야 했던 모드 쥘리앵의 회고록이다. 그녀는 부유한 아버지와 교육학을 전공한 어머니라는 이상적인 가정환경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루이 디디에는 딸을 자신이 원하는 초인으로 만들기 위해 철책이 둘러싸인 울타리 속에 가두고 영혼까지 구속하는 괴물이다. 부모라는 이름으로 '완벽한 아이'를 만들기 위해 얼마나 독선적이고 오만한 꿈을 꿀 수 있는지 보여주는 책이다.



모드 쥘리앵은 1957년 프랑스 북부 릴에서 태어나, 유년기에 아버지의 절대적 지배 상태를 겪었다. 아버지 루이 디디에는 전쟁을 겪으며 불안정한 내면이 공포의 기억으로 왜곡된 인물이다. 뒤틀린 신념과 망상으로 세상과 단절된 삶을 살아가며 자신의 후손을 진정한 '초인'으로 길러내기로 결심한다. 가난한 광부의 딸 6세 자닌을 재력으로 데려와 후계자를 낳아주고 교육시킬 수 있도록 대학까지 공부시켜 아내로 맞이한다. 환갑을 앞둔 아버지와 이십 대 후반의 미성숙한 어머니, 갓 태어난 딸의 비극적인 이야기가 시작된다.



외부와 소통이 철저히 단절된 가운데 모드 쥘리앵은 감당하기 어려운 초인적인 일상을 반복하며 살아간다. 자연과 동물에 의지하며 사랑을 주고받고, 음악을 통해 상처 난 마음을 치유한다. 책 속의 주인공을 통해 삶의 지혜를 배우며 고통스러운 유년기를 버텨낸다. 부정적인 내면에 갇혀 사는 아버지, 미성숙한 자아로 동조와 방임하는 어머니, 삶의 희망을 갈망하며 내면의 성장을 이끌어내는 어린 모드를 통해 각기 다른 삶의 태도를 보여준다. 극한 어려움 삶의 희망을 찾아가는 어린 모드를 통해 강인한 생명력을 배운다.



나는 경이로울 만큼 행복하다. 내가 있는 곳은 수용소가 아니다. 나는 살아남기 위해서 연주하지 않는다. 나는 살아 있다. 사람들과 함께 하기 위해, 다른 연주자들, 그리고 다른 인간들과 함께 흥에 젖기 위해 연주한다. 나는 내 부모의 집을 나왔다. 정말로 나왔다. (312page)



사람들과의 평범한 삶과 소통을 갈망했던 모드 쥘리앵의 간절한 바람은 마침내 이루어진다. 음악을 가르치기 위해 외부에서 오는 몰랭 선생님의 도움으로 울타리 밖 세상으로 나온다. 그녀는 이제 더 이상 살아남기 위한 연주를 하지 않아도 된다. 사람들과 함께 소통하는 연주를 즐기며 비로소 행복을 쟁취한다. 하지만 그녀는 그 후로도 오랫동안 유년시절의 심리적 상처와 싸워야 . 세월이 흘러 행동, 인지. 정서 치료법, 최면 치료 등을 익힌 뒤 이십여 년 전부터 심리치료사로 활동하고 있다. <완벽한 아이>는 유년시절 소통의 통로가 책밖에 없었던 모드 쥘리앵의 다독이 쌓아 올린 지혜와 통찰을 함께 담아낸다.  무엇으로도 가둘 수 없는 인간의 존엄성과 삶의 희망을 전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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