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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옥돌의 책 글 여행 Aug 30. 2022

경애하는 마음으로

김금희, <경애의 마음>, 창비, 2018


누구를 인정하기 위해서 자신을 깎아내릴 필요는 없어. 사는 건 시소의 문제가 아니라 그네의 문제 같은 거니까. 각자 발을 굴러서 그냥 최대로 공중을 느끼다가 시간이 지나면 서서히 내려오는 거야. 서로가 서로의 옆에서 그저 각자의 그네를 밀어내는 거야."(27쪽)



나는 시소 타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숫기 없고 몸집이 왜소했 나에게 적합하않은 놀이기구였다. 간혹 한자리를 꿰차도 짓궂고 활기 넘치는 아이들에게 밀려나 일쑤였다. 시소를  때의 기분도 신이 지 않았다. 쿵, 소리를 내며 땅바닥에 떨어지는 마음이나 상대편의 무게에 의지해 공중에 붕, 떠 있는 마음이나 불편하긴 매한가지였. 시소게임이 아니더라도 사람들과 함께 균형을 이루며 쉽지 않았다. 늘 누군가와 비교하고 비교당하며 경쟁사회에서 자라온 문화적 습성 일까. 가족과 사회의 일원으로 살아오는 동안 마음 안에 바람이 살랑였다. 흔들리는 '마음'에 울고 웃는 날들이 이어졌다. 외로움과 쓸쓸함이 가슴 밑바닥으로 내려앉아 켜켜이 쌓였다. 이렇게 사는 것이 인생이려니, 견디면서 살아온 날들에 그네가 되어주는 책 <경애의 마음>  마음 두드렸다.




<경애의 마음>을 쓴 김금희 작가는 1979년 부산에서 태어나 인천에서 성장, 인하대 국문학과를 졸업했다. 2009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너의 도큐먼트>가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2014년 첫 번째 소설집 <센티멘털도 하루 이틀>로 신동엽문학상을, <너무 한낮의 연애>로 젊은작가상 대상을 수상했다. 그 외 소설집 <오직 한 사람의 차지>,  중편소설 <나의 사랑, 매기>, 산문집 <사랑 밖의 모든 말들> 등이 있다. 첫 번째 장편소설 <경애의 마음>은 2017년 봄부터 겨울까지 계간 <창작과 비평>에 연재하며 문단의 호평과 독자의 기대를 받았다.



이 소설은 고등학교 시절 호프집 화재 사건에서 운 좋게 살아남은 경애와 그 화재사고로 소중한 친구를 잃은 상수가 한 직장에서 만나 상처 난 마음을 회복해가는 이야기다. 반도미싱 영업부에 근무하는 상수는 낙하산이라는 모멸감을 견디며 모자란 듯 살아간다. 경애는 회사의 부당함에 맞서 파업에 참여했다가 창고 업무로 밀려나며 하루하루를 힘겹게 버텨낸다. 상수는 직장 밖에서 '언니는 죄가 없다(언죄다)'라는 페이스북 연애상담 페이지를 운영하며 이중생활을 하고 있다. 경애는 이별 후 무기력에 빠져 '언죄다' 페이지에 편지를 쓰는 것으로 마음을 달랜 이 있다. 서로의 연결고리를 모른 채 상수와 경애는 팀장과 팀원으로 만나 서서히 마음을 열어 가는데..



어려서부터 숱한 사랑의 탄생과 죽음에 관한 서사를 접한 덕분에 상수는 무수한 사랑을 경험했고 그러는 동안 사랑의 진위나 사랑 후의 죄 없음 - 에 대한 일종의 기술을 터득했다고 생각했다. 그런 기술과, 삼수 끝에 들어간 대학의 독서동아리에서 읽은 필독 인문서들을 적절히 조합해 내린 결론은 사랑이라거나 연애라거나 하는 것에 복무하는 이들이 일종의 노동자에 불과하다는 사실이었다. 다양한 통로로 물질 교환이 일어났으며 권력관계가 조성되었고 결국에는 어느 한편이나 쌍방의 착취로 관계가 종료되기까지 끊임없이 성실과 근면을 강요받았다.(152-153쪽)

 


사랑이나 연애의 감정마저 일종의 노동으치부되사회가 못내 씁쓸하. 다양한 통로로 물질 교환이 일어나고 권력관계가 조성되고 성실과 근면을 강요받는 남녀관계의 실체는 뭘까. 사랑의 부산물일까, 약자의 불안함과 외로움의 담보일까. <경애의 마음> 단순한 사랑과 이별을 넘어선다. 가족, 학교, 직장, 사회의 권력관계에서 사랑하고 이별하고 갈등하며 감당해야 하는 우리 마음을 상수와 경애의 서사에 담아낸다. 그래서인지 이들의 마음에 쉽사리 마음을 얹으며 위로받는다. 경하고 랑하는, 경애하는 마음스럽게 느껴지는 요즘, <경애의 마음>을 통해 우리의 마음을 돌아보게 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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