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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옥돌의 책 글 여행 Oct 08. 2022

흔들리는 우정

마거릿 와일드, <여우>, 파랑새, 2012



개와 까치는 친구였어.
개는 까치의 날개였고,
까치는 개의 눈이었지.
어느 날 붉은  여우가 나타났어.
그리고 모든 것이 변해 버렸지.



<여우>라는 그림책을 읽었다. 늘 혼자였던 여우가 사이좋은 개와 까치의 우정을 질투해 이들 사이를 갈라놓는 이야기다. 영원할 것 같은 우정을 흔드는 유혹, 배신, 후회, 외로움, 그리움 등의 보편적이고 절대적인 감정을 건드린다.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우정만큼 안정적인 마음을 갖게 하는 감정이 또 있을까. 그만큼 동화책 <여우>는 짤막한 이야기 속에 지극히 인간적인 감정의 불씨를 끄집어내어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다.




저자 마거릿 와일드는 남아프리카에서 태어나 호주에서 자랐다. 신문 잡지 기자와 편집자로 일했다. 현재 시드니에 살며 작가로 활동 중이다. 전 세계에서 수많은 상을 수상했으며, 지금까지 70여 권의 어린이 책을 썼다. 지은 책으로는 <할머니가 남긴 선물> <이젠 안녕> <나도 이제 다 컸어> 등 다수의 작품이 있다. <여우> 책으로 국제아동도서협의회 최우수상, 독일 최고 어린이 문학상, 퀸즐랜드 최우수 어린이책 문학상을 수상했다. 수상 이력이 화려한 동화책 <여우>의 이야기는 이렇다.



난 한쪽 눈이 보이지 않아.
그래도 산다는 건 멋진 일이야!"
하지만 개의 어떤 말도 까치를 위로할 수는 없었어.
"한쪽 눈이 보이지 않는 건 문제가 되지 않아. 만약 네가 달릴 수 없다면 어떨 거 같아?"



큰 불로 새카맣게 타버린 숲을 개 한 마리가 거센 불길에 다친 까치를 입에 물고 달린다. 까치는 날 수 없다는 절망감에 자신을 간호해 주려는 개의 도움을 거절한다. 하지만 개는 까치의 마음이 바뀔 때까지 기다려준다. 마침내 한쪽 눈이 보이지 않는 개와 날개를 다친 까치는 서로에게 눈이 되고 날개가 되어 주며 특별한 우정을 쌓아간다.




까치는 잠들어 있는 개를 혼자 남겨 두고 여우를 따라나섰어. 여우는 쿨리바 나무를 지나 기다란 수풀 사이를 내달렸어. 울퉁불퉁한 바위들도 가뿐히 뛰어넘으며 전속력으로 달렸지.
"드디어 내가 날고 있어. 진짜로 날고 있다고!"



사이좋은 개와 까치 앞에 불쑥 여우가 나타난다. 늘 혼자였던 여우는 특별해 보이는 둘 사이를 갈라놓기 위해 계획적으로 까치에게 접근한다. 날고 싶어 하는 까치의 욕망을 흔들어 개의 곁을 떠나도록 유혹한다. 절대로 개를 떠나지 않을 거라고 단호하게 말하던 까치는 결국 개를 혼자 남겨 두고 여우를 따라나선다.



이제 너와 개는 외로움이 뭔지 알게 될 거야."
여우는 까치를 혼자 남겨 두고 가 버렸어. 사방은 쥐 죽은 듯 고요했어. 한순간 아주 먼 곳에서 날카로운 울음소리가 들려왔어. 승리의 소리인지 절망의 소리인지는 알 수 없었지.



여우는 까치를 등에 태우고 숲을 빠져나와 이글거리는 붉은 사막에서 멈춘다. 마치 벼룩을 털어내듯 까치를 등에서 떨어뜨린 여우는 까치에게 속내를 드러낸다. "이제 너와 개는 외로움이 뭔지 알게 될 거야."라고 말하며 까치를 혼자 두고 가 버린다. 혼자 남겨진 까치는 '조심조심, 비틀비틀, 폴짝폴짝' 친구가 있는 곳을 향해 멀고 먼 여행을 시작한다.




까치와 개는 흔들리는 우정을 회복할 수  있을까. 개와 까치를 갈라놓은 후 들려오는 여우의 날카로운  울음소리는 어떤 의미였을까. 승리의 소리였을까, 절망의 소리였을까. 여전히 외로움 속에 살아가야 하는 여우와 달리 까치는 그리움을 안고 친구를 찾아 먼 길을 떠난다. 질투심에 불타 우정을 느껴보지 못한 여우는 외로움을 절망으로 이끈. 반면에 친구 사이의 정을 느껴본 까치는 외로움 속에 주저앉지 않고 그리움과 희망을 향해 길을  떠난다. 나는 혹시 지나온 어느 날엔가, 개와 까치와 여우 사이, 그 어딘가에 마음이 머물렀던 적은 없었을까 생각해 보았다. 어쩌면 당연하게 여기고 있을지 모를 우정에 대해서도 돌아보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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