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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옥돌의 책 글 여행 Dec 11. 2022

법과 정의 속 사랑을 읽다

박주영 지음, <어떤 양형 이유>, 김영사, 2019



"판결문은 법적으로 의미 있는 사실만을 추출해 일정한 법률 효과를 부여할 뿐 모든 감상은 배제하는 글이다. (...) 그나마 판사가 어떤 형식에도 구애받지 않고 자신의 생각을 표현할 수 있는 유일한 곳이 형사 판결문의 '양형(量刑) 이유' 부분이다. (...) 판결기록은 영구히 보존되므로, 판결문에 사건의 내용과 양형 이유를 상세하게 기재해 그 사안을 항구적으로 알 수 있게 하려는 의도도 있다."(p.6)


<어떤 양형 이유>는 표면적으로 드러나지 않은 법정 뒷면의 내면을 다룬 책이다. 책망과 옹호, 유죄와 무죄 사이에 서 있는 한 판사의 인간적인 번뇌를 담은 기록이기도 하다. 저자 박주영 판사 어떤 형식에도 구애받지 않고 자신의 생각을 표현할 수 있는 유일한 곳이 "양형(量刑) 이유' 부분이라고 한다. 이런 형을 정할 수밖에 없었던 '양형 이유'에 개인적 또는 사회적  메시지를 담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을 내자는 제안을 받았을 때, 그는 판결문이라는 비정한 서사에 도저히 담아낼 수 없는 사연들을 풀어놓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었다한다. 오직 법적으로 의미 있는 사실만을 기재하는 법원 판결문 기록 뒷면의 수많은 사람들의 눈물과 고통, 그 안에서 정의를 구현해야 하는 판사로서의 인간적인 번뇌를 전한다. 




저자 박주영은 현재 울산지방법원 형사합의부 부장판사다. 성균관대 법학과를 졸업하고 7년간 변호사로 일하다 경력법관제도로 판사가 됐다. 지금은 지역법관제도가 폐지되어 지역법관이 아니지만 자의로 부산고등법원 관내에서 근무하고 있다. 10년이 조금 넘는 기간 동안 부산지방법원, 울산지방법원, 대전지방법원 등에서 주로 형사재판을 했으며, 부산가정법원에서 소년재판을 한 적도 있다. 언론을 상대하고 행정기획업무를 보는 공보기획판사도 세 번이나 했다.



농부는 법을 두고 늘 따라야 하는 태양이라 말하고, 노인은 어른의 지혜라 말하고, 사제는 경전 속 말씀이라 말하고, 재판관은 법은 법이라 말하고, 법학자는 일상으로 입는 옷이자 조석(朝夕)으로 나누는 인사라고 말하고, 어떤 이는 운명, 국가라 말하고, 어떤 이는 법은 죽었다고 말하고, 성난 군중은 법은 우리라 말한다. 그러나 차라리 법을 정의할 수 없다면 자랑스럽게 법은 마치 사랑 같다고 말하리라. 사랑처럼 어디 있는지 왜 있는지 알지 못하고, 사랑처럼 억지로는 안 되고, 벗어날 수도 없는 것, 사랑이란 흔히 옳지만 사랑처럼 대개는 못 지키는 것이라고. (W.H. 오든, <법은 사랑처럼>)(p.272)



박주영 판사는 '오든'의  <법은 사랑처럼>을 인용해 법에 관한 견해를 밝힌다. - 농부, 노인, 재판관, 법학자, 군중의 법에 대한 견해도 다 옳지만, 명확히 정의할 수 없는 모든 개념의 종착점은 사랑이어야 하고 법도 예외일 수 다. 정의가 불의와 부정을 단죄는 해도, 인간을 다루는 이상 법의 전부가 될 수 없다. 사랑이 모든 사물의 메타포이고, 모든 가치를 품을 수 있는 최상위 개념이다 - 라고 한다. 아울러 그는 모든 것을 융합시킬  있는, 세상을 하나의 가치로 아우르는 단 하나의 단어로 '사랑'을 꼽는다. 법과 정의 안에 담아내야 하는 인간애를 책 속의 중요한 가치로 일관되게 전달다.




이 책은 현직 판사가 실제 '판결문'과 '양형 이유'를 근간으로 법정 내면에 담긴 인간의 고통과 아픔을 복원해 내는 책이다. 책 속의 큰 줄기로, 피도 눈물도 없고 부사도 형용사도 없는 '판결문'과 상세하게 기재하는 어떤  '양형 이유'를 대조시키며 법원의 외면과 내면의 이해를 돕는다. 특히 피고인으로 만나는 사회적 약자, 소수자의 입장에서 법의 한계와 사회적인 분노로 바라보는 인간적인 번뇌에 작은 위로를 받을 수 있다. 간결한 문체와 함축적인 이해를 돕는 문학작품의 인용이 시기적절하게 등장하는 것도 장점이다. 다만, 실제 재판 사례와 개인적인 사유를 전달하는 과정에서 샛길로 빠져 읽는 의 흐름을 깨는 부분은 아쉽다. 그럼에 이 책은 일반인이 접하기 힘든 법원의 내밀한 뒷이야기를 현직 판사의 깊은 통찰로 써 내려간 점이 돋보인다. 법을 공부하는 학생들과 법 관련 업무에 종사하는 분들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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