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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옥돌의 책 글 여행 Dec 20. 2022

영혼이 죽은 자로 하여금

편혜영, <죽은 자로 하여금>, 현대문학, 2018



죽은 자로 하여금 죽은 자를 장사하게 하라
(마태복음 8장)



편혜영의 <죽은 자로 하여금>첨예한 작가들의 신작 시와 소설을 수록하는 <현대문학 핀 시리즈> 첫 번째 소설이다. 2017년 7월 현대문학에 발표한 소설에 200여 매를 더해 장편소설로 재탄생했다. 제목 <죽은 자로 하여금> 성경을 읽다가 인상적인 구절(마태복음 8장) 가져왔다고 한다. 조직이 시키는 대로 시스템의 논리에 복종하는 사람들을 '죽은 자'로 확대 해석했다고 한다. 제목이 시사하는 것처럼, 메디컬 드라마 서사 안 본성과 욕망의 경계에서 갈등하 인간의 복잡한 내면을  드러낸 소설이.




소설가이자 대학교수인 편혜영은 1972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서울예대 문창과와 한양대 국문과 대학원을 졸업했다. 2000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이슬털기'로 등단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작품으로는 소설집 <아오이가든> <사육장쪽으로> <저녁의 구애>, 장편소설 <재와 빨강> <서쪽 숲에 갔다> <선의 법칙> 등이 있다. 작품 활동을 통해 <한국일보문학상> <이효석문학상> <현대문학상> 등 다수의 상을 수상했다.



소설은 지방 도시 한 종합병원으로 이직해 온 주인공 무주가 직장동료 이석의 비리를 고발하는 것으로 시작다. 이석은 한때 조선업의 호황을 누리던 이인시에서 선도병원이 성장할 수 있도록 이끈 중추적인 인물이다. 무주는 서울 종합병원에서 불미스러운 일로 이직했지만, 이석의 도움을 받아 선도병원에 안정적으로 정착한다. 하지만 조선업의 몰락으로 선도병원의 병실이 비어 가며 존폐 위기에 놓인다. 병원의 자구책으로 수익 창출을 위한 프로젝트 팀이 꾸려지고 그 팀에 무주가 투입된다. 의욕적으로 업무에 임하던 무주는 이석의 비리와 맞닥뜨린다.



  "아이 때문에 아내가 하도 성화해서 잠시 교회에 다녔어. (...) <마태복음> 8장에 이런 구절이 있어. '죽은 자로 하여금 죽은 자를 장사하게 하라.' 무슨 소린지 모르겠어서 계속 곱씹었어. 예수는 인자하고 자비롭다면서 죽은 사람한테 왜 이러나. 사람이 죽었는데 이렇게 야박해도 되나....... 이해할 수 없었지. 한 참 새기니까 조금 알 것도 같더라고."
  "무슨 뜻인데요?"
  "영혼이 죽은 자는 내게 필요 없다. 불신자는 불신자에게 가고 믿는 자들은 나를 따르라. 그러니까 나를 따르는 건 믿는 자로 충분하다는 뜻이려나.(p.139-140)



이석은 공고를 졸업한 후 선도병원 간호사가 되고, 온갖 일을 도맡아 하다가 관리자가 된다. 교통사고로 크게 다친 아이를 서울에서 돌보고 있는 아내에게 병원비를 느라 버거운 삶을 다. 그런 가운데 이석은 선도병원에서 관행대로 이루어지는 일들을 도맡아 처리하며 조직에 복종한다. 무주 또한 이전 병원에서 관행대로 일을 진행해 오다 비리에 연루되어 사직한 이력이 있다. 하지만 아내의 임신으로 태아를 생각하며 공명심에 사로잡힌다. 고민 끝에 이석의 비리를 고발하며 도덕성, 윤리의식을 회복해보려 애쓰지만 예상 밖의 상황으로 내몰린다. 무주의 고발로 직하고 홀연히 사라졌던 이석이 관리자로 당당히 복직하며 무주를 압박한다.




이 소설은 <현대문학>이 한국 문학의 가장 현대적이고도 첨예한 작가의 작품을 선정한 의미에 걸맞게, 자본주의 사회의 경제 논리를 날카롭게 파고든다. 한때는 골리앗처럼 조선업 성황의 상징물이었던 크레인 해체와 그에 따른 지방 도시의 몰락이라는 시대적 배경 속, 메디컬 서사 안에 인간의 불완전한 마음을 응축해 다. 다만, 단편을 장편으로 늘리는 과정에서 등장인물들의 서사가 충분하지 않은 점이 조금 아쉽다. 그럼에도 이 소설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조직의 시스템에 적응하며 살아가 직장인이라면 공감하며 흥미롭게 읽어볼 만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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