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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옥돌의 책 글 여행 Oct 31. 2023

질환 서사, 아픈 몸들의 인류학

이기병, 《연결된 고통》, 아몬드, 2023



현대 의학의 그릇에 담기지 않는
고유하고 다양한 아픈 몸들의 인류학



《연결된 고통》은 내과 의사이자 인류학 연구자인 저자가 외노(외국인노동자전용) 의원에서 만난 환자들과의 희로애락을 담은 책이다. 그는 공중보건의 시절에 3년간 서울 구로구 가리봉동의 외노의원에서 근무했다. 당시 저자는 전문의 수련을 막 마치고 나온 의사로,   그곳에서 다양하고 고유한 아픈 몸들을 만나며 언어의 장벽, 문화의 장벽을 실감했다. 더 나은 진료와 돌봄을 제공하고 싶었던 그는 인류학이라는 새로운 길을 만나, 의학과 인류학의 경계에서 보고 느끼고 깨달은 이야기를 이 책에 담았다. 고통의 연료를 때 가며 고통을 근절하는 모순과 해결의 학문, '의학'과 고통 가까이에서 맥락을 탐구하는 목격과 기록의 학문, '인류학'의 경계에서 연결된 고통을 이야기한다.



저자는 내과 전문의이자 의료인류학 연구자이다. 연세대학교 원주의과대학 졸업 후 세브란스에서 내과 수련을 받고 늦깎이로 서울대학교에서 인류학을 공부했다. 현재 춘천성심병원 교수이며, 고려대학교에서 의학교육학 박사 과정을 밟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 시기에 감염내과 전임의를 수료했으며, AI 패혈증 예측 스타트업 기업 AITRICS에서 의료 자문을 겸하고 있다. 그는 '고통받는 것만 실재’ 한다는 견해에 동의하는 편이다. 또한 인간과 비인간, 몸과 마음, 삶과 죽음 등 분리될 수 없으나 분리된 것들의 경계, 의학과 사회과학 등 기반이 다르다고 여겨지는 것들의 경계를 생각하고 연구하는 것에 관심이 많다. 저서로 《아프면 보이는 것들》(공저)이 있다.



이 책은 폐원(2004-2017)하여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외노의원과 그곳에 다녀간 이국 노동자의 이야기를 담은 최초의, 유일한 기록물이라는 데에 의미가 있다. 저자는 코로나 시대 감염내과 의사로 일하며 틈틈이 옛 기록을 복원했고, 여러 차례 고쳐 쓰고 다듬어 집필 4년 만에 《연결된 고통》을 세상에 내놓았다. 그는 의학이라는 단일의 카테고리에 포섭될 수 없는 아픈 몸들을 인류학적 시각에서 해석하고 복원한다. 또한 '현대 의학에 담기지 않는 고유하고 다양한 아픈 몸들의 인류학'이라는 부제처럼 '질환 서사'에 관심을 두고 연결된 고통을 바라본다. '현대 의학이 간과한 돌봄의 필요와 쓸모를 살뜰히 발굴''(장일호 기자)해내며 인간의 삶이 '질병 코드'로 압축되고 은폐되는 것에 목소를 낸다.



진단 및 치료의 알고리즘은 의학이 발전할수록 점점더 세분화되고 복잡해졌다. 물론 알고리즘이 정교할수록 진단 및 치료의 정확도가 높아지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정확도나 속도, 효과와 효율이 강조될수록 인간의 삶이 '질병 코드'로 암호화되면서 고통이나 증상을 통해 아픈 몸이 말하고자 했던 목소리가 검열, 절삭되어 결국 일개 디지털 부호로 납작해진다는 사실은 은폐된다.(43쪽)



저자는 폐원한 외노의원에서 만난 수많은 이국의 노동자들에 대한 기록을 기반으로 인간의 삶과 질병에 대한 방향성을 모색한다. 현대 의학의 그릇에 담을 수 없는 질환 서사(가난, 노동, 성차별, 구조적 폭력이나 사회적 고통 등) 문제와 인간의 삶이 소외될 수밖에 없는 연관성에 질문을 던진다. 무엇보다 언어와 문화의 장벽을 뛰어넘어 외국인노동자들과 소통하며 아픈 몸 뒤의 질환 서사에 관심을 두는 부분은 의학에 인간적인 온기를 불어넣는다. 사람들의 편견 어린 시선과 의료 시스템 밖으로 밀려나 소외된 사람들의 고통을 들여다보는 저자의 시선에 차갑게만 느껴지는 의료계가 조금은 따뜻하게 다가온다. 이 책은 현대 의학을 공부하는 분들과 다양한 질환 서사, 다양한 아픈 몸들의 인류학에 관심이 있는 분들에게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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