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딜 닮았는지 어떻게 닮았는지가 너무 궁금하던 10개월이 지나고 드디어 아이를 만났어요. 처음 본 아이의 얼굴은 물에 퉁퉁 불어있었지만 너무 귀여웠죠. 아이가 태어나고 나서 얼마간은 누굴 닮았는지가 너무 중요한 시기가 있잖아요. 나를 닮았네 너를 닮았네, 내 아들을 닮았네 내 딸을 닮았네 지분싸움이 치열해요. 본능적인 관계 맺기이겠지요? 시시각각 변화하는 얼굴에 일희일비했어요. 신랑 닮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얄밉기도 했지요. 내가 열 달을 품고 배 아파 낳았는데 성씨도 돌림자도 정해져 있는 게 기분이 썩 좋지는 않았거든요. 그런데 아빠까지 닮았다니 뭔가 좀 억울한 기분이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으레 건네는 예쁘다, 귀엽다는 칭찬에 괜스레 기분 좋아지는 고슴도치 어미입니다.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지요? 요즘 공들여 키우는 필리아 페페는 번식력이 뛰어나서 자구들이 막 생겨나는데요. 가만히 보고 있으면 엄마 나무와 꼭 닮아있어요. 아이를 보고 있자면, 우리 둘의 유전자 조합이 확실합니다. 어느 곳 하나 신랑과 나를 닮지 않은 곳이 없어요. 이목구비는 신랑을 많이 닮았지만 웃는 모습 전체적인 분위기는 엄마인 저를 닮았어요. 둘이 같이 웃고 있으면 신랑은 소스라치게 놀란척하며 말하죠. 네가 둘 있다고요. 침대에서 둘이 대짜로 뻗어 코를 드르렁 골며 자고 있을 때면, 거짓말 좀 보태 누가 나의 신랑인가 헷갈릴 정도예요. 모든 엄마 아빠들의 일상이겠지요. 유전이라는 강력한 힘이 그저 놀랍습니다.
아이가 커가며 이제 하나둘 아이의 성격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잘 울지 않고 순한 편이었지만 넘치는 에너지는 감당 불가였어요. 갓난쟁이부터 말이 많았고, 낮에는 쪽잠을 자면서 놀자고 옹알거렸죠. 저는 모든 아이가 아침 일찍 일어나는 줄 알았어요. 아침 일찍 일어나 눈을 딱 뜨면 에너지가 풀 충전된 모터 같아요. ‘엄마 짹짹! 엄마 짹짹!’ 해가 떴다며 밖에 나가자고 엄마의 꿀잠을 깨우는 귀엽지만 괴로운 알람시계였죠. 덕분에 눈곱만 겨우 떼고 팔자에 없었던 아침 산책을 하기도 했죠. 지금도 여전히 하루 종일 종알종알 떠들어 대요. 잠을 자는 건 너무 지루한 일이라며 항의도 하죠. 하루는 너무 힘들어서 투정 부리듯 양가 부모님께 서로의 어린 시절에 대해 물었어요. 시어머니는 지수가 신랑과 달리 차분하고 참하다고 하셨고, 엄마는 너와 다르게 에너지가 넘친다고 했죠. 성격도 누구 하나 아쉽지 않게 반반씩 닮았나 봐요.
아침형 아기인 지수의 아침 육아 담당은 아침형 인간 아빠가 담당해요. 둘 다 눈 뜨자마자부터 에너지가 풀 충전되는 게 똑같아요. 꿀잠을 자고 나온 주말, 아침 식탁을 보며 웃음을 터트려요. 아침은 커피 한 잔이면 충분한 저와 달리, 아침 6시에 눈을 뜨자마자 삼겹살과 소시지를 구워 먹는 두 남자는 튼튼한 위장도 닮았습니다. 단것보다 짠 것을 좋아하는 식성은 저를 닮았고, 아빠를 닮아 면을 좋아하죠. 닮은꼴 찾기는 끝이 없네요.
아무래도 주 양육자인 제가 아이와의 대부분의 시간을 함께하죠. 특히 우리는 노래 부르기를 좋아하는데요. 가사를 완벽하게 외울 때까지 같은 노래를 부르고 또 불러요. 우리 둘은 손발이 척척 맞아 신나게 춤추고 노래합니다. 엉덩이를 씰룩거리며 흥을 발산하는 저와 아들을 보며 신랑은 그저 어리둥절해합니다. 한때 제 꿈이 가수였다는 걸 신랑은 꿈에도 모를 거예요. 이제 꼬마는 어느새 커서, 학교에서 새로 배워온 노래를 엄마에게 가르쳐주는 음악 선생님입니다. 가수가 되겠다는 꿈을 가진 꼬마 연습생이기도 하죠. 학교 음악선생님께서 꼬마의 성적표에 ‘선천적인 음악적 재능을 보인다’는 코멘트를 남겨주셨어요. 엄마의 못다 이룬 꿈을 꼬마가 이룰 수 있을까, 벌써부터 기대하는 팔불출 엄마입니다.
코비드 덕분에 지수는 어린 시절부터 아빠가 일하는 걸 보고 자랐어요. 컴퓨터 화면을 가득 채운 도면, 그 도면이 3D로 변화하는 과정을 보면서 멋지다며 엄지 척을 날렸죠. 주말에도 바쁜 아빠는 가끔 출근길에 지수를 데리고 회사에 가요. 아빠 회사에 가는 건 지수에게 너무 신나는 일이죠. 컴퓨터가 놓인 책상이 줄줄이 이어진 사무공간이 신기하고 재미있나 봐요. 아빠가 일하는 동안 빈 책상을 차지하고 앉아 그림도 그리고, 같이 출근한 이모 삼촌들에게 질문도 하고 놀다 집으로 돌아오곤 했죠. 그 나이 또래의 아이가 아빠 회사에 놀러 가기 좋아하는 건 당연한데, 팔불출 엄마와 아빠는 또 상상의 나래를 펼쳐봅니다. 평면도를 그리고, 레고로 뚝딱뚝딱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아이를 보며, 아빠처럼 건축가가 되는 건 아닐까? 야무지게 김칫국을 마셔봅니다. 신랑도 내심 바라는 눈치예요.
어린 시절 책 읽기를 정말 좋아했어요. 밤에 엄마 몰래 불을 켜놓고 책을 읽곤 했죠. 어느 날 지수를 재우다 먼저 잠이 들었나 봐요. 잠에서 깨어보니 지수는 자기 책상에 앉아 스탠드를 켜놓고 책을 읽고 있었어요. ‘지수야 이제 잘 시간이야’하고 부르고 싶었지만, 잠시 그 뒷모습을 바라보았어요. 나의 엄마도 모른 척 눈감아 줬던 걸까요? 나 몰래 사랑스럽게 바라보고 있었을까요?
비슷한 결을 가진 둘이 부딪히면 정말 큰일이죠. 세 돌이 지날 무렵부터 자기주장이 강해지고, 정말로 독립된 개체가 되어갔어요. 자아가 생겨서는 엄마에게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정확하게 전달했죠. 훈육을 하던 어느 날이었어요. 눈물을 쏙 빼고 울던 아이는 잠깐 시간이 필요하다고 방으로 들어갔죠. 신랑과 다투고 제발 혼자 있게 해 달라며 소리치던 저를 보는 기분이었어요. 너무나 닮아있었어요. 내가 아이 앞에서 이런 행동을 보인 적이 있던가? 생각해 봤죠. 얼마간의 시간이 지난 뒤 아이는 감정을 추스르고 나와 잘못했다며 사과했어요. 어떤 날은 자신의 의도는 그렇게 아니었다며 억울함을 호소하기도 했어요. 기억력이 좋아서 작은 것 하나도 잘 기억해요. 마음에 담아두고 있다가 가끔씩 그때는 슬프고 서운했다며 이야기를 꺼내죠. 예민함은 좋은 감각이기도 하지만, 예민함 때문에 겪어야 하는 고단함을 대물림하고 싶지 않았어요. 그저 털털하게 자라기를 바라는 제 바람은 이미 틀린 것 같습니다. 아이에게서 예민하고 날카로운 나를 발견할 때 엄마의 마음은 철렁합니다.
가끔 미운 내 모습을 똑 닮아있는 아이를 보며 이게 유전 때문일까 아니면 내 육아의 영향일까 고민하게 돼요. 뭐가 문제일까, 지난 양육과 훈육의 실수들을 돌이켜 보죠. 나의 부족한 부분을 아이에게서 발견하는 순간, 아무에게도 들키고 싶지 않은 나의 약점을 들킨 것처럼 얼굴이 달아올라요. 왜 저런 것까지 닮은 건가 유전의 힘이 야속하기도 했어요. ‘아직 어리니까 부족한 부분은 채우고, 기울어진 부분은 균형을 맞춰 바로잡을 수 있을 거야’라는 마음을 가진 적도 있어요. 더 과하게 질책하고 나무라기도 했어요. 아이는 나와는 달라야 한다며 바꿀 수 있다는 오만한 생각을 가졌죠. 정작 본인은 누군가에게 잘못을 지적받으면 극도로 싫어하면서 왜 아이에게는 나의 생각을 강요하려고 했던 걸까요.
나의 성격이었듯, 아이의 성격인 것을 받아들이는데 조금의 시간이 걸렸습니다. 아직도 수련 중이에요. 닮아있는 내 못난 부분을 마주할 때 저는 어린 시절을 떠올리려고 노력해요. 나름에 이유가 다 있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그 시절 이해받지 못해 속상해하던 나를 마주하게 돼요. 어쩌면 아이의 마음을 가장 잘 이해해 줄 수 있는 게 바로 아이와 많이 닮은 제 자신이지 않을까 싶어요. 아이를 통해 나를 보고, 어린 시절의 나를 위로하고, 또 함께 성장해요. 닮아서 좋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