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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서 Apr 24. 2024

세월이 쌓은 벽

패총. 벽화, 복국


#세월이 쌓은 벽 _ 패총


대부분의 박물관이나 전시실이 그렇듯이 문을 열면 로비가 나오는 입구일 거라 생각하며 자동문의 버튼을 누르고 들어섰다가 미처 문이 다시 닫히기도 전에 깜짝 놀라서 주저앉을 뻔했습니다. 그야말로 깜빡이도 없이 놀랄만한 광경이 훅, 들어옵니다.



조금 습하고 따뜻한(?) 공기가 가득 찬 그리 크지 않은 전시방은 규모에 비해 놀라움은 수십 배쯤 될 듯합니다. 사실 가장 놀랐던 이유는 지금 막 내가 디딘 바닥이 유리라서 무엇인가 까마득한 것이 아래에 있고 찰나이긴 했지만 그걸 제가 무방비 상태로 보았다는 것입니다. 마치 고층 아파트의 발코니 같았는데 시선을 분산시킬 곳이 없이 꽉 차고 막힌 방이라서 더 놀랐던 것 같아요.


평소에도 높은 곳에서 원경을 보거나 비행기를 타는 것 정도는 괜찮은데 창문 가까이 가서 아래를 보거나 난간에 기대는 모험은 절대 불가한 선택적 고소공포증이 있습니다. 그래도 투철한 의무감으로 사진은 찍겠다고 입술 깨물고 버티며 문에서 두어 발자국만 앞으로 가서 간신히 한 장 찍고 고개를 빳빳하게 세운 상태로 대충 바라보다 뒷걸음질로 나왔습니다. 그런데 나와서 사진을 확인하니 당연히 엉망입니다. 바닥 유리를 통해 볼 수 있는 아래는 아예 뿌옇게 나오고 전체적으로 유리에 반사된 조명만 넘실거려서 제가 경험한 패총의 첫인상이 전혀 나타나지 않았더군요. 그래서 나중에 다시 왔습니다.



큰맘 먹고 정신줄 부여잡았더니 사방이 좀 제대로 보이고 사진도 대강 성실하게 나왔지만 끝내 바닥을 보진 못했습니다. 처음 찍은 전체샷은 너무나 엉망이라 다시 가서 찍은 부분 사진을 올립니다. 그래도 뭔가 경이롭고 뭉클하기는 했습니다. 단편적이긴 해도 예나 지금이나 치열하게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의 수고를 보는 것 같다고나 할까요.



봉황동유적 패총은 1900년대에 발굴하기 시작해서 전국적으로 600여 개가 되는 패총 중에서 최초의 패총이기도 합니다. 회현리 패총으로 인해 패총이 중요한 역사적 가치를 지닌다는 걸 알게 된 셈이지요. 패총은 이름 그대로 당시의 사람들이 먹고 난 조개의 껍데기가 쌓여서 만들어진 조개무지인데 간혹 각종 철기 및 골각기, 토기와 탄화미들도 있어서 당시의 생활상을 가늠할 수 있는 귀중한 자료가 됩니다. 1920년에는 화천이라는 중국화폐가 발견되기도 했는데 화천은 단 15년만 존재했던 중국의 나라에서 만들어진 화폐라서 당시 가야연맹의 교역의 범위에 대한 추측을 가능하게 했습니다. 화천은 이어진 후한시대에서도 일부 사용되어서 총 26년간 통용된 중국화폐입니다.


패총은 쉽게 말하면 당시의 생활 쓰레기지만 현재의 쓰레기가 환경을 망치는 것과는 사뭇 다른 종류의 쓰레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조개껍질은 땅을 알칼리성으로 변화시킨다고 하니 수렵채집 생활 이후에 온 농경문화에도 영향을 끼쳤을 것입니다. 어쩌면 쓰레기는 당대의 생활상이나 미래 환경을 예측하는 가장 신빙성 있는 척도인지도 모릅니다. 이런 생각을 하면 썩지도 않고 자연에 도움도 되지 않는 쓰레기를 날마다 어마어마하게 배출하고 있는 현실이 걱정스럽기도 합니다.



패총은, 눈에 보이지 않는 세월을 형태로 빚은 것 같았습니다. 제가, 삶의 향한 시선에 슬픔이 기본 옵션으로 깔린 부실한 생명체라 그런지 뜬금없이 권지예의 소설, '꽃게 무덤'도 떠올랐습니다. 소설의 내용과 더 깊이 연관 짓지 않고 그저 제목 때문이겠거니 하며 전시실 앞을 떠납니다.


패총 전시관 앞길은 회현동 벽화골목으로 이어집니다.  3~6세기의 가야 사람들의 생활 흔적인 조개무지 옆에서 현대의 회현동 사람들이 낮은 골목을 이루며 살고 있습니다. 굳이 따진다면 지난 역사 위에 지어진 현제가 아닌 곳이 어디 있을까마는 그래도 이렇게 일상 속에 노출되어 과거가 바로 옆집처럼 형성된 도시가 그리 많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김해는 역사와 동거하는 도시 같습니다.



#골목마다 순한 표정 _ 회현동 벽화골목


패총전시관을 나와 조금 내려오자마자 바로 벽화가 보이길래 가끔 찾아오는 방향치의 행운인 줄 알았더니 혹시나.. 는 역시나..로 금세 전환됩니다. 이 정도가 다는 아닐 텐데 하는 순간 벽화는 끝났고 길을 잃었습니다. 한참을 걷다 보니 시장이 나왔는데 상인들께 물어봐도 모르시고 심지어 뭔 이렇게 쓸데없는 것을 묻고 다니냐는 표정이십니다. 어느 할머님은 '인터넷 찾아봐!' 하십니다. 뜻밖의 대답에 반사적으로 아, 네.. 하며 돌아서며 갑자기 어리어리한 이방인이 된 것 같아 쑥스럽기도 해서 풋, 웃음이 났습니다. 어느 특정한 건물 같은 게 아니라서 지도로는 못 찾아서 여쭤본 건데... 네~ 좀 더 헤매보겠습니다.



일단 회현동 행정복지 센터를 랜드마크 삼아서 주변을 돌아다닙니다. 오래된 동네의 구부러진 좁은 골목들이라서 들어서기 전에는 안에 무엇이 있는지 알 수가 없고 막다른 골목처럼 보이지만 들어가 보면 옆으로 살짝 구부러지며 다시 또 골목이 연결됩니다. 길이 워낙 좁은 데다 골목 쪽으로 작은 들창이나 출입문이 나 있어서 아주 조심스럽게 걸었습니다. 살짝 걱정이 되더군요. 회현동 골목은 사시는 분들이 자발적으로 조성한 벽화골목이란 안내를 읽은 것 같긴 한데 그래도 저처럼 일부러 보러 오는 사람들이 일상에 방해가 되진 않을까 싶어서요. 구경하러 오는 사람들의 예의가 꼭 필요한 곳이란 생각이 들었어요.



회현동 벽화골목은 인근의 주민들아 뜻을 모아 만든 곳이라는데 실제로 골목골목 걷다 보니 관광객보다는 여기에 살고 계시는 주민들을 위한 벽화라는 생각이 저절로 들었습니다. 늘 드나드는 낡고 좁은 골목길에서 귀엽고 사랑스러운 그림을 만나는 즐거움은 생각보다 훨씬 큰 일상의 위로가 될 것 같았거든요. 얕고 소박한 그림들마다 숨어있는 위트와 따뜻함이 혼자 걷는 내내 미소 짓게 했습니다.


원래 아침은 안 먹는 데다 브런치로 먹는 첫끼도 놓치고 하루종일 걷기만 해서 저녁은 제대로 된 밥상을 찾아가기로 합니다. 벌써 꽤 늦은 오후라 밥을 먹고 들어가면 퇴근길 시간일 것 같아 잠시 망설였지만 배도 고프고 가기로 작정한 곳이 따로 있어서 마음을 정합니다. 오늘 먹으려고 하는 음식은 복국입니다.



#한우물 가게 _ 기장 복국


김해시에서 30년 이상 운영하고 있는 노포를 발굴 관리하기 위해 만든 것이 '한우물 가게'입니다. 오늘은 '한우물 가게'에 수록된 노포 중에 한 곳인 '기장복국'으로 갑니다. 지난번의 밀면처럼 복국도 먹어본 적이 없는 음식입니다. 어린 나이가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입맛이 짧은 탓에 어른스러운 맛을 배우기 전에 한국을 떠나서 이 모양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없어서 못 먹지요. 음식이란 게 참 이상해요. 계속 싫어한다고 생각했거나 먹어보지 못한 음식인데 어느 기점의 나이가 되면 그 음식을 맛있게 먹게 됩니다. 개인의 호불호와는 상관없이 특정한 연령대와 맞는 음식이 있나 봅니다.



'기장복국'은 33년째 운영하고 있는 김해에서 가장 오래된 복국 전문점.입니다. 복국도 좋지만 복국 정식의 반찬이 맛있는 집으로 소문난 식당이라고 합니다. 예상대로 조금 헤맸는데 가게는 제가 쉽게 찾지 못한 것이 당연한 위치에 있었습니다. 벌써 오후 5시가 다 되었지만 안내서에 적혀있는 영업시간은 아침 6시부터 저녁 8시까지라서 안심했는데 거의 영업종료 분위기입니다.


입구 앞에서 멸치를 다듬고 계시는 분들께 식사되냐고 물었더니 된다고 하시긴 했는데 가게 안도 절반은 불이 꺼져 있고 그나마 식사를 하던 남자 두 명이 나가고 나니 저 혼자였습니다. 더운 국물 음식이라 여름엔 비수기인가 싶기도 하고 새벽부터 여니까 저녁엔 한가한가.. 등등의 생각으로 아무래도 날을 잘못 잡은 것 같은 쎄~함은 불이 꺼져있는 식당 절반정도의 공간에 어지럽게 쌓여있는 물건들 탓도 있었습니다.



처음 먹어보는 복국에 대한 기대도 있었지만 특히 반찬이 맛있고 청어 구이도 한 마리 나온다고 미리 좋아했는데 예상보다는 허술했습니다. 아마 일 인분이라 그랬던 것 같아요. 반찬의 구색도 사진으로 본 밥상과는 좀 다르게 부실한 것 같고 청어 구이는 머리도 없이 거의 반토막이고 (2인분에 한 마리였나 봅니다. 이제야 깨닫네요. 괜히 속으로 불평했어요. 이래서 혼자 밥 먹으러 다니기가 쉽지 않습니다.) 물과 물티슈도 나중에 달라고 하니까 가져다주었습니다. 인터넷의 리뷰를 여러 개 봐서 비주얼로 확인한 기대치가 있었는데 조금 실망했습니다. 순간 생각합니다. 역시 인간의 불행은 '비교'에서 오는구나.. 마음을 고쳐 먹다가도 서빙하시는 분의 표정을 보니 제가 장사 뒷설거지가 하는 중에 온 손님이 확실한 것 같아서 미안하기도 하고 좀 불편하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복국은 맛있었어요.



국물은 맑고 개운해서 배가 고파 꼬이기 시작한 속을 풀어주었고. 양은 좀 적은 듯했지만 복어 살도 도톱하고 부드러웠어요. 탕 종류의 국물을 끝까지 다 먹는 일이 드문데 싹싹 긁어먹었습니다. 그러면서도 뭔가 아쉬워서 이곳은 아니더라도 기회만 된다면 복국은 꼭 다시 먹어보고 싶은 음식입니다. 이렇게 김해 여행 덕분에 '난생처음'이란 수식어가 붙는 음식 경험이 하나 더 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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