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무산책 Dec 25. 2019

방탄소년단이
프랑스에 몰고 온, 바람

프랑스의 2019년을 흔든 BTS


 연말, 그 어느 때보다 들뜬 공기가 지나다니는 시간들. 그리고 우리의 일곱 소년들을 어느 때보다 많이 볼 수 있어 행복한 시간들. 오늘, 크리스마스를 누구보다 찬란하게 수놓아준 그들이 있어 행복한 저녁.

 크리스마스가 가진 모든 낭만을 하나의 단어로 표현하라고 한다면, 아마도 주저 없이 'BTS'가 될지도 모르는 나의 이 주책맞은 사랑. 그렇게 철이 없어 험한 세상 어찌 살 거냐는 눈빛을 주변 사람들에게 그토록 받아왔음에도 아랑곳 않는 나의 그 여전히 철없는 마음. 하지만 어쩌랴. 나는 그게 좋고. 그게 나인 걸.

 한 달 전쯤, 남편 회사에서 있었던 저녁 파티에 갔을 때, K팝 팬이라는 한 젊은 동료가 나에게 와 말을 붙였었다. 삼십 대 초반 정도 되는 프랑스의 건장한 남자였다. 자기는 K팝에 원래 관심이 많았는데 최근 BTS가 매우 흥미롭다는 것이었다. 나는 마치 물 만난 고기처럼 신나게 얘기를 나눴다. 그리고 덧붙여 말했다. "지금 음악 나오던데, 이따 우리 BTS 노래 틀고 같이 춤추는 건 어때요?" 그는 자기는 아직 BTS 춤은 모른다며 난감해했다. 내가 말했다. "뭘 걱정해요. 내가 가르쳐줄게요!" 그는 아주 좋다며 큰 소리로 웃었다. 


너희들이 바로, 내 크리스마스 선물이야


 얼마 전, 내가 사는 도시의 가장 큰 서점에 가서 BTS 책자가 얼마큼 출시되어 있는지를 알아본 적이 있었다. 직원분을 붙잡고 물었다. "혹시 K팝 그룹, BTS 책이 있나요?' 부지런히 책을 정리하고 계시던 할아버지는 나를 쓰윽 보시더니 "당연히 있죠" 라며 따라오라고 고갯짓을 하였다. 그리곤 대중음악 코너 한쪽에 꽂혀있는 BTS 책들을 다 꺼내 주시며 말했다. "자, 여기요! 이렇게나 많이 있어요" 

 다섯 권 정도의 책들이 있었다. 안의 내용들을 살펴보니, 한국에서처럼 전문가의 입장에서 그들의 음악이나 의미를 분석하는 수준은 아니었고, 프랑스인들에게 그들의 전체적인 히스토리와 위상에 대한 정보를 전달해주는 개괄적인 내용의 사진첩, 그리고 철저한 팬의 입장으로서 가볍고 즐겁게 그들을 소개해주는 팬북 정도였다. 저자들을 살펴보니 그냥 평범한 일반인들 같아 보였다. 프랑스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그들의 팬덤 '프랑스 아미'임에 틀림없었다. 


 그중에 이제 막 BTS에게 빠져든 소녀팬에게 가장 적당해 보이는 팬북 하나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 그것을 어제, 크리스마스 선물 사이에 끼워서 BTS팬인 프랑스 조카에게 깜짝 선물했다.
그리고 즉각적으로 날아온, 두 조카가 쌍으로 외치던 비명소리 "꺅~~~ BTS다~
!!"


< BTS, K팝의 왕 > 타이틀이 주로 이렇다


 지난여름부터 그들의 팬이 된 중학생 고등학생인 조카들과 특별히 소통거리가 없었던 나에게 BTS는 그야말로 아주 고마운 존재다. 그 조카들과 나는 이제, 함께 눈을 반짝이며 '소중한 것을 공유하는' 친구가 되었으니 말이다. 방탄이 한동안 휴식기를 가지던 지난여름, 슬퍼하던 조카에게 BTS 콘서트 V 라이브를 깜짝 시청하게 해 주었을 때도 얼마나 뛸 듯이 기뻐하였던지.

 두 조카의 모습을 본 시누이는 내게 말했다. "BTS가 해마다 프랑스에 콘서트 하러 온다고 했지? 내년 콘서트를 우리 애들이 벼르고 있어. 그리고 너에게 선물이 있어. 우리가 너를 초대해서 그들 콘서트에 같이 가려고 해" 오. 이렇게 고마울 때가! 안 그래도 티켓 가격이 만만치 않았는데, 이건 너무 운이 좋은 거 아닐까? 딸아이가 옆에서 말한다. "엄마, 나는?" "당연히 같이 가야지. 니 표는 엄마가 사줄게!"

 프랑스인들은 크리스마스는 가족과 함께 마지막 날은 보통 친구들과 보내기에, 시누이들과 각자 집으로 돌아간 후 31일은 어떤 친구들과 보낼 건지에 대한 얘기가 오가고 있을 때였다. 조카가 옆에서 BTS 노래를 흥얼거린다. 31일과 BTS. 순간 나는 우리 소년들을 한껏 자랑하고 싶어 졌다. 시누이에게 말을 꺼냈다.


BTS 멤버 한 명 한 명을 세세하게 소개하는 팬북 속 이미지, 한글을 따라쓰는 페이지도 있다


"31일 밤, 뉴욕 맨해튼 한가운데서 열리는 미국의 가장 큰 송년쇼에서, 누가 라이브 하는 줄 알아?"

시누이는 눈이 똥그래져서 말했다. "설마... BTS?" 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시누이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조카들도 입을 다물지 못하고 서로를 바라보았다. 나는 미소를 지어 보였다. '우리 소년들이 이 정도라고!'


 이주 전쯤, 한 프랑스 친구 집에 저녁 초대를 받았을 때였다. 이런저런 얘기를 하던 중 BTS 얘기가 나왔다. 나는 그들의 팬이고 혼자 파리 스타디움 콘서트에도 갔었다는 말을 하자, 그 친구가 갑자기 자기 딸을 큰 소리로 불렀다. 이제 막 중학생이 된 딸이 BTS 왕팬이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어린 딸은 나를 반짝이는 눈으로 쳐다보며 온갖 질문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최애(가장 좋아하는 멤버)는 누구인지, 가장 좋아하는 노래는 무엇인지... 나는 곧바로 그 친구의 마음이 되어 신나게 수다를 떨었다. 

 그 친구는 제이홉을 가장 좋아한다고 했다. "치킨 누들숲 뮤비 봤지?" 내가 물었다. 그 아이는 '아니 그걸 어떻게 모를 수 있냐'는듯한 웃음을 짓더니 그 자리에서 일어나 춤을 추기 시작했다. 한두 번 해본 솜씨가 아니었다. 하지만 이 신나는 노래는 함께 춰야 제맛이다. 흥이라면 누구 못지않은 나도 곧바로 일어나 노래를 부르며 그 '닭 날개 파닥파닥 춤'을 함께 추기 시작했다.


팬북에는 '멤버들과 보내는 완벽한 하루'라는 페이지가 있었다. 천사 지민이와 보내는 하루라니. 완벽하지 않을 수가 없다.


"치킨 누들숲~ 치킨 누들숲~ 치킨 누들숲~" 우리 아이는 '엄마 또 시작이야'라는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고, 프랑스 친구들은 입을 다물지 못한 채 우리를 신기한 듯 바라보았다. 그들의 공통점은 매우 즐거워했다는 것이다. 이 얼마나 바람직한가. 너무나 짜릿한 경험
었다.  


 한 한국 친구에게 최근 재밌는 얘기를 들었다. 친한 프랑스 친구 동네에 한국을 좋아하는 아이들이 있는데 내 친구를 만나고 싶어 했다고 한다. 이유는 한 가지였다. 그들이 사랑하는 'BTS 나라의 사람'이고, 그렇게 동경하게 된 '한국이란 나라의 사람'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저 '한 번만 만나볼 수 있게 해달라고' 부탁을 했다고 한다. 그 얘기를 듣고 정말 둘이 한참을 웃었다. 살다 살다 이런 일을 겪어본다며.

 
프랑스 서점에 방탄소년단 책이 줄줄이 꽂혀있다. 프랑스 조카들이 BTS팬이 되었고, 프랑스 중학생들과 BTS로 소통을 한다. 프랑스 사람들이 한국사람이라면 만나고 싶어한다. 세계 최고의 문화대국이자 문화적으로 매우 보수적인 나라 프랑스에서, 이방의 문화를 절대 안방에 들이지 않는 나라 프랑스에서!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상상할 수 없던 일이 지금 21세기에 일어나고 있다. 지금 BTS는 유럽에서 그것을 실현하고 있다. 그리고 그것은, 

오래된 '낡은 것들이' 떨어져 나가고 새 살이 돋아나는 소리이다. 

그 맨 앞에, BTS가 있다. 




* 여름에 썼던, BTS와 프랑스 이야기
https://brunch.co.kr/@namoosanchek/43


* 지난 여름, BTS 파리 콘서트 이야기
https://brunch.co.kr/@namoosanchek/22


*BTS 진짜 의미, 강력한 사랑 에너지

https://brunch.co.kr/@namoosanchek/126



매거진의 이전글 방탄소년단. '신화'를 품은 소년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