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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산책 Apr 15. 2020

나의 자유는, 내가 가져오는 것이다.


3년 만이다. 가슴이 뛰며 내일이 기다려지는 건. 내가 나고 자란 공동체를 위해 무언가를 다시 간절히 바래보는 건. 이 밤이 지나면 안겨질 결과 그 희열을 마음 깊이 기다리는 건.

해외에 사는 나는 투표를 하기 위해서는 언제나, 비싼 기차를 타고 한국 대사관을 찾아가 투표를 해야 했다. 2016년 20대 총선에도 2017년 19대 대선에도 나는, 혼자 떼제베를 타고 파리 한국 대사관을 찾아가 투표를 하였다. 하지만 총선 때만 해도 많은 교민들이 반드시 투표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아니었다. 주변에 물어도 관심 없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았다. 비싼 돈 들여 하루의 시간을 꼬박 투자해야 하는 우리의 1표는 당시만 해도 그렇게 간절하지 못했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지쳐 있었고 자조했으며 희망을 잃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열심히 살아도 보여지는 나라 모습과 생활 속에서 체감하는 삶은 암울함으로 넘쳐났다. 사람들은 투쟁의 의지마저 꺾인 채 모두가 함께 미궁의 나락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그곳의 이름은 '헬조선'이라 불리웠다.


13년 전 '다이나믹한 지옥이 싫다며' 제 발로 그곳을 도망쳐 나온 나는, 심심해도 평화만이 있을 것으로 기대한 이곳에서 또 다른 지옥을 만났다. 그리고 알게 되었다. 지옥은 저 땅 속 어딘가에 있는 불구덩이 속이 아닌 내 마음 안에 존재한다는 것을. 그리고 생경한 발견. 이 땅에 온 처음부터 내 마음을 아프게 저며 온 것이 있었다. 그것은 나만 그 지옥에서 빠져나오면 편할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는 깨우침이었다.


'나의 자유'를 위해 모두가 함께 총을 들었던 '항일 의병들' 모습

 

이곳의 넘치는 풍요와 전혀 딴 세상에 살고 있는 당장 내 가족의 고단한 생활과 위태로운 삶, 아들 딸 손주들에게까지 큰소리치고 용돈 쥐어주며 살고 있는 부유한 프랑스 노인들과 극명하게 대비되는 한국의 노인들. 폐지를 줍고 지하철 바닥에 엎드려 껌을 떼고 있는 노인들의 모습은, 그분들이 내 가족이 아니었어도 똑같이 나의 마음을 아프게 두드려 왔다. 그때 알았다. 내 몸은 그곳을 떠나왔지만 내 마음만은 여전히 그들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우리는 모두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나 혼자 잘 먹고 잘 살아서 행복한 것은 없다는 것을. 다 함께 잘 먹고 잘 살아야 진정으로 행복하다는 것을.

촛불정국, 멀리서 고국을 바라보며 아팠던 마음은 깊은 마음의 동기를 건네주었었다. 자칫하면 내 나라가 끝없는 수렁에 빠질 수 있다는 위기감. 내 가족 내 친구 내 고향 사람들이 눈물 흘리며 아파하는 모습을 더는 볼 수 없다는 책임감. 품고 가야 할 마음은 하나였다.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과 그렇지 않은 세상이라는 대명제만이 우리의 선택과 미래를 가를 가치였다. 그리고 그것을 지키는 것은, 내가 버리고 온 사랑하는 내 가족과 내 고향에 대한 채무이기도 했다. 나는 그 모두에게... 내 마음의 빚을 갚고 싶었다.


그 당시 나는 처음으로, 만주에서 항일투쟁을 하던 이름 없는 독립운동가분들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었다. 바로 내가 그분들의 마음이 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할 일을 했다. 오로지 '모두가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세상'이라는 그 대의를 위하여. 그리고 그때의 우리 선택과 간절함은 오늘날 코로나 상황으로 고스란히 돌아오고 있음을 우리는 목도하고 있다. 진정으로 백성을 섬기는 자만이 왕의 자리에 오를 수 있는 자격이 있다는 것을.


조선총독부 마지막 총독 '아베 노부유키' 그리고 백범 '김구' 선생님


일본이 겉으로는 패망한 것처럼 이 땅을 떠났지만, 미소를 지은 채 이 한마디를 남기고 갔음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그리고 정확히 그의 말대로 대한민국은 흘러왔다는 것을. 지금도 그러하다는 것을.  

"우리는 패했지만 조선은 승리한 것이 아니다. 장담하건대, 조선민이 제정신을 차리고 위대했던 옛 조선의 영광을 되찾으려면 100년이라는 세월이 훨씬 걸릴 것이다. 우리 일본은 조선민에게 총과 대포보다 무서운 식민 교육을 심어놓았다. 결국은 서로 이간질하며 노예적 삶을 살 것이다. 보라! 실로 조선은 위대했고 찬란했지만 현재 조선은 결국 식민교육의 노예로 전락할 것이다. 그리고 나 아베 노부유키는 다시 돌아온다"


우리는 코로나를 통해 똑똑히 보았다. 우리는 초라한 토끼가 아니며 무엇이든 될 수 있고 할 수 있는 호랑이였다는 것을. 이제 내가 누구인지를 알았으니, 호랑이에 걸맞는 길을 가면 되는 것이다.

나의 자유는, 내가 가져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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