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개똥 밟고 다니는 사람들
"앞에 개똥 조심해!"
미리 말을 해주었음에도 길바닥을 주의 깊게 보지 않았던 아이는 이내 커다란 개똥을 신발로 뭉갠다. 개똥이 있는 지점으로부터 집에 오기까지 10m는 족히 되는 인도 바닥은 그 큰 개똥 하나로 여기저기 똥 범벅이 되어 있다. 지나가는 사람들과 유모차가 계속해서 밟고 또 밟고 옆으로 앞으로 덩어리들을 옮겨 놓았기 때문이다. 도대체가 발 디딜만한 공간이 제대로 없을 만큼 많이도 으깨져 있다.
빵에 너텔라 발라 놓은 것도 아니고 대체 저런 광경을 언제까지 봐야 하는 건지. 봉쇄령이 끝나자 어김없이 등장한 거리의 개똥. 거기에 오늘은 덤으로 몇 개에 걸친 강줄기처럼 소변 자국이 여기저기 거리를 함께 가득 채우고 있다. 걷는 내내 배설물 냄새가 진동한다. 프랑스에 사는 우리는 오늘도, 개똥과 개오줌을 실컷 뭉개고 들어왔다.
실제로 ‘개똥 조심해’ 란 말은 프랑스 거리를 걸으며 아이에게 자주 하는 말 중에 하나다. 그만큼 이 나라 거리에는 심할 만큼 개똥이 자주 목격된다. 너무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이라 이들에게는 친숙한 무엇이 된 걸까. 이 사람들은 이제 개똥을 밟아도 아무렇지 않은 듯 보인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적응이 안된다. 시골 논두렁이라면 모를까 아스팔트 한가운데 덩그러니 놓여있는 그것은 볼 때마다 미간을 찌푸리게 하고, 나도 모르게 금세 신발에 흔적을 남기기 때문이다. 실제로 프랑스에는 '매년 650명의 파리 시민들이 개똥에 미끄러져 병원 신세를 진다'는 통계까지 나와있다.(개똥 밟는 파리 시민들 기사: http://bitly.kr/cTS2TDKDiL)
프랑스 사람들은 말한다. 자기들이 동물을 사랑해서 동물을 존중하다 보니 그렇다고. 애완동물을 많이 키우니 그렇다고. 그러나 과연 그럴까. 요즘 시대에 웬만큼의 소득이 있는 나라치고 애완동물 안 키우는 나라 없다. 한국인들 강아지 고양이 많이 키운다. 하지만 한국의 길거리 한복판에서 개똥을 본 적이 있는가. 똑같이 동물을 키우는데 한국에는 없고 프랑스에는 있는 이유는 한 가지다. 프랑스의 견주들이 배설물을 처리하지 않고 그냥 지나가기 때문이다.
급하게 산책 나오다 보니, 아니면 귀찮아서, 뒤처리 할 비닐봉지 등을 가지고 나오지 않았다고 치자. 그러면 문제가 더 심각해진다. 개똥이 너무 자주 여기저기 널려 있다는 것은, 그런 사람이 많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 말은, 자신의 부주의가 남에게 피해를 줄 수 있다는 생각을 하지 않거나, 그것이 실례되는 행동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다는 뜻이다. 자기가 남겨 놓은 개똥을 몇백 명이 밟고 지나가는 것쯤은 상관없다는 말이 되기 때문이다.
그것은 ‘동물 사랑’과는 전혀 상관없는, 청결에 관한 문제이고 양심에 관한 문제이다.
그러나 더 이해할 수 없던 것은, 개똥이 일주일이고 열흘이고 그 자리에 그대로 있다는 것이다. 분명 그 앞에는 상점들이 있고 회사가 있고 집들이 있다. 그런데 어떻게 자기 집 앞에 있는 개똥 하나를 치울 생각을 하지 못할까. 아무리 자기 강아지 배설물이 아니더라도, 처리하기에 유쾌하지 않아도 나 같으면 내 가게 앞의 개똥을 일주일씩 그대로 두진 않을 것 같다. 다른 것을 다 떠나 위생에 관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한국 사람들이라면 보자마자 당장 치웠을 것이다. 그것도 솔로 박박 문질러 물로 깨끗이 헹궈냈을 것이다.
그런데 이 사람들은 절대로 치우지 않는다. 아무도 상관하지 않고 모두가 모른 체한다.
그럼 그것이 어떻게 없어지느냐. 거름이 될 리는 없고 가끔 다니는 물청소차가 지나갈 때 그제야 씻겨 없어진다. 한국에서는 볼 수 없는 '인도를 씻어내는' 물청소차가 프랑스에 있는 이유를 알게 된 것이다. 물대포 화력을 지닌 물청소차가 한번 지나가야만, 그나마 개똥과 개오줌으로 범벅되어 있는 거리가 깨끗해지는 것이다. 하이힐이 생겨난 이유가 거리에 똥이 너무 많아서란 말은 지어낸 말인 줄만 알았었다. 이제는 너무나 수긍이 간다.
개똥을 아무렇지 않게 공공의 장소에 버려두고 가는 것도 이해되지 않고, 그것을 누구도 치우지 않는다는 것도 이해되지 않지만, 가장 경악스러운 것은 따로 있었다. 바로 개똥 밟은 신발을 신고 그대로 집안을 활보하고 다니는 것이다. 이 사람들 생활 문화 자체가 신발을 집 안에서 신고 다니는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정갈하게 깔려 있는 카펫 위를 신발로 성큼성큼 밟는 모습은 무지막지한 무법자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그렇게 밖에서 온갖 것을 다 밟고 난 신발을 신고 집 안을 걸어 다니고 심지어 신발을 신은채로 침대에 벌러덩 눕는 사람들. 우리 상식으로는 도저히 수용이 안 되는 태도이다.
물론 이 사람들도 최종적으로는 신발을 벗고 실내화를 신지만 여전히 집 안에 신발을 벗어 놓을 만한 공간은 마땅치 않다. 프랑스의 모든 집은 ‘신발을 따로 벗어 두는’ 공간 자체가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집 안에 설치 보수를 하러 오는 사람들은 모두가 신발을 신은 채로 온 집안을 걸어 다닌다. 그런데 나는 그게 싫다. 더구나 여기 길거리가 어떤 상태인지 알기에 더 그렇다. 그래서 우리집은 처음부터 모두에게 신발을 먼저 벗어 달라고 요청을 한다.
개똥 하나로 난 참 많은 생각을 했다. 이것은 비단 시민 의식의 문제일 뿐만 아니라, 청결에 관한 사회 구성원들의 생각을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사람들의 헐렁한 청결 개념은 비단 개똥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프랑스 아이들은 지금도 머리에 ‘이’가 자주 생긴다. 겨울뿐만 아니라 봄가을에도 프랑스 학교는 툭하면 이런 가정안내문을 보낸다. ‘학교에서 이가 옮고 있으니 주의해주십시오’ 그리고 아이들은 자주 머리에 ‘이’가 생긴다. 학교에서 옮겨 오는 것이다. 한국 엄마들은 아주 치를 떤다. ('이'는 휴가도 없다는 프랑스 기사: http://bitly.kr/JzHVcAe9lj, '이'가 돌아왔다!는 프랑스 기사: http://bitly.kr/jg6CgRvHGb)
프랑스 아이들은 기생충 질환에도 곧잘 걸린다. 그럴만하다. 이 사람들 식문화를 보면 바로 알 수 있다. 매 끼니마다 바게트를 먹는 사람들. 모든 음식을 칼질로 우아하게 먹으면 뭐하나. 결국 바게트는 처음부터 끝까지 손으로 뜯어먹는데. 밥 먹기 전에 이 사람들이 손을 씻을까? 안 씻는다. 집에서 식사할 때도 식당에서 밥을 먹을 때도 식전에 일부러 손을 씻는 사람은 없다. 그러면서 여전히 손으로 식사하는 문화를 가진 일부 나라들을 경멸스럽게 바라본다. 이것이 ‘지상 최대 문명국’이라는 사람들의 숨겨진 얼굴이다.
오래전 한 프랑스 여자애로부터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었다. "한국인들은 결벽증 아냐? 뭘 그렇게 깔끔을 떨어. 그냥 쿨하게 살아" 그녀에게 나는 이제 말해줄 수 있다.
개똥을 안 치우고, 계속 밟고 다니고, 신발 신고 침대에 눕고, 애들 머리에 이가 있고, 씻지 않은 손으로 매번 바게트를 뜯어먹는 것은 '쿨한 것'이 아니라 청결 개념이 부족한 것이라고.
우리는 문명인의 상식을 따르는 것뿐이라고. 어디가 진짜 문명국인지 보이지 않느냐고.
프랑스의 '비선진적' 실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