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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산책 Aug 28. 2020

내 글에 상처받았다는,
프랑스 사시는 작가님 보세요.


안녕하세요. 작가님.
작가님께서 이 글을 꼭 보시길 바라며, 오늘은 작가님께 개인적인 편지를 보내드리려 합니다.
 
먼저, 작가님께서 저에 대해 날을 세우고 이 글을 보실 필요가 없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저는 그날과 마찬가지로, 작가님을 공격할 의도가 전혀 없으며 그래서도 안된다는 것을 적어도 알고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저는 작가님께 처음부터 어떠한 감정도 없었고, 여전히 없으며, 그러한 마음을 품고 살만큼 옹졸한 마음으로 삶을 살아오지 않았습니다. 다만 오늘 이렇게 편지를 쓰는 이유는, 작가님께서 제 글로 받으셨다는 그 상처에 대해 많은 고민을 했었다는 것과, 그 결과에 대한 저의 마음을 전해드리고 싶은 마음임을 알려드립니다. 그러니 편한 마음으로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새 3개월의 시간이 흘렀네요. 그 시간동안 작가님 마음 속에 저라는 존재는 얼마나 느닷없이 무례하고 뻔뻔하게 느껴졌을까 생각하면, 더욱 안타까운 마음과 함께 좀 더 일찍 이런 시간을 가졌다면 좋았을 거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무엇보다 가시로 찔린 듯 아프셨다던 그 상처가 적어도 제가 의도한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알았다면, 작가님께 좀 더 일찍 가벼운 마음을 돌려드릴 수 있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유를 막론하고, 저의 글과 어떠한 행동으로 인해 작가님이 마음의 상처를 받으신 부분에 대해 사과의 말씀을 드립니다.
 
돌려 말하지 않을게요. 3개월 전에 제가 쓴 그 글은, 작가님과 완전히 다른 관점을 가지고 있던 저의 생각을 쓴 것이었을 뿐, 일부러 작가님을 공격하려는 의도가 있던 글이 아니었습니다.
물론 제 글을 읽으셨다면 기분이 좋지는 않으셨겠지요. 하지만 저는 그러한 작가님의 생각이 작가님만의 생각이 아닌, 대부분의 프랑스인들의 생각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프랑스에 치우친 그 관점’이 ‘모든 것의 기준’이 되어있는 현실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하고 싶었을 뿐입니다. 그러한 결과를 야기한 궁극적 원인은 프랑스에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작가님의 생각이 저와 선명하게 다르다는 것을 압니다. 그렇기에 이 부분에 있어 작가님과 저는 접점이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다 하여, 제 생각은 맞고 작가님 생각은 틀리다는 말을 하려던 것이 아니었습니다.

제가
그날 작가님 글에 라이킷을 눌렀던 이유는, 작가님의 글이 무심하고 맑은 마음으로 다가왔기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라이킷을 누르고 한참 후에야 알아챘습니다. 작가님이 저의 라이킷을 전혀 다른 의도로 해석하고 받아들일 수 있겠다는 우려였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며칠 후 올라온 작가님의 글을 보고 그 우려가 현실로 나타났음을 알았습니다. 저의 글이 증오의 에너지를 지녔다 말씀하시며 ‘특정 대상을 향한 증오’가 담겨있기에 세상을 증오의 주파수에 맞춘다고 말씀하신 부분이었습니다. 저 자신이 바보같이 느껴졌습니다. 전혀 의도치 않았던 것으로 한 사람의 마음에 상처를 남겼다는 것이 걸려 내내 마음이 좋지 않았습니다.
 
저는 지금껏, 제가 상처를 받으면 받았지 누구를 일부러 상처 줄만큼 모질고 뻔뻔하게 살아온 사람이 못되거든요. 그러한 마음으로 사람과 세상을 대해본 적도 없고요. 하지만 개인적인 공격을 받았다는 작가님 느낌 때문인지, 작가님께서 저의 글을 받아들이시는 부분이 많이 편향적으로 느껴졌습니다. 증오라 못박으시고 폄하하시는 것을 보며 생각이 정말 많이 다르신 분이구나 느껴졌고, 어쩌면 이 부분에 있어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없겠구나라고 생각하며 넘겼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넘겨서는 안될 일이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여름 내내 이상하게 작가님 생각이 계속 났기 때문입니다. 나는 작가님께 아무 감정이 없는데 왜 계속 작가님이 생각날까 생각해보았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제 마음 안에 해결하지 못한 어떤 것이 작가님을 통해 계속 말을 걸어오는 거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여름의 끝자락, 그것이 무엇인지 알았어요. 그것은 작가님이 느끼고 계신 고통이었습니다.

작가님께서 ‘
마음 켠이 산산이 부서지는 느낌이 들만큼’ 아프셨었기 때문에, 상처로 인한 슬픔이, 저에게 말을 걸어오고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 감정은 이기심과 거리가 먼 순연한 아픔이라는 것을 감지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것을 제 마음 안에서 외면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저는 작가님이 맑은 영혼을 가지신 분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제가 작가님을 의식하고, 의도적으로 폄하하고 상처 주려는 의도로 글을 썼었다면, 해당 글을 쓰고 후에 바로 작가님 글에 무심하게 라이킷을 누를 없었을 거에요. 작가님을 전혀 의식하지 않은 글이었기 때문에 라이킷을 누를 있었습니다.
 

이제라도 이 말씀을 꼭 전해드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의 사려 깊지 못했던 작은 행동으로 상처를 받으신 부분에 대해, 어떤 식으로든 그러한 마음이 아니었다는 말씀을 드리는 것이, 작가님의 상처받은 마음에 대한 도리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아마도 제가 상처라는 말에 민감하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누구보다 상처와 친숙하고 상처에 대해 잘 알고 있기에, 그것이 마음을 어떻게 괴롭히고 아프게 하는지를 알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되도록 누구에게도 상처 주지 않는 마음으로 세상을 살아가려고 합니다. 아니, 저는 누구에게도 상처 주는 삶을 살고 싶지 않습니다. 그것이 저의 마음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작가님이 느끼셨다던 상처는 아마도 조금은 다른 형태의 상처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제 글이 지닌 증오의 에너지가 ‘파괴를 불러온다’고 말씀하셨었지요. 그러한 느낌을 느끼신 이유가 무엇인지 알 것 같아서요. 우주의 무엇이든 ‘모든 탄생’에는 그에 앞선 ‘파괴와 재편’이 전제된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생명의 탄생에도 적용되고 보이지 않는 무형의 탄생들, 이를테면 ‘인식의 전환’과 같은 ‘새로운 사고의 탄생’에도 똑같이 적용되는 이치이지요. 낡은 것들이 파괴되지 않으면 새로운 것들이 들어찰 시공이 생겨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저의 글에서 ‘파괴’느끼셨다면 그것이 맞을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증오를 근간으로 하는 파괴가 아닌, 인식의 재편으로 인한 파괴를 의도했을 것입니다. 
 
제가 느끼는 현 세상은, 너무나 편향적으로 유럽 중심주의로 모든 것이 돌아가고 있으며, 이것은 분명히 인간의 의식이 균형을 잃은 것으로 보이기 때문입니다. 유럽인들이 지어 놓은 정신적 가치와 세상이 절대적 기준이 될 수 없음에도, 세상은 그렇게 흘러왔고 여전히 그렇게 흘러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안에는 분명 그들이 지닌 맹점이 있고 모순이 있으며 그들의 ‘일방적인 기준’에 의해 상처받고 고통받는 사람들과 국가들이 있습니다. 부분이 저의 가슴을 건드렸던 것입니다.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여전히 프랑스와 유럽 열강들의 ‘힘의 논리’에 의해 고통을 당하고 있는 나라와 사람들의 아픔이 저는 선명하게 보이고 느껴집니다. 저는 누구도 관심 갖지 않고 말하고 있지 않는 그것을 사람들에게 상기해주고 싶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그들의 반대편에서 그들에게 고통의 뿌리를 건네 준 대상들에 대한 냉철한 인식이 필요했습니다. 제가 프랑스에 대한 날선 비판을 하는 이유는 그것입니다.
 
매우 거창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듯하지만 실은 저는, 아주 작은 것들, 그러한 마음들을 위해서 글들을 쓰고 있습니다. 가슴이 이토록 뜨거울 있었던 이유는 오직 하나, 없고 약한 자들이 부당하게 고통 받는 것을 외면해서는 안된다는 일종의 사명감 같은 것입니다. 
 
물론 그 발단은 저의 프랑스 가족들을 포함하여 프랑스가 제게 건넨 차별의 경험들이었습니다. 저는 그 경험들 속에서 개인적으로 매우 아픈 시간들을 보냈고, 고통의 끝에까지 가보았습니다. 그러나 저는 나를 짓누르던 프랑스와 프랑스인들에 대한 혐오를 모두 나에게로 돌려 저의 한 마음을 바꿨습니다. 모든 내 안의 고통은 오래된 내면의 고통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내 고통의 문제는 눈 앞의 대상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안 깊이 박혀 있는 상처의 생채기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저는 모두를 원망했던 마음을 돌려, 모두를 살리는 내가 되기로 결심하였습니다. 그렇게 내 안에 새로 솟아난 생명을 보았습니다.

그렇기에 이 모든 글들을 쓸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한 마음들이 지나갔기 때문에 글들을 있었습니다. 작가님이 수긍하시든 안하시든 그것이 저의 마음이고 진실입니다.



저는 누구 앞에 나서는 것도 좋아하지 않고, 말 많은 것도 싫어하며, 옳고 그른 것을 따지는 것은 더더욱 좋아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그렇기에 늘 없는 듯 바람처럼 살아왔고, 저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지 않고 수행하듯 반평생을 살아온 사람입니다. 하지만 제가 돌진하는 힘이 생길 때가 있습니다. 그것은 순간, 없고 약한 사람들이 부당하게 고통받는 모습을 때입니다.

저는 지금껏 살아오며 제 주변에서 일어나는 그러한 고통을 외면하고 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누가 시키지도 않은 고생을 사서 하며 혼자 끙끙 앓고 힘들어하기도 했습니다. 그것은 누가 알아주는 것도 아니고 이익이 있는 것도 아니며 때로는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불의한 힘에 맞설 때에 저는 매우 단호해집니다. 그들이 삿된 마음으로 약자를 대하는 그 마음 앞에만 서면 저는 완전히 다른 내가 됩니다. 그것은 그들에 대해 분노를 퍼붓는 마음이 아니라, 그 마음이 왜 잘못되었는지에 대해 정확하게 인식하게 해주려는 의도입니다. 작가님이 느끼셨던 그 증오는 아마도 저의 그 단호함이었을 것입니다. 저는 애석하게도 프랑스에게서 그것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모두가 아름다움만 말하는 프랑스이기에, 기울어져 있는 균형추를 바로 세우기 위해서는 누구라도 그 이면의 모습을 계속 말해야 하지 않을까요. 아무도 하지 않는다면 저라도 해야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것이 진정 프랑스를 위하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단지 저의 불행했던 프랑스 생활을 한탄하려는 마음이었다면 이렇게까지 집요해질 수 없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현재 프랑스에 대해 집요하고 단호합니다. 제가 프랑스에게서 그 마음을 본 이상, 저는 그렇게 해야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제가 쓰는 낯선 프랑스 이야기들의 최종 독자는 프랑스인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언젠가 제 아이와 남편과 시어머님과 시댁 가족들 모두가 이 글을 읽을 날도 기다리고 있습니다. 저는 두렵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들에게는 뼈아픈 이야기들이겠지만, 그 역시 자신들 모습의 일부라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제 아이는 한국과 프랑스를 반반씩 간직한 아이입니다. 독일의 아이들이 나치의 범죄들을 교육받고 기억하듯, 프랑스인이기도 한 제 아이는 프랑스의 범죄들을 알고 기억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제 아이와 프랑스의 미래를 위한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눈을 떴을 뿐입니다. 그렇기에 실은 프랑스에서 없는 행복을 누릴 없었음에 대해 감사하고 있습니다. 


한국을 떠날 때 모든 미래의 희망을 프랑스에 투사하며 저 자신을 던져버렸던 저였습니다. 한국과 저 자신을 부정하였던 저에게, 프랑스 남편과 시댁 가족들이, 프랑스가 한없이 따뜻하게만 다가왔다면, 그들이 제가 원하던 행복을 가져다 주었었다면, 저는 그 만족감 속에 안주했을 것입니다. 프랑스는 저에게 ‘그토록 바라던 완벽한 사랑’과 같은 이름으로 다가왔겠지요. 하지만 그러지 못했기에 저는 알게 되었습니다. 의존하는 마음으로는 그 무엇도 진정한 종착지가 될 수 없다는 것을요. 그리고 기억해 내었습니다. 내가 원한 행복과 삶의 진정한 가치는 그것에 있지 않다는 것을요.  
 
저는 작가님처럼 책을 출간한 적도 없는, 이 공간에서 글을 쓰는 것이 전부인 사람입니다. 이 곳이 없다면 저의 목소리는 흔적도 없이 사라질 한 줌의 모래성일 뿐이겠지요. 그렇다하여도 저는 계속 목소리를 낼 것입니다. 그것이 작가의 할 일이기 때문입니다. 작가님과 제가 이러한 인연으로 얽히게 된 것도 이유가 있을거라 생각합니다. 작가님 상처를 돌아보며 분명 저는 다시한번, 프랑스 글들을 쓰고 있는 제 마음을 돌아볼 수 있었습니다. 그것에 감사를 드립니다. 그러하니 작가님께도 나름의 의미가 전하여졌기를 바랍니다.
 
저는 무엇과도 적대적인 지점에 있지 않습니다. 저는 누구보다 싸움을 싫어하며, 공격하고 상처주는 마음들을 멀리하며 살고 있는 사람입니다. 무엇보다 제 나이가 몇 년 후면 반백년이 됩니다. 이제 와서, 제가 무엇 때문에 모두를 증오하고 원망하기 위한 글을 쓰려할까요. 저 자신, 그렇게 부끄럽게 살기 위해서 펜을 다시 잡은 것이 아닙니다. 그 마음을 헤아려주신다면 감사하겠습니다.
 
제가 이렇게까지 마음을 전하는 이유는 한가지입니다. 작가님이 맑은 영혼을 지니신 분이라는 것 그리고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게 살고자하는 분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분이 저의 의도치 않은 행동으로 상처를 받는 것은 제가 원한 것도 아니었고 그것은 저의 아픔이기도 한 까닭입니다.
 
부디, 저의 마음과 진심이 전달되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작가님 마음이 평안하기를 바랍니다.
무엇보다 프랑스에 대한 어떤 비판 앞에서도 작가님이 상처받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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