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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산책 Sep 14. 2020

과거를 사는 나라 프랑스, 그들은 왜 멈춰 있는가


 아이가 다 죽어가는 목소리로 다급하게 전화를 했다. "엄마, 나 지금 죽을 거 같으니까 엄마가 나와야겠어" 하교 후 버스를 놓쳐 친구들과 걸어왔다는 아이는 땀범벅이 되어 있다. 가방부터 받아 든다. 악 소리가 절로 나온다. 돌덩이처럼 무거웠기 때문이다. "이걸 메고 지금 걸어왔다고?" 집에 와 가방 무게를 재봤다. 8kg. 아이 양 어깨가 빨갛게 물들어 있다. 한숨이 나온다.

 왜 아이들이 매일 이 돌덩이 같은 가방을 메고 등하교를 해야 하는 걸까. 프랑스 학부모 연맹(FCPE)에서 '아이들 가방 무게 줄이기 운동' 일환으로 가방 무게를 재본 결과 한 중학교 1학년생의 가방은 무려 9.2kg에 달했다. 그들은 말했다. 3-4kg가 '정상'이라고. 프랑스 아이들은 지금 '비정상' 무게로 등교한다는 거다.
 
 초등학교 고학년 때부터였다. 그때도 가끔 5kg 정도 되는 가방을 아이가 매일 메고 다녔다. 이처럼 프랑스 아이들은 매일 돌덩이 같은 가방을 메고 학교에 간다. 가방이 무거운 이유는 간단하다. 교실에 개인 사물함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매일 온갖 책과 공책들 사전까지를 이고 지고 다니는 것이다. 그것이 너무 이상했다. ‘교실에 작은 상자 하나씩 만들어주면 될 것을 왜 그걸 안 하고 애들한테 저런 쓸데없는 고생을 시키는 거지? 가방 무게를 잴 게 아니라 사물함을 만들어주고 학교 보안을 보다 철저히 하면 되지 않을까?'
 
 심지어 국민학교 시절이었던 우리 때에도 있었던 사물함이다. 근데 부자 나라에 아이들 사물함 하나가 없다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었다. 그 의문은 학교를 방문하고서 풀렸다. 프랑스 초등학교는 우리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환경’이 아니라 한국의 초등학교 교실 보다도 열악한 환경과 초라한 기자제들이 놓여 있었다.


각 잡힌 딱딱한 책가방을 메고 학교에 가는 프랑스 초등학생들(좌) 8-9kg 나가는 책가방을 메고 학교에 가는 프랑스 중학생들(우)
프랑스 학부모 연맹에서 애들 가방 무게를 걱정하며 '가방 무게 재기'를 했다. 해법은 '조금만 가지고 다닐 것' 그러나 불가능하다. 매일매일 모든 책을 가지고 다녀야하기 때문이다


프랑스인들은 이게 다 사르코지 탓이라고 한다. 그가 집권한 후로 교육과 복지 모든 면에서 프랑스가 퇴보해왔다고 말이다. 그전에 얼마나 훌륭했는지 모르지만 지금의 교육 현실이 매우 실망스러운 수준인 것은 맞다. 교육의 질과 내용을 포함해서다. 중요한 건 그 전에도 교실에 사물함은 없었다는 사실이다.


 재밌는 건 프랑스 초등학생들은 모두가 같은 형태의 가방을 멘다는 거다. 우리 어렸을 때나 보았던 각진 사각형의 ‘옛날 책가방’이다. 하지만 그 가방은 무겁고 불편하여 한국에서는 진작에 사라진 가방이다. 네 살 다섯 살 아이들이 그 딱딱한 가방을 메고 학교에 가는 모습을 보며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어릴 때부터 ‘암묵적인 규격화’를 강요당하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프랑스 학교는 아이들에게 ‘만년필’을 사용하게 한다. 펜 촉이 달린 그 ‘옛날 펜’ 말이다. 의무적으로 꼭 만년필을 사용하도록 일부러 가르치고 권유하는 나라. ‘아니 요즘 시대에 웬 만년필? 그걸 누가 쓴다고?’ 이런 모습을 볼 때마다 생각했다. 이들이 얼마나 과거에 집착하는지를 말이다.

 
 초등학교 어느 날 아이가 학교 숙제라며 공책을 펼쳤다. 영국 국기가 그려져 있었고 그 옆에는 영국 왕실 가계도가 얼굴 사진과 함께 붙어 있었다. 그날의 숙제는 영국 왕실 가계도에 있는 여왕들과 왕들의 이름을 외우고, 영국 국가를 외워오는 것이었다. 아이는 왜 이런 걸 해야 하냐며 입이 쭉 나온 채로 숙제를 해갔다. 물론 프랑스는 국영 교과서라는 것이 없고 학교마다 선생님마다 가르치는 내용이 조금씩 다르고 차이가 있긴 하다. 그럼에도 커다란 ‘틀’이라는 게 있다. 프랑스라는 나라의 정체성을 엿볼 수 있는 단면이었다.


'서류의 나라' 프랑스의 행정 업무 경험은 충격과 공포 무기력을 안겨준다(좌) 종이를 코팅한 프랑스 운전면허증(우)
연일 40도를 웃돌며 폭염을 기록했던 작년의 파리 여름
2019년 여름 파리 지하철 실내 온도가 43도를 기록했던 날(좌) 에어컨이 없는 여름의 파리 지하철은 '새로운 지옥철'이 되었다

 

이 모습으로 유추할 수 있었다. 이들이 말하는 ‘전통’이라 함은 실은 ‘과거의 영광’이지 않을까 하고 말이다. 최고로 풍요로웠던 시절. 그렇지 않고서야 이토록 과거에 집착할 수는 없으리라.


 프랑스가 자국 언어를 지키기 위해 더빙을 고집한다지만 그것은 결국 자신들 문화를 강화시키고자 하는 마음이고 한 때 ‘세계 공용어였던 프랑스어의 영광’을 지키고자 하는 마음이지 않을까. 이처럼 프랑스인들이 과거에 머물러 있는 모습은, 영광을 그리워하는 것뿐만이 아닌 ‘불편을 개선할 의지가 없음’으로도 나타난다. 대표적인 것이 열쇠 문화와 수동 운전 문화였다. 거기에 추가될 것이 있다. 바로 ‘서류 문화’다.


 코로나 시대 일본이 재택근무가 불가능한 이유가 서류와 대면 보고 같은 전근대적 업무 방식 때문이었다. 프랑스 역시 일본에 상응할 만큼 비효율적인 ‘옛날 업무방식‘을 고수하는 나라다. 증명서 하나를 만드는데도 온갖 서류를 싸들고 가야 하고, 거의 모든 행정 업무들이 종이 서류로 이루어지다 보니 업무 속도는 상상을 초월할 만큼 느리다. 절차들은 또 얼마나 복잡한지 뭐 하나 신청하고 만들고 계약하는 것 자체가 엄청나게 큰 시간과 에너지가 드는 ‘일’이 된다.
 

체류증 하나 만드는 데도 6개월 이상을 기다려야 하고, 한국 면허증을 프랑스 운전면허증으로 교환만 하는데도 몇 개월이나 1년 이상이 걸리며 면허증 분실재발급에만 2개월 넘게 걸린다. 프랑스 공무원들의 대충 일하는 마인드와 전근대적인 서류처리 방식 때문이다. 한국 사람들에게 이러한 경험은 충격 그 자체다.


유럽을 제패했었던 나폴레옹 1세 시절의 프랑스 영토(좌) 변함없이 '프랑스 영웅'으로 추앙 받고 있는 나폴레옹(우)
아이 학교 공책에 붙어 있었던 '영국 왕실 가계도'의 왕들 이름과 사진들은(우) 프랑스의 왕정을 떠올리게 했다(좌)

 

집을 구할 때도 세입자가 맘에 드는 집이 있으면 전화를 하는 게 아니라 이메일을 보내고 답을 기다린다. 답은 며칠 후에 올 수도 있고 일주일이 걸릴 수도 있다. 모든 시스템이 이런 식이다 보니 아무리 급해도 그저 기다리고 또 기다리며 마음을 비우고 있어야 한다.


 또한 프랑스는 운전면허증, 체류증 같은 각종 증명서를 아직까지 ‘종이 코팅’으로 사용한다. 그렇기에 오래된 증명서들은 코팅이 뜨거나 낡아서 너덜너덜 해지는데 이 사람들은 그것을 그대로 들고 다닌다. 새로 발급받는 절차가 복잡하고 귀찮기 때문이다. 이들의 열쇠를 보았을 때처럼 코팅된 면허증을 보았을 때도 기분이 묘했다. 언제 마지막으로 보았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 코팅된 책받침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이 사람들은 대체 어느 시대를 살고 있는 걸까.


확실한 건 파리 시민들은 지하철을 탈 때마다 100년 전 시대를 그대로 살고 있다는 것이다. 작년 여름 파리 지하철 실내 온도가 43도를 기록한 날이 있었다. 파리 지하철에는 에어컨이 없기 때문이다.

 

 물론 프랑스 여름 기후는 그동안 에어컨이 크게 필요 없었기에 집에도 대중교통에도 에어컨이 없는 경우가 흔했다. 하지만 지금은 시대가 달라졌다. 지구 온난화 이후 폭염이 지속되는 프랑스 여름은 더 이상 예전의 여름이 아니다. 40도까지 올라가는 여름이 지속되고 있다면 그 불편을 없애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에어컨을 설치했을 것이다. 하지만 프랑스는 하지 않는다. 단지 100년 전에 만들어진 시설이라 설치를 할 수 없는 것일까. 이것은 기술적인 문제라기보다 의지의 문제다. 그리고 이것이 프랑스다.


영국 왕실 가족 사진. 번쩍 거리는 황금 도금 장식들과 보석 같은 샹들리에는 그들을 '선택 받은 존재'로 느껴지게 한다
프랑스 왕실 가족을 로마 신들에 빗대어 그린 그림. 유독 '하얗게 빛나는' 살결과 휘광은 그들을 '신처럼' 느껴지게 한다
'영광의 시대' 였던 나폴레옹 시절, 프랑스와 영국의 세계 식민지 지도. 빨간색이 영국 영토이고 파란색이 프랑스 영토이다


 프랑스는 모든 건물에 도둑이 수시로 들기에 학교도 예외는 아니다. 사물함이 없는 이유가 도둑 때문일 수 있다. 그렇다면 더욱 이 나라 문제는 근본으로 돌아간다. 도둑이 활개 친다는 건 그만큼 불평등으로 인한 감정의 골이 깊다는 것이고 그것은 복지와 같은 ‘돈으로 해결되는 문제’가 아님을 말해주기 때문이다. 이것은 프랑스 사회의 모든 문제와 연결되어 있다. 바로 그들에 대한 뿌리 깊은 차별이다.

 식민지 출신 이민자들을 도둑으로 몰고 간 ‘프랑스의 마음’이 오늘의 모든 프랑스 사회 문제를 만들었다.

 그들이 과거의 영광에 도취된 마음을 버리지 못하고 매몰되어 있는 한, 그때의 시선을 버리지 못하고 여전히 오만한 마음을 내는 한, 오늘날의 프랑스 문제는 한 발자욱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할 것이다. 어제의 내 모습은 오늘을 비춰주는 거울이기 때문이다.  
 
 프랑스의 현재는 프랑스의 과거를 비춘다. 프랑스의 어제는 프랑스의 오늘을 비춘다.  
  
  
 
 
 
 

* 메인그림 : 황제에 즉위한 날의 나폴레옹


필자가 경험한 '프랑스 제국주의'


* 참고 자료 :  FCPE '아이들 가방 무게 줄이기 운동' 프랑스 기사 http://asq.kr/CjEr2ROifpsx, http://asq.kr/JiA9cvWOlG2D, 아이들 가방이 '점점 무거워지고 있다'는 프랑스 기사 http://asq.kr/QmnjjqNngGnw, 운전 면허증 발급 받는데 15개월 걸린 프랑스 http://asq.kr/ca1M532dWXTwU, 한여름 파리 지하철 '오븐서 구워지는 기분' http://bitly.kr/el9eGnGfdCSQ, 에어컨 없는 파리 지하철과 식당들 http://bitly.kr/QXP7ehcKUPg, 파리 지하철 43도 영국 기사 http://asq.kr/fEBmfLWctN0N, 프랑스 운전면허 필요한 서류 http://asq.kr/8Y7iiMHUTLyZ, 강철구 교수 <식민주의, 왜 지금까지도 문제인가> 칼럼 http://bitly.kr/fL3fWRgAOWt, 프랑스 경찰 흑인 성폭행 http://bitly.kr/rE956n7eOE, 프랑스의 빈민가 이주민들 차별 실태, 주민 인터뷰 https://wspaper.org/article/2611, https://wspaper.org/article/2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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