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무산책 Oct 29. 2020

자기팽창의 광기, 결핍이 부른 프랑스의 '슬픈 영광'


 군주제에서 공화주의를 실현하고 자본주의와 민주주의를 탄생시킨 프랑스 혁명. 그것은 ‘인류의 커다란 진보’를 가져온 위대함으로 평가되어왔다. 그러나 실제 혁명의 결과는 민중의 소외감과 억압을 해결하지 못했다. ‘기득권의 이익’이라는 덫을 피해 갈 수 없었기 때문이다. 자신들의 이상 실현을 위해 전쟁에 집착하고 민중을 학살한 ‘새로운 지배세력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민족을 앞세웠던 그들의 전체주의적 광기는 국민공회 종식과 함께 막을 내린 것일까. 그렇지 않았다. ‘강한 프랑스로써 자유의 궁극적 수호자가 되겠다’던 혁명 정부의 광신적 망령은 그 후로 내내 프랑스를 지배하는 중심 가치로 존재해왔다.
 
 혁명 정부 목표는 ‘중앙집권적 국민국가 강화’였다. 이후 나폴레옹은 ‘민중에 기반한 황제’로 인민주의 독재를 했으며 드골의 ‘권위적 포퓰리즘’ 역시 같은 정체성에서 탄생했다. 대부분 우파였던 제5공화국과 그 이전의 나폴레옹3세, 비시 정부, 제3공화국, 나머지 공화국들도 결은 같았다. 그들은 좌우에 상관없이 똑같이 ‘식민지 유지 정책’을 펼쳤으며 그것은 진보나 자유 정신과는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프랑스의 우경화와 퇴보를 가져왔다는 신자유주의는 좌파 미테랑 정권에서 도입되었으며 좌파 올랑드 정권 역시 대대적인 말리 폭격을 감행했었다.
   
 이러한 일관된 정체성은 프랑스 공화국의 목표가 ‘강력한 프랑스’에 맞춰져 있었기 때문이다. 그 실현을 위해 통치자들이 끌어들인 것은 ‘민족주의’였다. 혁명 정부부터 드골까지 프랑스가 일관되게 강조한 건 ‘인민에 의한 국가’였으며, 지도자는 늘 민중의 중심에서 강력한 구심점으로 존재했다. 이것은 루이 14세의 ‘콜베르티즘’으로 거슬러 올라가며 나폴레옹의 ‘보나파르티즘’과 불랑제의 ‘불랑제주의’ 드골의 ‘드골주의’까지 이어진 커다란 흐름이다. 주목해야 할 것은, 거기에는 철권통치와 함께 언제나 ‘절대 무력’이 있었다는 것이다.


'프랑스 공화국의 의인화'인 마리안느 흉상. 혁명기간 프랑스 전역에 뿌려졌으며 현재도 관공서에서 볼 수 있다
궁정화가가 그린 '황제'로 즉위한 나폴레옹 얼굴보다(좌) 실제 얼굴에 더 가까울 우수에 찬 표정, 그의 눈은 매우 슬퍼 보인다 (우)   


 실제 프랑스가 ‘영광스러운 시절’로 기억하는 시대는 모두 ‘강한 군대’가 있었다. 루이 14세는 72년 재위기간 중 31년을 영토 획득을 위한 침략 전쟁으로 보냈다. 그가 도입한 ‘징병제’는 중세 유럽 전쟁의 판세를 바꾸며 프랑스를 유럽 최대 군사 강국으로 올려놓았다. 5만명 이하로 치러지던 전쟁들은 대규모 프랑스군의 등장으로 연이어 프랑스에게 승리를 안겨주었다. 스페인 왕위계승 전쟁에서 프랑스는 무려 65만명의 병력이 있었다. 그러나 잦은 전쟁을 위한 세금 수탈과 전염병의 창궐로 민중은 고통을 겪었다. 베르사유궁 체제라는 초호화 사치 전략으로 대외적으로 ‘고급스럽고 아름다운 프랑스’를 뽐내던 르네상스 시절이었다.
 
 나폴레옹이 가져온 영광 역시 루이14세 방식과 같았다. 나폴레옹은 ‘전쟁의 신’으로 불렸으며 그의 무적의 군대 ‘대육군(Grande Armée)’은 프랑스 영토 확장에 기여했다. 군대를 개혁하고 새로운 병참술을 도입한 나폴레옹 군대의 결정적 힘 역시 ‘대규모 징집령’에 있었다. 경쟁국이 8만의 병력을 보유하고 있을 때 프랑스는 300만의 병력을 전쟁에 동원했다. 당시 프랑스 인구는 2500만 명이었다. 그는 많은 영토를 빼앗음으로써 ‘강력한 프랑스’를 이루었다. 명분은 ‘자유와 혁명의 전파’였다. 실제 혁명 정신이 담긴 ‘나폴레옹 법전’을 만들어 전파함으로써 유럽의 봉건제를 무너뜨리고 자유민주주의를 가져왔다. 그러나 전쟁으로 프랑스 인구 200만 명이 사망하였고 많은 유럽 국가의 민중들이 고통을 겪었다
 
 세계대전이 끝난 평화의 시대, 드골은 같은 방식을 취할 수 없었다. 대신 그는 식민지에 눈을 돌렸다. 프랑스의 오랜 식민지였던 베트남을 재 침략한 드골은 제1차 인도차이나 전쟁을 일으켰고, 대통령 재임시절 4년간은 알제리 독립을 저지하는 전쟁을 했다. 프랑스군의 잔혹한 만행과 학살로 알제리와 베트남 민중들은 극한의 고통을 겪었다. 그럼에도 프랑스에게 드골은 언제나 ‘파리를 해방시킨 영웅’이다. 식민지 주민들의 고통이 소외되어 있는 것이다. 이러한 프랑스인들의 망각은 ‘프랑스적 광기’를 키우는데 일조하였다.
 

왼쪽은 나폴레옹을 의도적으로 멋지게 미화한 작품이다. 의연한 얼굴이다. 그러나 실제 모습은 자주 오른쪽 얼굴일 확률이 높다
1944년 나치로부터 파리를 해방시킨 드골의 개선행진에 모인 인파 'Vive de Gaulle(드골 만세)' 플랭카드가 보인다. 샤를 드골


 공화국 개국 이래 ‘가장 위대한 제국’이라는 제3공화국의 노골적 행태들은 프랑스 공화국의 색깔을 선명하게 보여준다. 공격적인 문화 예술 정책으로 프랑스를 문화 대국으로 올려놓았던 시절, 공화주의자들이 주력했던 것은 군대 개혁과 신무기 개발이었다. 그들은 '군사적 진보를 위해' 학교를 통제했고 무상교육을 실시했다. 극우출신 불랑제 장군은 군대 복지 향상과 독일 공격 등의 ‘공격적 민족주의’로 ‘불랑제주의’라는 급좌파 대중운동까지 벌였다. 그러나 ‘민족주의’를 지지하는 프랑스 대중의 인식에는 심각한 결함이 있었다. 프랑스의 이익과 영향력 확대에는 열광했으나 침탈당한 상대국은 철저히 무시되는 것이 그것이다.
 
 제3공화국은 아프리카, 인도차이나, 폴리네시아 등을 침략하며 ‘거대한 식민 제국’을 거느렸었다. 아프리카와 아시아인들을 납치하여 파리 시민들이 동물처럼 관람하게 하는 '인간 동물원'을 기획하기도 했다. 그들의 최강 군대는 적극적인 식민지 정복과 수호에 사용되었고 그들의 풍요는 식민지로부터 착취한 부와 밀접한 관련이 있었다. 이것은 루이14세와 나폴레옹과 드골의 공통점이기도 했다. 가장 공격적인 식민 정책을 펼치고 악랄하게 수탈하고 잔혹하게 파괴했을 때 프랑스는, 가장 큰 영광과 번영을 이루었었다. 그러나 그 모든 파괴와 폭력은 ‘영광’이라는 열매 앞에 곧바로 자취를 감추었다. 집단 망각이라는 비겁함이다.
 
 그것은 프랑스의 최고 자산에도 그대로 적용되었다. 인류사의 가장 큰 진보의 이름인 프랑스 혁명이야말로 ‘프랑스식 민족주의’의 가장 큰 상징이자 가장 어두운 그림자였다. 자국민을 처참하게 억압하고 파괴하고 학살했을 때 프랑스는, 가장 큰 영광과 명예를 얻었다. 그것이 공화국의 방식, 무력으로 압도하고 승리를 쟁취하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모든 희생과 고통은 ‘자유와 평등의 수호자’라는 간판 앞에 말끔히 지워졌다. 학습된 망각이다.


1889년 제3공화국의 파리 '인간 동물원' 관람하는 파리 시민들. 아프리카인과 아시아인들을 납치해 동물원처럼 전시했다
인간동물원 포스터(좌) 1886년 파리 '인간동물원'에 전시되어 있는 부시맨들 배경으로 기념촬영하는 파리 시민들(우)
프랑스 식민지시절 '커피' 광고. 프랑스인들이 마시는 커피는 식민지의 플랜테이션 농장에서 왔다(좌) 프랑스의 식민지 개척 홍보 포스터 '번영과 문명' 간판을 들고 있다(우)


 빛나는 것을 얻기 위해 파괴하는 것. 그것은 자기학대며 깊은 열등감의 산물이다. 파괴는 원초적인 증오의 표현으로 결핍에서 오기 때문있다. 제대로 사랑받지 못한 것에 대한 분노다. 갖지 못했기에 갖고 싶고 초라했기에 빛나고 싶다. 그러나 ‘미숙한 자아’기에 늘 ‘타자’를 필요로 하고 언제나 ‘외부’를 향해 있다. 나를 빛나게 해줄 상대가 있어야만 행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극단적으로 ‘자기중심적’이며 높은 자기애를 보인다. 만족하지 못하기에 멈추지도 못한다. 무한한 ‘자기팽창’을 하는 이유다.
 
 루이14세와 나폴레옹과 루소와 로베스피에르의 공통점이 이것이었다. 이들 모두는 어린 시절 버려졌거나 학대받았던 불행한 유년시절을 보냈다. 루이 14세는 3살도 되기 전부터 아빠에게 폭력적인 학대를 받고 자라던 매우 불우한 유년시절을 보냈으며 5살이 되기 전에 왕에 즉위했다. 나폴레옹은 작은 키와 볼품없는 몸매를 가진 가난한 군인 출신이었다. 루소는 태어난 지 얼마 안돼 엄마가 죽었으며 어린 시절 아빠에게 버림받았다. 로베스피에르 역시 가난한 고아출신이다. 루소는 5명의 자식들 모두를 태어나자마자 고아원으로 보내기도 했다. 화려하게 빛나는 그들의 왕관은 '완벽한 갑옷'으로 결핍을 가리는 강력한 방어기제였다.


'로마의 신들'로 표현한 루이 14세 가족들을 그린 그림. 자신들을 '신격화' 시켜야 했을만큼 약한 자아를 가지고 있었다
'세상의 중심'이 되게 하는 화려하고 빛나는 왕관은, 그들의 결핍을 가려주는 '갑옷'으로 강력한 방어기제다. 나폴레옹과 루이14세


 그들은 모두 불행한 사람들이었다. 행복하지 못했기에 파괴했던 것이다. 결핍이 컸기에 끝없이 채워야 했다. 그들의 끝없는 영토 확장과 전쟁은 깊은 슬픔이 축적된 분노의 크기다. 사람의 결정적인 행동은 이성적 사고에서 나오는 것이 아닌 축적된 감정으로부터 오기 때문이다. 언제나 내가 중심이기에 타인의 고통에 둔감하고 공감하지 못한다. 온전히 혼자 서지 못하기에 '강력한 힘'을 빌어 마음을 기댄다. 그들은 국가와 민족을 내세웠지만, 실은 자신들 내면의 상처 받은 아이를 위해 끝없는 위로를 한 것이다.


 ‘강한 프랑스’ ‘위대한 프랑스’에 대한 집착은 강하지 못한 자의 강박으로부터 온 것이다. 진짜 강한 사람은 강해질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프랑스적 기준의 세계화’ ‘프랑스적 가치의 전파’는 ‘자기 팽창’의 광기이다. 극단적인 자기중심성이기 때문이다. 그 출발에 불행한 마음이 있기에 모두를 불행하게 한다. 그들은 다른 선택을 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렇지 않았다. 프랑스의 영광이 아름다워 보이지 않는 이유다.
 
 행복한 사람은 타인을 공격하지 않는다. 상대를 깎아내림으로써 빛나려고도 하지 않는다. 스스로 충만하기 때문이다. 프랑스가 지금이라도 스스로를 사랑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본글과 연결된 필자의 다른 글





* 참고 자료 : 구강기 인격의 퇴행 특징 http://asq.kr/AT8ybJt40lNl, "이성의 권위가 유럽사회에 억압성을 가져왔다" 미셸 푸코 http://asq.kr/jGSEHjqcD5aR, <왜 프랑스인들은 행복하지 않은가> 클로이다 세닉 교수 진단 "프랑스인들은 비관적이며 프랑스는 불행한 사회다" http://asq.kr/wrmpBv53KEUl (한국어 번역 http://asq.kr/1TxJOAnrStyo), <상처 받은 내면 아이 치유> 존 브래드쇼 "사람들이 어린 시절에 해결하지 못했던 슬픔' 합리주의 비판 http://asq.kr/xs6ehzZkUMd9, 루이14세, 불행한 유년시절 http://asq.kr/613az9yGXRuAn, 루소, 부모에게 버려지다 http://asq.kr/lUvo5dYB, 나폴레옹의 열등감 http://asq.kr/tLDMDonOvTATW, 루소 동력은 '자기애' 김우창 교수 https://url.kr/vhpSiC, 루소, 최악의 가장 http://asq.kr/HOihLCY9qyNdE, 로베스피에르, 고아출신 http://asq.kr/G93KI6OF4dW2r, 파리 '인간 동물원' http://asq.kr/GWeSmpdoV61e3, http://bitly.kr/sgXfOSAIFXW, 인간 동물원 한국 기사 http://asq.kr/Go1jiR44h8eiw, 강철구 교수 <식민지 왜 지금까지도 문제인가> http://bitly.kr/fL3fWRgAOWt, <식민지 경제적 착취> http://bitly.kr/DS2EOCaDUfc, 나폴레옹 위키피디아 http://asq.kr/hZ8jnXeGofmb, 프랑스 제3공화국 http://asq.kr/3bG0mTYI1Vye (번역 http://asq.kr/mfflkqnot0ER), 불랑제 장군 http://asq.kr/1QjKgjnAd3eW, 로베스피에르 나무위키 http://asq.kr/3XEAPYN6hOtfZ, 샤를드골 "구세주 콤플렉스" http://asq.kr/tUqMobOSYESKo, 자코뱅 위키백과 http://asq.kr/FG0ZMnRuDFoD




매거진의 이전글 르완다 내전 100만 학살 배후, 프랑스는 어디있는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