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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산책 Aug 08. 2019

프랑스 가족들,  '돼지갈비' 마법에 걸리다.


 여름이면 프랑스 시댁 가족들은 시골에 있는 '가족별장'에 모여 다 함께 일주일간 휴가를 보낸다.
 형제가 많다 보니 아이들까지 모이면 대가족이 되는지라 밥때마다 그 많은 양을 준비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지만, 요리하는 걸 좋아하시는 어머님에겐 그것이 또 '큰 즐거움'이었기에 옆에서 다함께 거들면 큰 일도 아니었다.
 
 물론 일주일을 매 끼 '한식'으로 먹는다면 말은 달라졌을 것이다. 한식만큼 손이 많이 가는 음식도 없기에. 그러나 여기 음식들은 웬만하면 조리과정이 간단하기에 그게 가능하게 된다.
 
 일단 손이 가장 많이 가는 '채소 손질'부터 시간을 엄청 단축할 수 있다. 채소를 다양하게 먹지도 않을뿐더러 매 끼에 필요한 채소는 언제나 간단한 한 두 가지면 족하기 때문에. 
 
 우리처럼 말린 나물을 물에 불려 삶기를 하나, 콩나물을 다듬기를 하나, 고구마순 껍질을 벗기기를 하나, 열무잎을 다듬기를 하나. 그저 당근 양파 호박 감자 쓱쓱 씻어 큼지막하게 썬 다음, 메인 요리인 고기 덩어리 한쪽 옆에 듬성듬성 넣어주고, 소금 후추 버터 허브들 살짝 뿌려 오븐에 넣으면 땡.
 
 고기 요리 또한 마찬가지다. 거의 대부분의 고기 요리들을 미리 만든 '수제 양념'으로 '재워놓은 후' 조리하는 우리 음식과는 달리, 여기는 양념이나 소스 자체가 그다지 발달하지 않았기 때문에 기껏해야 토마토소스, 크림소스, 치즈, 아니면 역시나 또 소금 후추 버터 허브 그리고 오븐에 뚝딱.
 
 물론 우리네 '갈비찜'이나 '갈비탕' 비슷한 요리들이 있기는 하다. 그러나 그것 역시 우리처럼 미리 몇 시간씩 '핏물'을 뺀다거나 '잡내'를 제거하기 위해 데친 다음 새물을 부어 끓인다거나 하는 과정 같은 건 없다. 갈비찜과 비슷한 요리의 소스래봐야 '적포도주'를 넣어 '포도주 끓인 맛'으로 승부하는 거랄까.
 
 그만큼 '미식의 나라'라는 여기 음식을 접할수록, 오히려 나는 '한식의 위대함'을 상대적으로 늘 체감하며 살았었다. 
  

시어머니와 시누이는 김밥 만드는 것을 배워갔다 (사진: 호바라기 푸드스토리)


 다양한 채소는 기본으로 준비되어야 하며, 고기를 준비하는 과정부터 온갖 양념이 정성스레 만들어져야 하고, 조리방법 또한 '오븐 땡'이 아닌, 삶기, 찌기, 데치기, 굽기, 끓이기, 무치기 등으로 매우 버라이어티 하게, 그렇게 '깊은 풍미'가 들어가야 비로소 '한 상'이 차려지는 우리네 밥상이.

 다행히도 시댁 가족들은 모두 한국 음식을 좋아한다. 물론 김치나 매운 양념이 들어간 것은 일부 '마니아층'이 먹는 특별음식이라 예외지만, 간장과 참기름을 베이스로 한 음식들은 모두가 손쉽게 먹을 수 있는 것이기에 조카들인 아이들도 곧잘 먹는다.
 그렇게 시댁 가족들과 오래 시간을 보낼 때마다 가끔 한식을 해서 함께 먹고 했다. 실은 내가 먹고 싶어 시작한 것도 있지만 그때마다 가족들 반응이 가히 '폭발적'이어서 매번 기쁘게 한 끼를 준비할 수 있었다.
 
 처음엔 김밥을 했고 그다음엔 잡채를 했고 비빔밥과 볶음밥을 부침개를 비빔메밀국수를 했다. 매번 한국 음식의 '장기'인 오색빛깔 채소 투하는 기본. 음식을 내놓을 때마다 가족들은 언제나 눈을 똥그랗게 뜬 채로 온갖 감탄사를 연발하였는데, 일단 '다양한 채소'가 매우 정교하게 또는 매우 작은 덩어리로 또는 매우 가는 채썰기로 '색색깔 준비되어있는' 자체를 아주 놀라워했다.
 
 아니, 김밥 볶음밥 비빔국수는 우리나라에선 그냥 '분식'인데? 저 정도에 놀라워하다니? '진짜 요리'를 해주면 그땐 어쩌려고?
   
 어느 여름 나는 '한국식 바베큐'를 준비해 가겠다고 했다. '스테이크'에 대적할만한 '한국 고기의 극강 파워'를 보여주리라는 일말의 마음도 있었다. 더구나 제대로 된 '막강 레시피'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야심 차게 특제 양념을 만들어 가족별장에 도착했다.
 
 신선한 목살 덩어리들에 준비해 간 양념을 듬뿍 발라 하루 동안 재워놓은 후 잘 숙성된 고기를 정원 한쪽에서 장작불에 굽기 시작하였다. 고기 굽기는 남자들의 몫. 지글지글 맛깔나게 익어가는 냄새와 자욱한 연기가 피어올랐다. 제대로 된 '숯불 돼지갈비'가 탄생할 참이었다.
 막판에 듬성듬성 썰어 다시 한번 휘리릭 구워준 후 드디어 접시에 담아진 고기. 조청을 양껏 넣었기에 윤기가 좌르르 흐르던 고기는 보기만 해도 먹음직스러웠다. 그리고 드디어 식사 시작!
   

프랑스 가족들에겐 '마법의 음식' 돼지갈비 (사진: 도감푸드)


  한 입씩 먹어본 조카들이 저마다 탄성을 내지른다. "완전 맛있어!"  
 그리곤 서로 경쟁이라도 하듯 고기를 덥석 덥석 집어 접시에 가져다 놓는다. 시누이들도 시부모님도 모두 눈을 똥그랗게 뜨며 감탄사를 연발한다. "최고야. 고기가 어쩜 이렇게 부드럽지? 무슨 마법을 부린 거야?"  
 그때 갑자기 두 시누이가 자기 아들과 딸 접시를 보며 말을 잇지 못한다. 그도 그럴 것이, '고기를 안 먹는 아이들'이었던 조카들 접시에 '돼지갈비' 덩어리가 수북이 쌓여있는 것이 아닌가!
  
 시누이들 뿐만 아니라 시어머니까지 모두가 놀랬다. 아무리 먹이려 해도 거부하여서 '고기를 못 먹이던' 아이들이었다. '고기만 먹는 집'에서 고기를 생전 안 먹어 온 가족을 걱정시키던 아이들이었건만. 시누이는 그 순간 처음으로 '낯선 광경'을 목격한 것이었다. "진짜 마법 맞네" 모두가 웃으며 말했다.  
 
 그렇게 그 조카들은 그날 '채식주의자가 아니었음'을 증명하였고, '한국식 돼지갈비'는 막강 파워를 지나 단번에 '마법의 음식'으로 등극하는 아우라를 뽐내었다.
  
 식사가 끝난 후 시누이는 바로 내게서 레시피를 받아 갔다. 조청을 못 구할 테니 꿀로 대신하라고 전해주었다. 조청 맛을 따라갈 순 없겠지만 뭐 아쉬운 대로. 그 후로 시누이는 아들에게 고기를 먹이기 위해서라도 자주 돼지갈비를 해 먹었다고 들었다. 그럼, 이 천상의 맛이 어디 갈까. 평소에 고기를 즐기지 않는 나도 야들야들 입에서 녹는 고기가 그렇게 꿀맛인데.
 
 올여름도 어김없이 가족별장에 온 가족이 모였고 왁자지껄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그리고 어제, '마법의 음식' 돼지갈비를 오랜만에 해 먹었다.
 
 중학생인 프랑스 조카가 엄지척을 하며 내게 말했다. "한국 음식은 완벽해!"

 나도 속으로 말했다. '니가 뭘 좀 아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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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메인사진 : 가평 상호네 숯불돼지갈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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