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무산책 Sep 15. 2019

남프랑스로 날아간 순대볶음

눈물의 순대볶음 그리고 김치냉장고


 일주일째 눈병이라  앞이 흐릿하다. 추석이라는데 몸살 기운이 가시지 않아 추석 기분은 내지 못했다.   내보려 어제 삼계탕도  먹었으니 오늘은 그냥 채소볶음에 계란국 그리고 냉동만두다. 송편  먹을 엄두는  내고 냉동실에 모셔놓았던 인절미를 꺼냈다. 콩고물이 수북이 떨어지는 떡을   넣은 아이가 눈을 똥그랗게 뜬다. ".... 행복해"  녀석. 맛있는  알아가지고.  
 
 그래. 지난 주말 순대볶음도 먹었으니 그걸로 퉁치기로 하자. 몸이  좋을  대충 먹는 것도 미덕이지. 식탁 옆에 새로 들여놓은 김치냉장고에 자꾸 눈이 간다.  희고 고운 자태는 아무리 봐도 곱기만 하다. 프랑스 생활 10 만에 처음으로 장만한 김치냉장고. 한국서 건너  꿈에 그리던 보물상자? 모시러 우리는 지난 주말 남프랑스에 갔었다.
 
 한국에 살고 있던 친한 동생네가 지난  프랑스에 살러 왔었다. 한참 미세먼지가 극에 달해있던 겨울, 어린  아이가 있던 동생은 갑자기 연락을 해와서는 "애들 밖에서  놀게  주려고요" 하더니    대부분이 파란 하늘인 남프랑스를 선택해서 덜컥 와버렸다. 마음으로 많이 아끼던 동생이었으나 무심한 성격 어디  가고 오래 연락을 하지 못했던 동생이었다.
 
 컴퓨터 프로그래머인 친구는 한국에서도 외국계 회사를 다니고 있었는데 영어로 일하기로 하고 프랑스 회사에 취직을 하였다고 했다. 연봉이 두둑한  보니 프랑스에서 '모셔 ' 케이스에 가까웠다. 하지만 나는 사실 많이 걱정이 되었었다. 아내는 물론 본인도 불어  마디 못하는 상황에서 프랑스에 덜컥 온다는 것이.
 
 그리고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참혹한? 상황을 맞이하고 있던 친구네 사정 때문에 얼마나 속이 상했었는지. 연봉을 많이 주면 뭐하나. 어린아이가  씩이나 있는 가장을 스카우트 해왔으면 회사에서 빨리 집을 구해주는  도리가 아닐까.  친구네는 프랑스에   4개월 만에 집을 구해서 불과   전에 이사를 했다.  안에 회사에서 구해준 에어비앤비에 문제들이 많아  6번을 옮겼다. 5 말에 한국서 도착한 컨테이너는   넘게 항구에 정박해 있었다.  
 

언제나 진리의 맛. 전전전! (사진: 머리쥐나)


 쾌적하고 편한 서울 집 놔두고 졸지에 난민 신세가 돼버린 친구의 아내는 프랑스에 온 지 두 달 만에 한국에 돌아가고 싶다고 했다고 한다. 나라도 그랬을 것이다. 40도가 넘는 폭염이 지속되었던 올여름, 5살 2살 아이들 데리고 난민처럼 떠다니며 친구는 얼마나 마음이 아팠을까.
 
 회사에 외국인 동료를 담당하는 매니저가 있긴 했다. 하지만 그 동료는 이 친구의 입장이 되어 적극적으로 집을 구하지 않았었다. 프랑스의 업무 시스템이 '이메일 주고받기'다 보니 부동산에 이메일 보내 놓고 답장이 올 때까지 기다리고만 있더라고 했다. 컨테이너가 곧 도착할 상황에서 보다 못한 친구는 내게 부동산들에 전화해줄 것을 부탁했고 불어를 못하는 친구를 위해 내가 부동산에 전화만 100통 했던 거 같다. 그렇게 연결되어 계약하기로 했던 집만 6개. 하지만 모두 '퇴짜' 맞고 지난 8월 초에 겨우 집 하나를 회사 사장의 보증으로 구했다고 했다.
 
 프랑스 온 지 일주일 만에, 한국 음식이 너무 그립다며 슬픈 목소리로 전화했었던 친구. 그 친구네를 프랑스에 온 지 5개월 만에 처음으로 보러 갔다. 한국식품점에서 바리바리 장바구니를 한가득 채워서.

 "자, 순대!" 친구네를 위해 한국 슈퍼에서 사 온 '비장의 선물' 냉동찹쌀순대를 꺼냈다. 한국 슈퍼가 없으니 순대만 세 개, 애들 김밥 해 먹이라고 단무지, 삼계탕 재료, 친구가 부탁한 둥지냉면, 부침가루, 튀김가루, 찹쌀가루, 말린 나물들, 외할머니 쑥떡, 깻잎장아찌, 무장아찌... 애들 선물로 뻥튀기를 몇 개 사 왔다. 밝은 아내 분 얼굴이 한층 더 밝아졌다.
 
 집 앞 큰 슈퍼에 함께 가서 장 볼 때 유용한 식재료들도 종류별로 알려주고 우리 입 맛에 맞는 육가공품과 소시지 치즈들을 직접 보여주며 몇 개를 함께 사 오기도 하였다. 그리고 드디어 저녁 시간. 아내 분이 준비해놓은 채소들과 해물파전 무쌈말이 등과 함께 등장한 순대볶음! 친구는 한 잎 먹더니 이내 아련한 눈빛으로 말했다. "아.... 진짜 눈물 난다"  
  

향수를 자극하는 위대함. 순대볶음 (사진: 까똘라에니야마)


 "여기 한국 동료들 얘기 들어보니 한국 음식이 너무 그리워 못 견딜 때는 유튜브 들어가서 '먹방 방송'을 몇 시간이고 본대요. 그러면 그나마 위로가 된다고"  "어머. 나만 그런 게 아니었구나? 하하하" 그렇게 우리는 원 없이 먹고 또 먹었다. 눈물의 순대볶음을.
 
 "내가 이 얘기는 집 구하고 나면 하려고 안 했었는데, 너네가 집을 계속 퇴짜 맞았던 이유가 사실 있었을 거야. 어린애들 딸린 동양인 이어서" "알고 있었어요. 그런 거 같더라고요" "내가 너무 속상해서... 너네가 고생할 운이었나보다 해. 그리고 계약 끝나면 다른 데로 가" "안 그래도 지금 다른데 알아보고 있어요. 저 장 보러 가면 거스름돈도 못 받을 뻔하고 그래요. 말을 못 해서" "그래. 잘 생각했어"
 
 이 친구도 아내 분도 한국에서라면 누구에게나 대접받을 사람들이었다. 똑똑하고 인상 좋고 인성 훌륭하고... 그런 친구들이 이 타지에서 이런 대접을 받으며 고생하고 있는 모습을 봐야한다는 건 참 마음 아픈 일이다. "왜 우리는 이렇게 '난민 신세'로 살아야 하는 거니?" "한국에 살아도 난민인데요 뭐. 전세난민" 그러고보니 그렇네.
 
 "집에 놀러 와. 김치냉장고에 김치 넣어놓을게"  
 "곧 갈게요" "뭐 제일 먹고 싶어? 다 해줄게"  
 "감자탕도 돼요?"  "하면 되지!"  "콜! 바로 갑니다!"
 "오기만 해. 감자탕 해줄게. 덕분에 나도 좀 먹자!"

 그렇게 우리는 즐거운 '감자탕 해후'를 기약하며 작별인사를 했다. 친구 컨테이너에 실려왔던 김치냉장고와 쿠쿠밥솥이라는 보물상자를 안고서.    
 
 

작가의 이전글 프랑스 가족들, '돼지갈비' 마법에 걸리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