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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츠신의 『삼체 2: 암흑의 숲』을 읽고

우주-외계 하드 SF의 시대착오적이면서도 극단적인 걸작

『삼체 1: 삼체 문제』 리뷰


외계 문명에 대한 시대착오적인 태도

SF 노벨상이라는 휴고상 2015년 수상작은 바로 류츠신의 『삼체』이다. 그런데 사실, 이 상은 『삼체 1권인 「삼체 문제」에만 수여된 것이다. 『삼체』 1권의 영문 번역판은 2014년 출간되었고, 2015년 휴고상이 수상된 후에 바로 『삼체』의 2권이 출간되었으니, 2016년 휴고상 심사위원들도 2년 연속 같은 시리즈물에 상을 주기는 조금 부담스러웠을 것이다. 『삼체』 2권이야말로 삼체 시리즈의 최고작임에도 말이다.


그렇다. 나는 2권 「암흑의 숲」이야말로 『삼체』 시리즈의 걸작이자 정수라고 생각한다.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내 의견 그렇다.) 1권은 2권의 이야기를 전개시켜 나가기 위한 배경이자 장치였을 뿐, 1권의 주인공은 훼이크 주인공이었고, 외계인과 조우하지도 않으며, 인류가 멸망하지도 않는다. 그렇다. 2권에 이 모든 것들을 감상할 수 있다. 2권의 주인공은 플롯 내내 농땡이도 치고, 삽질도 하고, 좌절을 겪다가 결국 외계인과 조우하고 인류의 멸망 직전을 목격 후, 주인공답게 모두를 구한다.

 刘慈欣 - 黑暗森林

1권의 리뷰에서 밝혔듯 류츠신의 『삼체』시리즈는 시대착오적인 외계 조우물이다. 21세기인데 1960~80년대 아이작 아시모프의 『파운데이션』 시리즈나 스티븐 스필버그의 『미지와의 조우』 같은 외계인과의 조우와 우주 전쟁에 대해 그리다니. 주인공 뤄지가 창제했다고 하는 '우주사회학'이란 학문은 아이작 아시모프 『파운데이션』 시리즈의에 나오는 '심리역사학'의 아류처럼 들린다. 외계인과의 전파 통신에 대한 아이디어는 지금은 한물 간 연구 프로젝트인 '세티 프로젝트'를 가동시킨 칼 세이건 시대 천문학의 영향이다. 서양의 물질문화 대신 동양적인 정신문화가 세계를 구하는 결말이나, 인간이 '사랑'이라는 특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무언가 다르다는 마지막 언급도 유치하고 진부하다. 이것은 분명히 작가가 서방의 최신 문화 조류와 괴리된 채 과거의 명작들에만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리라고 짐작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2권을 시리즈 최고작이자 걸작이라고 하는 이유는 바로 칼 세이건식 낙관적 외계인의 영향을 받았고, 거기서부터 출발했음에도 결국 그 조류의 근본에 대해 변증법적으로 부정했기 때문이다. 잠시  세이건과 보다 더 이전의 SF에 대해 살펴보자. 무려 19세기 말의 작품인 허버트 조지 웰즈의 『우주전쟁』은 외계인과의 외계 전쟁을 그리는 전쟁물이었다. 이런 전쟁물이 1950년대까지 범람했는데, 이 시대가 바로 펄프 픽션의 시대이다. 그 시절 젊은이였던 칼 세이건이나 스티븐 스필버그는 유치뽕짝한 외계인과의 전쟁 서사에 지친 나머지, '외계인은 우리보다 고등한 존재고 고등 문명이 전쟁을 바랄 리 없다!'는 낙관적 이념을 남몰래 꿈꿨다.


그렇게 낙관적 외계인론이 등장했다. 칼 세이건전파를 발사하거나 골든 레코드에 지구에 대한 정보를 실어 외계로 발사해 외계인에게 우리의 존재를 알리려는 행위를 하곤 했는데 이건 외계 문명이 언제나 우리보다 고등하며 그 발달된 문명은 언제나 평화를 바랄 것이라는 안일하고 유치한 생각에 기초해 있다. 그러나 이런 낙관적이고 발랄한 행위들이 얼마나 위험한 짓인지에 대해 아무도 평가를 내리지 못했다. 외계인은 평화의 사도인가? 전쟁광인가? 그 때도 몰랐고 지금도 사실 잘 모른다. 그래도 그들이 전쟁광이라는 가능성이 아주 조금이라도 있다면 그런 행위는 하지 말아야 했다. 실제로 그들이 평화의 사도가 아니고 전쟁광일 가능성은 완전히 0일 리가 없다. 류츠신은 작품 내에서 직접적으로 낙관주의 사조에 비판을 가한다.


"그런데 그 암흑의 숲에는 인류라는 바보 아이가 있었어요. 옆에 모닥불을 피워놓고 엉엉 울며 외쳤죠. '나 여기 있어요! 나 여기 있다고요!'"


그렇다면 류츠신의 『삼체』는 부정의 부정을 통해 과거의 유치뽕짝 전쟁물로 회귀한 것이란 말인가? 그렇지 않다. 정반합을 통해 역사가 발전하듯, 류츠신도 칼 세이건 식 낙관적 외계인론을 철저히 비판하면서 동시에 전쟁 서사에도 지적인 유희를 마련해 둔다. 특히 외계인과의 전쟁 장면은 하드 SF가 그릴 수 있는 쾌감의 극단이다.




가속도 묘사에 부여된 힘의 차이

『스타 워즈』 류의 스페이스 오페라를 유치하다고 보는 하드 SF 설정덕들이 항상 지적하는 문제 중의 하나가, 바로 '우주에서는 소리가 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스타 워즈는 우주 전함이나 전투기가 포를 쏠 때 항상 '삐용삐용' 소리가 난다. 그러나 설정덕들에 따르면, 우주 공간에는 매질인 공기가 없기 때문에 소리가 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 감독들에게 이 설정은 독이 든 성배이다. 과학적 고증을 만족시킨다고 레이저포 쏘는데 무음처리를 한다면, 영화의 박진감이 죽어버리고 말지 않겠는가?


최근 들어, '우주에서는 소리가 나지 않는다'는 설정을 살리면서도 영화적 긴장감을 놓치지 않은 영화들이 등장했다. '그래비티'나 '인터스텔라' 같은 영화들이 그렇다. 특히 '그래비티'에서는 공간상으로 다른 소리는 전혀 전해지지 않음에도 기계팔과 우주복으로 전해지는 둔탁한 저주파음은 전해지도록 하거나, 우주선 안에 공기가 서서히 차오르면 소리도 같이 커지는 식으로 과학적 고증과 영화적 긴장감을 같이 잡았다.


과학적 고증을 충실히 지키는 데에 오히려 재미에 도움되는 경우가 있단 말인가? 그렇다. 류츠신이 『삼체』에서 선보인 과학적 고증은 '가속도'다. 어떤 우주 SF도 이렇게까지 가속도에 대한 철저한 고증 집착을 보인 작품이 없었다. 『스타 워즈』 에서는 '하이퍼스페이스'로 초광속 가속을 하는데, 별들이 가로로 주욱 늘어나는데 우주선 안의 인간들은 아무 것도 느끼지 못한다. 인물은 아무렇지도 않게 커피 한잔을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삼체에서 극한의 가속도를 받았을 때 인간의 신체가 어떻게 변형되는지에 대해 징그러울 정도로 실감나게 묘사를 해 놨다. 인간의 신체는 가로로 늘어나지 않고, 오히려 가로로 납작해진다. 그래서 지구 함대는 급격한 가속을 맘대로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언제나 '숨쉬는 물속' 명령을 발동해 모든 인원이 물 속에 들어가야 한다.


『삼체』2권에서는 아래와 같이 '가속도' 묘사에 집중하고 있는 많은 장면이 있다.

삼체 함대는 가속기와 순항기를 지나 15년 전부터 차례로 감속을 시작했으며, 10년 전부터는 거의 모든 전함이 감속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런데 적어도 한 대는 아직 감속기로 돌입하지 않았음이 확인된 것이다. 현재의 가속률로 보면 함대보다 약 50년 일찍 태양계에 도착할 것으로 추측되었다.
자연선택호의 속력을 광속의 100분의 1까지 끌어올리느라 핵융합 연료가 절반 넘게 소모되었다. 이제 자력으로는 태양계로 돌아갈 수가 없었다.


삼체의 외계 탐측선은 예각을 이루는 방향전환을 보여준다. 여기서 등장인물들과 심지어 컴퓨터마저 이 방향전환이 '불가능한 움직임'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작은 외계 탐측선은 지구 함대 대부분을 혼자서 박살낸다. 뉴턴의 운동 법칙에 따르면 가속도는 힘에 비례하기 때문에, '말도 안되는 가속도'라는 건 지구 문명이 도달하지 못한 삼체 문명이 가진 '힘'에 대한 상징이다. 아니, 상징이 아니고 진짜로 그들의 힘과 과학기술력을 나타내는 것이다.


우리는 지구가 외계 문명을 이기는 모습을 보고 싶지만, 외계 문명을 완벽하게 개발살 내버리는 싱거운 모습은 별로 보고 싶지 않다. 오히려 인간이 한 번은 개발살이 나고 그 후에 역전해야 재미가 있다. 삼체 문명의 우월함을 극명히 보여주는 '가속도와 힘'을 극도로 정밀하게 묘사하면서, 그것을 토대로 우리는 지구 문명이 역으로 개발살나는 모습을 잠시라도 감상한다. 너무나 즐거운 경험이다.




그리고 결국 주인공이 승리한다는 것 (스포일러 주의)

그러나 무엇보다도 이 소설의 걸작으로서의 가치는 '가속도' 같은 이과스러운 설정보다는, 주인공의 역경과 고난, 그리고 최후의 승리를 흥미진진하게 그려냈다는 데에 있을 것이다. 지구문명은 삼체인들이 타인의 숨겨진 의도를 잘 파악하지 못한다는 특성을 역이용하기 위해, '면벽자 프로젝트'를 가동시킨다. 주인공 뤄지는 전지구적인 선발을 통해 면벽자 4인방 중 한 명으로 선정되는데, 선발 당시엔 왜 자신이 그런 막중한 책임과 권한을 가지는 위치에 선정되었는지 모른다. 그는 그 막강한 권력을 이용해 놀고 먹으며 온갖 진상짓을 벌인다. 그리고 결국 무엇인가 깨달았을 때도 '저주의 주문'을 우주공간에 발사시킨다던가 하는 의미 없어 보이는 삽질을 반복한다.


그러나 결국 드러난 사실은 삼체인이 가장 두려워했던 지구 인물이 바로 주인공 뤄지였다는 점이다. 뤄지는 과거의 삽질과 현재의 삽질 등에 모두 의미가 있다는 것을 지구인 모두에게 스스로 깨닫게 하고 삼체인과 최후의 담판을 벌인다. 물론 담판을 벌이기 전에, 우리는 나머지 면벽자 3인들의 기상천외한 실패담, 미래 지구 문명의 위대한 발전, 그리고 그 위대한 문명의 함대가 완전히 개발살 나버리는 장면들을 차례로 감상한다. 작가가 우리를 완전히 들었다 놨다 하면서 결말이 승리일지 패배일지 오락가락할 무렵, 주인공이 지금껏 해 왔던 삽질로 보였던 빌드업을 통해 인류 전체를 구원한다. 그렇다. 이 왕도적인 서사는 킹정이다. 『삼체』 1권의 페이크 주인공은 2권에서 잠적해 죽었는지 살았는지 소식도 찾을 수 없지만, 『삼체』 2권의 주인공 뤄지는 진짜로 자신의 할 일을 다하고 『삼체』 3권의 스토리에까지 영향력을 행사하게 되는 진정한 주인공인 것이다.


『삼체 3: 사신의 영생』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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