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24시간 독방체험 프로젝트 참가 후기
-행복공장 릴레이 성찰 프로젝트
2017.5.20-21 이틀에 걸쳐 나는 1.5평의 감옥에 스스로 걸어 들어갔다.
오후 2시부터 다음날 아침9시45분까지 독방에 갇힌 채 홀로 시간을 보내는 것이다.
그곳에서는 일을 하거나 책을 읽거나 휴대전화를 하는 이외의 것을 할 수 있다.
이를테면, 잠을 자거나 글을 쓰거나 편지를 쓰거나 일기를 쓰거나 낙서를 하거나 간단한 그림을 그리거나 요가나 명상, 절 체조 등의 맨손 운동을 하거나 전용 화장실을 이용할 수 있고 멍하니 앉아 창밖을 온종일 내다보며 멍때리기를 해도 된다.
우연히 텔레비전을 보다가 알게 된 독방체험.
정확히 말하자면 행복공장 http://happitory.org/ 릴레이 성찰 프로젝트.
그 취지를 알게 되자 꼭 가야 할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주저없이 신청서를 보냈다. 나 자신뿐 아니라 남편에게도 꼭 필요한 곳이라는 생각에 남편과 함께 참가하기로 했다. 그러나 그것은 일단 비밀로 하고...약 2주전에 언제 어딘가로 가야 한다고는 알렸으나 정확한 내용은 알리지 않았다.
남편은 무척 궁금해했고 이리저리 쑤셔보더니 거의 비슷하게 짐작을 해내기도 했다. 그럼에도 나는 20일 오전 홍천에 도착할 때까지 충분히 알려주지 않았다.
그것은 매일 수고하는 남편에게 진정한 휴식의 시간을 선물하고 싶은 때문이기도 했고 놀라게 해주려는 생각때문이기도 했다.
오후 2시. 십여명의 다른 참가자들과 함께 오리엔테이션을 거쳐 독방에 들어갔다.
실제 교도소의 독방은 0.8평이라는데 그에 비하면 이곳은 궁궐이나 마찬가지이다.
깔끔하고 단정하며, 커다란 창문도 있고 푹신한 침구와 요가매트, 차를 끓여마실 수 있는 전기포트와 다기도 있다.
다만 문을 밖에서 잠그고 배식구를 통해 식사를 넣어준다는 것, 그리고 한번 들어온 이상 정해진 시간까지는 마음대로 나갈 수 없다는 것이 진짜 감옥과 같은 점일 것이다.
내가 그곳에 가고자 했던 이유는, 어쩌면 단순했다.
일단 아무것도 하지 않는 하루가 필요했다. 단출한 가족 수의 살림이 뭐 그리 힘겹다고 그런 소릴하느냐 할 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언제부턴가 왠지 좀 지쳐가고 있었던 것같다. 왜 지쳤느냐고 또 묻는다면 글쎄...다.
그러나 나는 전반적으로 좀 힘이 들었고 아무것도 하지 않으며 아무것에도 신경쓰지 않는 시간이 필요했다. 필요한데 현실의 공간에서는그것이 쉽지 않았다. 집안에서 일어나는 많은 일들을 신경쓰고 참견해야 하고 쉴새없이 움직여야 한다. 물론 틈틈이 주저앉아 휴식을 취하기도 하지만 그 시간은 그리 길지 않게 마련이다.
하루 세번 뭐라도 먹어야 하니 그렇고, 게으르고 힘에 부쳐 일주일에 겨우 두번 정도 밖에 못하는 청소지만 그것도 더 줄일 수 없고, 며칠에 한 번씩은 빨래를 그것도 세탁기가 하지만 세탁기에 넣거나 꺼내거나 털어 널고 마르면 걷어다가 수십번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마른 빨래를 고이 접어넣는 일도 엄청난 일이다.
또 귀염둥이 뤼팽이의 산책과 두끼 밥과 약 먹이기, 하루중 틈틈이 주어져야 할 다양한 간식들을 챙겨야 하고 주3회 아침 6시면 엄마와 함께 수영장에 가야 하며 아침을 먹지 않는 남편의 나머지 두끼 식사를 늘 잘 해주지는 못해도 (남편은 먹는것에 그리 신경쓰는 편이 아니라 메뉴 선정에 대한 스트레스는 없다)어쨌든 건너뛰게 할 수는 없으니 신경을 안 쓴다고해도 사실은 늘 신경 쓸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래서 가끔은 당연히 내가 해야 할 이 모든 일들이 힘에 겨울 때가 있다.
게다가 한두쪽짜리 잡글 혹은 몇달에 걸쳐 책 한두권 분량의 원고작성이라도 해야 할때면 그모든 삶에관한 일과들이 더욱 부담으로 덤벼온다. 그러다보니 문득, 뭐 하나가 힘들다,가 아니라 가끔은 살아가는 일 자체가 힘에 부치다는 생각이 들었다....그럴때 나는 주위사람들에게 가끔 묻는다. 아무것도 하기 싫을 때가 있는데 그게 이상한가? 놀랍게도, 당연하게 다들 그렇다고 대답한다.
매일 다람쥐쳇바퀴 돌리듯 똑같이 반복되는 일상이 가끔은 지겨울 때가 누구에게나 있게 마련이다. 나도 그렇고 매일 밤을 새워가며 일하는 남편도 가끔은 일이 지겨울 때가 있을 것이다. 자신은 좋아서 하는 일이라지만 밤을 새워 일해도 일이 늘 밀리기만 하면 차라리 도망가고 싶을 때도 있지 않겠나...다만 그는 가장이라는 의무와 책임감때문에 그런 소리를 쉽게 하지 못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나는 차라리 아무 부담없이 쉬고싶다고 복에 겨워 투정을 부리는 것은 아니었나...
정말 온전하고 알찬 휴식이 필요한 것은 남편일 것이라는 생각에, 그에게 진정한 휴식을 선물하기로 했다.
그리고 또 나에게도. 그 방에 들어가면 강제로라도 그렇게 할 수 있다니 꼭 가봐야했다.
그렇게 우리는 각자 자신만의 독방에 들어갔다.
그리고 다음날 다시 만난 참가자들은 모두 만족스러워하며 집으로 돌아갔다.
오후2시부터 다음날 오전 9시45분까지 20시간정도를 홀로 저 방안에서 뒹굴며 각자 많은 일들을 겪었을 것이다. 나의 경우, 총 11시간 정도 잠을 잤고 생각노트 비슷한,그곳에서 나누어준 공책에 적힌 항목대로 생각을 떠올려보며 적어내리기도 했다. 어떤 사람은 집나간 자아를 찾았다고도 하고...대부분 뒤돌아보지 못하고 앞만 보고 내달리느라 지치고 힘들었던 자신을 내려놓고 돌아보며 한숨고르기를 하는 시간들을 보냈다고 이야기한다.
이곳을 찾는 사람들은 특별한 정신병이 있거나 궁지에 몰린 사람들은 아닐 것이다. 나와 너처럼 평범하고 성실하게 자신의 몸이 지쳐가는 줄도 모르고 바쁘게 살아가는 특별할 것 없는 우리의 이웃들임에 틀림없다. 그러다 우연히 행복공장의 독방프로젝트 http://happitory.org/prison_intro를 알게 된 순간, 모두들 '그래 바로 저기야!'라고 외치며 달려온 사람들이다.
누구의 방해도 없이, 아무 것에도 구애받지 않으며 온전히 자신을 향해서만 관심과 집중이 가능한, 현실의 공간이지만 그러므로 더욱 비현실적인 독방에 들어가서야 진정한 자유를 찾은 사람들이다.
작은 문 안에 갇힘으로써 사고의 폭을 더욱 확장하고 과거를 더듬고 현재를 통해 좀더 나은 미래로의 확장을 꿈꾼다.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하거나 휴식이 필요할 때 누구나 한번쯤 경험해보면 적잖은 것을 얻을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다시 독방으로 들어가고 싶어진다면 나는 또 그만큼 지쳤다는 뜻이 될까.
그러면 다시 가고 싶지 않아야 다행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