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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저너리 Jun 17. 2019

[에세이53] 닭꼬치 열 개를 쌓을때까지

[지원의 크루에세이02] 당신의 삶에서 부유함의 기준은 무엇인가요?

혹시나 제목을 보고 닭꼬치 맛집 정보를 기대했다면 심심한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 이 글은 어디까지나 돈에 대한 이야기이고, 그 중에서도 언제나 주머니가 배고픈 당신과 나의 이야기이다.




8~9살 무렵 동네 문방구 오락기 앞은 두 부류로 나뉘었다. 오락기 위에 여분의 동전을 쌓아두고 앉아 게임을 하는 자들, 백원짜리 한 두 개가 아쉬 허리 숙인채 어깨너머로 바라만 보는 자들. 나는 두 부류를 왔다갔다 하였고, 가끔 여윳돈이 남아 떡꼬치라도 하나 입에 물고 오락을 할 수 있는 날이면 만족감으로 가득했던 시절이었다. 그러다 때로 오락 하고 싶은데 동전이 없으면 친구 녀석과 동네를 돌며 책가방에 빈 병을 모아 슈퍼마켓에 가져다 기도 하였다.(아직도 잊지 못하는 소주병 30원, 맥주병 70원) 


그러나 아무리 동네를 돌아도 그렇게 내 손에 쥐어지는건 300원을 넘기지 못했고 엄마에게 천 원짜리 지폐 한 장 받아 오는 날이면 병을 찾아 온동네를 다니던 노력들이 허무하게 느껴지기도 하였다. 그래 다. 그 때의 내가 지폐를 손에 쥘 수 있는 방법은 엄마라는 상위 차원의 존재가 개입해야 가능했다. 그랬던 내게 있어서 거의 1000원에 가까운 닭꼬치는 자주 먹을 수 있는 간식이 아니었고, 결국 내 손에 쥔 것은 여전히 300원짜리 떡꼬치였다. 그 때 나는 인생에서 처음으로 부유함의 기준을 떠올리게 되는데, 나중에 어른이 되면 닭꼬치가 먹고 싶은 날 고민 없이 10개를 한 번에 사서 접시에 쌓아놓고 먹을 수 있는 부자가 되겠다고 다짐하였. 이제와 생각해보면 당장이라도 이룰 수 있는 귀여운 규모지만 그 때의 내겐 그게 참 대단해보였다.



이후 중•고등학교에 다니면서는 빈 병으로 얻어낸 200원보다 400배 정도 더 큰 돈을 벌 수 있었다. 내가 다닌 학교는 급식시간동안 급식소에서 일을 하면 급식비를 면제해주곤 했는데 중학교 3학년 때 부터 고등학교 3학년 학기 초까지 일하며 많은 급식비를 아낄 수 있었다. 다른 친구들처럼 밥먹고 농구를 하러 간다거나 낮잠을 잘 수는 없었으나 그래도 나름 내 밥 값을 내가 벌었다는 보람을 느끼며 기분 좋게 일했던 것 같다. 이 때 급식비가 약 7~8만원 정도였으니 나에게는 큰 돈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부모님이나 장학금과 같은 상위 차원의 존재가 도와주지 않으면 학교를 계속 다니는 것조차 쉽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딱 한 번 분기 등록금을 제 때 납부하지 못한 적이 있었는데 납부를 재촉하는 통지서에 적힌 내용을 읽고 처음으로 상대적 관점에서 돈과 세상을 바라보게 된 것이다. 내 인생 첫번째 부의 기준은 닭꼬치 10개라는 절대적 기준으로 정량화되어 있었으나, 이미 닭꼬치를 20개 사먹을 돈을 내 손에 쥐고도 채우지 못하는 내 접시의 상대적 격차를 알게 된 후 부터는 부유함의 기준 변하게 되었다. 내가 벌 수 있는 돈의 양이 점점 커지는건 맞지만 그만큼 내가 필요로 하는 돈의 양 역시 자릿수가 늘어나며 커졌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내가 몇 개의 닭꼬치를 쥘 수 있게 되었는가가 아니라, 커져만가는 내 접시를 얼마나 채울 수 있는가에 있었다.


대학생이 되면서 청소년 시절의 내 수준과 멀게만 보였던 몇 십 만원의 분기 등록금은 어느새 혼자 충분히 채울 수 있는 수준이 되었지만, 이번엔 대학교 속에서 몇 백 만원의 대학 등록금을 마주해야 했다. 또다시 자릿수가 커지고 말았지만 크게 걱정하지는 않았고, 늘 그래왔듯 이것 역시 스스로 채울 수 있는 날이 올거라 생각하며 미래의 나에게 미루기로 했. 그리고 지금의 내가 그 미래의 나다. 지금의 나는 돈에 관심이 많이 생겼고 꾸준히 커져만가는 접시를 채 위해 차곡차곡 적금도 들고 투자도 하며 재테크 관련 책들도 읽고 있다. 그래도 부자라는게 너무 막연해서 부유함의 기준을 종종 고민해보곤 하는데 '돈이 많을수록 vs 돈이 적을수록'이라는 주제로 종이에 이것저것 적어보니 자유라는 단어가 눈에 띄었다.


내 부유함의 기준은 자유로움이다.


자유로움이라고 하면 마치 해적왕 같은 존재가 내세울 것 같은 단어지만 자유로운 선택권이 있다는 건 일상에 와닿을 큰 차이라고 생각한다. 선택권이 없다면 떡꼬치와 닭꼬치를 앞에 두고 내 선택과 상관없이 떡꼬치를 집어야 한.

 

하지만 나는 닭꼬치가 먹고 싶다.

(이건 아주 중요하다)


사실 닭꼬치는 비유일 뿐이지만 살다보면 수많은 선택이 있을텐데 그럴 때마다 포기해야 하는게 생기면 많이 아쉬울 것 같다. 꼭 거대한 재산을 가져야 하는 것도 아니다. 말그대로 하고 싶은 일 포기하지 않아도 되고, 내가 아끼는 사람들에게 주고싶은 선물 줄 수 있, 친구 축의금 앞에서 망설일 필요만 없다면 충분히 부유하다고 느끼며 행복 찾아다니 살 수 있 않을까?


그래 행복은 돈주고 사는거 아니라더라




비저너리의 크루 에세이 시즌 2부터는 비저너리 달력 뒤에 있는 그 달의 질문 중 하나를 골라한 주에 한 번, 월요일 아침, 크루들의 진솔한 답변으로 채워 나갑니다. :) 이 글을 보시는 여러분들도 바쁜 일상 속 생각에 잠기실 수 있도록 최근 한 달(4개)의 질문들을 공유합니다. 그리고 이번 한 주는 다음 질문 중 하나를 깊이 생각해보면서 어딘가에 답해 보는 시간을 갖는 건 어떨까요?



[우정]

•내 연락을 기다리는 사람이 있을까요?

[에세이50]퇴사하지 않기 위해 내가 하는 짓



[돈/소비]

•최근에 당신이 가장 뿌듯했던 소비는 무엇인가요?

[에세이51]요가 한 번 해보실래요?


한 달을 기준으로 했을 때 당신이 행복하다고 느끼는 삶을 위한 최소비용은 얼마인가요?

[에세이52]돈으로 모든 것을 살 수 있을 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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