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이영의 크루에세이 05] 행복한 삶을 사는데 드는 최소 비용은?
행복은 손쉽게 보이지 않지만, 부는 눈에 보인다. by 제이영
2015년 나는 과외를 시작했다. 지루한 학교 생활 말고 무언가 열중할 것이 필요했다. 과외가 2년차에 접어들자 그룹과외로 확장되었고, 학생신분에서 나는 꽤 많은 돈을 손에 넣을 수 있었다. 물 들어올떄 젓자고, 휴일도 없이 시간을 돈으로 환전했다. 나의 시간은 곧 돈이었다. 돈을 많이 버니까 돈으로 모든 것을 살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한회에 6만원하는 PT 20회를 쉽게 결제했다. 살을 손쉽게 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고, 친구와의 약속시간에 조금 늦은 시간대신 내가 밥값을 낼 수 있어서 '참 다행이야'고 생각했다. 자라에 가서 괜찮아 보이는 옷들도 고민없이 샀다. 외모도, 행복도, 건강 모두 돈으로 살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x값이 증가하면 y값도 증가하는 일차함수처럼, 돈을 많이 벌면 나의 행복도도 그에 비례해 증가할 것 같았다. 돈으로 누릴 수 있는것들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살을 뺴기 위해 피티 등록과, 30만원상당의 스쿼트머신을 고민없이 샀고, 다이어트 샐러드 도시락도 고민없이 주문했다. 학교에서 후배들을 보면 커피도 사줄수 있는, 남을 챙길 수 있는 여유도 생겼다. 늘어나는 통잔 잔고를 갖고, 뭐든 할수있다는 자신감도 생겼다. 미국으로 대학원을 가야겠다는 꿈도 생겼다. 본가에 갈때마다 엄마가 좋아하는 망고를 사갈 수 있어서 행복했다. 망고를 받아든 엄마가 환히 웃을것을 생각하니 내가 무언가를 소비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것에 감사했다.
16년도 7월 여름, 하던 과외들을 그만두었다. 애들 가르치는게 더 이상 재미가 없었다. 내 삶이 불만족스럽진 않은데 행복하지 않았다.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의 영화 대사처럼 아무것도 기대되지 않는 나의 삶이 지루했다. 그래서 스페인 산티아고로 떠났다. 그 길 위에서는 큰 꺠달음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았다. 40도가 넘는 더위 속에서, 내가 매일 했던 일은 하루종일 걷기였다. 목표는 하나 산티아고 도착! 걷기가 쉬운 것 같지만, 대략 10kg가 되는 배낭을 매고 50km를 걷는것은 만만치 않았다. 덕분에, 나에게는 새로운 빼기 습관이 생겼다. 자기 전에 숙소에서 필요하지 않은 물건들을 알베르게(숙소)에 기부하기였다. 멀쩡한 물건들이었지만 나에게 필요하지 않은 것들이었다. 매일 자기 전 단 한가지 질문만 하면 되었다. 내일도 내가 사용할 물건인가? 속옷과 양말은 2벌이면 충분했다. 샴푸 린스 큰 통 없이도 비누 하나로도 충분했다. 하루의 삶을 온전히 살아가는데 많은 것이 필요하지 않았다. 비워낼수록 나는 더 단단해지는 기분이었다. 산티아고에서 도착했을 때 큰 꺠달음을 얻지는 못했지만, 나는 대신 빼기의 습관이 생겼다.
돌아와서 일하지 않고, 하고싶은대로 살았다. 학교 졸업이 너무나 멀게 느껴져 이것저것 경험하기 시작했다. 가고싶은 곳이 있으면 가고, 경험하고 싶은것이 있으면 경험하고 좋은 날들이었다. 나는 그 당시 돈을 써야 무엇이든 빠르고, 제대로 배울 수 있을 것 같았다. 유명한 강의들을 찾아 다녔고, 흥미가 가는 책이 있으면 사서 읽었다. 갖고 싶은 것이 있으면 고민 없이 주문을 했다. 뺴기의 습관은 어느새 다시 더하기의 습관으로 변해 있었다(나는 이렇게 쉬운 사람이다). 산티아고 길에서 몸으로 꺠달은 것들은 이미 내 안에 없었다. 그리고 대학원을 준비하면서 계획했던 통장의 잔고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다행히 통잔잔고가 정말 0을 찍기 전에, 대학원으로부터 합격을 받았고, 보증금으로 전재산을 송금했다.(석사 학위가 직업을 보장해주지는 않지만 나는 간다. 나의 존재는 소유에 있지 않다고 믿고 싶다.)
보증금으로 송금을 하고 나니 정말 내가 쓸 수 있는 돈이 적어졌다. 줄어든 돈 액수만큼 나의 자신감도 줄어든 느낌이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은 참 중요하다. 돈이 없으면 한순간에 초라해질 수 있으며, 돈은 기본적인 생활을 영위할 수 있게 하는 것이 때문이다. 생활윤리 시간에 배웠던 맹자님의 말씀이 떠올랐다. '항산이 없으면 항심을 지키기 어렵다.' 일정 수준 이상의 재산이 있어야 마음을 지키고 살 수 있다는 진리의 말씀. 하지만 이는 기본적인 삶을 영위하는데 필요한 재산을 뜻하지 돈이 많아야함을 뜻하지 않는다.
이전에 비해 씀씀이를 줄여야하는 내 현실을 바탕으로, 나는 집 앞의 별다방을 가는 대신 동네 도서관에 가서 시간을 보낸다. 예전에는 읽고 싶었던 책이 있었다면 바로바로 사는 편이었는데, 요즘은 도서관에서 읽어보고 집에 두고 10번 이상 읽을 책이라는 결론이 나면 그떄 구매를 한다. 출퇴근할 떄 드는 교통비나, 핸드폰비, 세금 같은 고정지출은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영역이지만, 그 외에 것들은 내가 통제 가능한 영역이라는 가이드라인을 세웠다. 혼자 나가서 외식을 하는 대신, 부모님이 오시는 시간을 기다려 집밥을 같이 먹고,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을 보낸다. 요즘 핫하다는 에어프라이어를 사고싶은 적도 있었지만, 후라이팬이 있으니 불필요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부족함 속에서 가진것을 최대한 활용하려는 것, 정말 필요한 것인가 되묻는 삶을 살고 있다. 미니멀리즘에 관한 책을 한번도 읽지는 않았지만 이게 내가 생각하는 미니멀리즘이다. 불필요한 지출을 하기 전에, 내가 할 수 있는것인지 생각하고, 할 수 있도록 노력한다. 예전에 과외할 떄랑 비교하면, 지금 직장에서 받는 돈은 반도 안된다. 하지만 내 시간이 저당잡혀서 내시간이 없었을때보다, 나는 행복하고 풍요로운 삶을 살고 있다고 자부한다. 내가 소비를 해서 얻는 만족감보다, 내가 가진것을 바탕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지를 생각한다. 매월 초가 되면 나는 더 많이 벌고, 저축하기 위해 생활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행복하고 충만한 삶을 살기 위해 한달 생활비를 계획한다. 자본주의 시대에서 비현실적으로 생활하고 정신 승리하자는 소리가 아니다. 내가 꼭 필요한것만 충족되면 그로써도 충분하다는 애기를 하고 싶다.
질문에 대한 답이 늦었다. 이제서야 질문에 답해보려 한다. 구체적으로 한달 생활비용을 적어볼까 했지만, 의미가 없다고 느껴졌다. 각자가 행복하다고 느낄 수 있는 삶의 기준이 다르기 때문에, 최소 비용 또한 사람마다 달라질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보다는 내가 생각하는 행복한 삶의 정의에 대해 논하고 싶다. 내가 생각하는 행복한 삶은 건강하고, 배우고 싶은 것을 배우고, 사랑을 주고 받을 수 있고, 자신이 좋아하는 것(취미)를 즐길 수 있는 삶이다. 나는 건강하기 위해 아침에 일어나 조깅을 하고, 유튜브나 책을 통해 배우고 싶었던 데이터 사이언스를 배운다. 요즘 사랑은 줄 사람이 없어서(ㅠㅠ) 부모님의 사랑만 받고 있고, 주말에는 내가 좋아하는 등산을 친한 친구와 간다. 놀라운 것은 이 모든것들이 돈이 들지 않는다는 것이다. 변화하는 계절에 따라, 유행에 따라 신상 옷들로 내 옷장이 채워지지 않아도 내적으로 충만한 내가 그리고 여러분이 되길 기도한다.
비저너리의 크루 에세이 시즌 2부터는 비저너리 달력 뒤에 있는 그 달의 질문 중 하나를 골라한 주에 한 번, 월요일 아침, 크루들의 진솔한 답변으로 채워 나갑니다. :) 이 글을 보시는 여러분들도 바쁜 일상 속 생각에 잠기실 수 있도록 최근 한 달(4개)의 질문들을 공유합니다. 그리고 이번 한 주는 다음 질문 중 하나를 깊이 생각해보면서 어딘가에 답해 보는 시간을 갖는 건 어떨까요?
<지난 크루 에세이>
나는 친구들에게 어떤 존재일까요?
내 연락을 기다리는 사람이 있을까요?
최근에 당신이 가장 뿌듯했던 소비는 무엇인가요?
:[에세이51]요가 한번 해보실래요?
행복하다고 느낄 수 있는 삶을 사는데 드는 최소 비용은 얼마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