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비저너리 May 27. 2019

[에세이50] 퇴사하지 않기위해 내가 하는 짓

[정인의 크루에세이 04. 내 연락을 기다리는 사람이 있을까요?] 

세 달쯤 전인가 

오랜 시간을 함께 해 온 업체와의 사업이 마무리되고 보관용 증빙 서류를 받을 때 였다. 


퀵으로 보내주신 서류박스 속에 들어있던 초콜릿 한 박스

마침 사무실에 있는 많은 사람들이 외근 중이어서 혼자 신나했지만, 함께 하는 시간 동안 보여주셨던 젠틀한 모습다운 마무리였다. 그리고 나는 그 초콜릿을 책상 간식 서랍 속에 고이 담아두고 주말을 보냈다. 


그 다음 월요일, 해외 출장을 갔던 팀원들과 금요일에 사무실에 없던 사람들이 모두 모이는 날. 

조용히 자리에 초콜릿을 하나씩 돌려두고 시작하는 월요일 아침이 참 좋았다. 내가 있는 곳은 작고 촘촘한 조직이고, 한 사람 한 사람 쉽게 쓰이는 이가 없었기에 그 초콜렛 하나로 모두의 월요일이 조금 나아진다면 더할나위 없었다. 






초콜렛 나눔 이후 비저너리 크루 여니님을 만나서 한참 회사 생활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가 함께 일하는 회사들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마치 오랜 친구처럼 손발이 척척 맞는 곳부터 1부터 10까지 이야기해도 1도 안 되는 곳들까지. 많은 직업만큼 많은 회사들 그리고 많은 커뮤니케이션과 스트레스. 


이런 이야기를 하다 문득, 박스 속 초콜렛이 생각났다. 그리고 전 주에 야근이 너무 많아서였을까? 무심코 여니님에게 이런 이야기를 했다. 


"같이 일하시는 업체에서 마지막 서류들 보내주시면서 30구쯤 되는 초콜렛을 보내주셨거든요? 이거  너무 힘들 때 마다, 진짜 죽겠다 싶을 때 마다 한 알씩 꺼내 먹다가 30알 다 먹으면 미련 없이 퇴사할까봐요" 

여니님은 엄청 좋은 생각이라며 둘이 한참을 웃었고 나도 그저 실없이 한 이야기였기에 지나쳤는데 그 뒤로 서랍을 열 때 마다 30구 초콜렛의 빈 칸이 점점 크게 느껴졌다. 



그 날 이후로 왠지 너무 힘들어 보이는 동료들에게 초콜렛을 한 알씩 나눠줬다. 한 주 내내 나보다 일찍 오시고 늦게 가시던 옆옆 팀 I 팀장님께 한 알, 옆 팀이라 같이 이야기 하는 시간이라고는 서로의 야근을 안쓰러워해주는 시간 밖에 없는 K 매니저님께도 한 알, 내 사수로 항상 흔들리는 나를 잡아주는 T 매니저님이나 동기 같은 인턴 쌤들께도 한 알,두 알. 



초콜렛은 굳어 보이는 어깨를 건드리며 말을 붙일 수 있는 좋은 핑계였고 '피식' 하고 소소한 수다와 웃음이라도 주는 존재였다. 사람에 흔들리는 갈대 같은 나는 주변을 위로하면서 어쩌면 나를 위로했는지도 모르겠다. 이 곳 사람들은 항상 회사에서 서로에게 그랬으니까. 







그렇게 한 달쯤 지났을까,

빠르게 줄어드는 초콜렛을 보면서 괜히 여니님과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초콜렛이 빠르게 줄어들수록 왠지 마음이 불안해졌다. 그렇게 초콜렛 박스의 빈 자리들이 눈에띄던 날, 좋아하던 옆옆 팀 팀장님의 퇴사 소식을 들었다. 모두의 신뢰와 애정을 받는 분이었기에 서로 티는 내지 않았지만 다 같이 끙끙 앓았다. 


마지막 날까지 야근을 하시고 인수인계를 하신 팀장님의 퇴사 후 

모두를 대상으로 메일이 왔다. 짧은 안녕의 인사와 긴 미안함의 말들은 참 그 분 다웠다. 


그리고 한 줄


"기회가 또 있을까요. 한사람 한사람 만날 일이 또 있을까 싶습니다. 아무쪼록 어제보다 더 멋진 오늘의 한 분 한 분들이 되시기를. 각 사람을 향한 참 사랑을 만나게 되시기를."


이 말이 야근 중 참다가 메일을 열어본 나를 펑펑 울렸다. 

그 뒤로도 괜히 사무실에 사람이 없을 때 메일을 열어보며 대여섯 번은 더 울었나보다.





아마도 계속 버리지 못할 초콜렛 상자


이제 초콜렛 상자는 텅 비어버렸다. 

그리고 애석하게도 사무실 곳곳의 자리들도 상자 속처럼 비어있다. 이직철이기에, 경력직들만 모여 있는 회사이기에 이해하지만 유독 올해 봄에는 사람들이 많이 떠나갔다. 


I 팀장님의 퇴사 이후로 나는 더 열심히 초콜렛을 나눴다. 하지만 예상처럼 초콜렛은 금방 동이 났고, 떠나는 사람들을 붙잡을 수 없다는 것도 누구보다 잘 알았다. 돌이켜보면 내가 먹은 초콜렛보다는 사람들에게 나눠 준 초콜렛이 더 많은 것 같다. 동료들을 뿌리 삼아 이곳에 마음을 내렸기에 그들을 조금 더 버티게, 그래서 내가 뿌리 뽑히지 않고 같이 버티고 싶었나보다. 



요즘의 나는 스스로가 흔들리는 나무 같다. 

지난 에세이에서 결심한 존버의 마음도 야근이라는 폭풍우 앞에서는 자주 갈피를 잃는다. 떠나간 사람들의 마음을 괜시리 뒤늦게 이해하는 것 같다가도 남은 사람들과 서로를 보듬으며 또 하루를 보낸다. 그리고 텅 비어버린 초콜렛 상자는 차마 버릴 수가 없다. 사무실의 빈 자리들 만큼 휑한 그 칸들이 함께 했던 사람들 인가보다. 






오늘, 유독 어깨가 무거워 보이는 인턴쌤의 퇴근길에 카톡을 했다. 

카톡은 사적인 부분이니 한 번도 하지 않았는데 그냥 요즘 동질감이 느껴져 그랬나보다. 힘내라고 같이 힘내자고 따뜻한 차와 메세지를 보냈더니, 내가 좋아하는 음료를 보내며 쌤이 말했다. 좋은 건 같이 나눠야 한다고 같이 힘내자고


사람에 흔들리는 나는, 퇴사하지 않기 위해 소중한 사람들을 붙잡고 있다. 일복만큼 터지는 인복을 강하게 믿으며 공과 사의 아슬아슬한 경계에서 사람들을 잡고 서 있다. 전 직장의 경험으로 퇴사 후 남는 건 일에 대한 기억이 아닌 사람에 대한 기억이라는걸 알기에. 

이번 달에도 열심히 동료들을 잡고 서 있어 봐야겠다. 계속 안부를 묻고 간식을 배달해 봐야겠다. 회사라는 사회 속에서 내 제일 친한 친구들인 그들에게 내가 무거운 사람이 아니라 든든한 사람이면 참 좋겠다. 








비저너리의 크루 에세이 시즌 2부터는 비저너리 달력 뒤에 있는 그 달의 질문 중 하나를 골라한 주에 한 번, 월요일 아침, 크루들의 진솔한 답변으로 채워 나갑니다. :) 이 글을 보시는 여러분들도 바쁜 일상 속 생각에 잠기실 수 있도록 최근 한 달(4개)의 질문들을 공유합니다. 그리고 이번 한 주는 다음 질문 중 하나를 깊이 생각해보면서 어딘가에 답해 보는 시간을 갖는 건 어떨까요?




지난 크루 에세이



[우정]

친구에게 위로받고 싶은 방법이 있나요?

[에세이 47] 누가 내 맘을 위로할까


정말 친해지고 싶은 사람이 생기면, 어떻게 친해질 수 있을까요?

[에세이48] 정말 친해지고 싶은 사람이 생기면


나는 친구들에게 어떤 존재일까요?

: [에세이49] 열정을 그대에게 드리리




 내 연락을 기다리는 사람이 있을까요? 


매거진의 이전글 [에세이49] 열정을 그대에게 드리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