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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저너리 May 12. 2019

[에세이 48] 정말 친해지고 싶은 사람이 생기면

[미셸의 크루 에세이 05] 어떻게 친해질 수 있을까요?

    오지 않을 것 같던 봄을 지나 여름이 되어 가고 있다. 열심히 은빛 부분을 긁어가며 달력을 넘기니 다음과 같은 질문이 나왔다. 


정말 친해지고 싶은 사람이 생기면 어떻게 친해질 수 있을까요? 

    최근 들어 회사를 중심으로 세상을 편성해 지냈다 보니, 인간 관계를 넓히기 보다는 가끔 친구들을 만나며 살고 있는 내게 다소 생경한 질문이었다. 물론 회사 동료 분들은 다 좋은 편이다. 이 구역에 또라X가 없다면 내가 또X이라던데?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모난 분들도 없지만, 그렇다고 서로를 살갑거나 정겹게 챙기는 이전 스타트업과는 살짝 다른 모습의 회사였다보니 처음에는 사람 좋아하는 내 성격이 이상한 건가!싶을 때도 있었다. 그랬던 지라 적응하는 데에 다소 시간이 걸렸다. 


    그러다 최근, 내 본연의 모습을 드러낼 수 있는 동료를 만났다. 다른 회사에서 2년 정도 이미 경력이 있는 분이었고, 이 분께서도 생경한 회사 분위기에 약간 아리송하고 있다는 것을 우연찮게 알게 되었고, 어쩌다 보니 서로의 속 깊은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그러면서 급격히 친해졌다.



그렇다. '친하다'의 의미는 이런 것이었다 :)



    그렇게 비교적 조용한 모습으로 삶을 살았던 시기를 지나, 때로 왈가닥스러운 모습도, 때로는 민망하거나, 어리버리한 모습도 보이게 될 수 있는 상대를 만났다. 그렇게 짧은 시간, 우리는 빠르게 '가까이 사귀어 정이 두터워졌다.' 물론 회사에서의 친구와 회사 밖에서의 친구를 만나는 것은 다른 선상에 있으며, 인생에 소중한 친구 세 명만 만나도 성공한 것이라는 말에는 변함이 없을 수 있겠지만 말이다. 


    하지만 인간 관계에 있어 이렇게 다소 왁자지껄하지 않고, 고요한 시기를 겪으며 느낀 점은 정말 위의 질문과 같았다. "정말 친해지고 싶은 사람이 생기면 어떻게 친해질 수 있을까요?"라는 질문.. 그리고 이에 앞서 물론 "친해지고 싶은 상대가 있느냐"라는 질문이 먼저인 것 같긴 하지만, 인생에서 정말 소중한 인연은 어쩌면 늘상 찾아 오는 기회가 아니기에, 또 그 기회는 어느 날 갑자기 불쑥, 혹은 털썩, 찾아올지도 모르는 우연이기에. (더더군다나 사회에서는 예전에 반이나 그룹, 시간으로 묶였던 자연스러운 우정들과 다른 형태로 인연들이 불쑥불쑥 나타난다.) 그래서 그 기회를 어떻게 그저 스쳐 보내지 않고, 꽉 쥘 수 있느냐를 대비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좋은 질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어떻게 다시 순수한 마음으로 (요즘은 어렸을 때처럼 순수하게 나의 호기심을 끄는 상대와 호감만으로 친해지던 때가 그립기도 하기에) '정말 친해지고 싶은 사람이 생기면 어떻게 친해질 수 있을지' 이야기를 나눠보려고 한다.



    1. 우선은 내가 온전한 하나의 인간으로 준비된 사람이어야 하지 않을까.

    '준비된 사람'이라는 말은 깃을 세우고 각을 잡고 화려하게 꾸민 모습이라는 뜻이라기 보다는, '내게 찾아온 인연을 인연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의 준비'를 말한다. 마음이 힘들고, 내 한몸 건사하기에 힘들고, 세상에 대한 불만이 많고 등등.. 때로 우리는 누구나 그런 시기를 겪는다. 하지만 그런 시기에는 좀처럼 새로운 상대에게 (그게 설령 친구가 될 만한 사람이라고 해도) 마음을 열기가 참 쉽지 않다. 물론 그런 시기를 지나지 않으려면 내가 이미 나와 가까운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어야 하는 것 같다. (말하자면 심리적 안전 지대?)


    그리고 그런 소중한 가까운 좋은 관계를 유지하려면, 또 정말 좋은 인연을 만나려면 나부터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말을 나는 믿는다. 내가 늘상 좋은 사람은 아니겠다는 반성도 하지만, 최대한 내가 만나는 이들과 연을 맺고 있는 이들, 시간을 보내는 이들에게는 항상 따뜻함을 주려고 노력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물론 인생은 어려워서, 그 노력이 언제나 빛을 발하지 않는 때가 더 많다.. 하지만 나는 계속 노력할 것이므로!)


    또 생각해 보건대, 사람과 사람의 관계가 진정으로 가까워지려면.



    2. 나의 취약점을 나눌 수 있어야 하는 것 같다.

    내 바보 같은 모습, 부족한 모습, 남들이 보기에 '쟤 왜 저래?'싶은 모습도 어쩌면 드러내면서 서로 깔깔거릴 수 있는 관계가 친구 아닐까? 


    누구나 다 바보같은 모습을 한두개 쯤은 가지고 있다. 드러내고 싶지 않은 약점일 수도 있겠고, 혹자에게는 트라우마같은 게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 겪었던 모든(?) 대부분(?)의 관계에서 서로의 취약점 없이 가까워지는 관계는 아직 보지 못한 것 같다. 물론 그런 취약점을 드러내는 데에는 용기가 필요하고, 드러내도 괜찮다는 무언의 합의나 신호가 있어야 한다. 왜냐면 나의 취약점이 나를 공격하게 하는 무기가 되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너 참 바보같아!" (꺄르륵) "알아, 나도!" (꺄르륵)



    그래서 무엇보다

    3. 서로에게 신뢰가 쌓일 만한 계기나 시간이 있어야 한다.

    풀기 힘든 과제를 함께 해결해 나가건, 힘겨웠던 상황에서 비슷하게 느낀 감정을 공유하건... 사람은 관계의 동물이므로, 취약점을 나누기 위해서는 '신뢰'가 쌓일 만한 계기나 시간이 있어야 한다. 만약 그런 신뢰가 쌓이지 못한다면 취약점을 나누기도 힘든 것 같다.

    

    그리고 서로에게 신뢰가 쌓이려면 '온전한 나,' '솔직한 나'여야 한다는 생각도 한다. 꾸미는 모습은 오래 갈 수 없다. 또 '~한 척 하는 것'은 누구나 다 안다. 자신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드러내는 게 때로는 두려운 일일 수도 있겠지만, 우리는 생각보다 꽤 괜찮은 사람이기에 있는 그대로를 드러내도 좋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같은 선상에서, 사실 사회에서 지내다보면 신뢰가 쌓일 만한 계기나 시간이 없을 가능성도 높으므로 (사람은 또한 상황의 동물이기에) 일단 취약성을 드러내보는 것도 전략이라면 전략이라고 생각한다. 나를 온전히 드러내서 멀어질 관계라면, 언제 멀어져도 상관 없을 존재이고, 나를 온전히 드러내서 가까워지는 관계라면 그만큼 선물같은 것도 없으니까.



    4. 노오려억도 필요하다.

    그렇게 '우연'에서 '인연'이 된 사람과 계속해서 '연()'의 끈을 이어 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항상 앞으로 나가는 건 잘 하지만 뒤에 떨어진 빵 부스러기 같은 과거들을 추스리는 것에는 연습이 더 필요한 나 같은 경우에는 주기적으로 생각이 날 때마다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친하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에게 '대화를 하자!'고 이야기 하는 타이밍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공유 시간이 짧기 때문에 소중했던 인연도 내 은하의 바깥으로 밀려나는 안타까운 경우들이 생기는 것 같다.



    마지막으로

    5. 그렇게 우리는 순간에 머물러야 한다.

    좋아하는 사람과 친해지려면 가장 중요한 부분인 것 같다. 선선한 바람을 맞으며 한강 변에서 이야기를 나누건, 쓰잘데기 없는 이야기를 하며 한끼 식사를 같이 하건, 말도 안 되는 잡담을 나누며 뒤돌아 보면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까먹건... 어쨌든 '친하다'의 순간은 그냥 찾아오지는 않는 것 같다. 우리는 온전히 그 순간 속에, '당신과 나'라는 테두리 안에서 순간을 음미하고 즐기며 머물러야 한다. 그렇게 때로 어색한 침묵 속에 머물러야 하고, 머무르다 보면 침묵도 익숙해지는 그런 시기들이 우리를 결국 더 따뜻해지게 해주니까.






    (끝난 줄 알았지~~?! 헤헤. 글은 참 쓰다보면 할 말이 더 생기는 신기한 존재인 것 같으므로 쫌 더 쓰고 마무리를 하려 한다.)


    사실 사람들과 부대끼는 한, 언제고 이 세상이 아름다울 수만은 없다고 생각한다. 의견 차이도 있고, 취향 차이도 있고, 우리는 때로 '다름'을 껄끄럽게 받아들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다름을 조금만 '특별함'으로 여긴다면, 그래서 나에게도 있는 반짝반짝함이 상대에게도 있는 것이라고 조금만 돌려 생각한다면, 우리가 발을 딛고 있는 이 세상도 조금은 나와 닮은 친구들로 가까워지지 않을까?


    상대가 부담스러워하지 않으려면 얼만큼의 발을 디뎌야 할지, 혹은 잘못 디뎠다면 얼만큼 다시 멀어져야 할지 여전히 '관계'는 어렵지만. 오늘도 나는 나의 엉뚱함과 바보같음을 이야기하며 상대에게 편안함을 줄 수 있다면 좋을 것 같다. 


    동생한테 내 단점을 물어봤더니, 동생이 '누나는 너무 모든 사람에게 다 잘해 줘!'라는 엉뚱한 대답을 했다. 새삼 그렇게 보일 수도 있다니 반성 하면서.. 앞으로 '내 사람들'은 더 살뜰히 챙기자는 다짐을 한다.


    그리고 이 글을 읽고 지금 당장 떠오르는 누군가가 있다면, 한 번쯤 연락을 해보았으면 좋겠다. "사막은 아름다워. 사막이 아름다운 건 어딘가에 우물을 품고 있기 때문이야"라는 어린 왕자의 말처럼, 곧 사막처럼 뜨거워질 이 계절도 이 세상 어딘가에 존재하는 '당신의 친구' 덕분에 아름다울 테니까. 




미쓰 유! 마이 후렌드!






비저너리의 크루 에세이 시즌 2부터는 비저너리 달력 뒤에 있는 그 달의 질문 중 하나를 골라한 주에 한 번, 월요일 아침, 크루들의 진솔한 답변으로 채워 나갑니다. :) 이 글을 보시는 여러분들도 바쁜 일상 속 생각에 잠기실 수 있도록 최근 한 달(4개)의 질문들을 공유합니다. 그리고 이번 한 주는 다음 질문 중 하나를 깊이 생각해보면서 어딘가에 답해 보는 시간을 갖는 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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