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니의 크루에세이 05]
에로스의 화살을 사용할 수 있는 기회가 딱 한 번 주어진다면,
화살을 사용하고 싶은 대상이 있나요?
4월의 셋째 주 질문을 보며 실없는 웃음을 터뜨리다가 바로 떠오르는 사람이 있었다. 다른 사람도 아닌, 나 자신이었다. 무조건적인 사랑보다는 건강하게, 올바르게 사랑할 수 있는 화살을 쓰고 싶다는 마음과 함께.
여태껏 사랑에 많이 서툰 나는, 지금은 많이 발전했다 자부하지만, 사랑만 한다 하면 나 자신보다 상대를 훨씬 우선순위에 두었다. 물론 상대를 우선순위에 두는 건 나쁜 일이 아니다. 다만 내가 나를 존중함을 바탕으로 할 때만 시너지 효과를 내고, 그렇지 않을 땐 되려 나를 갉아먹게 된다. 나를 돌아보지 않고 상대방만을 위한 사랑을 하면 결국 그 관계의 저울은 한쪽으로 기울기 마련이다. 그렇게 한쪽으로 기울어진 사랑은 오래가기 어렵다.
지난 연애를 끝낼 때 가장 큰 상처를 받고 나는 한 가지 다짐을 했었다. 누군가를 사랑하기 이전에 내가 나를 먼저 사랑하기로 말이다. 연애에 다시 뛰어들어도 관계의 저울을 잘 유지할 수 있을, 상대방이 어떤 사랑을 주든 단단한 나의 중심을 유지할 수 있을 그때까지 연애하지 않겠다며 나를 다잡았다.
그 후 여러 노력들을 통해 진짜로 나는 나를 많이 인정하고 사랑하게 됐다. 이 사람과 함께라면 아직은 서툴더라도 함께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사람도 만났다. 상대방이 주는 사랑 속에 나도 적당히 사랑을 주며 나를 지키고 안정감을 느꼈다. 부딪히는 부분도 계속 있었지만 그저 맞춰나가면 될 일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1년이 지나 우린 헤어졌다. 내 딴에는 상대방의 급작스럽고도 일방적인 통보였다. 나를 사랑하는 게 너무 아프고 힘든 일이라는 말과 함께. 너무너무 큰 충격을 받았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도 모르겠고, 모든 화살을 나에게 돌리는 상대가 야속하기만 하고. 근 3년간 나를 사랑하면 된다고 생각하며 지지해온 모든 것들이 무너져 내리는 느낌이었다.
나는 나를 지키며 사랑하려 노력했을 뿐이었다. 굳이 무언가를 숨기며 잘 보이기 위해 날 꾸며내려고도 하지 않았다. 나의 있는 모습 그대로를 보여주었고, 상대방도 그런 내 모습을 사랑한다고 생각했다. 나름 잘하고 있는 줄 알았는데, 모든 게 완벽할 순 없으니 아귀가 맞지 않는 부분은 맞춰 나가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나를 사랑하는 게 이별을 고할 만큼 힘들고 아픈 일이라고?
그렇게 아파하던 어느 날 문득, 그리고 서서히 한 생각이 내 마음속에 퍼져나갔다.
'나는 참 이기적인 방식으로 나를 사랑하고 있었구나.
내 스스로가 너무 커져 사랑을 되려 갉아먹고 있었구나.'
상대에게 나의 모습 그대로를 보여주는 이면에는, 내 모난 모습까지도 당신은 이해하고 사랑해주어야 한다고 떼를 쓰고 있었다. 나를 정말 사랑한다면 그래야 하는 것 아닌가, 나는 그냥 이런 사람이라고 부단히도 이해시키려고 노력했다. 돌이켜 보면 나를 사랑하는 걸 넘어 상대에게 참 이기적인 행동이었다. 스스로 감당해야 할 부분까지도 사랑이라는 이름 아래 상대에게 모든 걸 돌렸으니 말이다. 모난 부분은 다듬어지지 않고 사랑을 뚫고 나와 1년간 상대를 계속 찔렀을 테다. 그리고 그 모난 부분은 결국 화살이 되어 나에게 돌아왔다.
왜, 눈먼 사랑은 잘못된 것도 괜찮다, 오구오구, 어화둥둥 하지만 올바르고 건강한 방식으로 사랑한다면 잘못된 건 잘못되었다고 인정하고 말할 줄도 알아야 하지 않는가. 모두가 완벽할 수만은 없다. 나도 마찬가지고, 그렇게 어딘가 비뚤어진 듯한 내 일부 자체가 잘못되었다며 부정하는 건 아니다. 인정하기까지 매우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그 일부가 상대방에게 전달되기까지 표현 방식을 선택하는 건 분명 나 자신이었다. 불편하고 힘들다는 상대방의 말을 무시하며 나는 이럴 수밖에 없으니 내가 이럴 때 당신은 다 받아줘야 한다며 나의 일부, 그리고 그를 표현하는 방식까지 받아들여달라고 하는 건 나의 잘못이자 배려 없는 사랑이었다.
나는 왜 나의 모난 모습에서 비롯된 모든 표현도 받아들여야 진정한 사랑이라고 생각했을까. 나 스스로도 옳진 않다고 생각하고 있으면서도, 그래도 나는 이런 내가 괜찮으니 상대방에게도 품어 달라며 나를 떠넘겼을까. 실은 나도 괜찮지 않았을 것이다. 다만 스스로에게는 그 고통이 무뎌져 괜찮다고 생각했을 뿐, 상대는 나의 28년간 이어져 온 감정선을 감당할 수 없었을 것이다. 아마 나 자신을 먼저 사랑해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나의 모든 부분을 끼고돌려고 하지 않았나, 스스로를 사랑하는 '방법'에 대하여 반성하게 된 기회였다.
그 상대는, 다시 잘 만나고 있다. 다시 만나는 처음에는 삐걱대고 서로에게 상처도 주었지만, 모든 걸 표현하고 마음대로 하고 싶은 욕구를 절제하며 더 잘 표현하는 방법을 배워나가고 있는 요즘이기에 신기하게 다 표현하지 않고도 이전보다 안정적임을 느낀다. 더불어 나 자신을 건강하게 사랑하는 방법도 이렇게 하나씩 배워간다. 조금씩 체득해 나가다 보면 내 모난 부분이 상대방을 찌르기 전에 스스로를 다독이며 그건 아니야, 괜찮아 다르게 표현해보자 라는 일련의 과정들이 스무스하게 무의식적으로 이뤄지지 않을까. 그럴 수 있다면 나 스스로도 좀 더 편해지지고 가벼워지지 않을까. 느리지만 그렇게 나와 상대를 향한 사랑을 건강한 방법으로 키워낼 수 있으면 좋겠다.
나 자신을 좀 더 나은 방법으로 사랑하고 싶다는 생각에 "에로스의 화살을 사용할 수 있는 기회가 딱 한 번 주어진다면, 화살을 사용하고 싶은 대상이 있나요?"라는 질문을 이번 크루 에세이 주제로 선택했다. 글을 쓰고 보니, 이미 나는 그 에로스의 화살을 내 바람대로 나에게 사용 중인 것 같다. 역시나 사랑도 느리지만 그런 내 속도대로 나아가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정말 비저너리의 거북이 크루인 나답다 흐히. 4월의 주제, 사랑 글을 마무리하며 구독자분들도 누구와 어떤 사랑을 하든 그 사랑 속에 더 나은 자신을 발견하셨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담는다. 사랑 정말 어려운 것 같지만 이 또한 과정이라 생각하면 과정인 듯 하다. 오늘도 거북이 동지들 화이팅!
비저너리의 크루 에세이 시즌 2부터는 비저너리 달력 뒤에 있는 그 달의 질문 중 하나를 골라한 주에 한 번, 월요일 아침, 크루들의 진솔한 답변으로 채워 나갑니다. :) 이 글을 보시는 여러분들도 바쁜 일상 속 생각에 잠기실 수 있도록 최근 한 달(4개)의 질문들을 공유합니다. 그리고 이번 한 주는 다음 질문 중 하나를 깊이 생각해보면서 어딘가에 답해 보는 시간을 갖는 건 어떨까요?
지난 크루 에세이
[사랑]
사랑을 해본 적이 있나요?
사랑을 받는 것 vs 사랑을 주는 것
당신은 지금 연애할 준비가 되어있나요?
에로스의 화살을 사용할 수 있는 기회가 딱 한 번 주어진다면,
화살을 사용하고 싶은 대상이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