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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저너리 Apr 08. 2019

[에세이 43] 내가 제일 못하는 사랑

[지원의 크루에세이 01] 4月 1주차: 사랑을 해본 적이 있나요?

크루 멤버들의 에세이를 읽어만 오던 내게 처음으로 차례가 왔다. 부담없이 가볍게 쓰자고 마음먹으며 달력의 다음 장을 넘겼건만 아뿔싸, 주제가 '사랑'이라니.


사랑을 해본 적이 있나요?


짧지만 강한 질문이었다. 

"하하, 저는 아직 어려서 사랑은 잘 몰라요."라고 손사래 치기엔 다른 핑계를 찾아봐야 할 것 같다. 취미에 대해서 에세이를 쓰게 될 거라 예상했었는데 차근차근 세어보니 여기가 맞다. 러브다 러브.

짧지만 강한 4월의 첫번째 질문이었다.


언제부턴지도 모르겠다. 누군가 내게 못하는 것을 물으면 그 대답을 연애 혹은 사랑이라 말하고 있었고, 그 흔한 사랑이 왜 이렇게 어렵나 싶었다. 그리고 두 사람이 만나 몇 년씩 깊어지는 사이들을 보면 그게 참 보기 좋았다. 물론 그 시간동안 나 역시 소중한 친구들과 깊어질 수 있었다며 만족하고는 있지만.



"합시다, 러브. 나랑 같이." (드라마'미스터션샤인' 6화 中)

"합시다, 러브. 나랑 같이."

적어도 내게 있어서 그것은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의 유진 초이처럼 담담하게 꺼낼만한 것이 아니었다. Love의 뜻은 맞출 수 있어도 사랑의 의미는 알지 못했고, 연애를 해보기도 했지만 '좋아한다'와 '사랑한다'의 차이 속에서 혼란을 느끼고 다시 혼자가 되었다. 나만 혼자 괜히 사랑에 대단한 의미를 부여하려는건 아닐까 싶기도 했지만 내가 연애를 시작하는 건 상대방에게 민폐라며 마음을 일찌감치 닫기로 했다. 


첫사랑의 기준에 대하여_

첫사랑의 기준이 뭘까.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어보면 각자 기준이 달랐다. 누구는 고교 시절로 돌아가 풋풋하던 그 때를 떠올렸고, 심지어 누구는 유치원에 같이 다니며 결혼상대로 꼽았다던 아이를 이야기하기도 했다. 그리고 이에 대해 누구도 감히 기준선을 긋지는 않는다. 추억은 각자 소중하고 그 추억은 각자의 것이니까 기준도 스스로 정하기로 한다.


스스로 기준을 정하게 해주었건만 오히려 그래서 한번 더 고민한다. 나는 어떤 기준으로 첫사랑을 떠올려야 할까. 초등학교 시절 짝사랑하던 친구 책상 서랍 속에 몰래 넣어둔 화이트데이 사탕을 첫사랑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때를 천천히 떠올려본다. 그 당시 나는 그 아이에 대해 마치 노란 꽃이 피어난 것 같다고 생각했다. 합창대회에서 노래를 하는데도 혼자 노래하는 것처럼 또렷했고 그 모습이 참 예뻐보였다. 친한 친구로는 지냈지만 소심하고 자신감도 없던 나는 끝내 좋아한다는 말을 졸업식날 까지도 꺼내지 못했다. 그리고 이후 다행히(?) 남중남고를 거치며 적어도 6년 동안은 괜한 상상 속에서 정신 못차리는 일을 피할 수 있었고, 공대라는 또다른 안전지대에도 진학하게 되었다. 이제와서 돌아보자니 어쩌면 나는 그 친구를 짝사랑한게 아니라 동경했던걸지도 모르겠다.


누가 그랬다. 마치 가슴 속에 수백마리 나비가 헤엄치는 느낌이라고.

내가 그랬다. 너무나 간지럽지만 그 느낌이 참 따뜻하고 좋았다. 그리고 그 느낌을 알게 해준, 첫사랑의 기준을 떠올릴 때 어김없이 생각나는 친구가 있다. 스무살이 되던 해, 대학교 입학식도 하기 전이었다. 내가 다닌 대학교에는 신입생을 대상으로 1월에 진행하던 캠프가 있었는데, 그 친구와 같은 조에 배정된 채 캠프를 다녀오게 되었다. 캠프 중엔 그저 마냥 재밌게만 놀았다. 나에게 대학교 친구들이 생긴다니 그 자체만으로도 너무나 즐겁고 설레는 일이었으니까. 다만 캠프가 끝난 뒤 집에 가는 동선이 우연히 겹쳤을 뿐이었다. 그래서 집에 가는 30분, 이야기를 나누었을 뿐이었다. 내가 남중남고에서 자라온 탓에 이성의 관심에 대한 면역력이 약했던걸까. 이야기를 나눌 수록 나는 그 친구에게 관심이 깊어졌고 그 친구도 마찬가지였다. 그 날부터 우리는 일상을 공유할 만큼 친해지게 되었고 서로에게 소중한 사람이 되어주었다. 나중에 결국은 다시 친구 사이로 돌아오고 말았지만 이 때 겪은 첫 연애를 통해 내 안에 나비가 그렇게나 많다는 걸 처음 알게 되었다.



최근에 본 영화 중에 '청설'이라는 영화가 있었다. 영화를 가만히 보고 있는데 두 사람이 함께 있는 모습이 너무나도 보기 좋았다. 그리고 저 모습이 바로 사랑이구나 싶었다. 이제까지 나는 사랑이 어떤건지 늘 헷갈렸는데 적어도 저건 사랑이 맞는 것 같았다. 오죽하면 상대방의 마음을 되돌리기 위해 나무 옷을 입고 자신을 앞 마당에 심어달라고 외쳤을까. 아마 영화 속 양양과 티엔커도 몸 속에 헤엄치는 나비들을 분명 느꼈을 것이다.

영화 '청설'(2009年)

다시,

사랑을 해본 적이 있나요?

또렷한 꽃처럼 누군가를 떠올리거나, 헤엄치는 나비들을 느껴보는게 사랑이라면 그렇다. 그러나 상대방과 깊어지고 나의 반쪽을 찾는 것이 사랑이라면 나는 아직 온전한 한쪽일 뿐이다. 무엇을 사랑이라고 해야 할지는 여전히 모르겠으나, 다만 사랑과 여행이 닮았다고 하는 아래의 문장은 꽤나 공감이 되었다앞으로도 내가 일찌감치 마음을 닫아 버릴지 혹은 새로운 여행을 시작할지 아직 정해진 것은 없지만 어떤 선택을 해도 행복할 방법은 있지 않겠나 싶다.


<내 옆에 있는 사람>, 이병률

사랑과 여행이 닮은 또 하나는

사랑이 끝나고 나면, 여행이 끝나고 나면 

다음번엔 정말 잘하고 싶다는 것.

그리고 나 역시 그렇다는 것



비저너리의 크루에세이 시즌 2부터는 비저너리 달력 뒤에 있는 그 달의 질문 중 하나를 골라 한 주에 한 번, 월요일 아침 크루들의 진솔한 답변으로 채워갑니다. 이 글을 보시는 여러분들도 바쁜 일상 속에서라도 생각에 잠기실 수 있도록 최근 한 달의 질문들을 공유합니다. 그리고 이번 한 주는 다음 질문 중 하나를 깊이 생각해보면서 어딘가에 답해 보는 시간을 갖는 건 어떨까요?


-Hobby-

새로운 당신을 발견하는 취미가 있었나요?

나와 어울릴 것 같은 취미는 무엇인가요? 혹은 나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취미는 무엇인가요?

당신이 취미를 가지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Love-

사랑을 해본 적이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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