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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저너리 Nov 04. 2019

[에세이 73] 알람 없는 하루

[하비엘의 에세이 08]  매일 당신을 눈 뜨게 하는 원동력이 무엇인가요

 매일 당신을 눈 뜨게 하는 원동력이 무엇인가요?라는 질문을 두 달 전에 받아서 아주 솔직한 마음으로 대답을 한다면 ‘매일 아침에 눈을 빨리 뜨고 싶다는 생각보다 1분 아니 1초라도 더 감고 있고 싶다는 생각뿐이에요.’라는 답변이 나왔을 것이다.


 그러나 현재는 완전히 다르다. 비저너리 브런치, 그중에서도 하비엘의 에세이를 꾸준히 정독해온 사람이 있다면 나와 인도네시아와의 인연을 접한 적이 있을 텐데 지금은 그 인연의 연장선으로 인도네시아에 교환학생을 와 있는 상태이다. 


 인도네시아에 온 이후로는 알람을 맞추고 잠에 든 적이 없다. 국민의 87% 이상이 이슬람을 믿는 국가인 만큼 기숙사 바로 옆에 사원이 있는데 새벽 5시만 되면 어김없이 확성기로 기도를 드리는 방송이 나오기 때문이다.

9시 30분이 첫 수업인 학생이라면 5시에 강제로 나를 기상시키는 그 소리가 불쾌해야 하는 것이 정상이다. 혹은 잠을 방해하는 그 소리를 이겨내고서 어떻게 해서든지 다시 잠에 들기 위해 몸부림쳤을 것이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그 기도소리에 적응해서 5시 이른 아침에 자연스레 하루를 시작하는 내 모습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렇게 이른 아침에 하루를 시작하는데도 몸은 굉장히 가볍고 머리는 너무 맑았다. 매일 새벽 3시쯤에 잠들어서 그 다음날 일정이 없을 때면 12시까지도 잠을 잤던 나 자신이 너무 신기해서 이런 생활이 가능하게 된 이유가 무엇인지에 대해서 곰곰이 생각해본 적이 있다. 

이제는 익숙해진 기도 소리 :)

 처음에는 날씨의 원인이 크다고 생각했다. 한국은 지금쯤이면 기온이 많이 떨어져서 특히 아침에 이불속을 떠나기 힘든 날씨이겠지만 우선 이 곳 아침은 조금 쌀쌀하지만 햇살이 따뜻하게 온 몸을 감싸주기 때문에 이불을 덮지 않고 자도 괜찮을 만큼 딱 알맞다. 그래서 하루를 시작하기에 훨씬 수월한가 보다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하루를 행복하게 시작하는 이유는 날씨 때문이 아님을 깨달았다. 해야 할 것이 이미 정해진 하루를 보내는 것이 아니라 내 하루를 매일매일 만들어 갈 수 있었기 때문에 하루를 시작하는 것이 기분이 좋았던 것이었다.

 

 먼저 기숙사에서 학교까지 가는 셔틀 안에서 다른 친구들은 어제 하루를 어떻게 채웠는지 공유를 한다. 세계 각지에서 모인 친구들이라 하루를 보내는 방식도 다르기에 어떻게 하루를 보냈는지 듣는 것은 굉장히 즐거운 일이다. 그리고 학교 수업도 교재의 방향을 따라서 진행되는 것이 아니다. 수업은 학생들이 미리 예습을 해오면 공부한 내용에 대한 이해를 어떻게 했는지 그것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의견을 나누는 공유의 장이다. 식사시간에는 어떤 새로운 친구와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지게 될지 기대를 하게 된다. 이렇게 사람들과 교류할 수 있는 기회가 참 많아지고 다른 사람들은 어떤 생각으로 어떻게 살아가는지 살펴볼 시간이 생기게 된다. 그리고 삶의 큰 관점으로 봤을 때에는 현지에서 인턴을 할 수 있는 기회를 발굴하는 과정도 마냥 의무적으로 해야 하는  일로 느껴지기보다는 나 자신을 육성하는 게임 속 능력치를 쌓는 게임으로 느껴진다. 

  

 이 모든 것이 가능한 이유는 바로 여유이다. 나와 같은 나이에 있는 친구들은 모두 한국에서 열심히 취업준비를 하고 있지만 인도네시아에서 지금 내가 보고 있는 건 취업시장이 아닌 나 자신이기 때문에 이런 것들이 가능한 것 같다. 이따금씩 들려오는 친구들의 성공적인 취업 소식에 마냥 같이 기쁘면서도 마음 한편에 불안함이 공존하는 건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그런데 확실한 건 내 미래에 대한 불확실함에 대해서 관대해질 수 있어야 진짜 행복에 가까워진다. 아무리 과제가 많아도, 시험 성적이 조금 좋지 않아도 항상 해맑게 웃을 수 있는 인도네시아 친구들을 보면서 한국은 왜 이렇게 불확실한 미래에 조급해질 수밖에 없는 사회가 되어버렸는지 조금 안타까운 생각이 들기도 한다.


 짧지 않은 기간 동안 이곳에서 생활하다 보면 내 생각도 많이 바뀌고 내 주관의 뿌리를 확실히 세울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한국에 돌아가서 한국사회에 적응하다 보면 지금 내가 보고 느끼고 생각하는 것들이 점점 잊히고 환경에 맞게 다시 이전의 나로 돌아가지 않을까 벌써 조금 두렵다.


 하지만 매일 아침 나를 눈 뜨게 하는 원동력은 저 멀리 다른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내가 살아가는 그 하루에 있었음을 알게 되었기 때문에 다시 한국에 돌아가서 환경에 적응하게 되더라도 이 감사함을 잊지 않고 하루를 알차게 채우기 위해 힘을 내야겠다.




비저너리의 크루 에세이 시즌 2부터는 비저너리 달력 뒤에 있는 그 달의 질문 중 하나를 골라한 주에 한 번, 월요일 아침, 크루들의 진솔한 답변으로 채워 나갑니다. :) 이 글을 보시는 여러분들도 바쁜 일상 속 생각에 잠기실 수 있도록 최근 한 달(4개)의 질문들을 공유합니다. 그리고 이번 한 주는 다음 질문 중 하나를 깊이 생각해보면서 어딘가에 답해 보는 시간을 갖는 건 어떨까요?


•나의 죽음으로 세상을 원하는 대로 바꿀 수 있다면 죽음을 택하실 건가요?

[에세이 72] 나는 우리가 살기를 바란다.

 

죽음이 올때 당신은 어디에 있고 싶나요?

[에세이 71] 남겨진 이들을 위해

 

내 삶이라는 자서전이 있다면, 어떤 부분에 책갈피가 꽂혀 있을까요?

[에세이 70] 사람은 생각보다 쉽게 죽어요

 

내일 죽는다면 오늘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인가요?

[에세이 69] 죽음,우주 그리고 삶



 [에세이 66] 거북이 달린다

매일 당신을 눈 뜨게 하는 원동력이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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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저너리는 일론 머스크를 만나 인터뷰하러 가겠다고, 다 같이 우주여행을 가자며 출발한 비영리 소모임(이자 우주 먼지들의 모임)입니다. 우리들의 진솔한 이야기를 풀어놓아 청춘들을 응원하자는 마음에서 사이드 프로젝트로 브런치와 팟캐스트로 소통하고 있습니다 :) 

* 커피값 후원 : 신한은행 373-04-247722 (오윤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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