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비저너리 Oct 28. 2019

[에세이 72] 나는 우리가 살기를 바란다.

[제이영의 크루에세이 07] 그리고 사회가 조금 더 관대했으면 좋겠다.

https://brunch.co.kr/@visionary0115/85

한 달 동안 휴양을 떠난다면 혼자 갈 건가요

나도 굿플레이스에 갈 수 있을까?

(남자 배우가 굿플레이스를 설계한 디자이너, 여자 배우가 굿플레이스의 주인공 엘리너이다. 출처 : 넷플릭스)


 굿 플레이스라는 미드가 있다. 굿플레이스는 천국, 배드플레이스는 지옥이다. 생전에 했던 행동들을 토대로 점수가 매겨지고, 그 점수에 따라 죽은 다음 굿플레이스, 배드플레이스 둘 중 하나에 배정되어 그곳으로 보내진다. 굿플레이스는 그 중에서도 최상위 점수를 받은 사람들만 갈 수 있는 정말 '좋은' 사람들만 죽어서 갈 수 있는 곳이다. 그곳에 도착하면 개인의 취향을 반영한 인테리어가 완료된 집과, 성향에 맞는 소울메이트가 짝지어지고, 그 공간 안에서 생활하게 된다.  하지만 엘리너(여자주인공)는 시스템에 등록된 정보(인권 변호사, 평생 봉사를 하면서 보냄)와 는 다르게 실제 마트 직원으로 일했고, 술집에서 반한 남자와 시간을 보내기 위해 친구들을 버리기도 하는 전형적인 소시민에 가깝다. 범죄를 저지르지 않았지만 굿플레이스에 오기에는 당연히 부족한 삶이었다. 그러나 시스템 오류로 굿플레이스에 오게 된다.  첫 에피소드를 보면서 들었던 생각은 1)내가 죽으면 누가 슬퍼할까 2)나는 굿플레이스에 갈 수 있을까? 3)굿플레이스에 가기 위해선 어떻게 살아야 할까 였다. 내용이 있는 미드로 영어 쉐도잉을 하고싶어서 보기 시작한 미드인데 내게는 죽음에 대해 생각을 해 볼 수 있는 기회였다. 나는 죽음에 대해서 한번도 제대로 생각해본 적이 없다. 어릴적 강원도 계곡에서 미끄러져 바위에 머리가 찢어져 응급실로 갔었던 기억이 아마 죽음에 제일 가깝게 다가갔던것 뺴곤, 한번도 죽고싶다거나 죽음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이 없다. 내가 죽으면 친한 친구들과 부모님이 제일 슬퍼할 것이고, 뚜렷하게 선행을 쌓으며 산것은 아니니 미들플레이스가 있다면 중간정도에서 살수있지는 않을까. 굿플레이스, 배드플레이스가 나눠진다고 생각하니 당장이라도 봉사활동을 해야겠다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나는 굿플레이스에 갈 수 있냐 없냐 보다도 죽는게 두렵다. 인간은 언젠가 수명을 다해 이 세상을 떠나가겠지만 나는 사고나 재난이 아닌 건전지처럼 내게 주어진 수명이 다하는 그날 떠나고 싶다. 




모두의 죽음은 살아생전 한 행동과 상관없이 숭고하다. 


죽다를 묘사하는 동사는 죽다를 벗어나 다양하게 존재한다. 사망하다/돌아가다/ 서거하다/ 별세하다/ 작고하다/ 운명하다/ 눈을 감다/ 세상을 뜨다/ 타계하다 이 중 서거하다/작고하다/타계하다는 죽다의 뜻을 조금 더 높인 말이다. 보통은 고귀한 일을 하거나 높은 자리에 있던 사람들이 세상을 떠나게 되면 저런 동사를 쓴다. 엘리너는 시스템에 등록된 정보처럼 인권 변호사로 산 것도 아니고, 평생 봉사로 헌신해온 사람도 아니다. 그녀가 죽었을때 아무도 슬퍼할 사람이 없다고 해서, 그녀의 죽음이 헛되거나 값싸다는 평은 내릴 수 없다고 생각한다. 죽음은 한 생명체의 마지막이다. 그만의 삶을 오롯이 살다가 마침표를 찍는것이기 때문에 그 자체로 숭고하다고 생각한다. 위인전에 기록되지 않은 평범한 범인의 삶이라도 개개인의 죽음의 가중치는 똑같다는 말을 하고 싶다. 모든 죽음이 다 숭고하며, 우리 모두가  아름답게 그 주어진 기간만큼 살다가야한다고 생각한다.





할머니가 된 설리의 모습을 보고 싶었다

당신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이념을 위해서 온 힘을 다해 싸우십시오(출처: 설리 인스타그램)

 얼마전 네이버 검색창에 놀랄만한 검색어가 떴다. 그녀는 유명한 연예인이었고, 그녀의 이름 뒤에는 죽음이 붙어 있었다. 그녀에 대한 나의 마지막 관심은 그녀가 노브라 사진을 인스타에 올렸을 떄다. 사람들이 헐뜯고 비난할때,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비난할만큼 그녀에 대한 애정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더욱이 그녀를 옹호할 생각은 하지도 못했다. 로그인을 해서 댓글을 쓴다는 것은 너무나도 귀찮은 일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녀가 조금은 유별나다고 속으로 생각했다. 초등학교떄 부터 입어온 브라가 불편한건 사실이지만, 공석이나 사진에서 노브라 상태인것은 조금은 부끄럽게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나이가 들면서 조금씩 느끼게 되는것은, 내가 절대적으로 옳다고 생각했던 가치판단들이, 그 당시에 정말 옳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후에 다르게 바뀌는 경험들이 종종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내 기준으로 남을 판단하는 말은 잘 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녀가 공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자기의 잣대를 기준 삼아 그녀를 난도질했다. 초점을 잃은채 멍한 사진을 올렸다는 이유로, 노브라 사진을 올렸다는 이유로 그녀는 정신과 상담을 받아야 한다는 등의 비난을 감수해야했다.  하지만 그녀는 상관없다는 듯이 ‘별난 사람’이라고 낙인찍히는 것보다 순종이라는 오명에 무릎 꿇는 것을 더 두려워하라 사진을 올리거나, 낙태죄 폐지된날을 두고 영광스러운 날이라고 하는 등의 용기있는 모습들을 보였고, 나는 그녀가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그런 그녀가 세상을 떠났다. 다음날 카카오는 설리의 사망을 계기로 연예 뉴스 댓글 검색어,실검 순위 등을 폐지하겠다고 발표 했다. 검색어가 이용자들에게 다양한 정보를 제공한다는 취지와 달리 사생활침해와 명예 훼손 등의 부작용이 심각하다는 이유였다. 나는 카카오가 그러한 개편을 설리를 떠나보내고나서야 밖에 할 수 없었는지 의문이 들었다. 왜 잃고 나서야 우리는 바뀔 수 밖에 없는지. 설리를 추모하며 팬이 했던 말인 '할머니가 된 설리의 모습을 보고 싶었다.' 가 기억에 남는다. 그녀를 사랑하던 사람들은 이제 그녀를 추억할 수 밖에 없다. 


나의 죽음으로 세상을 원하는 대로 바꿀 수 있다면 죽음을 택하실 건가요?


 태어나서 처음 들어보는 논술고사에 나올법한 질문이었다. 세상을 원하는 대로 바꾼다는 것은 아마 공공의 선을 위함일 테고, 공공의 선을 이루기 위해 내가 죽어야 한다는것은 다른 방법들이 먹히지 않아서일 것이다. 이 맥락에서 죽음은 최후의 수단일 것이다. 죽음이라는 행위는 사회에 큰 각성을 불러일으킨다. 첫쨰는 그 목적이 개인이 아닌 어떠한 공공의 숭고한 가치를 위해서이기 떄문이고, 둘쨰는 그를 위해, 자신의 삶을 적극적으로 포기하는 행위는 개인의 이해가치를 넘어섰기 떄문이다. 죽음에 대한 공포에서 벗어나, 죽음을 자신의 의지로 선택하여 희생하는 행위는 그 개인이 속한 공동체에게 변화를 가져온다. 사람들은 숭고한 희생을 보며 그제서야 변화의 필요성을 꺠닫기 때문이다. 안중근 독립투사의 의거는 중국이 한국독립운동을 지원하는 계기가 되었고, 전태일씨의 분신은 한국 노동자들의 노동권리를 생각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그 개인의 삶의 관점에서는 비극적일 수밖에 없다. 나는 그 어느 상황에서도 개인의 삶을 ‘희생’하는 것은 반대한다. 공동의 선을 위해 개인의 죽음이 영향을 가져올 수는 있어도, 필수 조건은 아니기 때문이다. 변화가 늦어지더라도 나는 당신이 살아있으면 그리고 내가 살 수 있는 상식적인 사회이길 바란다. 느슨한 연대의 힘을 믿었으면 한다. 그리고 개인이 최후의 수단으로 죽음을 선택하기 전에, 한발 앞서서, 변화를 외치는 그들의 소리에 귀기울여 줄 수 있는, 조금 더 관대한 사회가 되길 바란다. 


안녕하세요. 조금은 무거운 주제로 찾아뵌 제이영이에요. 우리 모두가 죽지 않고도 살 수 있는, 상식이 통하는 사회이기를 소망하며 다들 건강하시고 건강하시길.


  


비저너리의 크루 에세이 시즌 2부터는 비저너리 달력 뒤에 있는 그 달의 질문 중 하나를 골라한 주에 한 번, 월요일 아침, 크루들의 진솔한 답변으로 채워 나갑니다. :) 이 글을 보시는 여러분들도 바쁜 일상 속 생각에 잠기실 수 있도록 최근 한 달(4개)의 질문들을 공유합니다. 그리고 이번 한 주는 다음 질문 중 하나를 깊이 생각해보면서 어딘가에 답해 보는 시간을 갖는 건 어떨까요?

 

죽음이 올때 당신은 어디에 있고 싶나요?

[에세이 71] 남겨진 이들을 위해

 

내 삶이라는 자서전이 있다면, 어떤 부분에 책갈피가 꽂혀 있을까요?

[에세이 70] 사람은 생각보다 쉽게 죽어요

 

내일 죽는다면 오늘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인가요?

[에세이 69] 죽음,우주 그리고 삶


한 달 동안 휴양을 떠난다면 혼자 갈 건가요?

[에세이 68]내 마음 들여다보기

 


 [에세이 66] 거북이 달린다

'나의 죽음으로 세상을 원하는 대로 바꿀 수 있다면 죽음을 택하실 건가요?


 

 



* 글을 읽으신 소감은 어떠셨나요? 덧글로 살짝 남겨주세요! 크루들에게 큰 힘이 됩니다!

 

* 비저너리는 일론 머스크를 만나 인터뷰하러 가겠다고, 다 같이 우주여행을 가자며 출발한 비영리 소모임(이자 우주 먼지들의 모임)입니다. 우리들의 진솔한 이야기를 풀어놓아 청춘들을 응원하자는 마음에서 사이드 프로젝트로 브런치와 팟캐스트로 소통하고 있습니다 :) 

* 커피값 후원 : 신한은행 373-04-247722 (오윤선)


매거진의 이전글 [에세이 71] 남겨진 이들을 위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