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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저너리 Sep 30. 2019

[에세이 68] 내 마음 들여다 보기

[미셸의 크루 에세이 07] 한 달 동안 휴양을 떠난다면 혼자 갈 건가요

    내 안의 고통을 마주하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새로 시작한 일에 있어서 처음 알게 되는 것들, 경력직임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모르는 게 이렇게나 많구나 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은 생각보다 두려운 일이었다. 그리고 그 두려움을 마주하는 일은 생각보다 더 어려웠다. (사실 나에게는 부정적인 감정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 자체가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힘들다고 생각하는 순간, 더 힘들어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것도 싫고, 천성이 어떻게든 긍정적인 면을 찾아내기도 하기에 부정적인 감정을 못 견뎌하기도 한다.) 


    그래서 다음 날이 출근임에도, 새벽 두세 시까지 깨어 모르는 것들에 대해 찾아볼 때는 기본이었고, 주말에 몸은 쉬어도 정신은 쉼이 없다고 느껴질 정도로 언제나 분주했다. 물론 본래 업무에 더해 행사 준비까지 맡게 되었을 때는 복잡하게 엉킨 생각들에 뜬 눈으로 3일을 지새울 때도 있었다. 게다가 지금쯤이면 프로세스가 정립되어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라는 의문이 드는 자잘한 일들이 생길 때마다 자잘하게 스트레스도 쌓였다.(하지만 쌓이는 줄도 몰랐다.) 


    그러다 급기야는 큰 행사 전에 회사의 작은 세미나도 준비하면서, 짧은 시간 동안 마음을 터놓게 된 동기분들에게 그간 느낀 불합리함에 대해 열변을 토하기도 했다. 일을 즐겁게 하려고 긍정적인 태도를 유지하며 동료들과 농담을 주고받는 것과는 별개의 문제였다.


내가 웃는 게 웃는 게 아니야~


    그렇게 삶에 쉼표를 붙일 줄 모르고 강강강강으로 달리다가 드디어 최근, 핀트가 제대로 한 번 나갔다. 최선을 다 했다 생각했음에도 어쩔 수 없는 일이 일어나자 그간 누적된 피로와 스트레스가 한 번에 몰아닥쳤다. 마음의 파도는 사그라들 줄 몰랐고, 며칠 째 뜬 눈으로 뒤척이는 불면증이 시작되어 구조 요청을 했다. 


    처음으로 가족이나 남자 친구, 일기장 외의 누군가에게 '어쩌면 좋을지 모르겠다'는 내용으로 장문의 카톡을 남겼다. 


    그리고 그 날 언니는 언니 역시 힘든 상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괜찮냐고 물어봐주며 회사 근처까지 찾아와 함께 술을 마셔 주었다. 도란도란 서로의 힘듦에 대해서 욕도 하고, 한탄도 하며 속 안의 것들을 쏟아냈다. 갈피를 못 찾던, 괴롭고, 외롭고, 힘들던 마음은 그렇게 처음, 내가 아닌 누군가에게 '혼자 버티기 힘들면 조금 기대 봐도 괜찮아'라고 위로를 받았다.


    다른 사람에게 약한 모습을 보이기 싫어하고, 더군다나 부정적인 감정을 느끼고 있다는 것 자체도 표출하기 싫어하는 내게 그날의 사건은 크나큰 변화의 시작이었다.


    나는 인정하기로 했다. 내가 힘들다는 것. 마음이 때로는 갈래갈래로 쪼개지고, 널뛰기를 하고 있다는 것. 누군가에게 기대고 싶고, 어쩔 줄 모르겠는 상황 속에서 누군가에게 답을 구하고 싶어 한다는 것을 알아주기로 했다. 그리고 그렇게 시작한 마음 돌보기는 내 주변에 얼마나 좋은, 감사한 사람들이 많은지 돌아볼 수 있게 해 주었다.



    '미셸이 앞으로 사회생활을 더 잘해나가려면, 표정 관리를 좀 더 잘할 줄 알게 되면 더 좋을 것 같다'라고 감사한 피드백을 주시던 옆팀 팀장님께 짧게나마 내 속을 터놓을 수 있게 되었다. 


    "화장실에 앉아서 좀 울면 나아질까도 생각해 봤어요. 팀장님은 감정이 이럴 때 어떻게 감정을 다스리시나요?"


    팀장님은 그 날, 30분이 넘는 시간을 나와 함께 산책해 주시면서, 온갖 이야기를 다 들려주셨다. 무슨 이유에선지 모르겠는데, 1년 넘게 자기와 말을 섞지 않는 상사 밑에서 일하느라 마음고생하셨던 이야기, 그러면서도 하루도 쉬지 않고 이직 자리를 끊임없이 찾아 이동하신 이야기 등등..


    그러면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이야기로 '생각만 해도 스트레스가 풀리는 활동을 한 가지쯤 가지면 좋다. 그리고 무엇보다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게 우선!'을 들려주셨다.


    그리고 또 다음 날은 TF팀의 팀장님께 직접적인 피드백을 요청했다. 같이 일할 기회가 많지 않았음에도 짧게 뵐 때마다 이야기를 꼭 필요한 말씀을 꼼꼼히 들려주시는 분이었다. 시간만 된다면 이분께 일을 배우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멀리서나마 동경하던 분이었는데, 일부러 말씀을 드려 시간 약속을 잡았다. 그리고 뼈 때리는 말들을 많이 듣게 되었다. '내 마음이 불편하기 때문에 나의 가장 친한 친구에게도 이렇게까지 솔직하게 이야기하지 않는다'라고 말해주셨는데, 나에게는 그 말조차도 감사했다. 사회에 나와서 누군가의 진솔한 이야기를 듣는 기회는 흔치 않으니까. 그렇게 그 날은 한 시간이 넘게 '신뢰'에 대해 배웠다.


    그리고 그렇게 나의 부정적인 감정들도 마주하는 날들이 시작되었다.


    요가 매트 위에서, 헬스장 안에서. 건강 검진받는 내과 안에서,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 또 침대 속에서. 오랜 친구들에게 전화를 걸어 요즘 어떤지 안부를 물어가며 "오지게 힘들지~ 나는 괜찮지 않아~"라고 너스레를 떨며 이야기할 수 있게 되었다.


    힘든 상황들에서 눈을 돌리고, 이불 안으로 숨고, 참아 가며 힘듦을 덮어 버리기보다는 정면으로 마주할 수 있게 되었다. 잘 지내냐고 오랜만에 연락 오는 친구들에게 애써 잘 지낸다고 말하지 않게 되었다. 한국의 삶을 동경하는 싱가포르 친구가 한국 삶은 어떻냐는 질문에, 'It's tough. As always.'라며 환상을 깨트려 주기도 했다. 하지만, 오히려 그러고 나자 내 숨통이 틔였고, 내가 하고 싶은 말들을 솔직하게 건넬 수 있었다.


    그래, 요즘. 요즘의 나는 괜찮지 않다.

    그런데 정말 신기하게도 이 괜찮지 않음을 말하고. 내가 알아차려 주고 나면 한결 내 마음이 괜찮아지는 마법을 나는 맛보고 있다.


    '오늘은 햇살이 좋은 걸?' 대신에 '오늘은 좀 몸을 일으키기가 힘든 걸?'로 하루를 시작하기도 하지만, 그러면 어때. 내 마음인 걸? 힘들면 힘든 대로, 좋아하는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밤늦게 까지 통화를 하고 싶어 지면 싶어 지는 대로, 당분간은 내 마음이 가는 대로 그 감정이 좋은 것이든 좋지 않은 것이든 온전히 받아들여 보기로 했다. 애써 괜찮아지려고, 괜찮지 않은데 괜찮으려고 애쓰다가 더 스트레스를 쌓는 일은 안 하기로 했다.


    그렇게 요즘 내 마음은 회색인데, 어딘가에서 빛이 조금 들어오는 밝은 회색이다. 슬프고 힘든 부분도 분명 있지만, 왠지 모르게 미소가 뗘지는 그런 형국이다.


    그래서 제목으로부터 아주 멀리 돌아 돌아온 것 같지만, 사실 아니다. 이 질문에 대한 답 하나를 위해 이렇게 길게 길게 글을 썼다.


    "한 달 동안 휴양을 떠난다면 혼자 갈 건가요?"

    에 나는 '네'라고 대답하고 싶다.


    늘 사람들에 둘러싸여 있는 것을 좋아하고, 누구 와든 이야기 나누는 것을 좋아하는 성격 탓에 막상 혼자 떠나면 외로움을 또 탈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요즘의 나는 '내 마음 들여다보기' 연습 중이다.



    한 달이라는 긴 시간 동안 휴양을 떠나게 된다면, 내 깊은 외로움, 괴로움, 누군가에게 기대고 싶은 마음, 벅참, 희열, 그 모든 감정들.. 내 가슴이 터지도록 느끼고 받아들이기 위해 그렇게 한번쯤은 혼자이고 싶다. (그러다 또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의 소중함을 뼈저리게 알아차리며, 그들의 품으로 돌아와 마음 한가득 쌓인 그리움과 사랑을 퍼붓게 되더라도 말이다.)






비저너리의 크루 에세이 시즌 2부터는 비저너리 달력 뒤에 있는 그 달의 질문 중 하나를 골라한 주에 한 번, 월요일 아침, 크루들의 진솔한 답변으로 채워 나갑니다. :) 이 글을 보시는 여러분들도 바쁜 일상 속 생각에 잠기실 수 있도록 최근 한 달(4개)의 질문들을 공유합니다. 그리고 이번 한 주는 다음 질문 중 하나를 깊이 생각해보면서 어딘가에 답해 보는 시간을 갖는 건 어떨까요?



요즘의 나에게 휴식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나요?

[에세이 67] 내면을 향한 여행_Ad Astra


우리에겐 휴식이 왜 필요할까요?

[에세이 66] 거북이 달린다

[에세이 66] 거북이 달린다

•뭘 했을 때 가장 '잘 쉬었다'라고 느끼나요?

[에세이 65] 충전기가 없으면?


•새로운 휴식 계획을 세워볼까요?

[에세이 64] 설레는 마음으로 휴식 계획을 세워보자.



한 달 동안 휴양을 떠난다면 혼자 갈 건가요


* 비저너리는 일론 머스크를 만나 인터뷰하러 가겠다고, 다 같이 우주여행을 가자며 출발한 비영리 소모임(이자 우주 먼지들의 모임)입니다. 우리들의 진솔한 이야기를 풀어놓아 청춘들을 응원하자는 마음에서 사이드 프로젝트로 브런치와 팟캐스트로 소통하고 있습니다 :) 이런 청춘들에게 커피 값 한 잔 후원해 주시고 싶다면? 사양하지 않겠습니다~ (찡긋) 늘 감사하고, 좋은 하루 보내세요!

> 신한은행 373-04-247722 (오윤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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