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로이의 크루 에세이 07] 죽음이 올 때 당신은 어디에 있고 싶나요?
흔히들 인생은 모험과 도전의 연속이라고 한다. 우리는 살아가며 희로애락을 느끼며 수많은 일들을 만난다.
그리고 인간은 인생의 끝에서 '죽음'이라는 그 누구도 이야기를 들려줄 수 없는 미지의 영역으로 홀로 모험을 떠나게 된다.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그 여행의 시작에서 조금 더 이 땅에 남겨질 이들에게 배웅을 받으면서.
복잡할 것 없다. 사실 구체적인 장소는 중요치 않다. (지극히 주관적으로) 신앙이 있는 사람으로서 떠나가는 이는 오직 기쁨이 있는 곳으로 돌아간다고 믿는다. 그래서 무엇보다 내가 떠나고 이 땅에 남겨질 이들이 마음의 죄책감을 덜하고 최선을 다했다며 위로를 받을 수 있는 장소면 충분할 것 같다. 나중에 다시 만나자며 나에게 인사를 해줄 수 있는 그런 장소 말이다.
2년 전 외할아버지를 떠나보내면서 엄마가 가장 힘들어했던 부분은 할아버지가 임종을 맞으신 장소였다.
할아버지는 노환이 오시면서 6.25 전쟁 후유증으로 받은 수술 부위로 인해 몸의 기능이 급격히 나빠지셨다. 그리고 60년도 더 전에 자신이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죽여야만 했던 어린 인민군의 얼굴이 꿈에 계속 나온다고 하셨다. 그럴 때면 새벽마다 잠자리에서 일어나셔 다시 쉬이 잠에 들지 못하셨다.
할머니도 더 이상 할아버지의 병간호를 밤낮으로 할 수 있는 연세가 아니셨다. 그렇게 두 분이 매일 힘들어하시며 지내 오다 한 여름이 오자 그만 할머니가 쓰러지셨다. 더운 여름 할아버지의 병간호를 하시다 지쳐 쓰러지신 것이다. 그렇게 할머니가 입원을 하신 사이, 할아버지는 우리 집 근처 요양원으로 자리를 옮기셨다.
병원에 가실 때마다 늙은이가 냄새가 나면 안 된다며 할아버지는 항상 목욕을 깨끗이 하셨다. 손톱과 발톱을 깔끔히 자르시고 머리에는 기름을 발라 단정히 옆으로 넘기셨다. 할아버지와 할머니 두 분의 원체 깔끔하셨던 성격 때문에 외가댁 바닥에 머리카락 한 올 떨어져 있는 것을 본 적이 없다.
그렇기 때문일까 할아버지는 요양원 생활에 쉽게 적응하지 못하셨다. 언제쯤이면 다시 집으로 돌아갈 수 있냐고 우리에게 항상 물어보셨다. 자신의 단정치 못한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주시는 것도 싫어하셨다. 마음이 약해지실 때마다 하셨던 이야기에 엄마가 많이 힘들어하셨다.
그렇게 반년이 지난 3월의 어느 날, 할아버지는 당신의 원래 고향으로 다시 여행을 떠나셨다. 어른들과 친척 동생들이 한 자리에 모이고 3일을 울고 웃으며 할아버지를 잘 배웅해 드렸다. 우리 할아버지 때문에 내 이름 석자도 현충원에 있다며 할아버지께 자랑스럽다고 자주 오겠다며 인사도 드렸다.
그렇게 슬픔을 뒤로하고 다시 일상생활로 돌아온 어느 날, 잘 지내고 있는 줄 알았던 엄마가 아직도 마음의 죄책감을 덜어내지 못한 사실을 알게 되었다. 자신이 조금 더 무리를 해서라도 외가댁으로 다시 모셨어야 했는데 그렇지 못했다며 여전히 힘들어하셨다. 할아버지가 다 괜찮다며 잘 지내고 있다며 엄마의 꿈에 나타나시기 전까지 그 힘듦은 엄마 마음 한켠을 차지하고 있었다.
그때의 경험으로 죽음에 대한 생각을 나뿐만 아니라 남겨진 이들에 대해서도 해보게 된 것 같다. 언제가 되었든 내가 떠나가는 날에 나를 위해 울어줄 사람들이 너무 길게 슬퍼하지 않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인생의 마지막 여행인 죽음앞에서 나 자신도 그리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도 다시 만날 날을 기약하며 그렇게 웃으며 헤어지기를 빌어본다.
죽음이 올 때 당신은 어디에 있고 싶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