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인의 크루 에세이 06] 내 삶이라는 자서전에 책갈피가 꽂혀있다면
할머니가 죽은 이모의 번호를 지워 달라고 했다.
발인도 얼마 지나지 않은 때였지만 할머니의 목소리는 사뭇 강경했다. 그렇게 몇 번을 내게 이모의 번호를 지워 달라고 했다. '이제 받을 사람도 없지 않냐'며. 언뜻 보기에는 덤덤하다 못해 냉철하게까지 보이던 그 모습에서 이름 모를 감정이 느껴졌다. 잔잔해 보이지만 조금만 더 가면 와르르 무너질 것 같은 것. 마치 이모 영정 사진 앞에서 넋을 놓고 울던 할머니 모습 같았다. 그래서 매번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며 이모의 번호를 지울 수가 없었다. 그렇게 이모의 번호를 지우지 못한 채로 넉 달이 넘는 시간이 지났다.
나는 이모의 죽음보다 할머니와 엄마의 괴로움이 더 힘들었다.
갑작스러웠고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사고였기에, 여든을 훌쩍 넘기신 할머니가 너무 놀라지 않게 이모의 죽음을 전달하는 것이 모두의 숙제였다. 그리고 할머니와 함께 사는 나는 집안의 모든 어른들이 일을 수습하는 이틀간 무슨 일인지 묻는 할머니에게 이모는 아직 병원에 있어서 아무도 정확하게 모른다는 말만 반복했다. 그렇게 죄를 짓는 것 같던 시간들이 지나고 서울에 이모의 빈소가 마련된 날. 아무도 전하고 싶지 않던 큰 딸의 소식을 들은 할머니는 체념 한 듯 옷을 갈아입으셨다.
삶이라는 게 때로 참 허망하다.
공들여 세운 탑이 무너지듯 한 사람의 생애가 와르르 무너지는 것을 보면 더욱이 그렇다.
그 무너짐은 보통 예측하지 못한 때에 찾아와 한 사람은 물론 주변 사람들까지 무섭게 헤집고 가버리는데 마치 태풍이 불고 남겨진 마을 같다. 다 망가졌는데 무엇부터 손대야 할지 가늠조차 되지 않을 때면 그냥 허망한 마음 그대로 주저 않고 싶어 진다. 그리고 그 조용한 마을에 오래도록 앉아있다 보면 누군가에 의해 혹은 내 손으로 마을은 조금씩 복구된다.
하지만 그 어느 마을도 예전 같지는 않았다.
해가 갈수록 누군가의 '죽음'이라는 것이 가까운 일로 다가온다. 어릴 때에는 장례식에 가더라도 멋모르고 절을 하고 사람들이 의외로 유쾌하다고 생각했다면, 이제는 상주의 얼굴을 보며 터지려는 울음을 꾹 참는데 온 신경을 기울이다 진이 다 빠져버린다.
나이를 한 살씩 먹는다는 건 속에 폐허가 된 마을이 조금씩 늘어나는 것 같다.
올 추석에 이모가 없는 첫 명절을 맞이하며 우리는 그런 이야기를 했다.
꼭 이모가 잠깐 어디 여행이라도 간 것 같다고, 올해만 못 오는 것 같다고. 아마 다들 같은 동네에 살며 한 주에 한 번은 꼭 마주치던 이모가 너무 익숙해서 그 기억으로 다들 버티고 있나 보다. 너무 익숙한 기억이 머릿속을 꽉 부여잡고 있어서 그 기억들이 일꾼처럼 일어나 폐허가 된 마을을 다듬고 있나 보다. 그렇게 우리는 큰 빈자리에도 아무도 울지 않고 명절을 보낼 수 있었다.
누군가 내 삶이라는 자서전에 책갈피를 꽂는다면, 아주 익숙하고 좋은 기억으로 남을 순간이면 좋겠다. 너무 특별하지도 엄청나지도 않지만 꼭 매일 일어날 일처럼 익숙해서 소중한 사람들이 마지막 페이지를 닫고도 엉엉 울지 않도록, 폐허가 된 마을에 일꾼이 되어주는 그런 페이지면 좋겠다.
내가 아주 엄청난 일을 해내고, 삶의 터닝포인트가 되는 멋진 순간을 여럿 마주한다 하더라도 그런 위대한 순간보다는 모두의 기억에 하나쯤 있을 법한 에피소드를 살짝 접어두고 많은 이들이 두고두고 읽어볼 수 있기를. 사람은 생각보다 쉽게 죽고 떠나가니까. 그리고 우리의 시간은 해가 갈수록 빠르게 지나가고 돌이킬 수 없으니 아주 좋은 기억으로 조금씩 무너진 마을을 고칠 수 있길.
내 삶이라는 자서전이 있다면, 어떤 부분에 책갈피가 꽂혀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