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취향이 사치라도 내 양심은 사치가 아니길

by shadow 모과

무언가를 선택하거나 결정할 때 당신에게 가장 중요한 기준은 무엇인가? 혼자 있을 때의 선택과 타인과 같이 있을 때 선택이 달라지는가? 편한 사람들과 있을 때와 어려운 사람들과 있을 때 선택이 달라지는가? 질문마다 고려해야 할 요소들이 달라질 것이다. 혼자 있을 때는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나만의 기준들만 고려하면 된다. 타인과 함께하면 고려해야 할 것이 더 많아진다. 나의 욕구와 타인의 욕구를 고려해서 합의가 필요하다. 친하고 편한 사람들이라면 내 의견을 편하게 말할 수도 있지만, 어색하거나 어려운 사람들이라면 양보하거나 원치 않더라도 상대의 의견에 따라야 할 수도 있다. 언제나 양보하는 사람이 있고, 절대로 양보하지 않는 사람도 있다. 양보할 수 있는 부분도 있고, 절대로 양보할 수 없는 부분이 있을지도 모른다.

나에게는 절대로 양보할 수 없는 기준이 있다. 나는 비인간 동물을 착취하는 사업을 불매하는 비건이다. 사람들은 절대로 양보할 수 없는 기준을 가진 내가 매우 까탈스럽고 매사에 주장이 강하다고 생각하지만, 나는 주장이 강한 사람과 거리가 멀다. 절대로 양보할 수 없는 기준을 가진 사람은 그 기준을 지키는데 모든 에너지를 다 써야 하기에 매사에 강한 주장을 할 에너지가 없다.

현재 한국 사회에서 비건으로 외식을 하려면 먼 곳까지 찾아가거나 한정된 메뉴를 반복해서 먹어야 한다. 비건으로 먹을 수 있다면 메뉴나 식당은 상관없다. 먹을 수만 있다면 다행이다. 맛도 상관없다. 배를 채울 수 있다면. 가끔 메뉴가 부실하거나 계속 같은 메뉴에 질려 아쉬워하는 모습을 보이면 사람들은 의아하게 쳐다본다. 넌 왜 비건인데 취향이 있냐? 먹을 수 있음에 감사히 여겨야 한다는 것이다.

비건인 나에게는 취향이 사치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비건을 취향으로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편식을 심하게 하는 사람이라거나 유난을 떤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다.

“조금 들어간 건데 그냥 먹어.” “대충 골라내고 먹어.” “너 안 먹는다고? 앗싸. 내가 먹을게! 왜 빼? 나 줘!”

나에게는 정의의 문제고 사회 구조의 문제인데 취향의 문제로 여기고 개인의 문제로 축소하는 말들이다. 비건은 동물을 착취하는 사업을 소비하지 않겠다는 불매운동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그저 개인을 볼 뿐이다.

단체 생활을 하면 사람들은 비건인 내가 따로 준비해야 한다고 말한다(실제로 따로 준비한다). 그러나 조금 더 생각해 보면 내가 먹는 비건 음식은 모두가 먹을 수 있지만 비건은 동물성이 들어간 논 비건 음식을 먹지 못한다. 단체 생활을 할 때 나에게 할당된 음식이나 재료는 공공재가 되어 배가 고팠던 일들이 무수히 많다. 사람마다 좋아하는 것도 다르고 못 먹는 것도 다른데, 비건이라고 하면 특이하고 유난인 사람이 된다. 소수인 사람이 모든 것을 감수해야 한다는 고정된 믿음은 깨기 어렵다.

알레르기와 비교해서 이런 질문을 들은 적도 있다. “비건은 동물성을 안 먹는다곤 하지만 알레르기는 아니니까 다른 사람 없을 때는 조금 들어간 것 정도는 먹나?” 정말 궁금하다는 듯이 묻는 말이 무례하다고 느꼈지만 웃으며 친절하게 아니라는 대답을 했다. “못 본 척할 테니까 오늘만 먹어요.”라고 농담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묻고 싶었다. 당신의 정의는, 신념은 탈부착이냐고.

가끔 나를 위해 사 왔다거나 만들었다며 음식을 줄 때가 있는데, 뭐가 들어갔냐고 물어보면 “아무것도 안 들어갔다/채소밖에 없다”라고 대답한다. 이때 더 물어보면 불쾌해하기 때문에 불안해하며 한 입을 먹는 순간 맛이 이상해서 물어본다. “이 음료 정말 야채만 들어간 것 맞아요?” “그럼요. 아보카도랑 바나나, 그리고 우유 조금.” 순간 표정이 확 굳었다. 이미 목구멍으로 넘어간 액체를 게워 내려 그 사람 앞에서 바로 토해내고 싶은 것을 참아내고 다시 설명한다. 그러면 조금도 미안하지 않은 표정으로 “우유도 안 되나?” 하며 자신의 성의를 무시하는 내가 유난이라는 표정을 하곤 돌아선다. 먹어도 아무렇지도 않으면서 유난스럽다는 듯한 반응을 볼 때마다 내가 알레르기였다면 저 얼굴에서 죄책감을 볼 수 있었을까 생각하며 화가 난다.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무시해도 되는 게 아니다. 눈에 보이지 않아도 내 마음에 끈덕지게 달라붙어 있다. 양심이다. 누가 보고 있던 보지 않던 나의 가장 중요한 가치다.


이런 이야기를 잘 하지 않는데 그 이유는 첫째, 나에겐 너무 중요해서 어떻게 말해도 부족한 느낌이 들고 둘째, 사람들이 깊게 궁금해하지 않는 주제이면서 셋째, (가장 중요한 이유인데) 내 삶의 태도를 적는 것만으로도 꽤 많은 사람들이 불쾌감을 표출한다는 것이다. 쓰는 사람도 읽는 사람도 방어적인 태도를 취하는 주제라는 생각이 든다. 사람들은 주류의 사고/행동 방식에서 벗어나는 것만으로도 불편해한다. 나의 경험을 내 입장에서 서술한 것만으로도 마치 내가 다른 이들을 비난한 것처럼 방어적인 태도를 보이며 방어가 지나친 나머지 공격을 한다. 먹고살 만하니 동물 권리도 챙긴다며 배가 불렀다는 조롱도 많이 듣는다. 지나가듯 한 번씩 하는 무례한 농담과 질문 조롱이 나에겐 계속 쌓여간다. 익숙해지기도 하지만 화가 나거나 답답해질 때도 많다. 내게 취향은 사치라도 내 양심마저 사치가 되지 않길 바란다.

25.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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