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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an Jan 25. 2022

잠시만 안녕

일상이 괴롭기만하다면 잠시 쉬어갑시다. 크로아티아 여행기(1)

밖은 어두운 밤이었지만 공항 안은 형광등 빛으로 환했다. 수하물을 부치고 탑승수속을 밟고 나니 혼자 떠나는 여행이 실감이 났다. 게이트로 이동해서 대기 의자에 앉아있으려니 머릿속으로 숫자가 떠 다녔다.


7개월. 1년 11개월. 3개월.
스물셋에 대학을 졸업하고 7개월 간 회사에 들어가기 위한 준비를 했고, 1년 11개월 동안 직장생활을 했고, 퇴사했다. 그리고 3개월이 지난 오늘 나는 혼자 여행을 떠난다.
 
사내 문화 기획을 꿈꾸며 인사팀에 들어왔지만 막상 맡은 일은 급여관리였다. 숫자는 매달 틀렸고, 해명하느라 바빴고, 수습하느라 애를 먹었다. 사수 눈치 보랴 직원들 문의받으랴 일하랴 살은 살대로 빠지고 스트레스는 스트레스데로 받아서 쉬는 날도 출근 걱정에 잠을 못 이뤘다. 내가 하지 않은 실수도 내가 했다고 고백할 정도로 공포에 떨며 회사 생활을 했다.

퇴사하고 이틀을 앓아누운 후에야 일상생활을 할 수 있었다. 몸이 회복되니 어디론가 떠나고 싶어 져서 여행할 곳을 찾아보다가 동유럽에 위치한 '크로아티아'라는 곳에 관심이 생겼다. tvN에서 '꽃보다 누나'라는 프로그램을 방영할 때 아름다운 도시 경관이 주목받으면서 한국인들도 '크로아티아'로 관광을 많이들 떠났는데, 나는 프로그램이 종영되고 시간이 조금 흐른 후에야 여행을 떠날 여유가 생겨 가보고 싶어졌다.

우선 여행서적을 사서 '크로아티아'에 대한 정보를 모으기로 했다. 비행기 티켓 예약부터 숙소, 관광지, 이동수단, 맛집, 언어까지 미리 찾아볼 수 있는 것들은 모두 알아보고 예약했다. 여행의 목적은 '치유'였기에 걸림돌이 될만한 것들은 모두 제거해야만 했기 때문이다. 계획된 일정대로 되지 않으면 불안해하는 내 성격을 위해 안전장치들을 마련해두어야 했다.

여행 일정은 자그레브-> 플리트비체-> 자다르-> 스플리트-> 흐바르 섬-> 두브로브니크의 순서로 정하고, 이동수단은 버스와 트램을 타거나 도보였다. 차를 빌려 운전하면 편했겠지만 운전면허가 없어서 그럴 수가 없었다.

자그레브 공항에 도착해 캐리어를 끌고 '쿠나' 화폐로 환전을 했다. 기계 앞에서 헤매는 나를 한국인이 알아보고는 도움을 주어 첫 번째 난관을 통과할 수 있었다. 낯선 사람에게 선행을 베푸는 일이 쉽지만은 않을 텐데 그의 친절에 여행의 시작을 기분 좋게 할 수 있었다.

공항 바로 건너편에 '자그레브' 시내로 향하는 버스를 발견해 캐리어를 챙겨 올랐다. 차 안에는 다양한 인종들이 있었다. 낯선 땅에서는 한국인이 가진 검은 눈동자보다는 회색, 초록, 파랑의 눈동자가 더 많았다. 창가에 자리를 잡고 앉자 나와 인종이 다른 외국인이 옆자리에 착석했다.

그는 영어로 말을 건넸고, 나도 간단히 인사를 했다. 차가 출발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끝없는 옥수수 밭이 펼쳐졌다. 그는 옥수수를 좋아하냐고 물으며 나에게 옥수수의 유래, 종류의 것들을 설명해주었는데, 언어의 한계에 부딪혀 그의 말을 전부 이해할 수는 없었다. 


 그렇다 하더라도 하늘은 맑았고 낯선 이의 관심이 싫지는 않았다. 혼자 여행 온 내가 기특하기도 한 마음에 얼굴에는 웃음꽃이 피어나고 있었다. 3개월 전만 해도 상상할 수 없던 일이다. 회사 안에서는 잘못된 부분을 들춰내고 수정하고 사과하느라 바빴고, 잘한 부분은 의례 그런 것인 양 넘겨왔기 때문이다. 스스로에게 칭찬을 해준 적이 언제였던가. 메말라있던 기쁜 감정이 다시 살아나는 듯한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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