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테의 '파우스트'를 읽고
여기 늙은 학자가 있다. 그는 대학에서 신학을 공부해 박사 학위를 땄다. 의학도 연구해 의학박사가 되고, 수학과 천문학에도 관심을 기울여 연구했다. 그리고 마술까지 손을 뻗는다. 세상에서는 이미 존경받는 학자이자 교수, 천재로 칭송받고, 재력도 겸비했지만 그는 끝없이 욕망한다. 배움을 통해서 깨닫는 것에는 늘 부족함이 따르고, 만족할 수가 없었다. 결국 그는 마법을 통해 악마를 불러내고, 그와 거래를 하게 된다.
천재 학자 파우스트는 자신이 일생동안 연구했던 우주의 섭리, 법과 질서와 규칙, 자연의 원리가 모두 허울에 불과한 소용없는 것이라 느끼고 무력감과 좌절감에 빠진다. 절망감에 빠져 모든 의욕을 상실한 그는 자신의 영혼을 걸고, 악마와 약속한다.
내가 어느 순간을 보고, 섰거라, 너는 정말 아름답구나 하고 말한다면, 너는 나를 꽁꽁 묶어도 좋다. 그때는 내 죽음을 위로하는 종이 울려도 좋다. 시계는 걸음을 멈추고, 바늘이 떨어질 것이다. 내 일생은 그것으로 마지막인 것이다!
메피스토펠레스, 악마는 파우스트의 순수한 영혼을 죽음 이후에 삼켜버릴 계획으로 파우스트와 계약을 한다. 파우스트를 타락시켜 자신의 종으로 삼을 묘략을 세우면서 말이다.
저놈들이 신들의 영역까지 도달하려고 애를 쓰지만, 결국은 제 자신 밖에는 닮을 수 없는 저주받는 것들이지.
전체를 파괴할 수는 없으니 하나씩, 조금씩 파우스트를 향락의 세계, 탐욕의 세계, 물질의 세계, 관능의 세계를 맛보게 한다. 파우스트는 그때마다 아름다움에 홀려, 사랑에 빠져, 권력과 재력에 취해 나름의 재미를 본다. 그러나 그때마다 그의 영혼은 만족을 모르고 방황하며, 더 나은 것을 향해 나아가려고 한다.
파우스트는 해안에 신천지를 건설하면서도, 그 마음에 흡족함이라곤 맘 놓고 누리지 못한다. 망루에 방해물이 되는 오두막집 한 채 때문에 신천지가 완성되지 못했다는 결핍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부귀한 몸인데도 부족을 느끼는 일처럼 우리를 가혹하게 괴롭히는 것은 없다.
결국, 노부부가 살던 오두막집은 불에 태워지고, 파우스트는 자신의 욕심 때문에 비롯된 일이라며 자책하고, 괴로워한다. 그리고 일생 최후의 발언을 한다.
자유와 생명은 날마다 싸워서 차지하는 자만이 그것을 누릴만한 값이 있는 것이다. 그러니 여기서는 아이고 어른이고 노인이고 간에 위험에 둘러싸여 유익한 세월을 보내는 것이다. 나는 그러한 인간의 집단을 바라보며 자유로운 땅에 자유로운 백성과 살고 싶은 것이다.
그러면 나는 순간을 향해 이렇게 부르짖어도 좋을 것이다.
"멈춰 서라, 너는 진정 아름답구나!"
내가 이 세상에서 남겨 놓은 흔적은 이제 영구히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이런 드높은 행복을 예감하면서 나는 이제 지고의 순간을 즐기는 것이다.
파우스트는 끊임없이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고자 했다. 그의 열망은 순수했다. 진리를 향해 닿아보려는 그의 열망은 투쟁적이었다. 싸워서 갖고, 이겨서 얻었다. 악마의 힘을 빌려 얻게 된 행운일지라도 그의 순수한 영혼, 더럽혀지지 않는 진리 탐구의 욕망은 칭찬할 만하다. 비록 그 과정에 피해자들이 속출되긴 했어도 영혼의 파멸은 아니었으니 불행 중 다행이다.
괴테가 일생을 바쳐 쓴 명작 '파우스트'는 단 한 번 읽음으로써 완벽히 이해하기엔 나에겐 무리였다. 처음부터 끝까지 한번 눈으로 읽으며 찾아낸 명문장들은 독서노트에 저장해 두고, 곱씹으며 그 숨은 의미를 찾아볼 생각이다. 시간이 조금 지나서 두 번째, 세 번째 책을 볼 때는 책 한 권을 관통하는 주제를 찾아내고 싶다. 오늘 내가 찾은, 가장 기억하고 싶은 부분들로, 책의 독후감을 작성해보았는데, 사실 책을 완독한 기쁨에 쌓여서 감상 포인트는 적절히 적어내지 못한 것 같다.
그러나, 애초의 목적이 내게 와닿았던 부분, 책이 나에게 말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이었을까에 대한 요약이었으므로 자축의 의미로 이 글을 남겨두려 한다. 글의 후미에 악마와 천사가 파우스트의 영을 서로의 세계에 데려가려 다투는 모습이 나오는데, 결국 천사가 파우스트의 영을 들고 올라간다. 악마는 패배를 인정하며, 이런 말을 한다.
철갑을 둘렀다는 악마란 것이 천박한 욕정과 어리석은 연정 때문에 망했다니 하지만 산전수전 다 겪은 내가 이런 어리석고 허망한 일에 걸려들었으니 결국 내가 걸려는 어리석음이란 정말 어처구니없는 것이로군.
메피스토는 어쩌면, 선을 설명하기 위해 영원과 사랑을 나타내기 위해 필요악적인 존재라고 할 수 있다. 빛과 어둠, 선과 악, 상과 벌, 칭찬과 비판. 반대되는 속성이지만 하나가 없으면 다른 하나는 존재가치를 잃는 것.
메피스토가 파우스트에게 처음 그 존재를 드러냈을 때, 소개말로 그를 설명해보자면,
항시 악을 원하지만, 그러나 항상 선을 행하는 그런 힘의 일부분이오. 나는 항시 부정만 하는 영이오. 나 같은 놈은 처음에는 일체였던 것의 일부분의 또 일부분이지요. 빛을 낳은 어두움의 일부분이지요. 빛은 물체에 묶여 떨어지지 않으니 별 수 있소. 그러나 물체는 빛의 진로를 막아 버리지요. 그러니까, 오래지 않아 빛은 물체와 더불어 멸망하고 말 것이오.
비약일 수 있지만, 파우스트가 악을 보는 관점은, 스스로 설 수 없는 존재, 선에게 굴복당하고 말 존재, 선과 대립점에 서 있지만 선에게 유혹당하고, 끝내는 통합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담겨 있지 않을까?
파우스트는 자신의 목적을 위해 메피스토를 이용하고, 메피스토도 파우스트를 이용했다. 파우스트는 메피스토의 몇 단계의 시험에도 불구하고, 마음을 뺏기지 않는다. 흔들릴지언정 본래의 목적을 잃고, 쾌락적이고 황홀한 현실에 도취되어 찾으려 했던 것을 잊지 않는다. 그리고, 순수하게 본래의 목적을 이루어내고, 그의 영혼 또한 영원한 낙원에 이른다.
신은 인간에게 많은 것을 허락했다. 악마가 신의 허락을 받고, 성서에 나오는 욥을 시험했듯, 파우스트에서도 동일하게 적용되었다. 그러나 순수한 영혼은 진리에 복종한다. 무엇도 흔들 수 없는, 누구도 망가뜨릴 수 없는 근원 그 자체에 집중한다. 고통에 환락에 안주하지 않는다.
파우스트를 읽으면서 자신을 돌아봤을 때, 나는 무엇에 열을 내고 싸워가며 얻으려 노력했을까에 대한 반성을 할 수 있었다. 가만히 있어서는 진리에 닿을 수 없다. 파우스트의 말대로 자유와 생명을 위해 피 터지며 싸워야 그 가치와 소중함에 대해 알게 되는 것이다. 계속 생각하고, 많은 것을 경험하고, 변화하고, 나아가야 한다. 같은 곳에 머물면서는 더 나은 것을 얻을 수 없다.
내 인생철학이었던 가만히 있으면 중간이라도 가지 가 한 순간에 와르르 무너지는 기분이었다. 감나무 밑에서 감 떨어지기를 입 벌 리며 기다렸던 내 허송세월이 낯 부끄러워지는 순간이다. 이제부터라도 공로는 행복과 연결되어 있다는 사상을 뇌 속에 박아서 부지런히 살아보고자 하는 의욕이 들었다. 파우스트가 찾으려 했던 영원의 행복, 죽음 바로 직전에서 찰나로 깨달았던 단말마의 비명과도 같았다. 끊임없이 움직이고, 생각하고, 싸워라. 절대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평화주의자인 내게 하나의 자극이자 도전이다. 이 책을 변화의 기점으로 삼아 쌈닭 본능을 일깨워 봐야겠다. 적당히, 어물적 넘어가는 태도도 고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냥 넘기면 발전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