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만나요_07화

by Breeze


“독다방에서 3시에 만나자”


한국에 돌아와 오랜만에 학교 동기인 지희를 만나기 위해 희수는 신촌 다방에 앉아 블랙 커피를 시켜놓고 창밖에 지나다니는 사람들을 보고 있다. 생각보다 30분이나 일찍 도착해 바깥 구경에 여념이 없다. 프랑스에서 서울로 돌아 온지 이제 일주일 됐을까, 이제서야 서울에 다시 적응되고 있는 참이다. 불과 2년만인데도 새삼 신촌에 사람이 이렇게 많았나 싶다. 커피와 함께 나온 모닝방에 쨈을 발라 먹으며 본인이 가기전에 있던 가게가 아직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괜찮아 별 문제없을 거야. 한번만 믿어줘”


“아니 그렇게 말해도....”


“작년 10월에 발표된 유신, 그리고 이번 1월에 긴급 조치. 이렇게 가다간 정말 말 한마디 편히 하기 힘든 세상이 올 거야. 너 선생 될거 잔아. 애들한테 이런 지금 세상이 맞다고 가르칠 거야? 아니지? 그럼 적어도 우리는 지금 가만히 있으면 안 되는 거 아니야? 정말 부탁이야 큰 거 안 바래”


“,,,”


희수의 뒷자리에 앉은 남학생들의 대화다. 비록 큰 소리로 하는 대화는 아니었지만 의자가 연결 돼있어 의식하지 않아도 대화내용이 귀에 들어왔다. 대화내용을 들으니 어떤 자리인지 어느정도 짐작이 된 희수는 가만히 커피를 홀짝이며 안 그런 척 이어질 대화에 집중했다. 두 명은 설득하고 한 명은 계속해서 곤란해하고있다. 확실한 거절의 말은 차마 뱉지 못한 채


“재학아 우리처럼 같이 시위하고 하자는 게 아니야 그냥 유인물에 실을 글만 써주고 원하면 넌 이름도 안 넣어도 돼.”


“글을 나만 쓰는 것도 아니고 국문과 애들도 있잔아 근데 왜?”


“아니 없어 부탁할만한 사람은. 너 밖에 없어 정말. 도와줘라. 부탁할게”


“….”


“나도 부탁할게”


재학은 앞에 두명의 동기의 말에 정신을 못 차리고 있다. 전역하고 학교에 돌아와 일을 하며 복학할 준비를 하는 차에 무사히 제대했으면 얼굴 보자는 약속에 나와보니 지금 이 상황이다. 요즘 세상이 워낙 시끌시끌하고 복잡하다는 것은 재학도 알고 있다. 눈 앞의 두 명이 대학생이 가져야 할 소명의식에 불타고 있다는 것도. 같은 세대에 노동자로 일하는 사람도 많고 그들의 희생으로 우리가 대학에 다닐 수 있다는 것도, 그러므로 대학에 다니는 것이 엄청난 특권이라는 그들의 말을 이해하고 어느정도 공감하는 부분이다. 하지만 그렇다 해서 사회 모든 이들의 대변인이 되어 목소리를 내고 거기에 주체가 되는 것은 다른 문제다. 적어도 재학에겐. 그러한 소명의식 때문에 일이 잘못되면 잘 다니는 대학도 못 다니게 되고 고생해서 대학 보내 놓은 어머니의 마음을 저버리게 될 텐데 그럴 정도의 시대정신과 희생정신이 재학에겐 없었고 그게 잘못이라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일단 생각은 해볼게”


하지만 주먹을 불끈 쥐고 열의에 차 열변을 쏟아내는 동기들을 앞에 두고 자기는 관심 없다, 괜히 엮여서 문제 되기 싫다는 말이 입 밖으로 차마 나오지 않았다.


“꼭 좀 부탁할게.”


“희수야~!”


때마침 본인을 발견하고 손을 흔들며 다가오는 지희를 보며 희수는 대화에 신경을 끊었다. 속으로 재학이라고 불린 사람이 답답해보이지만 꽤나 곤란하겠다 생각하며


“얼마만이야 이게. 잘 지냈지?”


“그럼 난 잘 지냈지 한국에 언제 돌아온 거라고? 저번 주?”


“응 저번주에 왔어.”


희수의 대학동기 지희가 반갑게 인사하며 희수 맞은편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여자치곤 꽤나 큰 키에 어깨까지 오는 단발머리 검은색 체크무늬 블라우스와 선글라스까지 누가 봐도 부잣집 딸 같은 행색이다.


“그럼 이제 아예 들어온 거야? 또 안나가? 원래는 좀 더 길게 있을 예정이었잔아.”


“응 아마 그럴 거 같아.”


“왜? 남들 다 가고 싶다는 프랑스까지 유학 가서 도중에 돌아오고. 무슨 일 있었어?”


“으응.... 뭐 그냥 좀. 힘들 더라고 집 밖에 나가니까”


희수는 오랜만에 만나도 참 변함없는 친구의 모습에 어색하게 웃으며 커피를 홀짝인다. 지희는 본인이 구김살이 없어서 그런가 상대방이 들으면 곤란할 질문을 참 악의 없이 하곤 했다. 별로 동기들에게, 친구들에게 환영 받는 친구는 아니다. 본인은 그걸 알면서도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눈치이고.


“그럼 우린 가볼께 재학아.”


“으응...”


그때 뒤에서 대화를 나누던 이들 중 설득하는 쪽이었던 남자 두 명이 일어나 희수의 테이블을 지나쳐 지나갔다. 곧이어 재학이라 불리던 우물쭈물하게 거절 못하던 남자도 주섬주섬 짐을 챙기더니 옆을 지나간다. 큰 키에, 약간 구부정한 자세, 멋이라 곤 부릴 줄 모른다는 듯 단정한 머리에 체크 남방까지 재학을 바라보는 희수가 느낀 점은 단 한가지였다.


‘참 착해보이고… 촌스럽네.’


지나가는 재학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 유심히 바라보고 있다.


“아는 사람이야?”


“응? 아 아니 아니야”


재학이 완전히 시선에서 사라지자 그제서야 지희를 다시 바라보며 대화를 나눈다. 금세 또 재학의 모습은 기억에서 사라져 버린다.


“근데 너 가신 사이에 너희 아버지 완전 대박 나셨다며? 우리 엄마가 그러던데”


“대박일 거까지야… 내가 대박난 것도 아니고 하하”


“에이 그래도 아버지가 계속 잘 되시니 너도 유학도 맘 편히 다녀오고, 그렇게 갔다 가도 도중에 오고 싶다고 올 수도 있는 거 아니겠니?”


“그렇지 뭐....”


희수의 아버지인 경철은 현재 철강회사를 운영중이다. 50년대 본인이 태어난지 얼마 안됐을 전후(戰後)에 구로 봉제공장으로 시작하여 중공업 회사를 인수한 뒤 타고난 사업수완으로 계속해서 사업을 확장 시켜왔다. 그러다 희수가 유학을 떠나고 얼마 안가 국가주도 방위산업체에도 지정되며 최근 빠르게 회사가 성장하며 많은 돈을 벌었다. 심심찮게 정치계 얘기도 나오는 듯하다. 이 모든 게 희수에겐 대단한 괸심거리까진 아니다.


“이만 들어가자 오랜만에 사람 많은데 나와있었더니 피곤하네.”


이후 한두 시간가량 서로 근황을 묻고 수다를 떨다 어느정도 대화를 주고 받았다 생각한 희수가 지희에게 말한다.


“벌써? 이따 동기들 만나기로 했는데 잠깐 얼굴 보지 않고”


“아니야 오늘은 이만 들어 갈게 어차피 학교 복학하면 얼굴들 볼텐데 뭐”


아서라, 그나마 친하다는 지희마저 본인이 유학을 조기에 돌아온 거가지고 대번에 이상하다 얘기하는데 주변 친구들은 지희처럼 직접적으로 말은 하지 않아도 뒤에서 얼마나 씹어댈 것인가. 생각만으로도 지친 희수는 내심 고개를 저으며 지희와 헤어진 뒤 집으로 돌아가는 택시에 몸을 실었다.


***


“푸학”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따뜻한 물에 씻은 뒤 편한 옷으로 갈아입은 희수는 침대에 그대로 엎어져 눈을 감고 잠시 꼼짝하지 않는다. 그리 긴 외출이 아니었건만 오랜만에 사람 많은 번화가에 있어서 그런가 지치는 기분이다. 신촌역에 많은 인파들, 지나다니는 차들, 오랜만에 만난 친구까지 생각이 이어지다 보니 의도치 않게 아까 대화를 엿들은 남자들도 머리속에 자연스레 떠오른다.


‘촌스러운 거만 빼면 생긴 건 나쁘지 않던데.... 어리숙해보이긴 하지만’


어리숙해 보이던 재학의 모습까지 머리속에 떠오른다. 누가 들어도 내키지 않는데 부탁을 거절하지 못하는 모습이 답답하면서도 공연히 불쌍해 보이고 짠해보이는게 신기한 남자였다.


“희수야~! 아버지 오셨다~!”


밖에서 본인을 부르는 엄마의 목소리에 남은 하루도 꽤나 고달플 거라 생각하며 방을 나선다. 거실에 나가보니 엄마가 재킷을 받아 방에 들어가고 아버지인 경철은 소파에 앉아 있었다.


“오셨어요 아버지”


“그래 희수 집에 있었구나. 거기 앉아봐라.”


귀국한지 일주일이 됐지만 아버지는 본인이 돌아온 다음날 지방으로 출장을 갔고 어제 밤 늦게 복귀 한 참이다. 실질적으로 귀국하고는 오늘이 첫 대면인 셈이다. 원래는 내일이나 되야 올 것이라 들었는데 일정에 변경이 생겼나 보다.


“그래서 이제 어떻게 할 생각이야.”


“모르겠어요 아직까지는.”


“유학에서 일찍 돌아오겠다고 한 건 왜 그런 거니? 그래도 가보고 싶어 했잖아. 이참에 좋은 기회니 거기서 대학교까지 다 마쳤으면 좋았을텐데.”


“아버지”


희수가 작게 날숨을 내쉬며 짚고 넘어 가야 겠다는 듯 경철을 바라본다.


“나라 사업 준비하신다고 운동권 애들 많은 학교에 있으면 아버지 사업에 문제 생긴다고 원하지도 않던 유학 일정 급히 잡아서 보낸 건 아버지에요 제가 보내달라고 한 게 아니라. 제가 프랑스에서 공부하고 싶다고 한 건 아주 어린 때나 한 말이구요.”


“크흠”


“불안하신 거 아니에요? 제가 학교 다니다가 괜한 일에 엮여서 아버지 일에 문제 생길 까봐”


“꼭 그렇다는 게 아니라....”


“걱정 마세요 문제 생기지 않게 잘 처신할 테니까 애초에 그런 쪽에 관심도 없구요”


“크흠 그래. 피아노는 그만두려고?”


“아뇨 잘 모르겠어요 일단 생각해볼게요 학교 다니면서. 어차피 졸업은 해야 하니까.”


이렇게 말하지만 희수는 그래도 아버지인 경철이 본인에게 무뚝뚝면서도 내심은 다정한 사람이고 희수가 원하는 데로 사는 데에 응원해줄 사람인 것을 안다. 다만 한기업의 오너이자 책임질 사람이 많은 사람으로서의 입장이 조금 더 먼저인 사람일 뿐이라는 것도.


“그래… 잘 생각해보고 우선 저녁부터 먹자 오랜만에 얼굴 보니 반갑고 좋구나”


“네 아빠”


같이 식탁으로 걸어가자 식탁위에는 꽤나 진수성찬이 차려져 있다.


“어서와요 여보 희수도 얼른 오고”


“뭐가 이렇게 많아”


“몇 년만에 세 식구 다같이 밥 먹는 건데 오랜만에 이것저것 좀 했어요. 희수 없을 땐 당신 늦게 들어오고 그러면 뭐 음식하기도 귀찮아서 대충 먹었는데 오랜만에 가족 다같이 먹는다 생각하니 귀찮지도 않네. 희수 얼른 먹어”


“응”


식탁에 둘러 앉아 밥을 먹기 시작한다. 희수의 엄마인 원희는 경철이 봉제공장을 할 당시 회사 경리로 들어와 경철을 만났다. 이후 결혼한 이후로는 전업주부로 살고 있다. 남편의 사업이 조금 안 좋을 때나 다른 힘든 일이 있어도 언제나 짜증이나 화내는 법도 없는, 희수가 보기에도 참 좋은 엄마요 사람이다. 희수도 그런 엄마임을 알기에 오히려 아버지보다 어머니가 본인 때문에 상처받는 게 더 걱정일 지경이다.


“그럼 희수는 복학은 언제하려고?”


희수는 유학가기전 1학기까지 하고 급하게 유학이 결정되어 유학길에 올랐다. 1학기에 복학 해도 큰 상관은 없으나 희수가 그러고 싶지가 않았다. 2학기에 복학한다는 핑계로 좀 쉬고 싶었다.”


“2학기에 복학할거니까 9월이되지 않을까 싶어요. 그때까진 좀 쉬고 운동도 좀 하고 할 생각이에요”


“그래그래 그러거라”


어쩐 일인지 하는 거 없이 시간 보내는 걸 싫어 하는 경철도 선뜻 동의의 말을 건넸다.


“요즘 학교들이랑 정부랑 분위기가 별로 안 좋아 그러니 동기들 만날 때도 조심하고 밖에 나갈 때도 꼭 조심해야 한다. 내가 민형사 명함 줄 테니까 이거 꼭 가방에 들고 다니고”


“네”


요즘 서울권 대학교들이 시위다 뭐다 시끄러운게 염려가 됐나보다.


“자자 얼른 먹어요 희수는 그럼 복학할 때까진 엄마랑 좀 자주 놀아줘 대학다니고 또 바빠지면 그럴 틈도 없잔아”


“응 알았어요”


그 후엔 희수의 따분했던 프랑스 생활에 대해 엄마가 묻는 말에 대답해주며 식사가 이어졌다. 오랜만에 다같이 먹는 저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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