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만나요_08화

by Breeze

후욱 후욱


아침 8시. 희수가 가벼운 옷차림으로 매봉산 산책로를 뛰고 있다. 날짜는 3월을 지나 4월에 접어들었고, 한국에 돌아 온지 어느덧 한달이 넘었다. 한달동안 희수는 참 별일 없이 지냈다. 아침이면 산책 겸 조깅을 하고 집에 들어가 엄마와 점심을 먹고 수다 떨다가 시내 서점에 나가 책을 보거나 사오고, 집에서 TV를 보며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가끔 친구를 만날 때도 드물지만 있고. 아버지인 경철은 처음 몇 일을 제외하고는 또 일이 바빠져 집을 비우는 날도 많았고 늦게 들어오는 날도 많아 얼굴 보기가 어려웠다.


띠링


“다녀왔습니다.”


신발을 벗고 현관에 들어가자 조금 심각한 표정으로 엄마가 소파에 앉아 아침 뉴스를 보고 있는 게 보인다. 식탁 위 물병에서 물을 한잔 따라 마시며 거실로 나와 엄마 옆에 서서 희수도 잠깐 뉴스를 본다. 앵커의 말이 들린다


…대통령은 지난 4월 3일 밤 10시를 기해 학원 사태에 관한 긴급조치 4호를 발표했습니다. 김성진 청와대 대변인에 의해 발표된 이 조치는 소위 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회와 이에 관련되는 어떤 단체를 조직하거나 이에 가입하는 일체의 행위와 학생의 정당한 이유 없는 출석,수업 또는 시험의 거부….


“어머어머...”


엄마는 어떡하면 좋냐는 시선으로 TV에 시선을 고정한 채였고 희수는 무덤덤하게 TV를 응시하고 있다. 그러다 어느 순간 눈이 반짝였다. 시종일관 정장을 입고 연설문을 읽던 대변인에서 경찰이 학생들과 대치를 하고 학생들이 줄줄이 경찰서로 들어가 조사를 받는 장면에서.


그 남자였다.


‘도와주고 잡혔나보네…’


그렇게 망설이더니 결국 도와주고 같이 잡히기까지 했나 보다. 거절을 못해서 경찰조사까지 받다니 퍽 답답한 사람인가 보다 희수는 생각했다.


“엄마 밥 먹어요 나 배고파”


“응 그래그래”


희수의 관심은 딱 거기까지. 대단한 관심이 생기지 않는다. 한국에 들어온지 얼마되지도 않았고 TV에 보는 학생들이 문제 삼으며 시위하는 것 조차 큰 공감이 안되었기에


“오늘은 이따 어디 나가니?”


“신촌에 테이프 좀 사러…”


“오래 안 걸리지? 위험한데 다음에 가지 않고”


“금방 다녀와요 걱정마세요 엄마. 학교에 직접 들어갈 것도 아니고. 저녁 먹기전에 돌아올게요”


“그래그래”


점심을 먹고 방에 들어온 희수는 잠깐 책상에 앉아 책상 옆에 자리잡은 업라이트 피아노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아주 어린 시절 어머니가 집에서 치던 피아노다. 희수도 이 피아노로 시작했고 제대로 시작하면서 부터는 따로 연습할 방을 만들어 방에선 치지 않았으나 이 피아노는 항상 희수의 방 한 켠을 지켰다.


요 몇일 별일 없는 한가한 나날을 보내고 있지만 속으로는 그 어떤 때보다 시끄러운 하루하루다. 어린시절 엄마가 취미로 치던 피아노가 집에 있어 흥미가 생겨 좋아하다 보니 7살 무렵부터 시작했고 또 어쩌다 보니 크고 작은 대회에 나가 상도 받았다. 피아노로 대학도 가고 유학도 다녀왔지만 본인이 클래식 피아노 연주자가 되어야겠다 생각은 단 한번도 하지 않았던 거 같다. 심지어는 부모님들도 마찬가지였고. 전문 연주자가 되는 이들은 어릴 때부터 유학길에 올라 외국에서 대학까지 나오는 게 보통인데 본인은 그저 국내에서 꾸준히 공부하다 대학에 들어갔고 유학도 대학생활을 하다 다른 이유로 간 것이니.


‘피아노를 그만두면… 뭐하나….’


부모님 자체도 무언가를 하라고 크게 강요하지 않지만 그렇기에 더 막막했다. 여태는 걸어오던 외길밖에 없어 그저 생각 없이 걷기만 하면 됐는데 이젠 어떤 길이든 선택해야만 하는 갈림길을 만난 기분.


그렇게 머리가 복잡하고 속이 시끄럽다보니 우습게도 피아노 연주가 듣고 싶었다. 이러나 저러나 평생을 들어온 것이기에. 그렇다고 지금 이 기분으로 내가 칠 기분은 아니어서 피아노 테이프나 사올까 싶어 신촌에 나가자 마음먹은 참이다. 엄마에게 말한데로 저녁전에 들어오려면 서둘러야 하기에 일어나 얼른 준비를 하고 집 앞 거리에 나가 택시를 잡고 신촌으로 향했다. 창밖으로 빠르게 젖혀지는 풍경을 보며 희수는 생각했다.


‘쇼팽이 있으려나.... 녹턴이 있으면 좋겠는데’


***


이태원을 지나 신촌으로 향하는 택시 안. 희수가 창 밖을 구경하며 가는 중이다. 이태원도 본인이 대학을 막 들어 갔을 때와는 달리 미군들이 다닌다는 동네 중심으로 가게들도 많이 생기고 술집들도 제법 들어 섰다 들었다.


‘동네만 알면 굳이 신촌 갈 필요 없이 여기서 내리면 좋을 텐데....’


본인이 동네도 모를뿐더러 외국인이 득실거리는 동네보다야 시기가 수상해도 본인이 아는 동네가 낫다는 판단이었다.


‘명함이랑 신분증도 잘 챙겼으니…’


혹시 모를 일을 대비해 가방에는 아버지 명함과 아버지가 준 정보부 소속 민형사 라는 분의 명함도 챙겼다. 둘이 어떤 관계인지는 모르고 관심도 없으나 적어도 오늘 본인이 무사히 집에 들어가는데 도움을 주면 그만이었다. 점점 신촌역에 가까워지자 경찰들이 많아 졌고 신촌역까지 가자 검문소까지 설치 되어 있었다.


“아가씨 여기서 내리셔야 겠는데? 근데 웬만하면 집에 돌아가지 이런데 굳이 돌아다니지 말고....”


“괜찮아요 여기 있습니다. 거스름돈은 괜찮아요. 수고하세요.”


택시비를 치르고 택시에서 내려 신촌역을 바라보며 언덕길을 올랐다. 대학교들을 등지는 방향으로 검문소가 설치되어 있었고 희수가 가려는 가게가 저 위에 있었으므로 검문소를 어쩔 수 없이 지나야 한다.


“신분증”


앞을 지키고 있던 사복을 입은 경찰이 다짜고짜 손을 내밀며 신분증을 요구한다.


“…”


희수는 말없이 신분증을 꺼내 경찰에게 건네 준다. 신분증을 받은 경찰은 별 다른 말도 없이 신분증과 희수를 번갈아 보다가 희수를 위아래로 훑는다.


“이희수....”


‘후...’


희수를 바라보던 군인은 잠시 후 한쪽으로 걸어가더니 상관으로 보이는 사람을 데려온다.


“잠시 협조 좀 해주 시죠. 이희수씨? 어디 가는 길이시죠?”


“테이프 사러 잠시 악기상에요”


“어디 학생이세요?”


“이대요”


“흠… 잠시 서에 좀 같이 가 주셔야 겠습니다.”


“무슨 이유로요?”


“뉴스 보셨겠지만 이 근방 대학 다니는 사람들이 요새 문제가 많아 서요 잠시면 되니 협조 좀 부탁드립니다.”


“참...., 다른 이유도 아니고 그냥 이 학교 다닌다는 이유로 경찰서에 같이 가자는 게 말이나 돼요?’


“별 문제없으면 바로 귀가 조치 되실 겁니다.


여기서 대화를 이어나가봤자 의미가 없음을 느낀 희수는 무언가를 떠올리곤 가방에서 민형사의 명함을 내민다.


“이게 뭡니까?”


“이런 상황에 불편하지 말라고 받아 둔거요.”


명함을 받아 든 경찰은 물끄러미 명함을 내려다 보다 잠시 말이 없더니 희수를 다시 바라본다.


“…이런 거 함부로 들고 다니면 큰일 납니다. 이거.... 누가 줬어요?”


“저희 아빠가요.”


대답하며 희수는 아버지의 명함도 같이 건네준다. 명함을 받은 경찰은 번갈아 보더니 잠시 자리를 비운다.


“잠시만요”


‘진짜 꺼내게 될 줄은 몰랐는데...’


곧이어 돌아오는 경찰은 언제 그랬냐는 듯 환한 웃음으로 희수에게 다가온다.


“이거 이거… 실례했습니다. 확인 끝났으니 그냥 가셔도 됩니다. 민형사님은 잘 지내시죠…? 옜날에 한번 뵌적은 있는데 이젠 워낙 뵙기가 어려운 분이시라...”


“가도 된다는 거죠?”


“아 예예 다음에 민형사님 뵙게 되면 혹시나 오늘 일은…”


“그럼 이만,”


명함 두 장을 다시 받아든 희수는 검문소를 지나쳐 언덕을 오른다.


‘어후... 심장떨려. 이거 괜찮은 거야? 다른 사람이었으면 오늘 경찰서 끌려가서 꼬박 잡혀있었겠는데?’


언덕을 빠른 걸음으로 오르며 당분간 동네 바깥으로는 절대 벗어나지 않아야겠다 생각한 희수였다. 그리 멀지 않은 테이프 가게에 도착한 희수는 한참을 헤매다 클래식 피아노 코너를 찾았다. 희수는 여기까지 온 보상을 받은 기분이었다.


‘녹턴!’


고작 한 칸밖에 없는 클래식 피아노 코너에 쇼팽의 녹턴 전집이 있었다. 기대했지만 없으면 어쩔 수 없으리라 생각한 테이프를 바로 찾아낸 희수는 오면서 겪었던 우여곡절이 아무것도 아닌것처럼 느껴졌다. 당분간은 방안에서 음악만 들으며 방에 콕 박혀 있으리라 생각하며 계산을 하고 가게 문을 나선 순간이었다.


휙!


“어머!”


누군가 희수를 가로채 테이프방 바로 옆 좁은 골목으로 끌고 들어가자 희수는 상황파악도 되지 않은 채 몇 걸음 끌려 간다. 정신을 차리고 본인의 팔을 끌고 가고 있는 손을 뿌리치며 소리친다.


“이게 무슨 짓이에요?!”


앞에 보이는 남성. 청색 체크남방에 청바지 그리고 큰 키. 납치범이라기엔 어울리지 않게 옷을 밝게 입었고 무엇보다 목소리에 깔린 감정은 명백한 불안이었다.


“한번만 도와주세요.... 제발....”


‘어....?’


그 남자였다.


“잠시면 돼요 진짜 잠시만”


말을 하며 남자는 본인이 입고 있던 남방을 벗어 골목 한쪽에 쑤셔 넣어 숨겼고 챙겨 놨던 모자를 꺼내 썼다. 변장이라고 한 건가 지금.


“잠깐만… 잠깐이면 되니 저랑 친구 인척 좀 해주세요… 제발요… 꼭 신세 갚겠습니다.”


“….”


거칠게 팔을 잡은 게 실례라는 생각이 뒤늦게 들었던지. 희수의 팔을 놓고 두 팔 뻗어 손바닥을 보이며 필사적으로 얘기하는 남자의 손끝이 떨리고 있다. 다방에서 한번, TV에서 한번, 오늘로써 세번째. 이 남자는 처음이겠지만 희수는 세번째 본다. 이 남자는 볼때마다 곤란하고, 불안하고, 힘든 상황에 처해있다. 의식하지 못했지만 동정했음 인가. 평소와 어울리지 않게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인 희수는 남자의 팔을 내려 자연스레 팔짱을 낀다.


“가요. 일단 여기만 벗어나면 되죠?”


“아…. 네네… 감사해요”


들어왔던 골목을 다시 나가자 오르막길에서 사복 경찰 몇 명이 다가온다.


“이봐요 학생들”


“무슨 일이시죠?”


“잠시 협조 좀 해줘. 학생 모자 좀 벗어보지”


“무슨 일이지부터 말씀해주세요 이게 뭐하시는거예요!”


말을 마친 사복 경찰은 곧바로 손을 뻗어 남자의 모자를 벗기려고 한다. 남자는 저도 모르게 뒷걸음 치고 희수는 경찰의 앞을 막아서며 눈을 크게 뜨고 경찰에게 고개를 빳빳히 세운다.


“어디 씨발 눈을 치켜 뜨고 지랄이야 지랄이! 야 일단 서로 끌고가!”


“이!”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육두문자가 나오고 고성을 친다. 팔짱 낀 남자의 팔이 경직되고 희수는 명함이라도 다시 꺼내야 하나? 지금 여기서도 이게 먹힐까? 싶은 찰나의 순간.


“야!”


“엇 팀장님”


아까 그 경찰이다.


“이 새끼들이! 그냥 보내드려! 내가 다 확인 끝냈어. 잡으라는 놈은 안 잡고 새끼들이. 괜찮으세요? 옆에 분은.... 남자친구?”


“아.... 네. 괜찮습니다 이만 가봐도 되죠?”


“네네 물론입죠. 그.... 잘 말씀 좀 부탁드립니다.”


“네”


부하 형사들을 갈구는 팀장이란 남자의 목소리를 뒤로 하고 희수와 남자는 팔짱을 풀지 않은 채 경찰의 반대편으로 계속 걸었다. 얼마쯤 걸었을까 이제 경찰들도 안보이고 한적한 골목으로 접어들었을 때


“정말.... 감사합니다 다음에 기회 되면 꼭 신세 갚겠습니다.”


“아니요 신세까지야 뭘.... 신경 안 쓰셔도 돼요.”


딱히 더 엮이고 싶은 생각은 없다. 내 힘으로 도와준 것도 아니고.


“그럼 이만....”


그럼에도 왜일까. 희수 입장에선 관심도 없고 의미도 없는 일, 더군다나 본인도 딱히 열정적이지 않아 보이는 일에 가담해 이리 도망까지 치고 다니고 있는 남자가 조금 궁금해지는 건.


“아 저기요.”


돌아가려던 걸음을 멈추고 남자를 부르는 희수


“네?”


돌아서 걸어가려다가 다시 돌아보는 남자


“그 신세요. 오늘 갚죠? 커피 한잔 어때요?”


“아……”


얘기를 듣고 곤란하다는 듯 손을 쥐었다 폈다 하며 안절부절 못하는 남자. 아차. 저 옷 어디에도 지갑 같은 건 들어있어 보이지 않는다. 보아하니 현금도.


“아 커피는 제가 살게요. 잠깐 시간만 내요 괜찮죠?”


“아.... 죄송하지만 그래도 된다면.... 네 알겠습니다.”

이전 07화서울에서 만나요_07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