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만나요_09화

by Breeze

둘은 조금 더 걸어 희수의 학교 앞에 있는 다방에 왔다. 혹시나 하고 걱정했지만 이대 앞은 경찰도 없고 비교적 한산했다. 경찰이 있어도 명함의 위력(?)을 크게 느낀 희수였기에 별 걱정 없이 본인이 아는 길로 방향을 잡았다.


홀짝


블랙 커피를 앞에 두고 마주 앉은 둘은 한참을 어색한 침묵을 지키다 희수가 말문을 연다.


“쫓기고 있던 거예요?”


“아 쫓기고 있다기보단… 지금 경찰들이랑 마주치면 어떻게 될지 몰라서.... 별일 없을수도 있고 경찰서로 끌려갈수도 있고.... 근데 끌려가면 얼마나 있다 나오게 될지 몰라서… 검문소 보자마자 뒤돌아 뛰었더니…”


‘쫓기고 있던거 맞네.’


“저 그쪽 TV에서 봤어요”


“네…?”


“그쪽 경찰서에서 앉아서 조사받는 거 뉴스에서 봤어요 아주 잠깐이지만.”


“하….”


희수의 말에 무릎 사이에 고개를 처박고 한숨을 쉬는 남자.


“진짜… 끼어드는 게 아닌데…”


다 큰 남자가 금방이라도 울거 같은 표정으로 한숨을 푹푹 쉬고 있는 꼴이 퍽 볼만하다.


“그런데 왜 굳이 시작한거예요? 지금 보아하니 별로 하고 싶어 하지도 않았던거 같은데? 오늘 도움 준 것도 있는데 이정도는 물어봐도 되죠?”


“그게….”


얘길 하며 불안하게 희수를 힐끗힐끗 보는 남자.


“아 아까 그 경찰은 신경 쓰지 말아요 전 정말 그쪽이랑 아무 상관 없어요. 그냥 아버지가 그쪽에 지인이 있어서 저도 운 좋게 빠져나온거예요 까딱하면 같이 경찰서 갈 뻔했어요.”


괜히 관계된 사람에게 입을 잘못 놀려 일을 치를까 걱정이었던 듯 작게 한숨을 내쉰 남자는 말을 이었다.


“딱히 하고싶은 마음도 없었어요. 전역하고 고향에 갔다가 복학하려고 기숙사에 오니 동기들부터 선배들까지 무슨 바람이 들어선.... 우리가 이대로 있으면 안된다는니 목소리를 내야 한다느니... 그냥 적당히 모른 척 하려고 동기들 선배들 모임에도 안 나가고 기숙사에만 틀어 박혀 있었어요. 근데 전역 축하한다고 술 한잔 사줄 테니 나오라고 평소에도 친하게 지내던 동기 두 놈이 불러서 나갔더니... 그놈들한테 직접적으로 부탁을 받는 바람에… 적당히 남일이면 모른척 하겠는데 직접 부탁을 받으니 이게 또….”


‘그날이네.’


카페에서 처음 본 날을 떠올렸다.


“그래도 거절하면 되잖아요.”


남자, 재학은 우물쭈물하면서 대답했다.


“그래도 그들이 하는 말이 틀린 말은 아니니까요.... 지금이 정상은 아니니까요…”


‘어정쩡하네....’


참으로 어리숙하고 어정쩡했다. 현재 상황이 잘못된 걸 알고 마음으로 주변인들에게 동의는 하고 있음에도 가담하고 싶지 않은 마음에 모른 척하고 싶었고, 그럼에도 직접적으로 부탁을 받으니 또 거절할 만큼 모질지는 못 하다는 건가. 다 큰 남자가 뭐 이렇게 어정쩡 하단 말인가. 속으로 헛웃음이 일었다.


“저도 이렇게 될 줄 몰랐어요 그냥 글만 써주면 된다고 했단 말이에요. 근데 어떻게 제가 쓴 글이랑 필체까지 비교해서 저 한테도 불똥이 튈줄은….”


재학은 연신 고개를 저으며 한숨을 쉰다. 울음을 참는 듯한 표정은 덤이다.


“하… 정말 엮이고 싶지 않았어요. 근데 상황이 기왕 이렇게 됐으니 정말 딱 그만큼만 딱 요만큼만 도와주고 손 떼려고 했어요 그리고 나중에 두고두고 제 마음에서 꺼내 보고 위안 얻으며 앞으론 철저히 모른 척하려 했단 말이에요... 난 이만큼은 했으니까 하면서....”


‘큽!’


순간 속으로 웃음을 참기 위해 고개를 돌린 희수였다. 뭐가 이렇게까지 솔직하단 말인가. 다 큰 성인 남자가 울음을 참는 듯한 표정으로 처음 본 여자에게 하소연을 쏟아내는 모습이 퍽 신선했다. 재학 입장에선 오늘 처음 본 사람인데. 평생 친 피아노가 더 이상 재미가 없지만 누구에게도 솔직히 털어놓지 못하고 스스로 본인에게조차 이것이 맞나 하는 의구심을 품는 본인과는 아주 다르다고 생각했다. 재학을 바라보는 희수의 시선에 호기심이 깃들었고 본인과 다르게 어정쩡하지만 적어도 솔직한 이 남자가 재밌어졌다.


“아무튼... 오늘일은 정말 감사했습니다. 다음엔 기회가 되면 꼭 신세 갚겠습니다. 오늘은 제가 더 이상 밖에 있으면 안될 거 같은데….”


재학이 우물쭈물 얘기를 꺼내자 아 하고 희수는 알았다며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학교는 여기 다니시죠? 이름이 어떻게 돼요?”


“아... 저 최재학이라고 합니다. 사범대 다닙니다.”


“전 이희수라고해요. 전 여기 학교 다녀요.”


“아 네...”


희수가 웃는 얼굴로 재학에게 손을 내밀었다.


“다음에 또 봐요. 우리”


“아... 네...”


희수와 재학이 공식적으로 처음 만난 날이었다.


***


“그럼 고향이 강원도 영월이에요?”


“네네”


이른 오후 희수와 재학은 재학의 학교 캠퍼스 안을 천천히 걸으며 대화를 나누고 있다.


“우와 전 한번도 영월에 가본적 없어요. 영월은 커녕 강원도도”


“산하고 밭 빼고는 아무것도 없는 동네에요. 시장에만 가려고 해도 한참을 걸어나가던가 2시간에 한번 있는 버스를 잡아타거나 해야하는.”


“그럼 재학씨네도 농사 지어요?”


“네 그 동네에서 제일 크게 지어요 우리집이.”


나누는 대화에 어색함이 제법 가신 게 느껴진다. 지난 4월 한바탕 소동이 지나가고 둘은 종종 얼굴을 보고 밥을 먹고 산책 하는 사이가 되었다. 첫만남때 희수는 재학에게 연락 가능한 번호가 있냐 물었고 재학은 본인이 일하는 서점의 번호를 알려줬다. 평일 저녁에는 가게에서 일을 하니 전화를 받을 수 있다고.


이후 한두 번 희수의 연락으로 만남을 이어왔다. 명목상으론 희수가 장난스레 재학에게 신세를 갚으라 했지만 막상 만나보니 둘은 제법 잘 맞았다. 대화도 잘 통하고. 무엇보다 희수는 이 어리숙한 남자와 함께 있으면 시끄러운 마음이 조용해지고. 지닌 고민들이 별일 아닌 거처럼 느껴지게 하는 편안함에 계속 재학을 찾게 되었다.


재학은 특이하게 방학중엔 보통 고향에 돌아가 머무는 학생들과 달리 전역 후 고향에 들렀다가 바로 서울 기숙사로 돌아왔다. 개강까지 몇 개월이나 남았기에 기숙사에 머물며 아는 선배의 소개로 신촌역 앞에 있는 서점에서 일을 한다고 한다.


“오늘도 5시부터 9시까지 서점에 출근하는 거죠?”


“네 오늘부터 금요일까지 계속 일하러 갑니다. 절 그 서점에 소개해준 선배가 이번주만 본인 일하는 날짜도 대신해줄 수 있냐고 부탁해서”


“저도 이번주는 금요일까지 이것저것 바쁘네요. 아버지가 어디 가자고도 하시고”


“아...”


“이번 주말에는 뭐해요?”


“특별한 일은 없습니다. 아마 기숙사에 있지 않을까요”


“그럼 영화 보러 안 갈래요? 저기 아트레온에. 공짜 표가 2장 생겼는데.”


“아... 네 그럴까요?


“그래요 그럼 토요일에 오후 3시까지 앞에서 봐요”


“네 알겠습니다.”


“…”


조금은 편해졌지만 여전히 뚝딱거리는 말투로 말하는 재학을 희수는 미소진 얼굴로 물끄러미 보다 앞서 걷는다. 그러다 뒤돌아 재학을 바라본다.


“토요일에 봐요 늦지 말구요”


희수가 해사한 미소를 걸친 채 얘기하자 재학 멍하니 바라보다 고개를 끄덕인다.


“그럼 갈게요 안녕~!”


“....안녕”


손을 흔들며 밝게 인사하는 희수에 재학은 마주 손을 흔들며 인사해준다. 상쾌하고 씩씩한 걸음으로 멀어지는 희수를 잠시 멍하게 바라보던 재학은 이내 발걸음을 돌려 기숙사로 향한다.


***


가지고 있는 옷을 전부 꺼내 방안에 어지럽게 펼쳐 놓은 재학의 기숙사 안. 재학은 어떤 옷이 좋을지 한참이나 고민하고 있다. 그리 많은 선택지가 아니건만.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지만 태생은 강원도 시골 촌놈인 재학이 요즘 유행이라던가 멋이란 걸 알리가 없었다. 관심도 크게 없었고. 그동안 희수와 만날 때는 잠깐 만나 밥을 먹거나 산책하는 게 전부였기에 크게 신경 쓰이지 않았지만 오늘은 뭔가 각을 잡고 데이트를 하는 거 같은 느낌이었기에 평소와 다르게 한참을 서서 고민했다. 이럴 거면 미리 옷도 좀 사놓을 것을.... 늦은 후회를 해본다.


방학중의 기숙사이기에 다른 동기들은 전부 고향에 내려가 있어서 누군가에게 빌릴 수도 없었다. 고민을 거듭하며 몇 번을 입어보고 벗었다를 반복하다 결국 가장 무난한 검은색 티셔츠와 청바지를 꺼내 입고 흰색 운동화를 신었다. 다행히 어제 정리 안된 머리를 미리 다듬어서 그나마 봐줄 만은 한 거 같다. 마지막으로 옷 매무새를 확인한 뒤 길을 나섰다.


다행히 날은 아주 좋다. 본격적으로 더워지기 전 초여름 선선한 오후의 날씨와 불어오는 바람에 절로 기분이 좋아졌다. 동시에 머리속엔 희수의 얼굴이 떠올랐고 재학의 얼굴엔 미소가 번졌다. 날씨에 기분이 좋아져 미소가 나왔는지. 희수가 떠올라 미소가 나왔는지 혹은 심지어 희수가 떠올라 바람마저 기분이 좋게 느껴지는 건지 재학 본인 만이 알뿐이다.


부지런히 걸어 극장 근처까지 도착했다. 이 모퉁이를 돌면 극장 앞이 보일 것이다. 모퉁이를 돌기 전 얼굴에 뭐 묻은 것은 없는지 마지막 매무새를 유리창에 한번 더 확인한 재학은 모퉁이를 돌아 극장을 바라봤다. 다행히 아직 희수는 오지 않은 듯했다. 극장 앞 길 한 켠에 적당한 곳에 자리 잡은 재학은 뒷짐을 지고 오가는 사람들을 보며 희수가 어느 방향에서 올지를 가늠해본다.


영화를 다 본 뒤에는 통금시간까진 여유가 있을 테니 이 근처에 본인이 봐 둔 식당에 가서 저녁을 먹을 생각이다. 특별히 여자들이 좋아한다는 스파게티 가게로 봐뒀다. 영화는 희수가 보여주니 밥은 본인이 대접할 생각이었다. 맛있어야 할텐데. 어제 월급을 받아 음식값 계산할 정도의 주머니 사정은 된다. 재학의 신경이 식사 후 희수를 어찌 데려다 줄것인가에까지 생각이 미치려던 찰나.


“재학씨~!”


뒤에서 본인을 부르는 발랄한 목소리에 재학이 뒤돌자 길 저편에서 웃는 얼굴로 손을 흔들며 걸어오는 희수가 보인다. 본인도 큰 키지만 여자치고 큰 키에 하얀 피부, 큰 눈과 작지만 뚜련한 선을 가진 코. 평소보다 조금 공들인듯한 화장에 검은색 원피스를 입었다. 새삼 느끼는거지만


‘예쁘다…’


항상 희수를 생각하면 밝은 모습과 똑 부러지는 말투가 먼저 떠올랐지만 새삼 그저 예쁘기만도 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걸 알았다. 평소의 재학이라면 상상도 하지 못할 일이지만 맘 같아선 본인도 크게 마주 인사해 신촌 길 한복판에 있는 모두에게 알려주고 싶었다. 저 여자가 저런 모습으로 오늘 만나러 온 남자가 나라고. 마음을 꾹꾹 참으며 손을 흔들어 주었다.


“오래 기다렸어요?”


“아뇨 저도 방금 왔습니다.”


“머리 잘랐네요? 예뻐요”


오늘만큼은 그 예쁘다는 말은 세상 누구보다 당신을 위해 존재하는 말 같아요. 라고 말해주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강원도 시골 촌놈에게 그런 말을 멋들어지게 하는 재주는 없었기에


“희수씨야말로 오늘 엄청 예쁘십니다.”


라고 마음을 꾹꾹 눌러 담아 얘기하는 수밖에 없었다.


“아하하 그래요? 오랜만에 화장에 공들였는데 다행이에요 들어가요 얼른. 시간 거의 됐어요.”


“네”


재학은 오늘 어떤 영화를 봤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았다. 후에 보니 밝고 명랑한 천성을 가진, 그래 희수 처럼 이쁘고 밝았던 여자주인공이 풍파에 치여 호스티스로 전락하게 되는 그런 이야기였다고는 하는데 영화를 보는 내내 재학은 희수의 옆얼굴을 훔쳐보느라 영화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그러다 가끔 눈이 마주쳐 본인을 향해 웃는 희수의 얼굴을 마주하고 있노라면 두방망이질 치는 심장 소리를 희수나 다른 사람이 들을까 걱정하며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 영화 스크린에 시선을 고정하곤 했다.


“후아 재미있었다 영화 어땠어요?”


“아.... 아 재미있었습니다.”


“근데 거의 재학씨는 나 보느라 영화도 안 보던데요? 이럴 거면 그냥 얘기하지. 영화 말고 내 얼굴만 보고 싶다고”


화-악


“아.... 그게....”


“아하하 농담이에요 농담”


희수의 말에 재학의 얼굴이 잘 익은 홍시처럼 달아올랐다.


“이제 우리 어디가요? 나 배고픈데”


“아 제가 봐 둔 곳이 있습니다. 저녁 드시러 가시죠.”


“좋아요!”


웃음과 함께 길을 나선 둘이다. 이후 재학이 예약한 식당에서 식사를 했고 많은 얘기를 나눴으며 식사 후 가게를 나와 꽤나 긴 시간동안 저녁 선선한 공기에 산책하며 걸었다. 식사는 재학이 걱정했던 게 무색할 만큼 괜찮았고 대화는 즐거웠으며 맞잡은 손에선 땀이나는 줄도 몰랐다. 꽤 오랜 시간 걸었음에도 다리 아픈 줄도 몰랐다. 이제 막 사랑을 시작하는 젊은 남녀의 가장 아름다운 저녁에 날벌레들 조차 방해가 될까 모습을 감춘 초여름의 한 날이었다.


***


“으헤헤... 으히. 헤헤헤”


재학과 영화를 같이 보고 수줍게 손을 잡고 걷던 그 예쁜 여성은 어디 갔는지 희수의 방안에는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머리를 질끈 묶고 베개를 끌어안고 기분 나쁜 웃음을 흘리는 여성뿐이다.


‘결혼은 어디서 하지.... 나도 1년만 더 다니면 졸업이고 재학씨도 1년만 더 다니면 졸업이니까 졸업하고 바로 결혼한 다음에 재학씨 임용고시 뒷바라지는 내가 해주면 될 거 같고.... 강원도에 인사드리러 갈땐 뭐 입고 가야하지...”


벌써 희수의 머릿속에는 재학을 닮은 아들 하나 희수를 닮은 딸 하나가 신혼집에서 뛰어놀고 있는 지경이다. 한참을 누워 뒹굴거리던 희수 자세를 고쳐 앉는다. 외출 준비를 하며 옷장을 전부 끄집어내 옷이 나뒹굴고 있는 방안에 희수만 우뚝 앉았다.


‘참... 괜찮단 말이야…”


머리속으로 재학의 모습이 스쳐 지나간다. 첫인상은 다소 어리숙해보이고 답답해보였으나 기본적으로 희수를 불편하게 하지 않으려고 배려하는 모습과 희수가 무슨 얘기를 해도 항상 신경 써서 경청해주는 모습. 그리고 무엇보다 재학은 희수를 대할 때 속에 무엇인가를 남겨두고 대하는 모습이 아니었다. 더하지도 감추지도 않고 희수를 대하는 모습에 희수는 어느때보다 재학과 있으면 마음이 편했고 마음이 갔다. 다만,


‘아버지를….’


아버지인 경철이 걸린다. 세상 분위기와 젊은이들의 혈기에 희수가 휘말려 회사에 안 좋은 영향이 갈까 희수가 유학에서 돌아오는 것 조차도 달가워하지 않았던 경철이다. 희수가 만나는 남자가 학생운동으로 경찰 조사까지 받았다는 걸 알면 유하게 넘어갈 리 없다. 그것이 그저 단순 필사라서 모두가 구속되어 들어갈 때 조사만 받고 끝난 일이었다고 해도 말이다. 생각하다 보니 머리가 복잡해진 희수는 뒤로 발라당 누워 버렸다.


‘어떻게든 되겠지 뭐… 안되면 서울 말고 영월 가서 살아도 되고…’


경철이 들으면 기함 할 얘기를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는 희수였다.


***


희수를 집 앞 까지 배웅하고 신촌 거리를 걸어 기숙사로 돌아가는 재학의 발걸음은 가볍기가 깃털보다 더하다. 내가 좋아하는 여자가 나를 좋아하는 것 같다. 최근 사위어가는 마음을 참을 수가 없어 내심 희수를 만날 날만 손꼽아 기다리는 본인이었는데 오늘 어느정도 희수의 마음과 본인의 마음이 같은 온도라는 것을 확인한 것 같아 지금 재학의 마음은 세상 누구보다 부하다. 다만,


‘어머니를....’


문산리에 있는 시골 본가가 머리속에 자연스레 떠오르며 한 여성의 얼굴이 눈 앞에 아른거린다. 본인의 형수인 순이다. 본인이 어릴 때 집에 시집와 형님과 본인의 어머니인 시어머니를 살뜰히 챙기며 본인의 공부 뒷바라지까지 했던 형수다. 그걸 당연히 여기는 어머니였고 형님이었다. 본인이 결혼해서 문산리에 가서 살게 될거라곤 전혀 생각하지 않지만 희수를 영월에 데려가 어머니를 만나게 된다면, 비슷한 상황을 본인이 목도해야한다면. 어머니는 막내 며느리를 어떻게 대할것인가, 본인은 어떻게 할 것인가 등등. 여러가지 생각이 머리속에 맴돈다. 한때 재학은 이런 이유로 결국 본인은 혼자 살게 되지 않을까 길게 생각했던 시절도 있었다. 분명 옆 학교의 학우를 보고 남 모르게 시작했던 첫사랑을 접었던 때였다.


아직 제대로 된 연애도 시작하지 않은 재학과 희수였지만 여자 손도 한번 못 잡아본 문산리 촌놈에게 본격적인 연애란 곧 결혼이었기에 우아떠느라 많이 먹지 못한 저녁 스파게티 대신 김치국을 사발 째 들이켜고 있었다.


‘어떻게든 되겠지… 근데... 집이 엄청 좋던데...’


과연 부티가 난다 했더니 희수의 집은 본인으로선 구경도 못해본 집이었다. 보아하니 입구 옆으로는 차가 드나드는 차고가 있었고 열린 문틈으로 언뜻 보니 집 앞에 작은 공원처럼 보이는 정원이 있었다. 대충 봐도 굉장한 부자처럼 보였다. 생각을 하다 보니 희수와 본인집의 재산 정도까지 생각이 미친 재학은 애써 구름 한점 없이 맑은 밤하늘을 올려다봤다.


‘벌써 무슨…’


그저 오늘밤은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이 행복감을 만끽하려 잡생각들을 털어내는 재학이다.


이전 08화서울에서 만나요_08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