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만나요_10화

by Breeze

“그럼 졸업하기 전까지 영월은 안가는거예요?


“네 아마도...”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려는 오후지만 한여름의 열기는 아직 식지 않는다. 재학이 일하는 서점 앞의 벤치에 앉아 희수와 재학이 한 손엔 부라보콘을 들고 다리를 흔들며 앉아있다. 지나가는 사람들을 구경하며. 아직 인근 학교들이 개강하기 전이고 시간대도 저녁을 향해 가는지라 이 시간의 서점은 한산한 편이다. 신촌 한복판도 많이 조용해진 기색이다. 희수도 집을 나설 때 명함보단 양산을 더 신경 써서 챙기게 되었으니.


“어머니가 뭐라고 안하세요? 졸업이면 1년 넘게 남았는데?”


“딱히… 뭐라고 안 하신다기보다... 영월에서 서울은 다른 나라처럼 거리가 멀고, 유학온거처럼 생각들 하시니까요.”


“근데 왜 안가요? 가면 어머니가 밥도 해주시고 좋지 않아요?”


“그냥 좀… 불편해요”


“불편이요?”


재학은 말을 이어가지 못하고 우물쭈물한다. 남들에게 한번도 꺼내어 본적 없는 얘기라 그럴까, 본인이 하는 생각이 못된 생각이라고 스스로 생각하는 걸까.


“그냥... 어릴 때부터 집에 있는 게 한번도 편하지 않았어요. 딱히 원하지도 않았는데 형은 본인이 희생해서 집을 이끌어 간다는 기색이고 어머니도 본인들은 농사짓지만 나 만큼은 공부 시키니 꼭 성공해야한다는... 해달라고 한적도 없는데 뭔가 집 전체가 나를 위해 희생하니 넌 마땅히 감사해야하고 부채감을 느껴야 한다는 그런 기색이… 얼굴도 기억 안나는 돌아가신 아버지한테도요. 그래서 얼른 공부해서 서울 오려고 했던거예요. 다행히 해보니 공부는 못하는 편이 아닌 거 같고. 서울 와서 내가 한 공부로 밥벌이만 하면 영월 가서 그런 거 안 봐도 되니까…”


“아...”


부라보콘을 신나게 먹다가 본인 생각보다 심각한 얘기에 입을 멍하니 멀리고 재학의 옆얼굴을 바라본다. 재학은 괜한 말을 했다 생각했는지 헛기침을 하곤 아이스크림을 열심히 씹어댄다.


“좀.... 이기적이죠? 어머니랑 형님이 고생해서 저 학교 보내고 공부 시키고 있는 게 맞는데. 가끔 연락드리고 할 때마다 좀… 생각만으로도 죄짓는 거 같고.”


“아뇨 그럴 수도 있죠. 아무리 본인이어도 저절로 드는 생각이나 마음까지 어쩔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잘은 모르지만 옆에서 비슷한 걸 많이 봐서 알아요. 기대해달라고 한적도 없는데 이미 죄인이 되 있는 기분”


말을 하며 희수는 대학에서 만났던 동기들을 떠올렸다. 어릴때부터 부모님의 기대와 바람으로 클래식을 시작해 부모의 지원을 한 몸에 받으며 클래식 악기를 해왔지만 정작 본인의 실력과 적성이 집안의 기대에 맞는 결과를 가져오지 못하는 경우를 많이 봐왔다. 그럴 때 동기들은 부모와 주변의 기대감 어린 시선 자체를 버거워했고 그들을 실망시키는 것을 두려워했다. 동기들 본인들이 하고싶다고 선택한 것도 아니었을진데. 그들을 봐왔기에 재학의 마음이 어느정도는 이해가 됐다. 원하지 않은 기대에 부응해야하는 부담감을.


“희수씨는요? 피아노 그만둘 생각이에요? 부모님은 뭐라셔요?”


둘이 만나는 시간이 길어져 자연스레 희수의 속 마음도 알게 된 재학이었다.


“저희 부모님은 그런 걸로는 딱히 신경 쓰지 않으세요. 애초에 대단한 기대를 가지고 시키신 것도 아니었고, 제가 하고싶다고 해서 했던 거라. 그냥 저 좋으면 그만이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이에요.”


“아…”


이런 집도 있구나.... 재학은 생각했다. 부자라 그런가.


“우리 만나는 거.... 아셔요?“


재학과 희수는 얼마전 정식으로 교제를 시작했다. 재학이 도대체 어떻게 마음을 전할까 고민하고 있을 때, 재학을 기다리다 가는 졸업전엔 시작도 못하겠다 싶어 희수가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냐는 질문에 그 자리에서 무릎 꿇고 마음을 고백해버린 재학이었다. 그 흔한 꽃 한송이도 없이. 희수는 자지러지게 웃으며 재학을 일으켜 세웠고 그렇게 이들은 연인이 되었다.


“알고 계시죠. 제가 말 했어요. 언제 한번 데리고 오라던데요?”


“푸흡! 예....?”


“아하하 뭘 그렇게 놀라요 나중에요 나중에. 우리 결혼하게 되면 그때 인사드리러 가요.”


“어.... 아.... 결혼....”


본인도 항상 하던 생각이지만 희수의 입에서 아무 저항감 없이 결혼이라는 말이 나오자 순간 고장나버린 재학이었다.


“왜요 나랑은 연애만 하고 결혼은 딴사람이랑 하려고 했어요?


“아 아뇨! 해야죠! 결혼!”


“아하하”


재학은 시뻘게진 얼굴로 고개를 숙인 채 남은 아이스크림을 전부 먹어치웠고 그런 재학을 재밌어 죽겠다는 얼굴로 희수가 바라보고 있었다.


“어 손님 들어간다.”


“아.... 다 드셨어요? 쓰레기 주세요 가져다 버릴게요.”


재학은 고개를 들고 손님을 따라 들어가며 희수의 아이스크림 껍데기를 챙겨 서둘러 일어난다. 서점으로 뛰어 들어가는 재학의 등에 희수는 소리친다.


“저 이제 갈게요~! 집에 가서 전화할게요!”


“아! 네! 조심히 들어가요 헤헤”


재학이 일하는 날엔 데이트는 못하더라도 서점에 있는 전화기로 통화는 할 수 있었기에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희수는 집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


퇴근 시간 마포 공덕의 한 갈비집. 고기 굽는 연기와 냄새, 그리고 담배냄새가 섞여 뜨거운 열기를 만들어낸다.


“희수야 여기~!”


“아!”


멀리서 본인을 보고 손을 흔드는 재학의 손짓에 마주 손을 흔들고 재학이 있는 테이블로 다가간다.


“안녕하세요 재학 오빠 여자친구 이희수라고 합니다. 헤헤 잘 부탁드려요.”


“진짜로... 여자친구가 있었어...?”


“왜 쟤가 먼저…?”


재학의 옆에 빈자리를 찾아 앉으니 재학의 옆에 앉아있는 친구들이 저마다의 방식으로 희수를 반겨줬다. 재학을 제외하고 3명이었다.


‘어. 저 사람...’


그 중의 한 명 별말 안하고 웃는 낯으로 고개를 꾸벅 숙여 인사하는 사람의 얼굴이 낯이 익다. 본인이 한국에 막 돌아왔을 때 독다방에서 재학에게 어려운 부탁을 하던 2명 중 한명이었다. 올 2월에 구속되었다던 관련자들이 전부 석방되었다던 뉴스가 희수의 머리속을 스쳤다.


“안녕하세요 송무호라고 합니다.”


“안녕하세요 김영준이라고 합니다.”


“김다훈이라고 합니다. 하하 잘 부탁드려요”


그 남자의 이름은 김영준이었다.


“그나저나 진짜 재학이 놈이 여자친구가 있는지 몰랐네요… 진짜 거짓말인 줄 알았는데...”


본인을 김다훈이라고 소개한 재학의 친구가 웃으며 말을 이었다. 보아하니 분위기를 주도하는 친구인거 같았다.


“아하하 앞으로 또 보게 될 수도 있는데 잘 부탁드려요.”


“우리가 잘 부탁드려야죠. 듣자하니… 학교가…?”


“네 옆에 이대 다니고 있어요.”


“이화여대…! 앞으로 정말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여러모로.”


“아하하 네네”


서글서글 하게 대화를 이끌어가는 다훈의 말에 희수도 한결 편해졌고 재학의 친구들과도 자연스레 말을 나눴다.


“자자 한잔씩 하자고. 오늘 진짜 몇 없는 짠돌이 재학이 놈이 쏘는 날인데. 근데 쏠거면 좀 좋은 거 좀 쏘지 기껏 여자친구 소개시켜주는 자리가 마포에서 갈비가 뭐냐 갈비가.”


“일당 일하는 대학생이 무슨, 야 술이나 마셔”


재학은 영준이란 친구의 말을 끊으며 잔을 들었다. 희수와 재학도 데이트하며 술을 안 마신 건 아니나 확실히 친구들과의 술자리에 재학은 편해 보였다.


“재학이에게 듣자 하니 이제 곧 결혼 하시는거예요?”


“네 우선 부모님한테 인사 드리고 식은 내년 초에 올리려구요. 오빠 임용준비도 본격적으로 해야 하니까”


“이야... 최재학이...”


“뭐 그렇게 됐다.”


“너는 절대 결혼 못 할 줄 알았는데… 니가 제일 먼저…”


“우리 중에 정상은 나 하난데 내가 왜?”


왁자지껄하게 술이 돌다 보니 모두들 금세 취했다. 그중 다훈이라 소개한 친구가 분위기를 띄우느라 술을 많이 마셨음인가 몸을 못 가누기 시작했고 나머지 이들도 오늘은 간단히 소개하는 자리였기에 이만 자리를 파했다.


“야야 쟤 잘 좀 챙겨라”


“그래 너도 조심히 들어가고. 희수씨 조심히 들어가세요 다음에 또 봬요”


“아하하 네 오늘 반가웠어요 조심히 들어가세요.”


친구들을 먼저 보낸 재학과 희수는 희수가 탈 버스 정류장까지 걷기 시작했다.


“아 참 엄마가 오빠 뭐 좋아하는지 물어보래요”


“나… 나야 뭐… 뭐든 다 좋지… 근데 거기서 뭘 먹을 수 있을까…”


“아하하 오빠 떨려요? 안 떨린다면서?”


“떨리긴 뭐… 하하”


걷다보니 어느새 버스 정류장 앞이다. 잠깐 기다리니 버스가 왔고 희수가 버스에 올라탄다. 평소라면 데려다 주겠지만 통금에 걸리지 않으려면 여기서 헤어져야했다. 버스에 탄 희수가 재학을 향해 손을 흔든다.


“조심히 들어가 희수야.”


“오빠도~!”


희수를 보낸 재학은 기숙사에서 학교까지 거리가 좀 있으나 술도 꺨꼄 걸어가기로 한다. 걷다보니 어머니와의 통화가 생각이 나는 재학이다.


***


“어어... 그려... 알았다... 그려 들어가거라...”


“뭐라는겨 재학이가?”


전화기를 내려놓는 복순의 옆에서 통화하는 양을 지켜보던 마을 이장이 복순에게 물었다. 이장과 복순은 문산리 한동네에서 나고 자란 누나 동생 사이이다. 아버지때부터 하던 이장일을 물려받은 이장의 집은 2층으로, 1층은 마을 회관을 겸하여 사용중이고 2층이 집이다. 문산리에 전화기는 이집이 유일하기에 재학이 집에 급히 연락해야 할 일이 있을 때는 이장네를 통해 어머니에게 소식을 전하거나 통화를 하곤 했다.


“만나는 색시가 있다는디…”


“어이구 그럼 잘 된거지 표정이 왜 그려? 왜 어디 문제라도 있대?”


“그런 건 아닌데… 서울 깍쟁이들 만나서 우리 재학이 주눅이나 들지 말아야 할텐디…”


“참 걱정도 팔자네, 이 동네에서 어릴때부터 공부를 젤로 잘해 서울까지 가서 공부한 놈 아니여 재학이가. 이제 선생 된다 안했어?”


“그려지... 그래야 할텐데...”


“그래서 누님한테 말할 정도면 뭐 와서 인사라도 시킨다 그러는 거 아녀?”


“올해 지나기전에 한번 영월 온다는디...”


“잘됐네 그럼. 오랜만에 재학이 얼굴도 보고. 1년 훨씬 넘었잔어. 서울이 아무리 멀다 해도 그렇지 재학이 놈은 너무 지 엄니 보러 안오는거 같어.”


“남에 집 애 걱정할시간에 니 애나 잘 관리해 이 놈아. 아직도 집에서 빈둥댄다면서? 농사일도 안 도우는거 같더만.”


“….”


“나 간다”


본인 자식 얘기가 나오자 조개처럼 입을 다무는 이장을 두고 복순이 무릎을 짚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이고 누님 온 김에 밥이라도 먹고 가지 않고”


“순이한테 먹고간다고 말 안혔어. 시간됐으니 준비하고 있을 텐데 먹어도 제 집 가서 먹어야지. 나 간다. 나오지 말어”


이장의 집을 나선 복순을 집을 향해 걸으며 생각에 잠겼다. 재학의 말을 머리속으로 곱씹으면서다. 듣자 하니 재학이 만나는 여자는 재학보다 1살 아래라 했고 재학의 대학 인근에서 대학을 다니는 서울 토박이라고 한다. 아비는 크게 사업을 하는 집이라고. 재학의 말을 듣자마자 복순의 머리속에는 이른 걱정에 사로잡혔다. 취업후나 결혼후에 재학이 영월에 와서 살길 기대한 것은 아니나 최소한 선한 시골 여자를 만나면 좋겠다고 막연히 생각해왔다. 가만히 있어도 코를 꿰어간다는 서울 사람들 틈바구니에서 자란 여자가 얼마나 까탈스럽고 표독스러울 것인가.


또, 듣자 하니 있는 집 자식이라는데 시골 출신이라고 얼마나 집에서 책을 잡아 댈지. 열심히 공부시키고 귀한 거 먹이며 키우려고 노력한 자식이 천덕꾸러기 사위 취급 받을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숨이 갑갑한 게 마음이 편치 않다.


‘올해가 가기 전에 온다고 했으니…’


이제 10월도 끝나가니 단 2달이 남았을뿐이다. 걱정도 걱정이지만 벌써 막내 아들인 재학까지 색시를 데리고 집에 온다는 말을 들으니 한편으로는 헛헛한 마음도 든다. 잠깐 멈춰서 하늘을 올려다보는 복순. 어디를, 누구를 바라보는 걸까.


“가야지 어여… 오래 기다릴라…”


***


청담동에 붉은 벽돌로 이루어진 대문 앞에 재학과 희수가 서있다. 희수는 즐거운 듯 미소 띤 얼굴로 재학의 손을 잡고 있었고 재학은 애써 긴장을 숨기려는 표정이다.


“오빠 떨려요?”


“아 아니… 응 조금… 떨리네…”


“하핫 괜찮아요 긴장하지 말아요.”


영월까지는 거리가 있기에 종강후에 가기로 했다. 가까운 희수의 집에 먼저 인사를 드리자 둘은 생각을 맞췄고 오늘이 그 약속 날이었다. 같이 일하는 선배에게 양복을 빌려 입고 코트까지 입은 재학은 제법 태가 났으나 긴장을 옷맵시에 숨기긴 어려웠다.


삐리리리삐리리리 리리리


초인종 소리가 울리고 자기집 초인종 누르고 들어가보는 건 또 난생처음이라는 희수의 중얼거림을 성긴 여과지처럼 머리속에서 넘겨 보내고 있자 이윽고 철컹 하고 대문이 열렸다. 따로 나오는 사람은 없었다. 안에서 문만 연 모양이다.


“들어가요”


희수가 손을 잡아끌며 안으로 들어가 돌계단을 밝고 오르자 앞에 조그만 마당이 있었고 마당너머 집으로 들어가는 현관문이 보였다. 현관문이 열리며 희수를 닮은 아니 희수가 닮은 중년 여성이 웃으며 재학을 반긴다.


“왔어요? 어서와요 반가워요 희수 엄마에요.”


“안녕하세요 최재학이라고 합니다. 처음 뵙겠습니다.”


“그래요 들어와요”


원희는 시종일관 웃는 낯으로 재학을 반겼다. 희수를 닮은 그 웃음에 재학의 긴장도 조금은 덜어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아빠는?”


“안에 계셔”


현관에서 구두를 벗고 들어가자 한 중년 사내가 읽던 신문을 내려놓고 일어났다.


“어서오게. 희수 아비일세.”


“안녕하십니까 최재학이라고 합니다. 처음 뵙겠습니다.”


내민 경철의 손을 맞잡으며 재학이 허리를 숙였다. 재학이 느낀 경철의 첫인상은 한여름 작열하는 뙤약볕을 견디며 땅을 일구는 농사꾼의 그것과 닮아 있었다. 희수의 말만 듣자면 딸의 말을 잘들어주고 딸이 원하고 좋아하는 것이라면 마음에 안 들어도 결국은 들어주는, 한없이 자애로운 아버지로 생각할 수 있었으나.... 재학이 직접 본 경철은 고집스레 굳어 있는 입매, 진하고 경계가 뚜렷한 검미, 전완부터 손목까지 두껍지 않은 부분이 없는 하박과 더불어 짊어진 게 많아 단단해 보이는 어깨까지. 하나같이 쉽지 않아 보였다. 같은 남자로써 봤을 때.


“식사부터 하세요”


원희의 말에 경철을 더불어 재학과 희수가 식탁에 둘러 앉았다. 바닥에 앉아 먹는 상이 아니라 식탁이다. 재학은 처음 와본 희수의 2층집이 눈에 들어올 겨를이 없었다. 평소였다면 입을 헤 벌리고 감탄할 만큼 넓고 구경해본 적 없는 고급 주택이었으나 지금 재학은 어려워 보이는 경철은 물론이거니와 친절해 보이는 원희의 눈치조차 살피느라 혼자 조용한 정보전을 치루는 중이었다.


“가리는 거 없다고 해서 내 나름데로 차려봤는데 입맛에 맞을련지는 모르겠네요.”


원희가 웃으며 고기가 가득 담긴 접시를 재학의 앞으로 옮겨 놓았다. 식탁에는 대충 봐도 공을 들인 음식들이 한가득이었다.


“너무 맛있습니다 어머님”


“어머님? 호호호 듣기 좋네 그 말”


“크흠”


경철이 헛기침하자 희수와 원희 둘 다 경철을 순간 바라봤지만 크게 개의치 않아 하는 표정이었다.


“그래 사범대를 다닌다고?”


“아… 네 국어교육과입니다.”


“내년에 시험보는건가 그러면?”


“네 졸업하고는 바로 임용 준비하려 합니다.”


경철이 재학에게 말을 붙히자 원희와 희수도 적당히 조용히 하며 밥을 먹었다. 가장이 대화를 이끌어야 하는 순간이라고 생각한 것일까.


“어머니는 영월에 계시다고 들었네만…


“네 영월에서 농사 지으십니다.”


“아버지는?”


“제가 태어나고 이듬해에 돌아가셨습니다. 휴전되기 직전에 임계선 근방에 가셨다가 사고를 당하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럼 어머님이 자네랑 형까지 둘을 건사하고 키우신건가?”


순간 재학의 머리속에 본인을 살뜰히 챙겼던 형수의 얼굴이 생각이 났지만 지금 할만한 얘기는 아니라 생각했다.


“네”


“어머님이… 아주 대단하시네 혼자 아들 대학공부까지 시키시기 정말 쉽지 않으셨을 텐데 아주 존경스러운 분이구만.”


“듣자하니 그 동네에서 농사도 제일 크게 지으신데요”


옆에서 맞장구치는 희수다.


“자네가 잘해야겠어 앞으로도.”


“아… 네”


“재학씨가 어련히 잘할까. 식사부터 하세요들.”


점점 깊어지는 주제에 재학이 대답을 고르기 시작한 걸 눈치챈걸까. 원희의 말에 경철도 이만 말을 줄이고 식사에 집중한다. 원희와 희수의 가벼운 대화만이 이어지며 식사를 마치고 원희와 희수가 식탁을 정리하자 재학도 눈치껏 도왔고 의외인건 경철도 옆에서 간단한 걸 옮기며 도왔다. 퍽 자연스럽게. 시골에선 형님은 물론 본인조차 상 차리고 내가는 거에 손을 보태지 않았고 형수와 어머니가 해왔지만 가만히 있기가 뭐해서 도왔던 건데 가장인 경철이 자연스럽게 상을 치우고 식탁을 비우자 재학으로썬 신기하기 그지없었다. 본가와는 다른 집안 분위기를 새삼 피부로 느꼈다.


상을 전부 치우고 거실의 테이블 주변으로 둘러 앉았다.


“그래… 들어서 대충은 알고 있네만 오늘 보자고 한건 앞으로의 계획이 있어서겠지?”


경철이 원희가 내온 커피를 마시며 입을 열었다. 재학은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이제 정말 긴장해야 할 터였다.


“예… 희수씨와 결혼하고 싶습니다 허락해주십시오.”


“희수가 벌써 결혼이라니… 참 시간 빨라요 여보 안 그래요? 그럼 날짜는 언제로 생각하고 있어요?”


“내년 봄쯤이 어떨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물론 어머님과 아버님, 그리고 영월에 계신 어머님께도 여쭤보고 괜찮다 하시면요.”


“우리야 괜찮지 않을 이유가 없지 안 그래요 여보?”


“임용은 내년 말이라고 하지 않았나?”


이어진 경철의 말에 재학은 미리 생각한 질문이었다는 듯이 대답했다.


“아... 네 맞습니다. 임용시험 볼때까진 지금 일하는 서점에서 계속 일할 생각이고 어머님께 도움을 받거나 제가 조금씩 모아놓은 돈으로 학교 인근에서 작은 방을 얻어 시작할 생각입니다.”


말을 하며 재학은 슬쩍 경철의 눈치를 살폈다. 척 봐도 고급스러운 집에서 남 부럽지 않게 딸을 키운 경철의 입장에서 좋게 포장했지만 어머님께 손을 벌리거나 단칸방에서 시작하겠다는 딸의 반려가 반가울 리 없다고 생각하며. 재확과 원희, 희수의 시선이 모두 경철에게 모였다.


“….”


경철의 입이 열리는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래 어차피 할 결혼이고 어차피 볼 시험이라면 날짜에 목 메이지 않아도 되겠지. 자네가 희수와 상의해서 제일 괜찮다 싶은 일정으로 한번 생각해보게. 회사 일정에 걸리지만 않는다면 사돈어르신 일정에 우리가 맞출 테니, 희수와 잘 생각해서 계획을 짜봐. 상견레부터.”


원희와 희수는 생각했던 것 보다 더 담백한 동의의 말에 순간 말을 잃었다. 허락하지 않는 건 생각하지 않았지만 이리 저항 없이 한마디만에 이야기가 정리될 줄은 또 몰랐다.


“아니, 아빠 너무 승낙이 쉬운 거 아니에요? 그래도 하나뿐인 딸인데?”


멍해진 것도 잠시, 입을 샐쭉이며 장난스레 경철에게 말하는 희수였다. 경철은 콧방귀를 끼며 답했다.


“어렵게 승낙했으면? 허락 안 했으면 니가 내 말 들을 생각이나 있고? 아쉽게도 하나뿐인 딸 성질머리를 내가 제일 잘 아네요”


“치이. 그래도”


“사실 생각할 것도 없었다. 물론 걱정이 안되진 않지만 자기 짝 하나 못 찾을 정도로 우리 딸이 바보라고 생각하지 않아. 얼마나 고르고 골랐을까. 그저 걱정은 희수 너 집에서 하는 거처럼 사돈어르신께 하면 안된다. 항상 깍듯하니. 그게 이 애비랑 어미 욕 안 보이는 거야 항상 품행 단정하게. 알았지?”


“제가 뭐 아직 애 인줄 알아요?”


재학은 고개를 숙인 채 대화를 듣고만 있었다. 본인이 낄 대화가 아니라고 생각했고 할말도 없었다. 오기전에 많은 걱정을 했다. 대단치 않은 집안을 문제 삼으면 어떡하나, 아버지 없이 어머님만 계신 걸 책잡으면, 결혼 후 본인 딸 영월가서 고생 안 시키고 서울에서 편안하게만 살수 있다고 얘기할 수 있나 등등... 본인이 속 시원히 하지 못할 대답들만 머리속에 만들며 스스로 말문이 막히기 일쑤였다.


“재학씨? 어머니댁에는 언제 찾아뵌다구요?”


본인을 찾는 원희의 목소리에 재학이 화들짝 정신을 차린다.


“아 네, 학기 마치는 데로 찾아 봬려고 합니다. 아마 올해안에는 갈 거 같습니다. 1월되면 거긴 눈이 많이 와서 다니기가 힘들 수도 있어서요.”


“그래요 그럼 다녀와서 상견례 날짜도 말해줘요 내가 날짜를 몇 개 줄 테니”


“네 감사합니다.”


이후엔 재학은 별 말 없이 희수와 원희가 주로 대화하는 걸 듣기만 했고 경철도 간간히 대화에 끼어들며 자리가 이어졌다. 술을 먹을 자리도 아니고 먹지 않았기에 자리가 길게 이어지진 않았고 영월에 다녀와 다음을 얘기하기로 하고 재학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후엔 희수를 통해 전달하면 될 터였다.


“그럼 들어가요. 오늘 온다고 고생 많았고.”


경철과 원희가 현관앞에 서서 재학을 배웅한다. 경철은 읽기 어려운 표정으로 재학을 바라보고 있었고 원희만이 화사한 미소로 재학을 향해 손 흔들어 준다.


“네 다음에 또 뵙겠습니다. 어머니”


“바래다주고 올게요 들어가세요”


“그러렴”


희수와 재학이 함께 문을 나섰다.


“별… 일… 없었지…?”


다리가 풀린듯 대문을 나서자마자 스르르 쪼그려 앉는 재학의 모습에 희수는 폭소를 터뜨리며 재학의 앞에 마주 쪼그려 앉는다.


“별일이 있기는? 우리 오빠 또박또박 말도 잘하고 얼마나 멋졌는데. 우리 아빠 앞에서 초면에 그러기 쉽지 않은데. 우리 아빠 못되게 생겨서”


“어... 어... 좀... 아니야...”


“좀...? 아하하 아무튼. 다행히 별 문제 없이 지나갔네요 오빠”


“아 아니... 아니야... 후... 그러게 진짜 지나갔다...”


“고생했어요 여보”


“켁!”


쪼그려 앉아 숨을 고르던 재학의 희수의 여보 한마디에 사레가 들러 쿨럭댄다.


“왜? 뭐가 어때서 이제 결혼할 사이인데 그냥 연애도 아니고.”


“컥컥 그렇지 그건 그렇지...”


“앞으로 잘 부탁해요 여.보”


먼저 일어나서 손을 내미는 희수. 재학이 손을 물끄러미 보다가 손을 잡고 한손으론 땅을 짚으며 일어난다.


“그래요 여보”


둘은 마주보며 활짝 웃었다. 결혼을 약속한 연인의 미소는 어딘가 닮아 있었고 늦가을의 날씨는 이들을 축복하듯 때 아닌 훈풍을 불러왔다. 적어도 지금 이 순간은 모든 걱정과 근심 없이 오롯이 둘로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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