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만나요_11화

by Breeze

희수네 집에 다녀와서도 재학의 일상은 크게 달라진 부분이 없었다. 다만 다가오는 졸업을 준비하며 먼저 임용고시를 치른 선배들을 만나며 시험에 대한 정보를 얻는데 조금 더 신경을 기울이고 있었고 때론 친구들을 만나 불안한 세상을 성토하는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그럴 때마다 그들의 사회의식에 맞장구 쳐주는 한편 한 켠에선 희수와의 미래를 그리느라 바빴지만.


그 외 시간은 서점에서 일했으며 최근 서점에 양해를 받아 근무시간을 조금 더 늘렸다. 결혼 전 어떻게든 한 푼이라도 더 벌면 좋지 않겠나 하는 생각에서였다. 본인이 결혼할 집에 사정에 비하면 이 마저도 미미하겠지만.


11월도 중순을 넘기고 있는 시점이었다. 경철이 재학이 일하는 서점에 찾아온 것은. 재학은 약 한달여만에 다시보는 예비 장인어른의 갑작스런 방문에 심장이 벌렁거렸지만 가까스로 진정시키고 경철을 맞았다. 경철은 퇴근하고 바로 왔는지 밤색 정장에 코트까지 색을 맞춘 차림이었다.


“아... 아버님 어쩐일이세요?”


첫마디에 무슨 일로 오셨냐는 말이 뭔가 실수 한건가 싶었지만 이미 뱉은 뒤였다. 다행히 경철은 신경 쓰는 기색이 아니었다.


“잠깐 시간 좀 내줄 수 있는가? 일찍 끝나는 날이 오늘뿐이라고 들어서. 바쁜데 찾아온 건 아닌지 모르겠어”


“아... 잠시만 기다려주시겠어요?”


재학은 여러가지 생각을 뒤로하고 서점에 들어가 마침 교대하기 위해 출근한 선배에게 양해를 구했다. 아직 퇴근시간까지는 30분이 남았으나 대충 눈치를 본 선배는 얼른 들어가라고 해주었고 외투를 챙겨 입고 재학은 서점을 나섰다.


나란히 걷는 둘은 별 말이 없었다. 재학은 뜬금없이 찾아온 경철의 눈치를 살피느라 바빴고 경철은 속내를 짐작하기 어려운 표정으로 앞만 보며 걸었다.


“갑자기 찾아와서 미안하네”


“아 아닙니다. 장인어른 그런데 정말 무슨 일이 있으신지…”


“좀 앉지”


걷다 보니 어느새 인적이 드문 길로 접어들었고 공원 벤치가 보였다. 사위가 조금은 조용해지자 경철은 입을 열었다.


“집을 얻는 돈은 고향에 계신 모친과 상의 해볼거라 했던가?”


“아… 네 우선은 그럴 생각입니다.”


재학은 올 게 왔다고 생각하며 속으로 눈을 질끈 감았다. 경철이 얘기를 꺼낸 순간 뒷덜미로 온몸의 열감이 몰리는 기분이었다. 아무리 본인 본가가 문산리에선 큰 농사를 짓는다고 해도 서울에서 사업을 운영하는 희수의 집과는 같을 수 없고 재학이 해올 집과 희수가 가져올 혼수는 애초에 비교하는 것 조차 우습다 생각했으니. 본인의 최선에 경철은 그에 맞는 혼수를 내어줄 것이며 딸에 대한 애정으로 조금 기울게 준비해주면 그저 고개 숙여 감사해야하는 현실이 뻔한 터였다. 애초에 예상했던 일이건만 재학은 속이 텁텁해졌다.


“그건 그리 걱정하지 말게”


“예?”


이어 경철의 입에서 나온 한마디에 재학은 순간 벙쪗다.


“집 말이야. 아니 집을 떠나 필요한 경제적인 것들. 그런 부분은 얼마든지 내가 해결해줄 수 있어. 그 정도의 여력은 충분히 있고. 자네가 걱정하고 있는 거 같아서 미리 말하네만, 그런 걸로 자네 본가와 자네를 저울질할 생각은 추호도 없네. 자네 어머니는 홀로 두 아들을 이리 멋지게 키워 내셨다고 했지. 그 자체로 존경받아 마땅해. 고작 그런 걸로 자네와 자네 본가를 내가 달리 생각하지는 않을 거란 말이야. 그러니 그런 걱정은 접게.”


“…...”


재학은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몰라 그저 경철의 말을 듣기만 했다. 경철은 조금 뜬금없게 본인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부모님이 일찍 돌아가시고 여동생과 단 둘이 세상에 남겨졌을 때 여동생을 건사하고 행복한 가정을 가지는 게 내 오랜 꿈이었어. 다행히 장사부터 시작해서 일머리가 있었고 운이 좋아 여기까지 올 수 있었네.”


“…대단하십니다.”


재학은 진심으로 그리 생각했다. 존경심마저 일었다. 혈혈단신으로 여동생을 건사하고 회사를 키워 여기까지 온 경철이란 남자에게.


“희수가 자네를 데려왔을 때 안도했네. 난 내 딸에게 특별히 바라는게 없어. 그저 행복하게 잘 살기만 바랄 뿐이야. 돈은 내가 충분히 벌어뒀으니 경제적인 건 얼마든지 책임져줄 수 있어. 그러니 어디 한눈 안 팔고 본인에게 잘해주는 남자를 만나 잘 살길 바랄 뿐이었네. 자네를 봤을 때 다행히 안심이 됐고.”


“감사합니다...”


냉담해보이고 근엄해 보였던 인상과 달리 너무나도 다정하고 따뜻한 가장의 바람과 소망이었다.


“자네 내가 무슨 사업하는지 알고 있나?”


“잘은... 모릅니다. 제조 공장이라고 희수에게 전해 들은 거 말고는...”


“부품 만드네 총, 탱크 그런 거에 들어가는 부품들. 원래는 가전제품에 들어가는 부품도 만들었는데 이제는 이 쪽 일만 하고 있는 상태야.””


“아…”


경철이 운영하는 회사가 방위 산업 인줄 몰랐던 재학은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지금 회사 직원이 몇 명인줄 아나?”


“잘... 모르겠습니다.”


“250명일세. 그 중에 봉제공장에서부터 나랑 같이 일을 한사람들은 50명 정도고.”


생각보다 더 많은 직원들의 규모에 재학은 내심 놀랐다. 희수는 대수롭지 않게 제조공장을 운영한다고 했고 그저 작은 공장을 하나보다 했었던 재학이었다. 그럼에도 경제력면에서 본인의 집보다 훨씬 나으리라 생각했던 것이지만.


경철은 담담히 말을 이었다.


“원래 내 가정만 잘 꾸리고 지키자 했던 일이 이쯤 되니 사정이 달라지더군. 그리 대단치 않은 사람인데 어쩌다 보니 250명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사람이 되어버렸어. 제일 중요한 우리 가족 말고도 나를 보며 본인 가족을 건사하는 사람이 250명이나 된단 말이야. 그들의 가족들까지 생각하면 내가 책임감을 가져야 하는 사람이 몇인지는 생각하기도 무서워지는 숫자야.”


“….”


재학은 본인 얘기를 담담히 하는 경철의 진의를 파악하기 위해 잠자코 경철의 얘기를 듣기만 했다.


“지희라고 아나? 희수의 대학 동기”


“이... 네 알고 있습니다 몇 번 만났습니다.”


“그 아이 어머니와 안사람이 친해. 가끔 만나 커피도 마시고 하는 것 같더군. 전해들었어 자네가 작년 4월에 고초를 겪었다는 걸.”


“아……”


재학은 망치로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듯했다. 이제야 경철이 오늘 본인을 찾아와 이리 긴 얘기를 하는 저의를 알아챘다. 이 결혼에서 가장 걱정해야 할 것은 기우는 경제력이 아니라 어설펐던 본인의 이력이었다.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이렇다 보니 어쩔 수 없이 관심을 기울일 수밖에 없어. 그런 의미에서 묻겠네. 자네 아직도 그쪽에 몸담고 있나? 대충 상황을 보니 깊게 관여한 건 아닌 거 같네만. 솔직히 대답해주게.”


“….아니요 잠깐 친구가 한 부탁을 외면할 수 없었던 거고 특별히 함께하거나 소속감을 가지고 있지도 않습니다. 저도 애초에 큰 관심 같은 건 없구요.”


재학의 말을 들은 경철은 단호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그렇다면 앞으로 엮이지 말게. 무슨 이유로도. 지금껏 있었던 일은 내 힘으로 없던 일로 할 테니. 내 말 무슨 뜻 인지 알겠나?”


“...알겠습니다.”


경철의 말에 무슨 뜻인지 짐작한 재학이 고개를 주억거리며 대답했다.


“말했듯 난 희수의 아비이기도 하지만 그 여러 사람의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사람이기도 해. 내 입장을 이해해줄 거라 믿네.”


“당연히 이해합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럴 일 없을 겁니다.”


“그래... 고맙네”


재학은 경철의 옆 얼굴을 바라보며 희수가 있는 자리가 아니라 이리 본인 퇴근시간에 맞춰 따로 찾아온 경철의 마음 씀을 느꼈다. 딸이 결혼하겠다고 데려온 남자에게 어떻게든 싫은 소리를 해야 할테고. 희수는 중간에서 마음 불편해 할 수 있으니 조용히 본인을 찾아와 뜻을 전달한 것이다. 똑똑한 본인의 딸이라면 이 얘기를 전해들었을 때 본인의 마음까지 헤아릴 것이라고도 생각했을터였고.


“이런... 시간이 벌써 이리되었군. 말을 하다 보니 길어졌어. 다음에 자네 쉴 때 시간이 된다면 남자끼리 술이라도 한잔 하지.”


“아 예 알겠습니다. 얼른 들어가보십시오 저도 가보겠습니다.”


경철이 먼저 일어나서 말하자 재학도 일어서서 허리를 숙였다. 경철은 그런 그를 잠깐 바라보다 손을 내밀었다. 울퉁불퉁 곡절이 많았을 사내의 손이었다.


“우리 딸 잘 부탁하네.”


“네 걱정 마십시오.”


경철의 손을 마주 잡으며 재학이 경철을 마주 바라보았다. 살짝 미소지은 경철은 손을 놓고 뒤돌아 걸어갔다. 재학은 수없이 상처 나고 아물기를 반복해 거칠지만 뜨거웠던 경철의 손을 느끼며 한참을 서서 가장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


시간은 부지런했다. 길고 길었던 재학과 희수의 대학생활이 끝을 고했고 새해가 왔다. 재학과 희수는 양장을 차려 입고 복순에게 인사를 하러 영월에 다녀왔으며 형수는 보지 못했지만 어머니와 결혼에 대한 얘기를 마쳤다. 완전히 겨울이 가기 전 경철과 원희가 재학과 희수와 함께 강릉으로 복순을 보러 왔으며 복순도 큰아들인 재무와 함께 격식 있는 옷을 차려 입고 상견례에 참석했다. 결혼식은 4월의 좋은 날을 받아 하기로 했으며 결혼 후 신혼집이 서울이 될 예정이라 경철과 원희의 배려로 결혼식은 강릉에서 하기로 했다. 재학의 친인척들이 최대한 참석할 수 있도록. 경철도 외동딸의 결혼식을 아주 요란하게 치르고 싶지는 않은 듯했다. 희수는 워낙 그런 부분에 무감했고.


***


화창하고 따스한 봄날 한적한 강릉의 한 예식장에 가족, 친구, 동료 등 적지만 많은 마음들이 그들을 축복하기 위해 모였다. 부부는 하객 한 명 한 명과 눈을 맞췄고 충분한 축하와 감사를 주고받으며 부부 서약을 맺었다.


1976년 4월 11일 따뜻한 봄날이었다.


***


“흐... 춥다...”


가능한 만큼 몸을 웅크리고 한 손에 연탄통을 든 채 총총 걷던 희수는 집으로 올라가는 언덕 앞에 잠시 서서 올라가는 길을 바라본다. 언덕배기에 계단이 없어 눈 내린 언덕이 올라가기 위험해 보이나 동네사람들이 부셔 놓은 연탄재로 길을 내놔 가만가만 올라 갈만 하다.


어디선가 무언가 태우는 듯한 냄새가 나는 것도 같고 들숨에 섞여 들어오는 찬 공기가 폐장까지 시리게 만드는 추운 날씨였다. 새해가 시작된지 한달이 채 지나지 않은 시점. 1980년, 완전한 겨울이었다.


“…...”


조심조심 희수는 언덕을 오르기 시작한다. 재학과 희수가 결혼한지도 어느새 3년하고도 6개월이 넘는 시간이 지났다. 압구정의 아파트에서 금호동의 달동네까지 흘러 들어올만한 시간이었다.


결혼식이 끝난 뒤 서울로 돌아온 재학과 희수는 그 해 11월에 있을 재학의 임용고시를 준비하기에 여념이 없었고 그 외엔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그래서 몰랐다. 재학의 동기와 후배들 사이에서 재학과 희수의 집안에 대해서 얘기가 돌고 있었는 줄은. 시작은 재학의 1년 후배가 경찰과의 연줄에서 우연히 들었다는 얘기에서 시작되었고 후배가 유언비어라는 어처구니없는 죄목으로 구속된 이후에도 재학의 이야기는 지속적으로 그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렸다.


처음엔 용케도 그런 집안에 장가를 갔다로 시작한 정도의 이야기가 재학이 경찰 조사를 받았던 이력까지 전부 없어졌다는 사실까지 어느새 알려졌고, 해명할 사람 없이 그저 성토의 자리에서 그들의 울분을 받아낼 용도로만 꺼내지다 보니 어느새 재학은 선후배와 동기, 동지들을 팔아 넘긴 개자식으로 변모해 있었다.


재학이 그 자리에 있었다면 아무리 우유부단한 재학이라도 분명히 얘기 했을지 모른다. 난 애초에 동참하길 원하지 않았다고. 그저 그런 채로 섞여 학교 생활을 하던 수많은 학생들 중에 하나였을 뿐이었는데 그저 너희들의 부탁 한번 들어줬을 뿐이라고. 멋대로 나를 너희들에게 포함시키지 말라고.


하지만 재학이 다훈에게 이 이야기를 전해 들었을 때, 바로 그 때. 본인은 그들의 말을 신경 쓰지 않는다는 다훈의 말에, 이해한다는 그의 말에 애초에 본인은 속한 적도 없는 부외자에 불과할 뿐이라고, 그러니 너에게 이해 받을 것도, 반대로 그들를 팔아먹을 일도 없다라고 얘기하지 못한 채 시끄러운 속을 달래고 그저 눈 앞의 그 사소한 배려에 의례적으로 고맙다고 고개를 숙인 순간. 재학은 부외자가 아닌 그들에게 속한 채, 변절자라는 거죽을 스스로 뒤집어쓴 것과 다름없었다. 말은 어떤 힘이 되어 재학을 옭아맸고 스스로 무언가 지은 죄를 합리화하고 있는 냥 느껴졌다.


그리고 하필 임용에 합격 후 첫 발령 받은 학교에 본인의 대학 선배가 먼저 근무하고 있었다. 직장에서조차 없는 일인 셈 칠 수 없게 된 것이다. 정작 아무도 말을 옮기지 않았지만 재학은 학교에서 조차 떳떳하지 못한 일을 저지른 마냥 스스로 위축되었고 점점 땅을 보고 걷는 일이 많아졌다. 선후배와 동기들, 그리고 직장까지. 본인이 가지고 있는 서울에서의 연고가 희수를 제외하곤 본인에게 모두 등 돌렸다는 고립감과 스스로는 아니라고 하지만 옳은 일을 외면하고 있다는 가책이 더해져 재학은 점점 메말라 갔다.


자리를 스스로 만들 용기는 없었지만 기회만 된다면 본인의 억울함과 사정을 성토하고 싶은 마음이 매 마른 논밭이 비를 기다리는 마음처럼 심한 갈증이 되어 재학의 마음 속에서 커져만 갔다. 재학은 점점 마른 땅이 되어 갈라져 갔다.


그러니 당연한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결혼식을 위장해 시위를 하겠다는 동문들의 터무니없는 계획을 전해 듣고, 그들이 경찰의 진압봉을 피해 이리저리 친구들과 교수들의 거처에 숨어 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방 한 켠을 내주게 된 심정적인 절박함은. 직접 가세하는 것도 아니고 그저 방 하나 내주는 건 문제 없을 거라 생각했고 그것이 본인에게 면피 할 구석을 마련해주리라 생각했다. 마음이 급해 그리 편하게 생각해버렸다.


하지만 그저 방을 내준 것과 본인의 집에서 그들이 체포되어 끌려 나간 건 다른 문제였다. 누군가의 신고로 본인의 집에서 몸을 숨기고 있던 후배 3명이 경찰에 의해 끌려 나갔고 수많은 사람들이 그 모습을 지켜봤다. 재학은 학교에서 근무중일 때, 희수만 집에 있을 때 벌어진 일이었다.


“……...”


언덕을 오르던 희수는 잠시 멈춰 뿌연 하늘을 바라봤다. 시선의 끝에는 무엇이 걸려있을까. 재학은 후배들을 집에 들이기 전 희수에게 충분히 상의했고 숙고후에 결정했다. 희수는 재학의 죄책감을 끝단까지 이해할 순 없었지만 이유야 어떻든 간에 점점 위태로워지는 반려를 두고 볼 수 없었다 이는 부부의 행복을 위한 당연한 결정이었다. 적어도 본인은 진심으로 그리 생각했다. 그러니 재학 혼자만의 잘못이나 책임이라 할 수 없었다. 같이 결정했고 잘못되더라도 그에 따른 책임도 같이 지리라.


“이혼해라.”


“아버지!”


“이혼해 몇 년 지나다 보면 다른 혼사 찾는 건 어렵지 않다. 지금이라도 이혼해.”


“…...”


일이 터진 후 경철의 부름으로 집에 갔을 때 경철이 재학 내외를 보자마자 한 얘기였다. 희수는 깜짝 놀라 소리쳤고 재학은 무릎 꿇은 채 고개를 처박고 있었을 뿐이다.


“내가 그렇게 부탁했건만...”


“아버지 이 사람은 진짜 아무것도 한 게 없어요. 그저 후배들 부탁을 외면할 수 없어서 잠깐 집에 묵게만 해준거예요 그것도 저랑 같이 결정한거라구요! 이이는 그 사람들이랑 연관도 없어요!”


“연관이 없긴 왜 없어! 집에 숨겨주고 몇 일씩이나 그 집 밥을 먹였으면 동참한거나 진배 없다! 더 긴말 안 할 테니 이혼해!”


“아버지!”


“250명이다!! 자그마치 250명!! 내 회사에서 돈 벌어 자기 가족 밥상 건사하는 사람이 250명이야! 매해 나라에서 주는 일감. 그 도장 하나에 그들의 밥벌이가 걸려있어! 내년 사업계획에서 떨어지면 다시 원래 하던 데로 부품이나 만들어야겠지 그럼 몇 명이나 짤라야할까! 아니 몇 명이나 먹고 살수 있을까 이 회사에서! 버틸 수나 있을까? 지금 너희들이 한 일은 그런거다! 너희가 그런 일에 연루됐다는 그 사실 하나에 수십 수백명의 생계가 날아간다!”


“……….”


아버진 토해내듯 말한뒤 소파에 힘 없이 주저앉았다.


“나도... 나도... 마냥 좋은 애비이고 싶다...”


“……….”


“……대체 왜 그랬나. 그거 잠깐 외면하는 일이 그렇게 힘이 들었나. 모두들 그렇게 살잖아 적당히 모른 척.”


“......죄송합니다...”


말하면서도 재학은 생각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 모르겠다고. 그저 조금 덜 억울하고 싶었던 것뿐이다. 조금 더 떳떳하고 싶었던 것뿐이다. 본인은 그들에게 속하는 걸 원하지도 않는데 그들은 본인을 포함시키고 변절자라 손가락질했고 조금이라도 면피하고자 했던 일 때문에 수백명의 생계가 날아가게 생겼다고 한다. 본인때문에. 그들의 부탁을 완전히 거절할 만큼 무정하지도, 그들의 비난을 덮어두고 외면할정도로 뻔뻔하고 무관심하지도, 이 모든 걸 신경 쓰지 않을 정도로 무심하지 않은 것의 대가치고는 너무 가혹했다. 너무. 너무도 가혹했다.


***


“다녀왔어요 여보.”


“…응”


“이 연탄 공짜로 받아왔다? 저번에 내가 마을 할머니 장 보신 거 짐 들어드렸다고 얘기했나? 연탄집 가고 있는데 그거 보시더니 할머니가 집에 많이 쓰지도 않는데 아들내미가 연탄 많이 채워놨다고 2장 가져가라고 해서 공짜로 얻어왔어요 완전 운이 좋았지 뭐야.”


“다행이네...”


방에 앉아있던 재학이 희수가 들어오는 소리에 맞춰 일어나 희수를 맞는다. 정리 안된 머리에 어딘가 수척해진 모습이다. 재학은 다행히 어떤 혐의점도 없어 단발성의 경찰 조사만으로 일은 마무리되었지만 감당해야 할건 그 뿐만이 아니었다.


전말과 경찰 조사를 알게 된 학교측은 은근히 재학의 출근을 불편해했고 재학으로썬 휴직 신청을 할 수밖에 없었다. 일이 있기 전엔 아무 일도 하지 않아 고립되었다 생각했는데 막상 그들에게 섞이고 보니 불을 옮겨 붙일까 걱정되는 불씨가 된 것 같아 재학은 헛웃음 지을 수밖에 없었다. 본인은 불꽃도, 불을 피울 수 있는 불씨도 아닌데.


희수는 이혼하고 집에 들어오라는 경철의 말을 따를 수 없었고 그러면 딸은 없는 셈 치고 살겠다는 경철의 말에 건강 챙기시라는 말을 남기고 집을 나섰다. 안타까움만이 가득 담긴 엄마의 시선을 끝내 피하며 재학의 옆에 남은 희수였다. 그런 상황에 경철이 해준 아파트에서 계속 살수는 없는 노릇이었고 재학의 휴직신청에 바로 당장 살 수 있는 월세방이라도 알아보고 들어온 집이 금호동의 달동네 언덕에 위치한 단칸방이었다.


“이 곳 생활… 힘들지?”


“에이. 또 그런다 그런 말 말아요 여보. 어디든 좋아요 나는. 그리고 앞으로 잘 될 일만 생각해요 여보도”


“…응”


“그리고 어차피 학교들도 새학기 시작하려면 한참이나 남았고 이 참에 쉰다 생각하고 좀 쉬어요 다음에 근무할 학교 정해지기 전까지. 돈은 뭐 당신만 버나 나도 사지 멀쩡한데 내가 벌어도 되니까”


“…”


걱정 말으라는 희수의 믿음 어린 눈빛과 말이 재학을 후벼팠다.


“배고프죠? 얼른 밥 먹어요 우리”


“…응”


본인과 결혼하지 않았다면 희수가 이런 달동네에 와서 살게 될 일은 없었을 것이다. 더해 본인이 죄책감에 쫓겨 그런 선택을 하지 않았다면 더더욱 가족과 연을 끊는 일도 없었을 것이고 돈과 끼니를 걱정 할 일은 없었을 것이다. 변변찮은 교사 월급으로 대단한 호사를 누리기 어려울 수 있을 것이나, 아버지인 경철이 본인 딸 고생하는 걸 두고 볼 위인이 아니었으니.


지금 재학을 가장 죄책감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만들고 때때로 재학을 무릎 꿇고 있던 한남동 집으로, 조사받던 경찰서로 되돌아가게 만드는 건 희수의 눈빛과 사랑이었다.


본인을 가장 사랑해주고 끝까지 믿어준다 말하는 눈빛이 재학을 가장 죄스럽게 하고 움츠러 들게 만들었다. 차라리 본인을 끝없는 원망의 한가운데 세워두고 그저 견디게 했으면 조금은 마음이 편했을까. 하는 못난 생각도 하게 되는 재학이었다.


그러니 재학은 급했다. 가족과의 단절, 세간의 시선 등 희수가 자신의 과오로 인해 견뎌야 하는 게 한두가지가 아닌데 거기에 가난까지 얹어줄 수는 없었다. 방법을 찾아야 했다. 최소한 이미 벌어진 일은 어쩔 수 없다 한들 경제적 궁핍을 겪게 해선 안되었다. 그게 본인이 가장임을 자처할 수 있는 마지막 동아줄이었다.


어찌보면 마지막으로 선택할 수 있는 것이었다. 영월에 가기로 마음먹은 것은. 영월은 항상 교사가 부족했고 오지라 본인의 소식이 인근 학교들 통해 들어갔을 리도 만무했다. 무엇보다, 이제 많이 연로한 어머님이기에 영월에 가서 같이 시간을 보내다가 유산을 미리 넘겨달라고 하는 것이 그리 무리는 아니리라 생각했다. 지금은 그 수 밖에 없다.


아무리 못난 생각이고 못난 아들이라 할지라도.


죄책감과 미안함은 가끔 사람을 반대로 기능하게 한다. 이미 갚을 게 너무 많기에 더 많은 빚을 지고 싶지 않아서 일수도 있고, 꼴 같지 않은 자존심이 굽히고 있는 본인을 못 견디게 하는 것일수도 있다.


이러나 저러나 재학은 이제 희수를 대할 때 뒤에 무언가 많다. 몇 년사이의 일들은 그를 조금씩 바꿨다.


부엌으로 모습을 감춘 희수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재학은 손을 들어 이마를 짚었다. 앉은 자세를 유지하기 위해 허리에 힘을 신경 써서 주고 있어야 했고, 팔을 들어올려 팔꿈치를 굽히고 손바닥을 펴 이마를 짚기까지 모든 동작을 신경써서 해야 했다. 마치 녹이 슬어 부서지기 직전의 장난감을 조심히 다루듯.


“후…”


밭은 숨을 내쉬는 재학. 제 온몸에서 참을 수 없는 녹내가 진동하는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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