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만나요_12화

by Breeze

아침해가 외출 준비를 막 끝낸 이른 새벽, 눈을 뜬 복순은 몸을 일으켜 세우고 홀로 앉아 정신을 추스른다. 아직 아침잠이 없어질 나이라곤 생각하지 않으나 평생 농사꾼으로 살아온 육신은 복순에게 늦잠을 한번 허락하지 않는다. 손을 뻗어 순이가 가져다 놓은 대접에 담긴 물을 들이 켜곤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고 방을 나선다. 6월이라곤 하나 이리 이른 시간의 산속 공기는 차다.


“헥헥헥”


나오는 복순을 본 먹보가 목줄이 팽팽히 당겨질 정도로 복순을 보며 힘을 내 다가오려 한다.


“밥 한번 챙겨줘 본적이 없는데 뭐가 좋다고 너는 볼때마다 그 난리냐...”


복순이 희미하게 미소지으며 먹보를 쓰다듬는다. 햇빛을 많이 보며 살아 덕분인가. 멀리 나간 자식 걱정이 앞선 덕분인가 복순은 어느 순간 웃는 법을 까먹은 사람처럼 웃음에 박해졌다. 웃는 법을 잃어버린 사람처럼 웃으려다가도 어느 순간 웃어지지 않는 본인을 발견하곤 한다.


“….”


그리 화창하진 않은 날씨, 바람이 조용히 불어온다. 바람은 복순을 조용히 지나쳐 뒷산의 나무들을 깨웠고 일찍 일어난 새들에게까지 인사를 건넨다. 새들과 바람, 나무 같은 것들의 아침 인사가 다 들리는 적막한 새벽이었다.


“…… 올해엔 얼마나 더우련지.”


물끄러미 하늘을 올려다보던 복순은 시선을 내려 먹보를 바라본다.


“잠깐 걸을려?”


“…...?”


먹보는 복순의 다리에 매달려 본인에게 말을 건네는 복순을 올려다보며 고개를 갸웃한다. 이내 복순이 목줄을 풀어주자 기다렸다는 듯 평상 밑으로, 수돗가로 요란스럽게 뛰어다닌다.


“이크 이놈아! 조용히해! 이리와!”


복순의 말을 들은 먹보는 멀리서 복순에게 재차 뛰어왔고 복순이 집을 나서자 복순을 지나쳐 앞으로 뛰어나간다. 한참 앞서가고 나서야 멈춰 복순을 돌아본다. 잘 오고 있는지 확인이라도 하겠다는 듯이.


평소 농사일에 홀로 자식들 건사하느라 시골사람 답지 않게 강아지 먹일 생각은 하지도 않고 살았던 복순이지만 왜들 그렇게 개를 키우는지 요즘에는 알겠는 복순이다. 얼굴보기 힘든 자식보다 이 녀석이 훨씬 낫다.


“......천천히 가 이놈아”


“헥헥헥!”


복순은 집을 나서 언덕 아래로 내려가 문산리 시골길을 뒷짐진 채 걸었다. 앞으로 한두시간만 지나도 사람들이 나와 구술땀을 흘릴 논밭이 새벽 어스름을 이불처럼 덮은 채 구요하다. 시골 구석 전체에 본인과 먹보만 깨어 있는 듯하다. 평소와 다른 적막함이 복순의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혔다. 먹보는 멀리까지 뛰어갔다 다시 돌아와 복순을 지나치고 또 다시 앞으로 뛰어나가기를 반복하며 신나게 뛰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자주 좀 데려 나올 것을 그랬다.


“…….”


걷고 있자니 평생 살아온 동네가 새삼스럽다. 바쁘게 농사짓고 아이들을 건사하느라 평소 산책이라는 걸 해본적이 없다. 새벽에 문산리를 걸어도 항상 바쁘게 논으로, 밭으로 나가던 길이었기에 구요한 시골길을 그대로 느낄 새 없이 살았다. 농사를 하고 새끼들을 먹이고 공부시키고 손 닿는 곳을 건사하며 살았더니 어느새 벌써 60이다. 참 바쁘게 살아온 인생, 젖먹이를 끼고 부군상을 치러야 했던 여인에게 적막함을 느낄 여유는 없었다.


한참을 걷던 복순은 걸음을 돌려 다시 집으로 향한다. 몇일 여유가 있다고는 하나 일이 없는 것이 아니므로 슬슬 집으로 가야 할 참이었다. 복순의 발걸음을 느꼈는지 먹보도 돌아 뛰기 시작한다. 방향으로 집으로 갈 걸 알았는지 복순을 돌아보지도 않고 뛰어간다.


집 앞에 서 잠시 들어가지 않고 가만히 마당을 바라본다. 그새 순이가 깨 수돗가에 앉아 쌀을 씻고 있었다. 옆에서 먹보는 순이에게 치대고 있고.


“아... 어머니”


순이가 대문 앞에 선 복순을 발견하곤 일어나 복순에게 인사한다.


“일어났냐? 부엌에 소고기 좀 넣어 놨다. 무 넣고 국 좀 끓여라 요새 재무놈 기운이 영 없는 것 같던데.”


“…네”


순이에게 말을 건네곤 마당을 가로질러 방으로 들어가버리는 복순. 순이는 잠시 서서 복순이 닫고 들어간 방문을 바라보다 본인에게 치대는 먹보를 쓰다듬어주곤 다시 앉아 쌀을 씻기 시작한다.


***


김순이. 1945년 11월에 태어났다. 아버지란 사람은 마차리에서 노름판을 전전하던 삼류 노름꾼이었다. 어머니란 사람은 본인을 낳자마자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고 한다. 다른 사람들은 낳아준 엄마가 있다는데 본인은 엄마가 없다는 이야기를 이해하는데 적잖은 시간이 걸렸던 어린 순이였다. 아버지는 집에 들어오지 않는 날이 많았다. 집에 막상 와도 말 한마디 붙이는 법 없이 방바닥 한 켠에 이불도 없이 팔을 배게 삼아 웅크리고 자기 일쑤였고 그나마 몇시간 안되어 나갔다.


순이는 마차리 시장바닥 모두의 시야에 있었다. 본인의 아비를 씨발놈, 육시랄 놈 하면서도 시장바닥 안에서 젖이 나오는 여자를 찾아 기어이 젖을 물렸던 집주인 신씨 할매. 순이가 어느 정도 걸음마도 떼고 말을 알아들을 정도로 크자 이리저리 잔신부름을 시키며 먹인 시장 사람들. 모두가 순이를 본인 할 수 있는 선에서 지켰고, 이즈음 순이의 아비는 집에 아예 발길을 끊었지만 마차리 시장 사람들 모두가 순이를 보살폈다.


순이란 이름도 시장 사람들이 지어줬다고 한다. 순이가 태어나고 신씨가 젖동냥을 다닐때 그 어린 것이 추운 한겨울에도 울지 않고 가만히 있는 모습에 젖을 물리던 막걸리집 경자가


“어쩜 이리 순하니. 앞으로도 순하게 살라고 이름을 순이라 하자.”


정작 얘기를 옆에서 듣고 있던 신씨는 계집이 순하면 사내놈들 종 노릇이나 더하냐며 욕을 해댔지만 결국 신씨도 어미 아비 정 없이 박복하게 태어난 인생 앞으로 순하게 풀리라고 순이라고 불렀다.


순이가 8살을 앞두고 있던 겨울, 신씨가 기침속에 걱정과 염려를 남기고 폐병으로 죽었다. 신씨가 죽던 날 순이는 신씨의 아들을 처음 봤다. 처음 본 그 어른남자는 순이를 어머니가 집에 주워다 놓은 골동품 보듯 보곤 한마디를 뱉었다. 기억나지 않는 것이 많은 유년시절인데 유독 이 말만은 잊히지 않는다.


“부모도 버린 게 제 집인 냥 살고 있네. 당장 짐 챙겨서 나가라. 여기 니 집 아니다.”


순이는 부모가 버렸다는 말보다 제 집이 아니라는 말이 더 아리게 다가왔다. 본인이 살고 있는 이 집이 제 집이 아니었던 걸까. 기억이 나는 순간부터 누구보다 오랜 시간을 같이 보낸 신씨할매가 내 가족이 아니었던걸까. 기억이 나는 순간부터 한번도 본적 없던 이 아저씨가 신씨할매의 진짜 가족이고 나는 가족이 될 수 없는 걸까. 그러면 제 집과 가족은 어떻게 하면 가질 수 있는것이지? 무엇 하나 어린 순이가 답을 찾을 수 있는 건 없었다. 신씨의 죽음은 돌아오지 않는다는 점에서 본인을 버린 어미와 어느 순간 모습을 감춰버린 아비와 다르지 않았고 부모도 신씨할매가 간 곳에 일찍이 간 것이라고, 그래서 돌아오지 않고 있던 거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그저 그렇게만 생각하기로 했다.


이후 순이는 시장 사람들이 거둬 이집 저집 옮겨다니며 일을 하며 살았다. 시장사람들도 뻔히 아는 순이의 사정에 어린 순이를 굶겨 죽일수는 없었기에, 일을 시키며 집 한 켠을 내어주고 밥을 먹였다. 시골 치고 그리 사정이 나쁘지 않은 마차리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대포집에서 2년, 제분소에서 2년, 국밥집에서 3년. 따로 돈을 받진 않았지만 그저 옆에서 같이 밥을 먹고 씻고 잠을 잘 수 있는 곳이 있다는 것에 그저 그렇게 살았다. 그 이상 무엇을 원해야하는지, 무엇을 꿈꿔야 하는지도 순이는 알지 못했다. 주어진 자리에서 정해진 시간이 되면 열매를 맺고 낙엽을 내리는 나무처럼 시장에 존재했다.


순이는 괜찮았다. 가끔 신씨할매가 보고싶긴 했으나 신씨할매가 좋아하던 코스모스를 보며 신씨할매를 떠올리면 그럭저럭 참을만 했다. 신씨할매는 코스모스 중에서도 동강에서 핀 코스모스가 특히나 예쁘다며 항상 코스모스가 피어날적이 되면 동강에 가 집에 조금 옮겨 심어 놓고는 했다.


다만 궁금하기는 했다. ‘학교’라는 곳이. 공부 잘한다는 아이들이 더 공부하러 간다는 ‘서울’이라는곳이. 본인이 학교에 대해 물을 때마다 난처하게 웃으며 둘러대던 어른들의 모습. 분명 악의보다는 설명할 수 없는 난처함이었기에 순이도 더 이상 그들을 난처하게 하고 싶지 않아 묻기를 멈추었다. 본인과 상관없는 일이라 생각하며.


***


이른 아침 ‘해로쌀상회’에서 순이는 눈을 떴다. 냉수를 한 사발 들이켜고 눈에 붙어있는 눈곱만 떼고는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는다. 오늘은 정미소에서 물건들이 들어오는 날이다. 아침부터 정신없이 움직여야 겨우 점심이나 시간 맞춰 먹을터였다.


“….”


아직 한적한 마차리 시장 한켠의 골목길. 가게들은 모두 닫혀 있고 저 멀리 혼자 일어난 멧비둘기만 바삐 울어댄다. 순이는 매일 앉아있는 나무 의자를 가지고 나와 앉아 길을 둘러본다. 벌써 이 곳에 온지도 2년째다. 주인 어르신부부가 많이 늙어 가게 보기가 어려워 순이와 얘기해 2층을 쓰는 대신 가게 일을 돌봐주기로 하고 들어왔다. 거기에 주인 할아버지가 야학에서 수업을 할 정도로 배운 사람이라 소문만 들었는데 들어오자마자 글을 배웠다. 이제 시장 바닥을 벗어나 어디 공장이라도 들어가려면 글줄은 읽어야 한다고. 정작 순이는 큰 관심이 없었지만.


“순이 나와있었구나~”


“안녕하세요.”


저 멀리 달달거리는 트럭이 상회 앞에서 차를 세우고 최씨아저씨가 내렸다. 아직 이른 시간임에도 몸에선 땀냄새가 풍긴다. 자신보다 훨씬 빨리 하루를 시작했으리라.


“어르신들은?”


“….”


순이가 아무말 안하고 있자 최씨는 옅은 한숨을 내뱉는다.


“순이야 이거 꼭 전해줘 알았지? 지금은 나도 어찌어찌 맨날 하던 게 있으니 가져다 드리는데… 이 이상은 힘들어”


“네…”


최씨가 더 이상 말을 하지 않고 고개를 돌렸다. 주머니에서 장갑을 꺼내 트럭위로 올라타 물건 내릴 채비를 한다. 순이가 받아든 것은 전표였다. 3월이 다 지나가고 있지만 2월부터 한번도 대금 결제가 안됐다는 전표


마차리가 탄광촌이 되면서 지나다니는 개도 만원 짜리를 물고다니는 동네가 됐다고들 우스갯소리로 하지만 그것도 해당 되는 사람들에게나 통하는 소리였다. 시장 외곽에 위치한 해로쌀상회에 찾아오는건 오래 된 단골들뿐이었고 새로 오는 손님은 없었다.


오히려 쌀상회엔 단골들에게 돌려받지 못한 사료값 외상만 쌓여갔다. 외상으로 받은 물건을 외상으로 주고 돈을 받지 못하고 있으니 가게에 딸린 외상값은 물 먹은 솜처럼 불어나고 있는 중이었고. 항상 아침에 가장 먼저 일어나 가게 앞을 쓸고 최씨가 와서 물건을 내릴 적엔 아들이라도 보는 냥 밥 먹고가라, 물이라도 한잔 마셔라 챙겨주던 주인 할머니가 미안한 마음에 나와보지 못하는 이유였다. 몇 년째 보던 싹싹한 청년이 마치 차사라도 된것처럼.


“어르신들 건강은... 괜찮으시지?”


“…네 괜찮으신 거 같아요”


“다행이네..., 순이도 고생하고 그럼 다음에 보자.”


“...네”


“…그래”


신씨의 죽음이후로 10년이란 시간은 아무것도 모르고 부끄러 말도 한마디 못하던 아이를 지나다니는 시장사람들 모두가 알게 했다. 시장을 오가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순이를 알았으며 순이도 시장을 오는 외지인이 아니고서야 전부 안면이 있었다.


물건을 다 내린 후 간단한 안부 인사 후에 최씨는 다시 트럭을 끌고 멀어져갔다. 멀어져가는 트럭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보던 순이는 허리를 숙여 비료며, 사료들이 든 포대를 정리하기 시작한다. 무거운 포대도 거뜬히 들어내는 모습이 퍽 씩씩하다. 그새 시장 골목에는 사람들이 하나 둘 나와 하루를 시작했고 곧 있으면 사람들로 복작일 터였다. 우선 가게안으로 물건만 먼저 들여놓고 후에 천천히 정리를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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